[오용익 목사님의 수련회 소감]

[오용익 목사님의 수련회 소감]

1. 이스라엘이 수상하다.

불쾌한 구원자가 떴다. 에덴추방의 취지가 이스라엘을 널 삼아 구르자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안티 이스라엘로 바뀐다. 이유 있는 구원을 고집하는 이스라엘의 바탕은 전날에 애굽의 배를 갈라 이스라엘을 끄집어내던 그 날선 밤의 위력에 홀연히 베이고 그제야 꼭 그렇게 자기 성을 파괴하면서만 자기증명에 나서시는 하나님의 조치로 이스라엘은 악의 배양지, 악의 시설물이 되었다. 그러니 “악아! 어서 기어 나와라.” 파괴당하는 하나님, 스스로를 파괴하는 하나님만이 진짜다.

사사, 구원자 없는 구원자가 온다. 옷니엘. 에훗, 삼갈, 드보라, 기드온, 돌라, 야일, 입다, 입산, 엘론, 압돈, 삼손, 엘리, 사무엘. 구원자도 아니면서 구원을 발생시키고, 구원되지도 않는 구원을 반복시키는 불가능한 미션을 수행하니 이스라엘은 통일되어도 그 정체가 수상하다. 교회가 수상하다. 우리가, 내가 참 수상하다. 이별이 만남보다 훨씬 쉬운데 사랑한다고 하니, 믿는다고 하니 수상하다. 억지사랑, 억지복음, 억지하나님, 억지예수, 억지교회, 억지믿음, 억지봉사, 억지헌금, 억지희생, 억지겸손, 억지천국, 억지목사, 억지장로, 억지선함, 억지겸손, 억지회개, 억지복음, 억지십자가, 이건 뭔가, 뭔가 이상하다, 수상하다.

현실과 합치되지 않는 언어의 부족(언어는 중지)을 알면서도 굳이 그 언어로 기어이 자아를 구성(자아의 연장, 확장)해내는 억지, “저게 나 이어야 해.”를 거쳐 “저게 나야”로 귀결되는 이 억지가 곧 죽어도 인간이랍시고, 신앙이랍시고 평생 채워 넣은 나의 나 됨의 증빙서류란다. “밥 먹고 살아 있잖아. 그러니까 인간 맞잖아.” 그래서 인간은 자기증명 못한다. “네가 인간인 것을 증명해 보라.”는 하나님의 추궁에 답변이 궁색하다. ‘단지 왕이 없어서’가 아니라 왕을 적극 이용하고 활용해서 내 팔자만은 고치겠다는 소견머리, 안티이스라엘, 안티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증빙은 진멸, 토벌이다.

2. 해석오류를 아시나요?

영희와 철수가 믿는 예수는 해석오류다. 지문의 내용과 가장 먼 것을 찾으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줄자를 동원해서 답을 찾아도 답이 아닌 이유다. 매일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해도 항상 낙제다. 죽음이 왕 노릇(로마서 5장)하는 현실도 모르면서 주체자리의 완고한 사수의지로 신과의 거래에 나서니 해석오류다. 오류를 수정해가다 보면 어느새 완전에 이른다는 발상은 시도자체가 실패고 악이다.

흐트러짐을 바로잡고 질서를 부여해서 나름대로의 의미세계를 구성하기 위해서 사법적 영역을 마련해서 사람다운 사람행색을 해보지만 인간의 본성이 어디가지 않는다. 법을 무시하고 밟는 방식으로 법을 뛰어넘으려 들든지, 법을 지켜서 법을 굴복시키는 방식(성화론)으로 그렇게 하든지 ‘선위에 법 있고 법 위에 나 있다.’고 호언하면서 ‘나 외에 다른 신’은 한 번도 허락하지 않고 각자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그 본성이 어디가지 않는다. 레위인의 첩을 돌려가면서 농락한 범죄자 인도를 거부하면서까지 법을 유린하든지, 신의 정의에 충만해서 범죄인 인도를 요구하고 전쟁도 불사하면서 법 집행의 정의를 실행하든지 이스라엘은 무너져 내린다. 왕이 주어지고 세습제왕정이 들어서고 인간의 몽상은 극한을 달리는 짐승(국가)이 된다. 매일 얻어터지면서도 도리어 더 때려달라는 식으로 짐승과 유착된 인간의 정신세계는 이미 혼돈이다.

짐승으로 치닫는 이 현실은 왜인가?

‘에덴동산에 선악과와 생명나무 있더라. 그 두 나무가 인간보다 먼저 있고 인간보다 위에 있더라. 선악과와 생명나무는 법이 아니고 약속이더라. 그 약속은 내린 분이 스스로 알아서 완료한다더라. 그래서 우리구원 없고 주님의 구원만 있더라. 주님의 구원만이 은혜로 주어져서 구원받는다.’는 횡재의 복음을 전해도 불쾌하게 들릴 수밖에 없도록 작용하는 해석오류의 기제. 인간이 어리석어서 해석을 잘못하는 게 아니었다. 의미 층의 도약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의도적 단절에 의해서 인간은 갇혀 있다(신약, 갈 3장). 생명나무와 선악과 구조 안에 갇혀 있다.(구약)

“혼돈에서 질서 나오고 그 질서에서 악이 나온다. 질서에 선악과 심겼다. 선악과의 벌칙, 정녕 죽는다. 죽어야 될 이유를 보여주기 위해서 악 있다. 악은 죄를 유포해줘야 한다. 그래야 죄가 장성해서 죽음을 낳기에. 하나님은 질서 속에서 선악과를 이루기 위해서 악을 활개치게 만들고 그 결과로서 하나님의 심판의 죽음을 야기하기 위해서 짐승으로 치닫는 현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드시는 세상구조다. 이 구조를 위해서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고 언어는 문화가 되고 그 문화(물론 기독교라는 취미생활을 포함해서)는 짐승에게 복속된다. 십자가의 단절이 없이는 짐승의 영속이 지옥까지 뻗치게 되는.”

아버지의 객기로 딸이 죽고 어머니가 나대니까 아들이 죽는다. 끊어줘야 산다. 혼돈에서 질서 나오고 그 질서를 뭉개는 혼돈 속에서 예수 나오신다. 선악과의 중단 없는 취지로 우리를 발판삼아 약속을 이루시는 주께서 널을 뛰면 해석오류가 낳은 자식들인 우리는 이제 그냥 죽으면 된다더라(먹으면 죽으리라). 모든 관계여, 그만 무너지기로 하자. 내가 사랑하는 아내와 사이좋게 낳아서 고생스럽게 기른 내 아들아, 내 딸들아, 그리고 사랑스런 아내여, 이별이 만남보다 쉽단다. 딸을 잡고 아들을 잡아도 죽지 않는 이 아비의 객기와 억지사랑과 함께 우리 집은 이제 함께 무너지기로 하자.

자기로부터 출발해서 자기를 벗어나겠다는 자기연장(동일성), 내가 꿈꾸는 상상의 세계가 천국이라고 믿고 싶지만 처음부터 인간은 주인공도, 구원의 대상도 아니었다. 우리의 머리, 소경이면서도 본다고 우기는 눈알이 박힌 그 머리가 통째로 들려야 한다. 그 쾡한 자리에 십자가가 박혀야 그리스도 주가 보인다. 주를 바라보기 위한 얼굴(시선)이 된다. 구원받는 자가 아니라 구원에 쓰이는 자가 되어야 한다.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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