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사도
이방인의 사도
디모데후서 4:17-18
이방인의 사도 이방인은 구약 율법에 의할 것 같으면‘할례 없는 자’입니다.(겔 28:10/삼상 14:6) 할례가 없다는 것은 거룩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된 백성이 되려면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입니다. 아브라함 가정에 속한 자는 이방인이라도 할례를 받아야 아브라함의 복을 받습니다.(창 17:12)
유월절날에도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유월절의 혜택을 누립니다.(출 12:48) 이처럼 할례받는 조건은 하나님의 약속 혜택에 있어 최우선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이방인에게 구원을 전한다는 것은 사도가 할례를 필히 실시하라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방인들에게 더는 할례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6) 복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할례받은 것을 자랑하는 것은 십자가에 담긴 복음을 훼방하는 짓에 불과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갈 5:11)
그렇다면 어떻게 구원에 필수적인 할례가 복음 앞에서는 불필요한 것이 되었을까요?
골로새서 2:11-12에 보면,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할례가 세례로 완성된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례란 물 뿌림을 받는게 아니라 예수님과 더불어 죽어서 새로 지음받은 자가 된 것을 뜻합니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갈 6:15) 바로 이러한 복음으로 인해 구원의 성취를 방해하는 세력으로부터 사도는 무수한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이는 곧 십자가에서의 “다 이루심”을 악마 나라에서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싶은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