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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자
갈라디아서 6:15-16 새로운 자 천국은 변화된 자만 집결됩니다. 어디서 어디로의 변화인가 하는 것은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서 잘 나타나있습니다. 저주스러운 심판에서 긍휼의 대상으로의 변화입니다. 이 작업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들려오는 말’과 ‘주님의 말’을 병행하십니다. 왜 그런고 하니,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세상으로부터 포위된 채 저질러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둘러쳐서 쏟아낸 말들은, “인간들의 말 외에 다른 진리는 없다”는 것을 계속 강요하는 말이었습니다. “우리 인간들의 말을 들으라”는 겁니다. 인간들이 말을 들으면 살 수 있으되 인간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죽는다는 것이 이 세상의 원칙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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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리석은 이야기
디도서 3:8-9 어리석은 이야기어리석음에는 기준이 있습니다. 구약에서의 기준은 이러합니다. “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하나도 없도다”(시 53:1,3) 이 말씀이 신약에 오면 십자가 앞에서 그 본말이 드러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 즉 어리석음이 일부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인간에게 다 적용되는 사실이라는 겁니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어리석음을 출발선으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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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학선생
갈라디아서 3:23-25 몽학 선생‘가르친다’는 것을 그 대상을 교사가 원하는 수준까지 기어이 변화시키고 이끌고 말겠다는 의중이 담겨 있다. ‘가르침 받은 결과’를 교사가 원하기에 가르치는 겁니다. 인간이란 평생에 자신이 자신의 인생을 끌고 가야 한다고 여기면서 살아왔기에 선생의 말을 듣기 보다는 선생의 말을 참고로 하고 순간순간 선택은 자기 결정에 의해 마무리 지워나갑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내리는 결정이란 외부 인물이 강제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강압에 의해서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최종 결정은 본인입니다. 그 인간의 허락과 지휘 하에 외부인을 이용할 뿐입니다. 자기마저 포기하고서 남의 말을 듣지는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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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참기
데살로니가전서 5:12-15 오래 참기 예수님께서 친히 사람 속에 섞여 들어오신 것처럼 성도는 고립해서 따로 살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을 대하면서 그들로 인한 서러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만나면서 본인들이 몰랐던 하자들이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이 산다는 것은 세월가면서 본성상 담겨있는 죄악된 것들이 꾸준히 커져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안에 아담의 죄악된 본성이 자라나는 것을 알 수 없는 것일까요? 그것을 방치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인간은 자기를 좋게 평가하기 전에는 타인을 만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장에 나설 때는 남에게 기죽지 않는 비장의 무기를 지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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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범위
데살로니가후서 3:1-2 믿음의 범위 ‘선택’이라는 말 자체가 ‘모든 자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배제’를 전제로 한‘선택’입니다. 배제대상인지 선택대상인지는 인간이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종 선택의 조건으로 성령이 오셔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모든 인간은 당연히 선택될 권리가 없음이 분명해졌기 때문입니다. 즉 어느 누구도 배제된 것에 대해서 ‘억울하다’고 하나님에게 하소연할 위치에 있지 않음이 다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한 믿음은 애초에 인간에게 없습니다. 구약 하박국 2:4에 보면,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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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의 열매
고린도전서 15:20-24 부활의 열매사람이 존재라는 이유는, 사람보다 먼저 존재하시는 창조주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부활이라는 것도 사람이 기대했기에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도리어 부활은 인간의 모든 기대를 벗어나서 생겨난 상황입니다. 이로서 인간은 아무리 애를 써도 부활에 대해서 알지를 못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모든 사상이나 생각들이 자신이 분명하다고 장담하는 바로 그것으로부터 시작이 되고 도출되기 때문입니다. 소위 자신들이 안다고 자부하는 것으로만 세상이 짜여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이러한 인간들의 의도를 빗나가면서 등장하고 활동합니다. 인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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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없는 상태
데살로니가전서 3:11-13 흠없는 상태온전한 상태, 거룩한 상태는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그 안에 ‘하나님 자신의 것’이 담겨 있기에 귀한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 이 귀한 것을 ‘사랑’이라고 표현합니다. 사랑이 모든 율법의 완성입니다.(롬 13:10) 이 사랑 안에는 인간의 육적인 것을 모두 빠져버려야 합니다. 즉 사랑이 인간을 심판하는 겁니다. 사랑이 인간을 죽여버리는 겁니다. 더는 인간의 행함이 섞여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이룰 수 없습니다. 이는 곧 인간의 힘으로 자신을 온전한 상태로 변모시킬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모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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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
히브리서 3:15-19 안식 시편 106:23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저희를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 택하신 모세가 그 결렬된 중에서 그 앞에 서서 그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않게 하였도다”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이스라엘을 광야로 통과케 하셨습니다. 이는 인간들이 기대하고 만족케 하는 예상을 의도적으로 빗나가게 하시려는 겁니다. 분노하는 인간과 그 분노에 분하시는 하나님과 격돌하게 하신 겁니다. 이처럼 인간들이 분노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 미래를 대비하려는 자세를 모독받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는 평소에 인간들이 주변 환경을 통해서 자체 자립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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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시 받은 자의 자세
고린도후서 12:7-10 계시 받은 자의 자세요한복음 3:27에 보면,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요청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계시는 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동업하시지 않습니다. 흥정이나 협상의 대상자로 여기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시는 예수님께로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즉 인간들이 납득하거나 이해되는 식으로 전달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계시를 접하게 된 자는, 계시의 최종 의미는 예수님의 행하심으로만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를 알려주지 않으므로 서 이 세상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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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와 남편
골로새서 3:18-19 아내와 남편같은 사람이면서도 누가 누구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뭔가 복종한만큼 얻는 이익이 없는 이상은 성립될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 세계의 기본 원칙은 ‘생존’입니다. 이 성향으로 인간들의 마음은 꽉 차 있습니다. “내가 생존해 있지 아니하면”, 달리 말해서 “내가 여기 있지 아니하면”그 어떤 고상한 가치나 의미도 다 소용없다는 식으로 이미 인간들의 마음은 정돈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누구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나의 생존과 나의 가치추구에 추가적으로 보탬이 되는 조건을 일단 기대하고 난 뒤의 취할 태도라고 여깁니다. 따라서 인간 세계의 부부란 하나님의 말씀하고 아무런 상관없는 사이인 겁니다. 부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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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세
히브리서 6:13-15 맹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에게 하신 맹세를 아브라함을 통해서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보면, 아브라함은 장차 오실 예수님께서 그 시대에 미리 오신 바가 됩니다. 여기서 아브라함과 하나님 관계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가 미리 수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복주십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다른 이들이 복을 받는 것은 나중 문제입니다. 복이라는 하나님께서 만족하실 만한 조건이 충족되었다고 여기시고 그 존재성을 확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번성’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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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와 종
갈라디아서 2:1-5 자유와 종자유와 종은 반대말입니다. 억매이지 않는 신분과 필히 억매이어야 하는 신분으로 갈라집니다. 사람들에게 있어 자유인이라는 신분과 노예라는 신분은 전통적으로 줄곧 내려온 것입니다. 사회가 복잡하게 되고 분업화되면서 각자 종사하는 일이 분화가 됩니다.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능력이 출중하기에 보다 중요한 일을 맡게 되고, 어떤 이들은 단순한 일만 겨우 처리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있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소득이 누적되면서 시간이 지나게 되면 소유의 차등이 발생하게 되고, 그것이 계층의 차등으로 굳어집니다. 이는 신분마저도 극복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돈으로 신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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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믿음
갈라디아서 5:5-6 사랑의 믿음‘효력이 없다’는 말은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노력을 게을리 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인정하지 않는 식으로 노력했다는 말입니다. 가짜라는 말이요 거짓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이 정성들여 애쓰고 노력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인정하고 받아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지속적으로 상호 모방이 빈번합니다. 원본이 없는 이상, 복사물이 번창하게 됩니다. 인간의 번식부터가 올바른 인간상을 낳지 못하는 판국에 이 세상에 진실을 찾는 것 자체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형편에서 ‘성령’을 언급합니다. 이것은 인간 자체적으로 제시되는 것과 비교되는 원천을 성령님은 제시하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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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막집
고린도후서 5:1-3 장막 집임시 거처는 이동하기 편리하도록 지어져야 합니다. 무너질 것을 예상해야 하지요.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몸을 ‘장막집’이라고 표현합니다. 처음부터 우리의 몸은 그 용도가 다 되면 폐기처분이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오늘날 우리들의 가족에 대한 인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식구들은 폐기 대상을 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는 우리 자신에 대한 느낌이 그대로 가족 단위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나에게 참으로 소중하듯이 나의 가족도 내가 거기에 있음에 소중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할 운명이라고 여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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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족
빌립보서 4:10-12 자족‘자족’, 스스로 만족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마음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악마의 손아귀에 넘어간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탐을 내지 않으셨습니다. 반면에 악마는 광야의 시험에서, 그동안 인간들이 맥을 추지 못하고 탐을 내는 것들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제안하셨습니다. 즉 “이런 것들이 너에게 탐이 나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광야에서 악마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그 취지는, 이미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아들’ 곧 ‘메시야’ 개념에 대해서 나름대로 정리한 바가 있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즉 ‘메시야는 인간의 요구와 아쉬움을 달려주는 자’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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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법은 그림자
히브리서 10:1-4 율법은 그림자율법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지상에서 ‘하나님의 대변자’ 노릇을 해야 될 민족입니다. 개인적 수준이 아니라 집단적 수준으로 하나님의 뜻을 대변합니다. 그 이유는 모든 인간들의 개별적 차이는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집단으로 묶어놓아도, 혹은 개인적으로 다루어도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즉 ‘누구는 훌륭하지만 누구는 나쁘다’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집단이 하나의 개인처럼 다루어지고 처벌되도록 율법이 이스라엘을 묶어놓는 겁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서 배재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약속에서 배제되기에 이는 곧 하나님으로 버림받은 딴 집단에 일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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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보자
디모데전서 2:5-6 중보자 중보자없는 하나님이 인간들이 생각할 수 있는 신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중보자는 인간 담당으로 이미 무당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8:9-12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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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
히브리서 2:17-18 시험 ‘산다는 것’은 시험을 통과하는 일입니다. 빡빡한 환경 안을 뚫고 지나가야 합니다. 범죄한 인간에게 있어 저주스러운 삶은 숙명같은 겁니다. 범죄에는 저주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 이 환경에서 그 누구도 예외없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조차도 예외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저주가 대세인 세상에서 경쟁은 필연적입니다. 상호 경쟁자의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타인을 밀치고 얻고자 하는 것을 차지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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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려진 자
고린도후서 13:5-6 버리운 자 믿음 없는 자는 버리운 자입니다. 이 말씀을 이렇게 바꾸어서 이해하면 됩니다. 즉 ‘버리운 자는 믿음이 없는 자’라고 말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원하지 ‘인간’ 그대로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태어난 인간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엄청 많습니다.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났음’ 자체가 구원의 근거가 아니라는 말씀은, 뭔가 변화되어야 됨을 뜻합니다. ‘변화’라는 것은 변화되기 이전의 것과 변화 이후가 확연히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변화를 야기하는 요인들은 쉴새없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세상이 주는 변화는 기껏해봤자 땅의 사람에서 땅의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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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물의 분량
에베소서 4:7 선물의 분량철저하게 분류 당함, 차별 지어짐이 선물의 기본입니다. 사람에게도 오지 않는 선물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 그들에게 그 어떤 기대를 걸지 마세요. 그들에게 은연 중에 요구할 바도 일체 없습니다. 선물은 돈이 아닙니다. 나의 생계와 관련된 것을 선물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렬하게 죽을 수 있는 힘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인간이 본성상 이런 선물을 찾지도 않을 뿐더러 간절히 바라지도 않을 겁니다. 그래서 인간의 예상 밖의 내용으로 선물이 제공됩니다. 인간은 선물에 약합니다.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다 선물로 받은 것이 아무런 질적 충돌 없이 합세가 되고 합류되기를 원합니다.
-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