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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살기(감사함)로 그 문에 들어가
감사함(비리,불륜,뒤로빼돌려합격=성령의 소욕)으로 그 문에 들어가 (시 100:4, 개역)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계획된 프로그램을 말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인간이 만든 만악의 근원인 종교 기독교를 박살내겠다고 떠벌리고 다니고 있다. 얼마나 감사한지 (마귀의 활동이 없으면 복음이 안된다. 어둠이 아니면 빛의 차이를 알길이 없다.) 선악과를 따먹은 다윗은 도리어 생명나무에 따먹힘으로써 이 부조리에 감사함을 외친다. 아무리 봐도 불합격인데 아무리 성전에서 기도해도 고개도 못드는 죄인인데 (주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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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추는 자
누가복음 14:7-11 낮추는 자흔히 세상에서 상식적으로 통하는 겸손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기 낮춤’은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세상적인 겸손은 그것을 통해서 자기 자리를 고상하게 장만하려는 의도가 담겨있습니다. 사람이란 항상 타인들의 간격과 거리를 통해서 자신의 위치를 정립하려고 하기 때문에 겸손에 대해서 경쟁적입니다. 즉 “네가 더 겸손한지 아니면 내가 너보다 더 겸손한지 어디 시합 한 번 붙어봐!”라는 관계 맺음을 통해서 자신의 수준을 가늠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겸손이란 사람하고 비교가 아니라 예수님 앞에서 천국의 백성이 갖추게 되는 태도를 말합니다. 즉 분위기 파악이 되느냐를 묻는 겁니다. 환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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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법의 마침
로마서 10:1-4 율법의 마침사랑하는 자기 민족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의’를 제시합니다. “율법을 사수하는 동포여. 율법을 통한 기대는 이미 마감되었습니다.”라고 외칩니다. 마감되었음을 증거는 바로 십자가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제정하는 법이라는 그 율법에 대해 거는 기대는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법을 통해서 우리와 만나시기를 원한다. 따라서 법을 준수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허락되고 법을 지켜내지 못하는 자들은 탈락이다”는 의식입니다. 이 의식은 인류가 살고 있는 모든 삶의 마당과 장터에서 예외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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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시아 탄생
마태복음 2:7-12 메시아 탄생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므로서 기존에 자신을 사람이라고 행세하는 자들은 새로운 비교 기준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되신 하나님’과 그리고 ‘나라고 하는 사람’과 과연 동질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지가 검토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같은 인간들 끼리 비교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너는 어떻게 나는 이렇다는 식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동방박사들의 관심사는 같은 사람들에게 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분을 찾아왔습니다. 이로서 동방박사는 ‘현실 속의 현실’에 뛰어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 다니엘 3장에서, 다니엘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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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한일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1. 선한 일 이란 어떤 일을 일컫는 것인가요?2. 이 말씀을 받고 2가지 반응이 나타날 경우는 왜? (괄호부분 말씀을 주동력으로 삼고 해석, 적용) 첫째 - 주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빌립보서 2:13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니) 둘째 - 그 선한 일을 주안에서 제가 하겠습니다. (빌립보서 4:13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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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법의 완성
로마서 13:8-10 율법의 완성십계명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십계명에 대해서 하나님 자신마저 그 계명을 지켜야 되는 대상으로 삼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말씀 전하고 아들 되시는 예수님께서도 그 말씀을 지키고 완수하게 됩니다. 그 완수의 끝은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이렇게 해서 인간에 의해 ‘율법의 완성’과 예수님에 의한 ‘율법의 완성’을 비교케 하십니다. 즉 과연 인간이 이 세상을 살 가치가 자체적으로 확보할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법도 지키지 못하면서 계속 자기 목숨을 구걸할 처지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율법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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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아 주어라
고린도전서 6:6-8 속아 주어라거짓말, 남을 속이는 것, 이 모든 것은 엄연히 악마의 심보입니다. 그런데 거짓말에는 조건이 붙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를 위하여 남을 속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곧 ‘자기를 위하여 바르게 사는 것’도 하나님 보시기에 악마적 속성에서 나온 거짓에 해당되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운명이 악마가 저질은 속임수에 의해서 확정되었다는 말은 곧 인간의 운명이 인간 본인 손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이 악마에게 기껏 할 수 있었던 일은 저항이 아니라 ‘속아 주는 것’이었습니다. 악마가 아담을 유혹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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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가 가짜를 가리켜 가짜라고 할 수 있는지요?
질문입니다.가짜가 가짜를 가리켜 가짜라고 할 수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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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 씻음
고린도전서 6:8-11 죄 씻음 오늘 본문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라는 말을 빼고 아예 적용시키지 않고 다시 보게 되면 그렇다면 남는 것은, ‘스스로 알아서 반성’만이 ‘죄 씻음’과 연결될 수 있다고 간주될 것입니다. 즉 본인이 본인의 죄를 씻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입니다. 그 다음에 ‘주 예수 그리스도’만 언급하고 ‘성령 안에서’를 빼게 되면, 남는 것은 “예수님에게 지적받는 자를 비로소 죄를 알게 되고 그러면 그 지적에 대해서 회개하면 예수님으로부터 죄 씻음을 받게 된다”는 식으로 죄 씻음이 정리될 것입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자라 할지라도 예수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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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와 회개
본문 : 누가복음 17: 1 -4 제목 : 용서와 회개 ‘나’라는 것은 없습니다. 오직 전체적인 아담만 있고 그 아담의 지체요 부분으로만 살아갈 뿐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나’를 고집하게 되면 필히 그 사람은 자기를 최종 목적으로 사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죄가 요구하는 대로 즐겨 끌려다니면서 그것조차 의로움이라고 우길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소속이 전체 아담이 아니라 독자적인 ‘나’만의 세계, 나만의 신앙영역을 따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전체에서 떨어져 나가고자 하면서 이미 문제가 발생되고 있습니다. 이런 인간을 자기 자신의 세계로부터 뽑아내어 전체 아담류 속에 집어넣으시는 것은 예수님만이 해내실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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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망 담기
원망 담기 와 수치가 물러감 (선지자의 역할)2011년 6월 29일 수요일 오전 10:14:11 김대식사람이 자기 경험 속에서 살다보니 보통사람을 다 접하면서 나름대로 적응력을 완벽하게 구비해 놓고 삽니다. 그것이 지금 자신이 이루어놓은 삶의 안정성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다 과거입니다.이런 터를 비집고 쳐들어 오는 존재가 있습니다. 이질적입니다. 아주 낯설고 모든 경험을 다 동원해서 방어에 나서고 싶어도 막을수가 없습니다. 다 빼앗는 도둑놈이 쳐들어 온 것입니다.선지자의 역할은 원망담기입니다. 이쁘게 아득한 살림을 지적이고 엘레강스하며 나름 거룩한 누가봐도 욕먹지 않을정도의 신앙생활까지 겸비한 그 아득한 에덴동산에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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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적과 지혜
고린도전서 1:22-24 표적과 지혜 유대인과 헬라인의 결합으로 온 인류의 성품은 다 모여든 셈입니다. 헬라인들, 곧 이방인을 대표하는 그들이 지혜를 찾고자 하는 바는 신의 영역에 가입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1:4에 보면,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땅에 사는 자들이 왜 하늘을 지향할까요? 그것은 궁극적인 한 지점을 하늘에 두므로서 ‘흩어짐을 면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힘이란 하나의 모습으로 정리되는 식으로 움직입니다. ‘최후의 하나’를 사람들은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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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00명
로마서 11:1- 5 7000명7000명. 상당히 많아 보이는 숫자입니다. 전혀 백성들 속에 섞어놓아도 심심찮아 발견되는 숫자 같습니다. 하지만 엘리야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엘리야에게는 0입니다. 이것은 엘리야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진실이란 늘 0지점에서 새롭게 창조되는 방식으로 출몰하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의 오해는 자신마저 0로 간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7000=0입니다. 7000명이나 있다고 여유부릴 상황을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되는 늘 반복되는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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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님께‥
지난번 비밀글 때문에 민폐를 끼친 아웃사이더 입니다·이메일로 보내주신 답변 오늘 다시 읽어보니 ‥ 그렇게 고마운 답변도 없더군요· ‥읽고 또 읽었습니다‥죄송했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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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련회 간단 소감과 교재 서론 질문
수련회 간단 소감과 교재 서론 질문수련회 지나고 잠깐 사이 10일 지났습니다. 처음 갖은 수련회라서 떨리는 마음이 많이 앞섰지만 여러 성도님 덕에 아무 한일도 없이 섬김만 받고 왔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수련회 7, 8강으로 접어 들 때, 목사님 목소리도 조금씩 잠기어 가고(수고에 감사) 저의 눈꺼풀도 슬금슬금 잠기어 가고 있었지만, 그동안 강의 내용은 결코 그럴 수 없었습니다.뭐 그냥 너덜너덜 해진 제 모습, 다이너마이트 터져서 충격파에 널덜대는 옷처럼...나의 영역, 나의 위치, 나의 철학까지 너덜너덜...가짜인 나두려움이 남고, 개인 사정상 9강을 못 듣고 서울로 왔습니다.9강을 접하고 나서는 더욱 멍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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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제가 가는 교회가 있는데(억지로..) 교회 설교를 들을때마다 자기구원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봅니다. 근데 제 주변에 친구가 있어도 교회사람들만 있어서 제가 세상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하는 이유가 과연 복음때문인지(만약 그렇다면 사교성 없는 사람들은 복음믿을 가능성이 농후한건지)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가끔 인생은 혼자다 라는 철학을 가진 몇몇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을 볼때면 혹시 복음을 믿지는 않을까? 라는 약간의 기대를 하거든요. 이상하게도 무슨 문제가 있어보이는 사람들은 복음을 혹시 알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거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다른것 같고 그 다름을 말로는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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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와 열매
《 설교 요약 》 2010년 7월 4 일 - 이근호 목사〈 지난 주 설교 요약 〉그림액자에 갇힌 꼴이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그 속에서 아무리 울고 아무리 웃어도 ‘영원한 저주와 고통’은 사라질 리가 없습니다. 사람이란 생각하는 기준이란 세상에 갇혀 있는 기준입니다. 그것은 세상이 황무지로 변해야만 하는 기준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제시한 그림은 예수님과 세례 요한과의 만나는 그림입니다. 그는 황무지 위에서 비로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외치게 됩니다. 〈 이번 주 설교 요약 〉본문 : 누가복음 6:43-45 제목 : 나무와 열매 사람은 자신의 뿌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 뿌리에서 나라는 열매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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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능,예술 ...은 무엇일까요ᆢ
죄인들에게 저마다 잘하는 재능을 주셨는데 그재능을 살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계를 유지해가며 살고 있습니다ㆍ누구는 새싹부터 알아보고 그 재능을 살려 남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받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살고 또 더러는 자신의 재능을 아직 찾아내지 못하기도 합니다ㆍᆢ그 한분야로 예술도 있는데 ᆢ복음적인 관점에서 재능과 예술은 무엇인지 견해를 듣고 참고하고 싶습니다ㆍ스스로어떻게 정의내려야 할지 그저 막연하고 불투명해서요ᆢ너무 광범위한 질문을 하나, 염려도되는데ᆢ왠지모르게 꼭 알고 싶습니다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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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고린도전서 8:5-6 주님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 자기가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를 ‘주’로 간주하는 의식입니다. 모든 의미의 최종적인 집합 장소는 오직 자기 자신입니다. 모든 가치 유무와 좋은 것들의 최종적으로 자기 쪽으로 귀환되는 조치가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성경에서 우상을 거론하면서 “그런 신은 신이 아니야!”는 말씀은, 그 우상은 항상 인간을 통해서 만들어졌기에 내용상 인간의 본질과 결부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곧 인간은 자신이 ‘주’라는 사실을 성격상 포기하지 못하고 남발하면서 인생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곧 죽더라도 자신의 ‘주님되심’을 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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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법 외의 한 의
로마서 3:21-24 율법 외에 한 의 율법에서 도저히 인간들이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율법의 율법되게 하기 위해서 인간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의 취지를 나타내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겁니다. 이는 인간이 인간 자신이 신처럼 완전하기 위함을 신으로부터 요구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간이 ‘완전’에 대해서 생각을 갖게 된 것조차 악마의 유혹에서부터 출발한 겁니다. 즉 악마의 생각에 인간이 흡수 되면서부터 인간은 신되기를 자신이 달성하는 목표로서 간주하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현상조차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
-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