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광야)을 뚫어버리는 단절(뿔:세례)

우리교회 주보 요약 - 이근호《 설교 요약 》 2010년 1월 31일〈 지난 주 설교 요약 〉사람은 가족 중심입니다. 아담의 성질을 그대로 물러받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뭐든지 자기쪽으로 끌어당깁니다. 심지어 예수님마저 그렇게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름대로 자기 작업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될 자를 발굴하여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기는 일입니다. 끌어당기면서 성전에서 끌어당기십니다. 성전이란 인간이 숨길 수 없는 자기 본색을 그대로 드러내는 곳입니다. 십자가 앞에 서게 되는 공간입니다. 우리는 죄인이 되는 벼락을 맞아야 합니다. 〈 이번 주 설교 요약 〉본문 : 누가복음 3:3 -6 제목 : 세례요한의 역할 요한이라는

유월절의 완성

누가복음 22:1-6 유월절의 완성 이스라엘에게 있어 절기란, 나라의 주도권이 인간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인간들은 이스라엘의 구성원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게는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분이 함께 상주하고 계십니다. 그 어떤 경우라도 주도권을 사람들에게 양도하지 않으신 분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구성원들이 품고 있는 각자의 의견은 늘 하나님의 율법과 절기에 의해서 재평가 받아야 됩니다. 즉 유월절에 참여하므로서 과연 우리들 자신은 유월절로서 나타내시면 하나님의 현존에 동의하고 있는가를 돌아봐야 합니다. 옛날 이스라엘은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 이 세 가지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기이한 부정

마가복음 29 : 기이한 부정2011년 7월 12일 화요일 오전 9:03:16 김대식(막 10:1, 개역)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막 10:2, 개역)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막 10:3, 개역) 『대답하여 가라사대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막 10:4, 개역) 『가로되 모세는 이혼증서를 써주어 내어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막 10:5, 개역)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막 10:6, 개

'하나님의 선택'을 읽고 질문 드립니다.

103p 중반에 보면, 부주의로 살인한 자를 하나님이 살려두시는 이유는 그 일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자비성과 긍휼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발생한 일이라 하셨는데, 또한 104p 아래에서 7번째 줄에 보면 '이로써 살인자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한 셈이 된다'고 하셨는데두 부분이 같은 맥락인듯 한데 저에겐 어려워서 의미에 대한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음행과 구원

고린도전서 5:1-5 음행과 구원 음행과 구원은 상관있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성경 전편에 걸쳐 ‘음행하지 말라’는 지시가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음행이 개인적인 윤리에 국한되어서 사용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때에 복음을 피하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도 음행의 궁극적 뜻으로 굳히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아예 인간 세상 자체를 ‘음행하는 음녀’로 표현합니다. 이것은 곧 세상을 지배하는 어두운 영과의 관련성 있는 모든 시도를 음행으로 간주하시는 겁니다. 구약에서는 언약이 없는 이방신을 신봉하는 것을 음행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구약과 신약 전체를 걸

환란 중에 즐거움

로마서 5:1-4 환란 중에 즐거움 성경에 말씀하는 환란에 해당되는 경우는 사람이 만들거나 자신의 실수로 이루어지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본인이 무지하거나 욕심을 부렸거나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고 환란을 당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환란이란 성도가 저항할 수도 없이 그냥 마땅히 받아들어야 될 상황을 말합니다. 거부하거나 본인이 잘못이라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도리어 환란을 거부하고 외면하는 것이 더 수상합니다. 참으로 신앙을 받게 된 자라면 복음으로 들이닥치는 환란을 구원의 필수코스로 생각해야만 합니다.

도저히 용서 될 수 없는 자를 용서하시는 분을 목격하…

우리교회 2009년 11월 8일 주보 - 이근호 《 설교 요약 》 2009년 11월 8일〈 지난 주 설교 요약 〉믿음 자체가 표적입니다. 표적이란 이적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기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지도 않는 일, 즉 우리 자신이 비정상적인 존재라는 것을 들추어내는 그런 기적을 표적이라고 말합니다. 이 표적으로 인하여 구원얻을 자와 정죄받을 자가 결정됩니다. 이런 안목이 성도에게 생기는 것이 바로 부활의 능력이 성도를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성도는

인간 관계라는 것은ᆢ?

사람은 본연적인 외로움 같은게 있지요ㆍ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외롭지요ㆍ늘 대인관계에서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데ㅡ사회적 가면 같은 ㅡ사회생활에서 필요악으로 쓰고다녀야 할 가면은ㅡ죽기전 까지 써야할 것이지요ㆍ 그 가면없으면 늑대소년처럼 돼 적응 못해 많은고통이 있겠지요ᆢ행여 그 가면을 벗겨 낸들 서로의 외로움을 충족하기도 역부족일테지요ㆍ죽기전까지 찌르고 피흘리며 사는게 인간관계지 싶습니다ㆍ인간관계 ,대인관계라는 게 뭘까요ㆍ그리고 사랑이라는 것은? 따지고보면 자신만을 위한 이기심의 밀고 당김일까요? ᆢ

자유자의 권리

고린도전서 9:1-5 자유자의 권리사도의 권리란 사람이 추천해준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예수님으로부터 제공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 권리가 작용하는 그 영역 안에서는 새로운 성도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사도는 기존의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사도로 섬기게 하기 위해 사도의 권리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의 권리가 주님으로 인해 작용되면서 새롭게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성도의 창조를 시도하고 있는 겁니다. “날 알아달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사도됨을 이해하기 위해서 새롭게 창조되신 분이 혹시 계십니까?”라고 묻는 겁니다. 이는 살아 계신 예수님의 일의 연속성이 이런 ‘사도의 권리

그리스도 일군

고린도전서 4:1-3 그리스도의 일군사람의 일함은 예수님의 일함과 늘 충돌을 야기합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일한다고 여기기에 ‘누구 덕분에 사느냐?’에 대해서 하나님의 일과 경쟁하게 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도 자신이 기획하고 자신이 나서서 일해내겠다고 다짐과 각오를 합니다. 이는 평소에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한다는 일념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때부터 ‘안식일’ 법을 통해서, 인간이 아무리 일 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만족하시는 그 안식에 도달될 수 없음을 분명히 심어두셨습니다. 차라리 안식일날 인간의 노동을 금지하므로서 세상 돌아가는 것이

자랑거리

고린도전서 3:21-23 자랑거리 세상은 사람 자체를 자랑하게 됩니다. 그것은 본인들도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말 사람이라면 자신을 만드신 분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어떤 이가 ‘누구네 자식이다’고 외칠 때, “너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시냐?”는 당연한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내놓아야만 합니다. 우물쭈물 한다면 가짜 아들로 판정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규정은 명확하십니다. “예수님이 누구지?”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면 사람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로지 아들 자랑만 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권한을 이미

문화활동과 하나님의 뜻

어쩌다가 십자가마을을 알게되어 요즘 이목사님의 글들을 읽어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갈2:20 등에 근거하여 목사님의 논조에 기본적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저의 오래된 질문은, 인간의 문화활동에 대한 의미에 대한 것입니다. 문화론에 대해 짧게 논하신 글을 읽어 봤는데, 좀더 자세하게 다룬 책이나 글, 강의가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기타 어떤 책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런지 추천 부탁드립니다.저는 IT 비즈니스계열에 있고요, 주로 세계관운동적인 측면에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 동조하진 않고 여전히 탐구적, 회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창1:28에 근거한 문화명령, 그리고 계시록 등에 근거한 문화활동의 연속

최후의 기도

누가복음 22:39-46 최후의 기도 예수님의 최후의 기도는 자신을 죽음에 넘기기 위해 기도입니다. 기도 가운데서도 맹렬한 내부 싸움이 있었는데 그것은 죽음 없이 아버지 뜻을 이룰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기피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죽음의 의의를 드러내는데 있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기도마저 활용하시는 것입니다. 곧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당부는 ‘살기 위해서 기도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달리 말씀드려서 ‘하나님의 뜻보다 내가 사는 것이 우선되어서는 아니된다’ 는 말입니다. 사람이 자기 사는 것이 우선되면 계획과 목표를 세우게 마련입니다. 곧 자기 생에 대해

머리를 들라

누가복음 21:25-28 머리를 들라메시아께서 구름타고 오신다는 이야기는 다니엘 7:13-14에 나옵니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인자의 나라’만이 영원하다면 곧 세상의 어느 나라 할 것없이 필히 폐기처분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인자의 나라가 지상에서 하시는 일은 이 세상 모든 나라를 폐기처분시키는 일을 하시는 겁니

이삭과 예수님

로마서 4:23-25 이삭과 예수님 이삭과 예수님의 공통점은 모두다 아버지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겁니다. 삶과 죽음 사이에 아버지가 개입하므로서 도저히 발생할 수 없는 ‘낯선 아들’이 발생된 겁니다. 우리 인간으로서는 삶과 죽음 사이에 그 어떤 것을 끼어들거나 만들어 내거나 발생시킬 수가 없습니다. 인간들이 기껏 노리는 바는 ‘죽음을 무효’로 해서 마치 안 죽거나 덜 죽거나 못 죽어서 여전히 연속적으로 살아있는 자아상이 되고 싶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되면 ‘아버지’니 혹은 ‘아들’이라는 개념을 생겨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의 입장에서 아버지나 아들 같은 자리보

에녹과 엘리아의 승천에 대하여

맨날 눈팅만 하다가 첨으로 글올립니다.성경공부하다가 궁금증이 생겨 이 글 올리게 되었습니다.구약에 나오는 에녹과 엘리야 선지자는 이 땅에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직행으로 하늘나라로 간걸로 알고 있습니다.그렇다면 에녹과 엘리야 선지자는 에수님처럼 태어날때 부터 죄가 없이 태어난것인지요? 제가 지금까지 배운 바로는 세상에 죄가 들어옴으로써 그 죄의 삯으로사망이 들어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사망을 경험하지 않았다는것은 결국 사망의 원인인 죄가 없다는말이 되는데 이것이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지요?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사상은 예수님 외에 세상에 의인은 없고 아담의 후손은 모두 죄인이라고알고 있습니다.아담의 타락=죄가 들어

예수님의 가족

예수님의 가족◆ 설교 요약 ◆ 2010년 9월 26일 이근호목사〈 지난 주 설교 요약 〉하나님께서 시키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구원이 된다고 여기십니까? 구원은 예수님 스스로 감추인 사실을 자꾸만 드러내면서 성사시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인간들은 자기 구원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런 짓들은 다 빼앗길 짓이라고 말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저주받을 세상 자체서 성공을 꿈꾸던 자들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번 주 설교 요약 〉본문 : 누가복음 8: 19-21 제목 : 예수님의 가족 개인이 자신의 자리를 자진해서 타인에게 반납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소망

로마서 8:23-25 보이지 않는 소망이 세상은 마디와 절단을 가집니다. 그래서 불연속성을 만들어냅니다. 이 구조는 영역을 따로 갖추기 위함입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함부로 건너갈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조치해놓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태를 알고 있는 피조물이 있다는 것이 바로 성령이 찾아든 피조물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창안해 내는 솜씨들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즉 “보이는 것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지금처럼 힘들지 않는 새로운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고 스스로 위로하려는 성향을 인간들은 누구나 품고 다닙니다.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 태운 사람들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 태운 사람들 신앙의 글 2009.08.12 02:38 정낙원 http://blog.daum.net/cross114/7597132 죄인은 자존심에 죽고 산다. 한마디로 명분이다. 스스로 왕으로 살고자 하는 죄인에겐 자존심은 삶에 의미이고 존재의 가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존심 상하는 것은 참지 못한다. 이런 명분론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말이 자기가 싫어하는 인간이 천국에 가면 난 안 간다는 말을 한다. “난 저 인간이 천당에 간다면 안 가겠다” 고 큰소리를 친다. 그만큼 꼴 보기 싫은 인간과는 같이 있다는 것을 고통스러워한다. 이처럼 인간은 자존심에 침해를 받으면 진리 자체에 대하여 눈이 어두워

제목 없음 2

우연히 물리학 교수로 유명한 김상욱 교수가 시간의 본질에 대한 정의에 대하여 강의하는 내용을 들었습니다.여러 철학자들과 물리학자들과 수학자들이 정의한, 시간이라는 개념을 여러 각도에서 소개하는데확실히 김상욱 교수라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사고에 대하여 상대방이 쉽게 접속할 수 있도록 의사소통 하는능력이 있어 보였습니다.그러나 마지막 결론은 놀랍게도 사실상 시간과 더불어 공간의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라는 것입니다.대부분의 과학적 학문은 시간을 정의할 때 변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는데이러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빈 공간을 상상해보라고 하였습니다.인간의 인지는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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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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