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 신앙의 본질과 현대 복음의 오류
아더 핑크
“구원에 이르는 신앙은 나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요구에 대해
나의 전 존재와 생명을 완전히 복종시키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고후 8:5)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것은
그리스도를 자신의 절대적인 주인으로서 기꺼이 영접하는 것이며,
그분의 뜻에 경의를 표하면서 또한 그분의 멍에를 짊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혹 어떤 사람은 그러면 왜 로마서 12:1과 같은 권면이 우리에게 주어졌는가 하며
반대를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그 반대에 대해 우리는 모든 권면은
그들이 시작한 그대로 계속 행하라고 그들에게 단순히 요청하는 것이라고 대답하겠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골 2:6). 그렇다.
그리스도께서 주인으로서 '영접되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아, 오늘날 은혜를 구하는 죄인들이 그리스도를 그들의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하는 방식은
신약성경의 표준에 비춰볼 때 얼마나 저급한가.
만일 당신이 성구사전을 찾아본다면,
주와 구주 이 두 단어가 함께 들어 있는 모든 성경구절들 속에는
언제나 '주와 구주'의 순서로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결코 '구주와 주', 즉 역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찾지 못할 것이다.
누가복음 1:46,47, 벧후 1:11, 2:20, 3:18 등을 한 번 찾아보라.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눅 1:46,47),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벧후 1:11),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벧후 2:20)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벧후 3:18)]
경건치 않은 사람들이 자기만족과 고집대로 사는 그들의 삶이
엄청난 죄악이라는 것을 인식할 때까지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 악한 삶에 대해 애통해 하며 참회할 때까지는,
그리고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서 살기로 결심할 때까지는,
자비와 영생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그들의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니라
시끄러운 촐싹거림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의지한다는 그들의 말은 단지 모욕적인 언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경건치 않은 사람들이 그들의 더러운 입술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거리면서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고백하는 것은 최고로 무시무시한 신성모독죄를 범하는 것이며,
또한 끔찍스럽게도 사함이 없는 죄에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아, 슬프도다.
오늘날 전해지는 복음은 많은 격려를 받으면서 그리스도를 불명예스럽게 하는,
마치 추악한 기형아와 같은 사람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
오늘날 거의 모든 부문에서,
심지어 정통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과 '근본주의자들'조차도
구원받는 것은 굉장히 간단한 일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요한복음 3:16을 믿고 '그 말씀을 의지하거나'
혹은 '그리스도를 그의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하면'
그는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다했다고 평해진다.
사람이 은행을 신뢰하듯, 혹은 아내가 남편을 의지하듯
죄인이 신앙을 가지고 그리스도께 향하기만 하면
더 이상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들 한다.
이런 생각이 아주 널리 퍼졌기 때문에
이 생각을 틀렸다고 지적하는 사람은 이단으로 정죄받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여기서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그 생각이 하나님을 가장 모독하는 것이며
또한 마귀로부터 나온 거짓말이라고 선언하는 바이다.
인간적인 대상을 의지하는 일은 자연적인 신앙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신적인 대상을 의지하는 일은 초자연적인 신앙이 요구된다.
오늘날 '복음전도자'들과 '개인전도자'들이 채택한 전도방법들을 조사해볼 때
그들이 생각하는 성령님의 사역을 접해보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성령님께서 사람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진정으로 항복시키려고 사람의 마음에서 역사하실 때
완성하시는 그 은혜스런 이적에 대한 개념을
그들은 최고로 약화시켜 이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 슬프다.
이 타락한 세대는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 초자연적인 산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오히려 그것은 어느 누구라도 실천할 수 있는 인간의지에서 나온 행위보다 우월한 것은 못되며,
단지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인간의 타락한 상태를 잘 묘사했거나
'믿음'이란 단어가 들어있는 성경 구절 몇 개를 피전도자 앞에 제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설득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되었다는 생각이 오늘날 보편화되어 있다.
이런 식의 생각이 바로 수많은 사람들을 거짓 평안 속에 잠재우는 사단의 마약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너무 적다는 사실은 정말 두렵다.
죄인이 마음을 성결케 하는 일을(약 4:8)
마치 손을 깨끗이 씻는 일만큼이나 간단한 일로 생각한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4:8)]
그리고 육체의 소욕을 약화시키는 신적 진리의 빛이 영혼을 탐색하도록 허용하는 일을,
커튼을 열어젖힘으로써 아침 햇살이 방안을 비취게 하는 일 정도로 생각하며,
우상으로부터 하나님께, 세상으로부터 그리스도께, 죄로부터 거룩으로 돌아서는 일을
배가 키의 도움으로 선회하여 방향을 바르게 잡는 일 만큼이나
간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오 독자들이여,
이 생명에 관한 일에 대해 절대 이렇게 속지 말라.
육체의 정욕을 절제하는 것, 세상에 대해 못 박히는 것,
사단을 이기는 것, 죄에 대하여 날마다 죽고 의에 대하여 날마다 사는 것,
심령이 가난하고 온유하게 되는 것,
그리고 신뢰와 순종, 경건과 인내, 신실과 강직, 사랑과 친절의 사람이 되는 것 등,
한 마디로 말해서 그리스도인-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 되는 것은
타락한 인간 본성이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는 도저히, 도저히 이루지 못할 과업인 것이다.
사람들이 그것을 그처럼 간단한 일로 간주하는 이유는
현 세대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참 본질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성격에 대한 성경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극소수여서
위에 언급한 망상이 아주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그처럼 간단한 일로 여기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 극소수이기에
오늘날 복음이 '인기있는 상품'(?)으로 아주 잘 팔리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믿음 그 이상의 것이며,
그 믿음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나의 마음과 생명을 완전히 복종시키는 것을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신 것은 지옥으로부터 만이 아니라
죄와 인간의 뜻, 그리고 자기만족으로부터이다.
이쯤 되고 보면 그토록 어려운 구원을 갈망하는 사람은 더더욱 극소수이리라.
주 예수께서는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 간단한 것이라고 가르치시지 않았다.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주님은 영혼구원이 간단한 일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4)고 말씀하셨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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