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약시대의 결혼 1) 결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주님께서는 결혼을 심히 중히 여기실 뿐만 아니라 그는 결혼에 대한 분명하고 직접적인 교훈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
본 주제에 관한 주님의 가장 완전한 강연이 마태복음의 바로 이 구절에서 발견된다.
이 구절이 간략하고 그리고 일단의 바리새인들에 의해 제기된 시험 질문에 대한 대답의 본문 속에서 대체로 제시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실로 완전하다.
예수님이 새로운 결혼관을 가르치고 계실 뿐만 아니라 창조에 있어서의 신의 질서를 새로 진술하고 강화하고 계심이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그는 결혼이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환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계신다.
윌리암스는 신약시대의 결혼의 중요 원리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남녀 상호간의 보완 예수님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사실을 지지하셨다.
비록 그가 창세기 1:27의 말씀을 전부 인용하지는 않으셨을지라도 확실히 그는 그 구절 전체를 염두에 두고 계셨었다.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되 독특하지만, 보완적인 두 성(性)인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셨다.
예수님은 인간의 성별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나타내셨다. 예수님에게는 남자가 남자이고 여자가 여자이긴 하지만 그러나 결코 어떤 성도 상대편이 없이는 완전하게 되지를 못한다. 다시 말해서 이성애가 결혼관의 기본이 된다.
예수님에게는 성별의 차이가 남녀를 보완하게 하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 계획된대로 사회에서의 그들의 역할에 근간이 된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동성애의 악용뿐만 아니라 남녀 성별 폐지론자의 남녀 공통 철학도 배척한다.
예수님에게는 남성과 여성이 갈등, 투쟁 및 경쟁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와 완전을 의미한다. 남성과 여성은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의미하는 요소들이 된다. 두 성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어떤 사실을 깨닫게 된다. (2) 일부일처제 창조 질서에 대한 우리 주님의 승인은 일부일처제에 관한 분명한 진술을 담고 있다.예수님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 존재하는 한 관계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가 '한 사람'과 '그의 아내' 에 관해 말씀하셨으며, '둘' 이 '한 몸' 이 된다고 말씀하셨던 것을 주목하도록 하라.
그 다음에 그는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라고 하셨다.예수님께서 한번이라도 일부다처제를 용인하셨던 적이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는 조금도 없다.
예수님에게는 성경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계획이 한 여성을 위해 한 남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요4:16-18).
우리가 성경의 기사들에서 일부다처제가 실행되거나 관용된 것을 어디서 발견하든지간에 우리는 그곳에서 영적인 쇠퇴와 문제들을 발견하게 된다.
오직 아주 조야한 가상의 과장이나 '성경의 왜곡' 에 의해서만 우리는 성경이 중혼이나 일부다처제를 용인하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이 이러한 탈선들의 실재를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과도함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어떤 것에 대한 하나님의 용인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3) 새로운 가족 단위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라는 말씀에 대한 주님의 더욱 발전된 인용을 통해 예수님은 모든 새로운 가정 단위의 중요성을 재 강조하고 계신다.
흠정역(KJV)은 '떠남'(leave)과 '연합'(cleave)을 대조시키고 있다. 예수님은 한 남자가(이 본문에서 창시자로 나타나고 있다) 그의 본래 가족을 '떠나는 것'과 그의 아내와 '연합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할 때만이 그가 결혼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계신 것 같다.
만일 떠남이 없다면 연합도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은 한 남자가 그의 유산의 평가를 그만 두지 않는 것처럼 한 남자가 그의 부모들과 가족과의 모든 관계들을 단절해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 남자가 그의 아내와 연합하여 그녀를 그의 배우자로 후원하고 인척들로부터의 나쁜 종류의 압력을 막아 주는 책임을 의도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만일 어떤 문제에 대해 어떤 한편이라도 그 해결책이 '가정을 어머니에게 맡기는 데'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결혼은 결코 성사되지 못할 것이다.
갓 결혼한 신혼 부부들은 그들이 그들 자신의 가정 교육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워서 그들 자신의 관계들에 배운 어떤 가치있는 교훈들을 적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들의 부모들이 일들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했다고 해서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나 최선의 방법이 된다고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결혼은 때때로 두려운 책임들처럼 생각될 수 있는 것을 떠맡는다. 그러나 결혼에 관한 이 권면을 제공하시는 주님은 우리가 어떤 짐을 맡기든지 우리와 함께 져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시는 바로 그분이시다(마28:20; 벧전5:4).
(4) 결혼을 통한 연합 우리의 주님께서는 결혼의 유대를 통한 남편과 아내의 하나됨을 주장하셨다. 이 사실은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 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는 창세기의 말씀에 대한 주님의 인용과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말씀하신 주님 자신의 논평을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창세기 2:4의 칠십인경 역본에서 인용되어 국제새번역본(NIV)에서 '연합된'(united)으로 번역된 헬라어 '프로스콜레테세타이'(proskollethesetai)는 문자적으로 "아교로 붙이다" 또는 "적합하다" 등을 의미하는 헬라어 콜라오(kol1ao)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마태복음에서 이 동사는 결혼 유대의 밀접성을 더욱 강조하기 위하여 수동태 재귀형으로 사용되고 있다. 분명히 '콜라오'는 여기에서 비유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의 참된 의미를 파악하게 되는 곳은 이 단어의 비유적 표현 속에서이다.
그것은 마치 물체의 두 조각들이 일단 함께 접합되면 둘에게 손상을 입히지 않고는 분리 될 수 없는 것처럼 두 사람이 일단 결혼을 통해 결합되면 두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지 아니하고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권고의 지혜는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이다. 예수님의 말씀들은 이 본문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결혼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이혼에 대해서도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논리는 만일 우리가 '연합'의 밀접성을 더 잘 이해한다면 우리가 나눔의 비극과 상처를 더 잘 이해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여기 "둘이 한 몸을 이룰지니라"고 언급된 연합이 비록 육체적 연합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지라도 실제에 있어서는 그것보다 더 깊은 어떤 뜻을 의미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또한 그것은 심리적 결합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결혼의 경우에 있어서는 영적 완성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한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통해 연합이 되어 그 아름다운 관계의 충만속에서 살게 될 때 그들은 하나로 융합이 되는 것 같다.
실례로 그 관계가 "결혼의 수학에서는 하나 더하기 하나는 하나가 된다"는 말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한때는 다른 두 사람을 서로에게로 이끌었을 수도 있는 타고난 기질적 차이들조차도 왕왕 사라지고 마는 경향이 있는 것이 결혼의 아름다운 합성이다. 많은 부부들이 오랫동안 함께 살고 난 뒤에는 견해, 욕망, 표현, 말투, 행동 및 심지어는 외양 등에 있어서 아주 많이 닳게 되는 경향이 있다.
(5) 결혼의 신성함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결혼이 하나님에 의해 조정된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이 암시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말씀은 결혼이 한 제도로서 신성한 것이며 그리고 결혼이 어길 수 없는 계약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실제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하늘에서 이루어졌다고" 생각되는 많은 결혼들이 있는 반면에 다른 곳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결혼들도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아주 깊이 숙고하면 모든 결혼이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음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최초의 결혼을 주례하셨던 하나님께서 아직도 모든 다른 결혼의 성공에 관해 관여하고 계심도 여전히 사실이다.
이 의미에 있어서 모든 참된 결혼에 관한 어떤 특별한 신성함이 실재하고 있다. 참된 완성과 행복을 추구하는 모든 신랑과 신부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만일 그들이 번갈아 그들의 연합에 하나님의 축복을 원한다면 결혼하기 전에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을 추구해야 한다.
바울의 기록을 인용하여 말하건대 '주안에 있는 결혼'은 절대 무너질 수 없으며 그렇게 결혼한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에 의해 함께 결합되었음을 분명히 기뻐할 것이다.(고전 7:39)
(6) 결혼의 영원함 비록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9:9에서 이혼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셨다고 할지라도 그는 결혼의 신성을 영원한 계약으로 확증하셨다.
함께 결합하라는 명령을 남편과 아내에게 반복하시는 동시에 결혼을 통한 연합에 대한 주님의 강조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명시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는 주님의 더욱 발전된 말씀은 결혼의 영원성의 주제를 명료하게 해준다.
마태복음 22:30-33도 역시 결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연관시켜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
이 구절들에서 예수님은 일단의 사두개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계시는 중이었다. 당대의 합리주의자들을 대표하는 이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고대의 수혼 관습에 근거한 가설적인 질문을 했다.
그들은 만일 한 여인이 차례로 일곱 형제들과 결혼을 했다면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수님께 물었다.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라고 물었다.
회의주의와 그들의 경박한 결혼관에 분명히 반대하신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사두개인들에 대한 대답을 기록하고 있는 이 구절들과 다른 말씀들에서 예수님은 몇 가지 사실들을 지적하셨다.
첫째, 부활이 있다. 둘째, 인간들은 결혼을 하는 반면에 천사들은 분명히 결혼을 하지 않는다. 셋째,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 마지막으로 결혼들이 현세에서 정상적인 것들이라고 할지라도 그러한 관계들이 내세에서는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이 사실은 인간의 성별이 지상에서는 의미가 있는 반면에 그것이 내세에서는 반드시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2) 결혼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 (1) 결혼의 원리 결혼에 관한 바울의 직접적인 가르침은 주로 그의 서신서들 가운데에서, 네 서신서에서 발견된다. 즉 고린도전서, 에베소서, 디모데전서와 후서 그리고 디도서 등에서 발견된다.
우리가 예상할 수 있듯이 바울의 강조가 각 본문마다에서 약간씩 다르지만 그러나 그의 원리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동일하다.
① 결혼의 신적인 제정 주님처림 바울도 결혼의 유효성의 기반을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다 두었다. 바울에게는 결혼이 인간의 사회적 진화의 소산이나 인간적인 편의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결혼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 중에 중요한 것 하나는 결혼의 신적 기원에 대한 것이었다.
바울 자신이 결혼을 안했을지라도,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독신 생활의 부름을 받았다고 믿었든지 안 믿었든지 또는 어떤 상황들에 따라서 바울이 이혼을 허용했든지 안했든지, 결혼이 하나님에 의해 제정되었다는 그의 기본 전제에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② 결혼의 신성함 바울의 결혼관 속에는 세속적인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결혼은 신의 계시에 근거된 것이었으며, 신성한 언약을 내포한 것이며 그리고 절대적인 충절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달리 말하건대 결혼은 모든 면에 있어서 신성했다. 또한 바울은 혼합 관계의 본문에서 결혼의 신성함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바울은 남자나 여자의 아직 구원받지 않은 배우자를 떠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그리스도에로 돌아선 회심자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이 회심자가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에 계약되었던 결혼에 그대로 머무는 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에 어떤 수치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 결혼에 어떤 거룩하지 못한 것이 있는지를 의아히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반대로 그리스도에로의 회심이 처자 유기나 이혼의 구실이 전혀 될 수가 없다. 당신은 결혼이 그리스도인이 되거나 이방인이 되거나 하는 데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고서 결혼 생활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 된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에게는 불신자들의 결혼조차도 하나님의 구례의 틀 속에 들어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 같다. 이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인간 사회를 위협하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의 운명도 위협하는 것이 된다.
기독교는 정상적이고 합당한 인간 관계들을 파괴하기보다는 오히려 확고하게 다져 준다.
바울은 배우자와 자식이 그것을 인정하든지 안하든지 신자의 배우자와 자식에게 특별한 축복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바울이 믿지 않는 배우자가 '거룩하게' 되고 자녀도 거룩하게 된다고 말했을 때 그는 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그의 가족도 역시 구원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것이 배우자든 부모이든 한 그리스도인과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 구원받지 않은 자들에게 축복을 따로 마련해 주게 되고 그들을 아주 특별한 기도와 전도의 제목이 되게 한다는 것을 단순히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고전7:16).
이에 결혼 그 자체가 인간의 가족 관계의 유대를 굳게 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에 비교했을 때 결혼의 신성함에 관한 그의 아주 명백한 진술을 제시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5:32). 그리스도인의 결혼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사이에 존재하는 이상적 관계의 구상화(具象化)이다. 결혼 관계의 견지에서 생각할 때 그것보다 더 신성하게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③ 결혼의 영원성 바울에게는 결혼이 영원한 관계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여느 인간 계약들과 달리 그리스도인의 결혼은 서면으로 된 성문 조항들이 아니다.
어느 시대의 교회이든지 결혼은 영원한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독신생활이 결혼 생활보다 낫지는 않은지? 그리고 믿지 않는 배우자와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한 결혼을 취소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서 바울은 결혼이 평생의 관계임을 분명히 했다.(고전7:39; 롬7:2)
④ 결혼의 배타성 결혼의 신성함과 영원성에 관한 바울의 생각들을 나타내고 있는 그 구절은 결혼의 유일성도 지적하고 있다(고전7장).
바울은 결혼에 있어서 일부일처제와 정절에 관한 분명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결혼이 남편과 아내 사이의 완전한 연합에 근거를 둔 강한 포괄적인 관계인 것처럼 그것은 배타적인 관계이기도 하다. 결혼은 내적인 친교와 육체적인 관계에서 모든 다른 것들은 제외가 된다.
바울의 결혼의 배타성 사상을 옹호하여 우리는 순결을 명하고 부도덕을 정죄하는 모든 그의 기록들을 인용할 수 있다(롬13;13; 고전5:1-13; 6;9, 15-20; 10:8-13; 갈5:19-21; 엡5:3; 골3:5; 살전4:3-8; 딤전5:2). (2) 부부에 대한 바울의 권면 남녀 공통(unisex)사상이 점점 더 조장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바울의 가르침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남편들과 아내들의 역할들과 책임들이 그들의 성처럼 상이하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은총 안에서 동등한 배우자들이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결혼에 있어서의 평등에 대한 그들의 신념들을 다음과 같은 바울 사도의 말에 근거를 두고 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
그런데 그러한 사상은 고린도전서와 목회 서신들에서의 바울의 가르침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오해이다. 갈라디아서의 본문에서 바울은 사람의 열납을 결정하는 것인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열납으로 인하여 인종, 사회적 지위 및 성 등이 모두 제거되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바울의 요지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는 축복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근거 위에서 모든 사람에게 유효하다는 것이었다.
은총 안에서의 우리의 입장은 우리가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노예이든 자유민이든, 남자이든 여자이든 구애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입장이 사회적 차이와 성적 차이를 갑자기 제거하지는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남자들이거나 여자들이며 그리고 이 사실은 지 교회와 결혼에 관련한 바울의 가르침 속에 분명하게 들어 있었다.
① 남편의 책임들 - 남편은 지도자이다.(고전11:3). - 남편은 연인이다.(엡5:25, 28, 33; 골3:19; 고전7:3-4). - 남편은 부양자이다(엡5:28-30; 딤전5:8).
② 아내의 책임 - 아내는 내조자이다(엡5:21-24). - 아내는 가정을 돌보는 주부이다(딛2:4-5).
3) 베드로의 가르침 (1) 아내들에 대한 권면 바울과 마찬가지로 베드로도 결혼 생활에 있어서의 아내의 역할이 수행자와 내조자의 역할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여성의 지위를 떨어뜨리지도 않으며 또한 어떤 가치 판단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베드로는 단순히 결혼에 있어서의 적절한 역할들을 받아들이는 것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었을 따름이다. 베드로는 그것이 가정의 축복(벧전3:1)과 개인의 안전(벧전3:6)의 기반이 된다고 제시하면서 그의 주장에 대찬 성경적이고 족장적인 지지로 인용하였다.
베드로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아마도 우리는 '외모 단장'(outward adornment)의 상대적 중요성에 관한 베드로의 말들을 그 당시의 사치의 배경에 반대하여 해석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로마 사회의 부유층들에서는 머리 장식에 값비싼 보석을 치장하는 등 거의 외설 잡혀 있었다.
그 문제로 인하여 인생에 있어서의 어떤 실제의 목적을 빼앗기고 물질주의의 천박한 쾌락들에 물린 여성들이나 남성들이 자기 탐닉과 타락에 빠지게 될 수 있는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베드로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분명히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베드로가 현대식 의상들의 합당한 사용이나 화장의 온건한 사용까지 금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성격의 아름다움과 행실의 청결함이 의상의 사치스런 과시보다 상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의 독자들에게 상기시킴으로써 불균형을 시정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우리는 자신들이 인간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데 더 관심이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데 더 관심이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야 될 것이다.
베드로는 바울과 마찬가지로 초대 교회 안에 구원받지 않은 남편과 결혼을 하게 되는 아주 견딜 수 없는 문제에 직면했던 여성들이 종종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베드로의 권면이 그들에게는 설령 그들의 남편들이 그들의 말의 증거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지라도 그들이 아내들의 경건한 행실을 통해 확신을 얻게 되어 그리스도에게로 회심될 것이므로 그들이 순수한 기독교 은혜의 정신에 입각해서 행동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조용하고 일관된 그리스도인 행동에 대한 베드로의 강조는 그것이 현대의 '여성 해방 운동자들'에게 아무리 이상하게 들릴지라도 그것은 좋은 권면이다. 그리고 많은 경건한 아내들이 그것의 정당성을 날마다 입증하고 있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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