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요한 웨슬리의 구원론 /이용남 목사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7. 뮌쳐적 배경
1) 뮌쳐의 구원론 뮌쳐에 의하면 성서에만 의존하는 루터의 문자적 종교는 하나님의 은총의 주입을 수동적으로 받게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뮌쳐의 민중은 역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 속에 들어와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에 참여하고 능동적으로 구원 완성에 참여하고 행동하는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타울러의 설교들은 뮌쳐에게 성화의 유형을 제시해 주었다. 뮌쳐의 경우,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에서 자라나는 영혼은 지고의 혁명적 고난을 당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과 사는 것에 대한 바울적 가르침을 사랑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는 것이다. 그의 기본적 관심은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다. 뮌쳐는 하나님의 율법에 의한 심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리스도는 형벌을 받음으로써 율법의 요구를 이루신 분들 중 최초의 수난자라고 간주된다. 그리하여 죄인의 아ㅣㅐ인화는 신아에 의해서만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의 형벌을 받아들임으로써 성취된다. 그 자신이 율법에 의해 야기되는 고난을 통한 변혁을 느꼈기 때문에 전 세계도 연약한 피조성으로부터 강한 왕국으로 변혁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뮌쳐의 고난 신학은 종교적 경험의 권위로 집중된다. 루터적 개신교에서 잊혀진 종교 경험의 역동성과 신자들의 개인 생활의 변혁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하여 뮌쳐는 루터를 달콤한 그리스도를 외치는 설교가로 비판했다. 그리고 자신은 고통 당하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로 생각했다. 고난을 통하여 구원의 과정은 계속된다.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외적 고난과 내적 고난이 극복될 수 있다. 그래서 뮌쳐의 구원 이해는 웨슬리와 루터가 강조한 복음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있다. 곧 계명을 실천하는 행동이다. 그것은 신비주의적 경험에서 표출되는 행동이다. 뮌쳐는 타울러의 성화론적 영성 이해의 용어를 사용했다. 그의 영성 이해의 단계는 첫째,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생각하면서 성령을 통하여 두려움을 나타낸다. 이렇게 영혼 속에서 성령을 통하여 나타난 두려움은 놀라움과 경외와 복종을 초래시킨다. 하나님의 말씀이 놀라움으로 우리 곁에 오시는 것이다. 둘째, 영혼의 심연이다. 영혼의 심연은 하나님께 대한 영적 두려움을 가지는 하나님 경험의 자리이다. 영혼의 심연은 구원의 활동을 시작하는 성령의 사역을 기다린다. 셋째, 영적 죽음이다. 세속적 욕망으로부터의 분리를 통하여 그의 영혼은 비게 된다. 또한 빈 마음으로 성령이 역사하도록 내맡기고 양보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는 성령은 인간의 자아 죽음을 요구한다. 성령은 철저하게 그의 일을 성취하신다. 그런 다음 그리스도가 영혼의 심연 속에 내려오신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임재와 성령 충만으로 신적 탄생이 일어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나라는 중세적 신비적 합일을 통하여 신자들의 마음 속에서 시작한다. 넷째, 영적 유혹이다. 바로 이런 영적 충만의 과정 중에 영적 유혹이 다가온다. 뮌쳐는 “구원의 확신에 이르기 전에 삶의 의욕조차 거의 상실하는 유혹의 폭풍우와 홍수가 밀려온다”고 주장한다. 이런 유혹과 시련의 폭풍우가 지난 후에 그 최후의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 다섯째, 기대 속에 기다리는 것이다. 고어든 랍은 해석한다: “희망을 넘어선 것을 앙망하게 되고 오래 기다림으로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의지를 추구하게 된다. 이 때 그는 반석에 기초해 있으며 하나님은 멀리서 기적적으로 나타난다. 이 기다림으로 영혼은 성령의 은사들을 체험한다. 성도는 성실하게 주님의 말씀에 영적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세속적인 탐용을 멀리하는 기다림이다. 이 기다림은 오직 절제와 양보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헌신으로 완성될 수 있다. 여섯째, 하나님의 내주하심이다. 여기에서 기다림은 인간 영혼 속에 하나님이 내주하심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은 인간 영혼의 소유주이신 그리스도의 영에 아주 강하게 붙들려 있다. 그 자신이 하나님이 거하시고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다. 인간 영혼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성령의 의해 변혁되지 않으면 안되고 정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하여 성도들은 신앙의 달성을 경험하게 되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고, 하나님을 닮게 된다. 뮌쳐는 그 하나님의 내주하심을 자유라고 해석한다. 뮌쳐는 구원을 이기적 생활에서부터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나아가는 순례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루터는 뮌쳐의 사상을 로마 가톨릭의 성화 사상, 곧 인간의 노력에 의해 구원을 추구하는 것으로 비판한다. 뮌쳐는 루터의 신앙과 후기 중세 신비주의를 복합시켰다. 루터는 신비주의를 가볍게 여긴다. 신비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그의 낯선 의의 개념 때문이다. 곧 인간의 노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총과 선물로 의롭다 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가 손님처럼 낯설게 부어지는 것이다. 뮌쳐는 초기에 루터에게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을 설교했으나 점차 신비주의적, 묵시문학적 저술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사도행전과 묵시문학에 넘치게 나타나는 환상과 꿈들은 뮌쳐를 황홀경으로 몰아갔다. 비록 객관적, 성서적 근거를 제시했을지라도 그는 영적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주관적, 내적 말씀과 주관적 경험을 강조했다. 그것은 신앙의 실존적 경험이다. 그는 점차 신앙의 객관성을 배제하고 거부하기 시작했다. 뮌쳐에게 주관적, 내적 경험으로부터 감각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신앙이 나오게 된다. 뮌쳐는 독일 신비주의의 두 가지 전형적 표현들, 곧 타울러의 설교와 독일 신학에 영향을 받았다. 타울러의 기본적 관심은 하나님과 인간, 창조주와 그의 피조물의 연합과 하나됨에 있다. 타울러는 죄와 악의 근원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다만 인간 존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고만 강조했다. 말씀을 듣기 위하여 인간은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 때 성령은 가르치기 위하여 강림하신다. 그리하여 타울러의 설교는 인간 존재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뜻 사이의 협동에 의해서 구성되는 신인협조설적 경향이 있다. 웨슬리가 성화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했더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자유의지의 역할을 강조한 점에서 뮌쳐와 웨슬리에게는 모두 신인협조설적 요서가 있다. 뮌쳐는 말씀/신앙의 신학적 패러다임을 성령/변혁의 패러다임으로 바꾸었다. 개인적 구원으로서의 계시 대신에 계시는 사회적 변혁으로 이해된다.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활동의 초자연적 제한 대신, 성령/변혁의 패러다임을 또한 세계와 사회를 구원 사건의 영역으로 보고 있다. 뮌쳐는 특별히 성령의 제 3시대가 폭력적 혁명의 힘으로 성취된다고 선포했다. 그는 어거스틴으로부터 루터에 이르는 시민 복종의 정통 교리를 신뢰하지 않았다. 기드온으로부터 엘리야까지 불의한 무신론에 대항한 거룩한 투사들의 예들을 뮌쳐는 발견했다. 뮌쳐는 자신을 다니엘과 동일시 할 뿐 아니라 예레미야와도 동일시 했다. 그의 성화신학은 하나님의 종말론적 개입의 생생한 기대와 연결된 정치적, 사회적 변혁을 일으켰다. 하나의 능력 있는 사회적 신비주의가 뮌쳐로부터 태어났다. 그는 두 가지 중요한 주제-인간의 성화와 역사의 종말-를 선포했다. 뮌쳐는 기독교 신앙을 성령의 직접적인 계시로 해석했고, 그 당시의 열광적인 선지자가 되었다. 이러한 견해로부터 그는 신정정치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뮌쳐는 어떤 종류의 세속적 정부도 거부한다. 그는 무정부주의자요 과격한 혁명가였다. 그는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완전한 혁명과 역사적 변혁을 이룩하기를 원했다. 그는 내적 개혁과 사회적 개혁을 위해 마 13:24-30을 사용했다. 가라지는 우리의 마음의 내면적 밭에서부터 뿌리뽑히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추수 때에 사회적, 정치적 포도원에서부터 뿌리뽑히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았다. 뮌쳐는 성화를 매일의 개인적 생활에서의 자아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옛 아담은 매일 십자가에 못 박혀 영적으로 죽어야 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으로 성장해야 한다. 뮌쳐에게 의인화는 구원의 외재적 상태, 곧 믿음의인화가 아니요, 성령을 통한 현재적 내적 과정이다. 의인화는 성령의 점진적 역사, 곧 신자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내주에서 시작한다. 뮌쳐의 신학은 성령 충만으로 채워지는 인간의 영적, 진보적 하나님 경험으로 집중된다. 로란드 베인튼(Roland Bainton)과 칼 홀(Karl Hall)은 뮌쳐를 감정 혹은 경험의 수단으로 구원받은 자의 정체를 확신시킨 개척 종교개혁가라고 해석했다. 고든 럽은 또한 뮌쳐를 그의 영성과 경건주의 때문에 ‘최초의 감리교도’라고 부른다. 2) 웨슬리와 뮌쳐의 구원론 비교 뮌쳐는 웨슬리처럼 성령의 내적 확증의 교리를 강조했다. 웨슬리처럼 뮌쳐는 로마서 8장을 신자들의 확증을 위한 중요 구절로 사용했다. “선택된 자는 성령의 내적 확신을 가진다. 왜냐하면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우리 영에게 확증시켜 주기 때문이다” “성령이 그의 복을 우리에게 확증시켜 주지 않으면 아무도 복 받을 수 없다” 바로 이 점에서 웨슬리와 뮌쳐는 유사한 성화 교리를 갖고 있다. 웨슬리처럼 구원에 대한 뮌쳐의 개념은 이중적이다. 내적 신비주의와 외향적 행동주의가 뮌쳐 속으로 아주 논리적으로 조화 있는 구조 속으로 짜여 있다. 뮌쳐에게 개인 구원의 내적 질서, 곧 중세적 영성에 기초한 성화는 중요한 혁명적 행동주의가 된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외적 실현이 지상에서 창조된다. 이러한 신학 체계는 웨슬리와 뮌쳐 속에 모두 뿌리내리고 있다. 뮌쳐의 사상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의인화의 은총의 전가됨과 부어지심보다는 성령의 역사를 통한 행동주의와 본성적 변화 개념이기 때문에, 뮌쳐의 신학 체계는 성화의 본성적 변혁 개념을 강조하는 웨슬리의 것과 아주 유사하다. 웨슬리가 루터적 모라비안주의를 비판했을 때, 그 비판은 루터적 신앙제일주의와 정숙주의와 전가사상으로 집중되었다. 그러나 또한 웨슬리는 다른 한편으로 의인화의 전가되고 부어지는 은총을 무시하고 성화 은총만을 강조하는 가톨릭적 신비주의와 선행 사상을 비판한다. 웨슬 리가 의인화보다 성화를 강조했을지라도 그의 성화 교리는 강하게 의인화 은총의 부어지심에 기초하고 있고 또한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뮌쳐는 의인화에 대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뮌쳐의 신학이 은총의 내면화에 집중되는 반면에 웨슬리의 신학은 내면적 은총과 동시에 외재적 은총의 양면성이 있다. 웨슬리에게 의인화는 전가되고 부어질 뿐 아니라 본성적으로도 의롭게 되는 은총이다. 또한 성결도 부어지고 전가될 뿐 아니라 본성적으로도 성결해지는 은총이다. 바로 이 점에서 웨슬리는 뮌쳐와 다르다. 웨슬리는 신비주의의 주관적 신앙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웨슬리의 사랑의 개념은 뮌쳐에게서는 정의로 이해된다. 웨슬 리가 보았던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실현 방법은 정의로운 칼의 사용을 통해 구현된다. 뮌쳐가 성화의 과정에 폭력 사용을 요구하는 반면에 웨슬리의 크리스천의 완전한 방법은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비 폭력 사랑의 길이다. 8. 역사신학적 배경에 관한 종합과 분석 위에서 살펴본 대로 다양한 역사신학적 배경을 비판하고 수용하면서 웨슬리에 의해 종합되고 성숙하게 된 구원론을 총괄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① 웨슬리는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 구원론의 뿌리인 신앙의인화에 철저히 서서 그의 구원론을 전개한다. 따라서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요, 의인화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옷 입혀집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② 그러나 그 신앙의인화가 수동적으로 전가되는 의인화로만 머무르는 루터와 칼빈의 한계를 넘어서서 성화의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본성도 의로워지는 의인화로까지 웨슬리는 강조한다. 이것은 어거스틴과 동방 교부들로부터 배운 사상이다. ③ 웨슬리는 루터나 칼빈의 노예의지론의 한계를 또한 넘어선다. 하나님만이 홀로 구원을 완성하지 않으시고 인간과 더불어 구원을 완성해 간다는 신인협조설을 강조한다. 그러나 인간의 선한 본성에 의해 선행의 노력으로 구원을 출발할 때 은총이 다가온다는 펠라기우스주의나 반 펠라기우스주의의 신인협조설과는 다른 복음적 신인협조설을 강조한다. 곧 하나님의 선재적 은총이 먼저 주도권을 갖고 다가올 때 인간이 응답하고 동참함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시 어거스틴과 동방 교부, 그리고 알미니우스주의에서 영향받은 것이다. ④ 웨슬리는 루터나 칼빈에게서 무시되어 왔던 거듭남의 은총을 의인화 동시에 강조한다. 우리 밖에서 임하는 객관적 은총만을 강조하는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 전통을 넘어서서 우리 안에 주관적 은총으로 체험되는 거듭남을 강조하는 경건주의 사상을 웨슬리는 받아들인다. 그러나 감정적 체험을 객관적 은총보다 더욱 강조하는 경건주의 혹은 신비주의의 열광을 위험시하고, 거듭남과 의인화의 양면을 웨슬리는 동시에 강조한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한계와 경건주의 혹은 신비주의의 한계를 웨슬리는 극복한다. 따라서 뮌쳐의 신비주의적 영성의 한계를 넘어선다. ⑤ 웨슬리는 루터가 무관심하였던 성화론을 구원론의 중심으로 끌어들인다. 구원의 출발-의인화-과 영적 탄생-거듭남-보다도 오히려 구원의 과정과 영적 성장과 성숙을 의미하는 성화를 더욱 중요시 하였다. 이 성화론은 어거스틴, 영국 성공회. 로마 천주교회, 동방교회 등의 배경을 재해석함으로써 발전시킨다. ⑥ 웨슬리는 칼빈의 수동적으로 전가되는 성화론의 취약점을 보충하였다. 사랑과 서너행과 경건의 성화 생활이 칼빈에게서 강조되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이지 인간은 노예 의지적 상태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자유의지적 참여로 성화의 행동이 일어난다고 해석한다. 까닭에 웨슬리는 수동적 성화와 능동적 성화가 변증법적으로 조화를 이룬 성화를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의로움과 참 거룩함을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다. 그래서 뮌쳐처럼 능동적 성화만을 강조하는 내면적 성화나 사회적 성화를 거부한다. 뮌쳐처럼 영적 확증과 사회적 성화를 강조하되 그것이 주관적이고 능동적인 것으로만 이해되지 않고 수동적이고 객관적인 은총의 출발을 전제한다. ⑦ 웨슬리는 구원의 완성은 믿음과 행함으로 성취됨을 주장한다. 구원의 출발은 오직 믿음으로만 되어지지만 구원의 완성은 믿음과 선행으로 되어진다고 확신한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서와 야고보서를 종합하였고, 종교개혁의 신앙과(의인화) 로마 가톨릭의 선행(성화)을 종합하였다. 까닭에 개신교와 가톨릭의 에큐메니칼적 대화의 길을 열어 놓았다. ⑧ 웨슬리는 완전 교리에 의해 종교개혁 구원론을 더욱 성숙시키고 완성시켰다. 루터나 칼빈은 인간의 죄악성 때문에 죽기 전의 완전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보았으나, 웨슬리는 죄악성의 깊이보다 은총의 높이가 더욱 크심을 동방교회 입장에서 주장하는 은총의 낙관주의에 의해 완전의 실현 가능성을 강조함으로써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보다 열심있는 구원 완성의 순례자들이 되게 하였다. ⑨ 웨슬리는 사회적 성화와 희년 사상을 강조함으로 종교개혁 하나님 나라 사상의 현실성을 더욱 구체화하고 행동화 하는데 공헌하였다. 그러나 뮌쳐의 묵시 문학적 종말론을 거부하고 만인사제설과 직업의 소명 의식에서 실현된 종말론을 강조하는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 종말론을 보다 더 역사화하고 사회화 하는데 웨슬리의 하나님 나라 사상이 크게 공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