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14-17 믿음의 조상
‘은혜’라는 말의 뒷배경에는 ‘행함은 절대로 될 수 없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이러합니다. 세계 돌아가는 역사를 인간의 행함의 결실로 본다면 그 어디에도 은혜를 찾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달리 말해서,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일들이 인간의 행함의 결과로 본다면 이는 전혀 하나님의 은혜됨을 찾지 못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믿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행함을 행함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수용하는 안목에서만 붙일 수 있는 단어입니다.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사건을 체험했다 하더라도 결과는 전혀 딴 판입니다. 한 사람이 지옥에 가 있을 것이요 다른 사람은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을 은혜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은혜 아닌 인간의 행함의 결과로 볼 것인가를 판정납니다. 바로 이 경계선에서 등장되는 인물이 아브라함입니다. 이분은 원래 이 세상에서 ‘아브람’으로 사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이 분의 이름이 아브라함으로 바뀐 것은 오늘 본문 17절의 말씀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즉 하나님에 대해서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로 표현하기 위해서 이 분은 이 세상에 태어나야만 했습니다. 결코 자기 자신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사람하고 상대하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고 관계해야만 했던 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더 이상 아브라함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는 모델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이 되는 코스에는 ‘죽음’에서 ‘살림’으로, ‘없는 것’에서 ‘있는 것’, 전부를 다 거쳐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 누락됨이 없어야 합니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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