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에큐메니칼 운동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은 세계의 모든 기독교회들을 재연합시키려는 운동, 곧 교회연합운동이다. 이 운동은 교회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함으로써 넓어진 상태에서 정통과 이단의 경계를 더 허무는 운동으로 진행되었다. 그것은 교회의 혼란을 더욱 초래하였다.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은 1910년 영국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에서 시작되었다. 1948년에 조직된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오늘날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주요 결실인 동시에 주요 수단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세력은 대단히 크다. 2015년 2월 현재, WCC는 세계의 345개 교단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성공회 등이 WCC의 회원이다.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함
WCC나 교회연합운동은 교회 안의 다양한 신학들을 비평 없이 포용하는 신학적 포용주의의 입장을 취한다. 오늘날 역사적 대교회들의 다수는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넓어진 교회들이다. 그러므로 교회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데, 교회들의 연합체인 WCC가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실상, WCC는 초기부터 다수의 자유주의자들이 참여하였다. 창립총회의 연사들 중에는 칼 바르트, 에밀 브룬너, 라인홀드 니이버, C. H. 다드 등의 소위 신정통주의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 WCC의 초기 지도자들 중에는 죄더불롬 대주교, 윌리암 B. 퓨, 헨리 P. 반 듀젠, E. 스탠리 죤즈, T. C. 차오 등 자유주의적 신학사상을 가졌다고 알려진 인사들이 있었다.
WCC와 그 지도자들은 교회 안에 현존하는 여러 신학들을 용납한다. WCC 전 총무 에밀리오 카스트로는, WCC의 공식적 신학이란 것이 없으며 또 결코 있을 수도 없고 우리는 신학적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0년 2월, 우리나라의 제1회 에큐메니칼 포럼에서 WCC 중앙위원 박종화 목사는, 교회의 영적 측면을 강조하는 부류와 교회의 사회참여적 역할을 강조하는 부류는 한 동전의 양면과 같으며 이 둘을 포함하는 통합적 에큐메니즘이 크게 강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개신교회 17개 교단의 대표들은 한국 개신교 전체를 대표하는 연합기구를 만들기 위해 위원회를 구성한 적이 있었다. 또 그 제안은 거의 모든 교단들에서 통과되었었다. 교단장협의회 소속 23개 교단 중 2002년 10월 2일까지 예장합동, 예장통합, 기장, 기성, 예성 등 16개 교단들이 총회 결의로 그것을 채택했었다.
천주교회(RCC)를 포용함
외형적으로 볼 때, 기독교회들의 재연합이라는 비전은 천주교회를 포함하지 않고는 수적으로 큰 결함이 있을 것이다. 천주교인수가 개신교인과 헬라정교인수를 합한 것보다 많기 때문이다. 미국해외선교연구센터(OMSC)의 2013년 1월호 국제선교통계보고서(IBMR)에 의하면, 세계 인구 71억명 중에 기독교인은 23억 5,400만명이며 그 중 천주교인은 12억명이며 개신교인은 4억 3,900만명, 독립교회 3억 6,900만명, 정교회 2억 7,900만명, 성공회 9,100만명이라고 한다.
세계교회협의회(WCC) 초대 총무이며 명예 회장인 빌렘 비셜트 후프트는 WCC와 천주교회의 적극적 협력관계에 대해, “우리가 반복해 말하는 바는, WCC 내의 교회들과 천주교회는 이제 모두 한 동일한 에큐메니칼 운동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우리는 그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WCC의 전 총무인 에밀리오 카스트로도 말하기를, “현재 WCC와 천주교회 간의 관계는 매우 긍정적이며 모든 종류의 우호 관계들이 있다”고 하였다.
천주교회는 1959년까지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교황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의 노력으로 이 운동에 적극적이게 되었다. 1962년에 시작된 제2 바티칸회의는 그 특별한 전환점이었다. 천주교회는 아직 WCC의 회원이 아니고 회원권을 구하고 있지도 않지만 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1968년 이후, 10-15명의 천주교 신학자들이 WCC 신앙직제위원회에 정회원으로 참여해왔다. 천주교회는 정규적으로 WCC의 주요 대회들에 참관인이었고 WCC의 프로그램 작성 간사 중에도 들어 있다. 1993년, WCC 신앙직제위원회 세계대회의 120명 회원 중 26명은 천주교인이었다. 1999년 현재, 천주교회는 56개국 교회협의회들의 정회원이다. 교회연합운동에서 모종의 교황 제도를 받아들이려는 경향은 처음부터 있었다.
미국교회협의회(NCC) 회장 앤드류 영은 1999년 9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한 천주교 성당에서 그의 취임식을 거행하였다. 1999년 10월 31일, 루터교 세계연맹 크리스티안 크라우제 주교와 교황청 일치위원장 에드워드 카시디 추기경은 신교와 구교의 500년 만의 화해 사건으로 ‘칭의의 교리’에 관한 공동선언에 서명하였다. 2000년 4월 앨버타 에드몬튼에서 열린 캐나다 교회협의회는 천주교회 온타리오 주교인 안드레 발리를 새 지도자로 선출하였다. 천주교인을 회장으로 뽑은 것은 그 협의회 창립 56년 만에 처음이다.
한 논문에 의하면, 오늘날 은사운동은 천주교인과 개신교인 간의 접착제로 나타난다. 1983년 미국에서만 60만명 이상의 천주교인들이 은사주의 기도회에 참여하고 있고, 온 세계에서는 약 5천만명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이처럼 개신교회와 천주교회의 연합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종교다원주의 경향
오늘날 교회연합운동은 종교다원주의 경향을 띤다. 종교다원주의란 모든 종교가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다양한 길이며 결국 다 천국에 이르게 한다는 사상이다. 이것은 자유주의 신학의 한 결과이다.
1983년 WCC 뱅쿠버 총회는 WCC 35년 역사상 최초로 힌두교, 불교, 유대교, 이슬람교, 시크교 등 다섯 개 세계 종교들의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공식적으로 연설케 하였다. 그 총회는, “우리는 우리가 증거하는 예수의 탄생, 생애, 죽음, 부활의 독특성을 주장하는 한편, 다른 종교들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서의 종교적 진리의 추구에 하나님의 창조적 사역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선언하였다.
WCC 인사들 중에는 기독교의 절대성을 명백히 부정하는 자들이 있다. WCC 종교 간의 대화위원회의 의장인 더크 멀더(Dirk C. Mulder)는 “당신은 불교인이나 힌두교인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물론이죠! 물론이죠!”라고 대답하였다. WCC의 타종교들과 이념들과의 대화위원회 의장인 웨슬리 아리아라자(S. Wesley Ariaraja)는 1985년 WCC를 통해 출판된 성경과 타종교인들(The Bible and People of Other Faiths)이라는 그의 책에서 기독교의 절대성을 명백하게 부정하였고 또 말하기를, “타종교인도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우리는 형제 자매이며 순례자이지 이방인이 아니다. . . . 힌두교인은 회개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동료 순례자이다”라고 했다.
이와 같이,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은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를 포용하고 종교다원주의 경향까지 띠면서 신바벨탑운동이 되고 있다.
3. 복음주의
개념과 역사
오늘날 복음주의는 정통과 이단의 경계를 허무는 또 하나의 문제가 되고 있다. 복음주의가 무엇인가? 복음주의는 16세기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개신교회를 복음주의라고 부른 것은, 신약성경에 밝히 증거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왜곡시키고 복음 대신 성례나 신자의 공로적 선행을 가르쳐왔던 천주교회와 구별하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이, 복음주의는 역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믿는 입장, 곧 성경적 기독교를 가리키는 용어이었다.
20세기 초 자유주의 신학이 미국교회에 퍼지기 시작하고 1940년대에 소위 ‘신복음주의’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도 복음주의는 전통적 개신교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의 근본 진리들을 수호하는 전투적 입장을 취했던 근본주의도 복음을 믿고 옹호한다는 점에서 복음주의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이 역사적 개신교회들 속에 들어와 교회들을 부패시키고 변질시켰던 20세기 중엽 이후, 복음주의적 교회들은 두 입장과 진영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자유주의자들에 대해 포용적이고 타협적인 입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자들과의 교제의 단절을 주장하는 입장이었다. 전자는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라고 불리었고 후자는 근본주의라고 불리었다.
미국에서 1920년대의 소위 보수주의(근본주의)와 자유주의(현대주의) 간의 신학적 논쟁에서 자유주의가 외형적 승리를 거둔 후, 1930년대에 성경적 교회들이 자유주의적 혹은 포용주의적 대교단들로부터 분리되는 일이 있었고, 1940년대에 와서 ‘신복음주의’라는 새 경향이 일어났다. 그들은 진리를 위해 싸우기보다 평화와 안정을 더 좋아하였다. 그들은 성경을 믿는 보수적 교회들 간의 교제와 협력보다 자유주의 교회들을 포함한 넓은 교제와 협력을 추구하였다.
‘신복음주의’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미국의 풀러신학교 초대 교장 해롤드 오켕가는 1957년에 “신복음주의는 그 전략을 분리에서 침투로 바꾸었다”고 말하였고, 또 후에 그는 “신복음주의는 분리를 거절함에 있어서 근본주의와 달랐다”고 회고했다.
1942년 미국복음주의자협회(NAE)가 조직되었고, 1947년 미국의 풀러(Fuller)신학교가 설립되었다. 1951년 20개국의 복음주의자협회들이 모여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를 조직했다(이 단체는 2001년 세계복음주의연맹[WEA]으로 개명함). 1956년 신복음주의적인 크리스챠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지가 창간되었다.
역사적 대교단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넓어진’ 교회들이 된 후, 거기에서 분리되어 나온 소수의 보수적 교회들이 과연 기독교회의 참된 계승자가 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신복음주의자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느꼈다. 그러므로 그들은 분리의 입장을 포기하고 대교단들 속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것들을 개혁시키고 회복시키기를 원하는 소위 ‘침투’의 입장과 전략을 가지게 되었다.
신복음주의자들은 ‘근본주의’라는 용어를 싫어하였고 ‘복음주의’라는 말을 전유물처럼 사용하였다. 각국의 ‘복음주의자협회’(NAE)나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는 다 ‘복음주의’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죠지 마스든의 관찰대로, 신복음주의자들은 점차 자신들을 단순히 복음주의자로 부르기 시작하였고 신복음주의는 오늘날 흔히 단순히 ‘복음주의’로 불린다. 오늘날 ‘복음주의’는 신복음주의와 동의어이다.
자유주의적 교회의 포용
복음주의의 자유주의적 교회 포용의 대표적 예는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 활동이었다. 그는 뉴욕, 샌프란시스코, 필라델피아,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컬럼버스 등에서의 전도 집회들에서 자유주의적 교회협의회의 후원을 공공연히 받았다.
미국복음주의자협회(NAE)는 처음부터 자유주의적 대교단들의 지교회를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성경 무오와 그리스도의 육체 부활 교리를 포함한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부정하는 마틴 마티는 1992년 미국복음주의자협회에서 강연하였다.
풀러신학교는 처음부터 대교단들의 목회자들을 훈련시키기를 원했다. 또 이 학교는 프린스톤 신학교 전 교장 신정통주의자 죤 매케이를 연사로 초청하였었다. 그 학교의 1984-85년 요람은 자유주의적 천주교 신부 레이몬드 브라운을 강사로 열거하였다. 이 학교는 처음에는 성경 무오를 옹호했으나 오늘날에는 이 교리를 거부하고 은사운동을 조장하며 여성 안수를 강하게 지지한다.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 회장 데오도르 윌리암스는 WEF 뉴스레터 1993년 8월호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 소속 교단 내의 복음주의자들은 그대로 머물러 복음주의 입장을 취하고 그 교회 안에서 복음주의적 영향을 끼치려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복음주의 대변지인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 1998년 9월 7일자는 레이몬드 브라운의 신약개론을 높이 추천하였다. 그러나 브라운은 예수께서 전지하신 하나님이 아니고 오류를 범하였다고 말한 자유주의적 천주교 신부이다. 그는 1971년 미국 뉴욕의 자유주의적 유니온 신학교에서 처음으로 종신직 천주교 교수가 되었다.
복음주의가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우리나라의 예들은 수없이 많다. 1986년 9월 8일 한국장로교협의회는 새문안교회에서 노춘경씨 수세 100주년 기념 행사로 예장통합, 예장합동, 기장, 예장고신, 예장대신 등 5개 장로교단 연합성찬예배 및 강연회를 가졌다.
1990년 11월, 한국복음주의협의회는 홍콩 국립경기장에서 개최되는 빌리 그레이엄 홍콩 전도대회의 한국 위성중계 전도대회의 장소로 부산 수영로교회, 대구 서문교회, 대전 중앙교회 등 예장합동측의 큰 교회들을 채택하였다.
1993년, 한국장로교협의회 소속 5개 장로교단 총회장 공동선언문은 한국 장로교회들이 한 교회가 되기를 소원하면서 “우리 한국의 장로교단은 신앙의 본질적 항목들에 있어서 결코 분열될 만큼 의견의 차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선언하였다.
1996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발표회에서, 홍순우 목사는 진보적 교회와 보수적 교회가 다 반성하고 한국교회 전체 정서에 맞는 연합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앞으로 NCC나 한기총 등의 연합기관이 합력하여 대통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1996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발표회에서 한명수 목사(한기총 전 총무, 당시 합동측 기독신보 주필)는 진보와 보수는 동전의 양면과 같으며 어느 한 쪽을 강조하면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다고 말하면서 한기총과 교회협[NCC]이 새로운 이름을 가진 단체로 우뚝서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부회장 김명혁 목사(합동신학교 교수, 강변교회 목사)도 “양기구는 기구적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7년, 예장대신측 전 총무 조순태 목사는 사회가 정치적, 경제적, 윤리적으로 위기상황일 때 교회연합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면서 “내가 마땅치 않게 여기는 교파도 같은 사도신경을 믿고 있으며 . . . 교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7년, 예장고신 총무 심군식 목사는 사회 문제와 사이비 이단이 판치는 현실에서 한국교회는 보수와 진보를 구별하여 힘을 약화시키지 말고 일치단합된 연합운동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8년 2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지 덕 대표회장은 기자회견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차이가 이제는 그다지 크지 않다고 말했다.
1998년 6월, 예장합동, 예장통합, 예장고신, 기장의 목회자로 구성된 한국장로교목회자협의회(회장: 옥한흠 목사)는 “한국교회 일치와 연합은 늦출 수 없는 긴박한 과제”라고 주장했다.
1998년, 한국장로교총연합회의 회원교단 신임총회장과 총무 임원 축하예배에서 길자연 목사(예장합동 총회장)는 “장로교회가 하나되지 못하고 자기 입장만 고집해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며 “이제라도 우리 모두 하나 되기 운동에 적극 참여하자”고 말하였다.
1999년, 복음주의 장로교단인 예장합동측 총회총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0% 이상이 예장통합과의 강단교류와 신학교류, 연합사업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또 64%가 통합측과의 교단 통합에 대해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9년 6월 27일, 예장합동측의 역사적 승동교회(박상훈 목사)와 예장통합측의 대표적 교회인 영락교회(이철신 목사) 간의 강단교류가 양교단의 분열 40년 만에 승동교회에서 이루어졌다.
2009년, 예장합동, 예장통합, 예장고신, 기장의 총회장들이 강단 교류를 하였다.
2012년 11월 30일, 한국장로교총연합회의 제30회 대표회장이며 예장합신 총회장을 역임한 권태진 목사(군포제일교회)는 정기총회에서 “한장총은 보수와 진보의 두 날개를 가지고 있는데 무엇보다 극진보와 극보수를 아우르는 일에 힘쓸 것”이라고 말하였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의 조직에는 한철하, 림인식, 최복규, 김상복, 김명혁, 이정익, 이수영, 전병금, 오정호, 김기영, 김영한, 강승삼, 손봉호, 권성수, 김경원, 김삼환, 박병식, 박성민, 박종화, 이영훈, 이 철, 정일웅, 최성규, 최이우, 최홍준 등의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은사운동과 천주교회의 포용
복음주의는 은사운동에 대해 포용적이다. 아니, 포용적인 정도가 아니고 많은 은사주의자들을 포함한다. 1993년, 카리스마지는 오순절파가 미국복음주의자협회(NAE) 회원교회들의 약 51%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어떤 보고서는 약 80%라고 한다. 또 미국복음주의자협회 회장 케빈 매노이아는 자신이 은사주의자들과 비은사주의자들 간에 일치의 다리를 놓기를 원한다고 말했고, 존 윔버의 빈야드 운동 같은 은사운동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오늘날 복음주의는 천주교회에 대해서도 포용적이다. 1993년 6월, 빌리 그레이엄은 미국 피츠버그에서 1,050개의 교회들과 65개 교단들이 협력한 세 번째 전도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대회는 여섯 명의 천주교인들을 실행위원에 포함시켰다.
1993년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 이사 스털링 허스턴은 말하기를, “지난 10-15년간 그레이엄 전도대회에서 천주교회의 참여가 크게 늘어났으며 소수의 천주교회 지도자들은 이제 전도대회 계획위원회들의 공식적 대표자들로 봉사한다. 천주교회 신자들은 안내위원들, 성가대원들, 심지어 상담위원들로 환영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1998년 8월 10일자는 카나다 오타와 지역을 위한 6월 25-28일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 활동에 대해, “그 전도대회를 후원한 470개의 지역 교회들 가운데, 60개는 천주교회이었다”고 말하였고, 또 새 신자들 중 얼마는 천주교회에서 데려갔다고 했다.
대학생 선교회(CCC)의 창설자요 총재이었던 빌 브라잇은 1969년 천주교회에 대해 “우리는 천주교회를 공격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교회 안에서 힘있는 역사를 하고 계심을 믿으며 세계를 복음화시키는 일을 돕기 위하여 수백만의 천주교인들을 사용하실 것을 의심치 않는다”라고 말했다. 대학생 선교회에는 이미 1970년대에 천주교인 간사들이 있었고 1973년의 ‘키(Key) ’73’이나, 1976년 집회들에는 천주교인들의 참여와 협력이 있었다.
빌 브라잇은 촬스 콜슨, 제임스 패커 등과 함께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ECT)라는 상호 인정을 선언한 1994년의 선언서에 서명한 일로 비난을 받고 그의 입장을 취소하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그 요청을 거절하였다.
또 빌리 그레이엄뿐 아니라, 제리 팔웰, 잭 반 임페, 제임스 로빈슨, 에드 답슨 등의 복음주의자들은 천주교회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1985년, 에드 답슨은 말하기를, “교황 제도가 적그리스도적이라고 말하는 극단주의자들은 . . .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다”고 했다.
달라스 신학교 교장 척 스윈돌은 1997년 10월의 한 서신에서 테레사 수녀를 ‘주목할 만한 여자’라고 불렀다. 제임스 답슨은 테레사 수녀를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했고 그것은 “그가 그의 생애에서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었기 때문이다”고 말하였다. 잭 반 임페는 그녀가 구원받지 못한 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꾸짖었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1998년 3월 2일자에 의하면, 잭 반 임페는 최근에 교황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변호하는 데 그의 전체 방송을 사용하였다. 또 그는 다음번 교황이 요한계시록의 그 거짓 선지자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 경고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의 형제 자매들로서 결합되었다”고 말했다.
미국복음주의자협회의 전 회장 존 화이트는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ECT)라는 잘못된 문서에 서명하였고 천주교인들을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복음주의는 확실히 교회들과 성도들을 매우 혼란시키고 있다.
4. 은사운동
은사운동의 역사와 특징
은사운동은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체험을 주장하고 강조하는 입장을 가리킨다. 은사운동은 20세기 초에 시작된 방언운동에 뿌리를 둔다. 여기서 오순절 교회가 생겼다. 20세기 중엽에, 이 운동은 오순절파를 넘어 다른 교파들 속에 퍼졌고 1960년 말에는 천주교회에까지 들어갔다. 이것을 신오순절주의 혹은 은사운동이라고 부른다. 오늘날에는 신사도운동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 운동은, 이인규에 의하면, 존 윔버의 빈야드 운동, 존 아노트의 토론토 블레싱,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연맹, 마이클 비클의 IHOP(국제기도의 집), 마이클 비클과 밥 존스와 폴 케인의 캔서스 예언자그룹(KCF), 베니 힌의 올랜도 크리스쳔센터, 조용기 목사의 교회성장연구소(CGI, 미국대표 피터 와그너, 베니 힌)을 비롯해, CI(Christian Inter., 빌 해몬, 김태진), HIM(Harvest Inter. Ministr., 체 안, 이성대), WLI(Wagner Leadership Inst., 홍정식), 한국기독교영성총연합회(예영수), 큰믿음교회(변승우), 에스더기도운동(이용희), HTM(손기철), 영동제일교회(김혜자) 등이 참여하고 있고, 인터콥(최바울), 예수 전도단(로렌 커닝햄) 등 여러 단체들이 그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신오순절주의 혹은 은사운동은 몇 가지 특징적 주장을 한다. 첫째, 은사운동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가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성령받는 경험을 강조한다. 둘째, 은사운동은 성령세례를 받은 증거로 방언을 강조한다. 셋째, 은사운동은 성경에 기록된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이 지금도 다 계속되고 있거나 회복되었다고 주장한다. 넷째, 은사운동은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보다 은사 체험을 강조한다.
성령세례
성령세례란 성령께서 신자들 속에 처음 들어오시는 사건이다. 그것은 곧 신자의 중생 사건과 동일하다. 신자는 중생 시 성령을 받으며 그것이 성령세례인 것이다. 중생 시 받는 성령을 성령세례라고 부르는 것은 그 시간 성령께서 우리의 더러운 죄를 씻으시고 우리의 죽었던 영혼을 살리시기 때문이다.
성령세례의 시간에 관해서는,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 전과 후를 구분해야 한다. 오순절 사건 전에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은 후에 성령을 받았으나, 오순절 사건 후에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을 받았다. 신약성경은 예수 믿는 자들이 다 성령을 받았다고 말한다. 또 세례는 죄씻음을 받는다는 뜻이 있는데, 예수 믿는 자들은 성령 안에서 씻음을 얻었다(고전 6:11). 그것이 성령세례이다.
단지, 사도행전 8:15-17에 기록된 사마리아 교인들은 예외적이었다. 그것은 사마리아인의 특별한 신분과 집사 빌립의 전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 보기에 반쯤 이방인이었다. 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자는 사도가 아니고 집사 빌립이었다. 이런 점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령 내리시는 일을 지연시키셨던 것 같다. 그러나 사도들이 내려와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성령께서 임하셨고 사마리아 교회와 유대 교회와의 일체성은 확립되었다.
사도시대에 이 한가지 경우 외에, 신약성경은 전체적으로 오순절 사건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때와 성령받는 때 곧 성령세례의 때를 분리시키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은 신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든가 성령세례를 받으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이 예수를 믿었을 때 즉 중생했을 때 이미 성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다시 성령받기를 구하거나 성령세례 받기를 간구할 필요가 없다. 단지 이미 오신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우리의 영육의 각 부분과 각 기능에서 충만히 역사하시도록 그에게 겸손히 복종하고 그를 의지해야 한다.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
하나님께서 사도시대에 교회에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목적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들을 전달하시고 확증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그 은사들은 비록 사도 시대의 성도들에게 어느 정도 경험되고 그들에 의해 행해졌을지라도 주로 사도들에 의해 행해졌었다. 그것들은 사도들의 표이었다(행 2:43; 5:12; 고후 12:12).
교회 역사는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이 사도시대의 특징이며 그 후 시대에는 사라졌음을 증거한다. 따라서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중단 혹은 폐지를 인정하고 가르쳐 왔다.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이 사라진 까닭은 두 가지 때문일 것이다. 첫째,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그 독특한 목적 때문에 사라졌다.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독특한 목적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들의 전달과 확증인데, 그 목적은 사도시대에 신약성경의 기록이 완성됨으로써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그것들의 일시적, 초보적 성격 때문에 사라졌다.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독특한 목적은 그것들의 일시적, 초보적 성격을 보인다. 초자연적 은사들은 영속적인 것이 아니고, 또 하나님의 계시에 관한 한 온전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들은 일시적이었고 부분적이었다.
특히 고린도전서 13:10에 의하면, 그것들은 ‘온전한 것’이 올 때에 사라질 것이었다. ‘온전한 것’은 하나님의 계시에 관한 한 신약성경의 완성을 가리킨다. 사도시대의 초자연적인 은사들을 통한 계시의 단편적 내용들에 비교하면,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충족하고 온전한 계시의 책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온전한 계시의 저장소인 신약성경이 완성되었을 때,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 곧 일시적이고 부분적이고 초보적인 성격의 것들은 자연히 폐지되고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은사운동 비평
1. 성경의 충족성과 종결성에 모순된다.
첫째로,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이 계속 있었다거나 회복되었다는 주장, 특히 하나님께서 성경 외에 다른 계시들과 예언들을 주셨고 또 주신다는 주장은 성경의 충족성과 종결성 즉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규범이라는 믿음에 모순된다.
어떤 이는 하나님께서 오늘날 성경과 동일한 내용을 계시하신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계시의 필요성이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사도 시대 후 1900년 기독교 역사상 성령의 내면적 활동을 통해 그의 종들과 백성들에게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기억나게 하셨다. 그러므로 성령의 새로운 계시 활동을 통해 동일한 내용을 받는다는 것은 전혀 불필요한 일이다.
주께서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눅 16:31)고 말씀하심으로 성경이 사람의 구원을 위해 충족하다는 사실을 증거하셨다. 또 요한계시록 22:18-19는 이 책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거나 하지 말라고 교훈했다.
사도 시대 이후 기독교 역사는 기적 행함의 역사가 아니고 십자가의 말씀을 전한 역사이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말하였다(고전 1:22-23). 중생과 회개의 내면적 기적은 늘 있었지만, 외적 기적은 오랫동안 사라졌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충족한 말씀으로 일해 오셨다. 성경은 사람의 구원과 변화된 삶을 위해 충족한 수단이었다. 성경을 믿고 성경대로 사는 삶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삶이었다. 성경말씀을 통한 성령의 잔잔한 내면적 활동은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의 백성을 떠난 적이 없었고, 신자들은 그 속에서 만족을 누렸다.
2. 신앙생활을 말씀보다 경험에 의존시킨다.
둘째로, 은사운동은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을 무시하고 성령 체험을 강조한다. 즉 신앙생활을 성경말씀보다 은사 체험에 의존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기적 체험에 근거하지 않고 십자가의 속죄의 복음에 근거한 새 생활이다. 사도 바울은 기적을 전하지 않았고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했다(고전 1:22-23). 또 사도 시대의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하나님의 진리들을 전달하고 확증하기 위함이었고 부분적, 일시적, 초보적 성격의 것들이었고 그에 비해 성경은 하나님의 온전한 계시의 말씀이다. 또 방언, 예언 등의 은사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인격과 삶이다(고전 13장).
전통적으로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바른 지식과 믿음, 또 진리대로 사는 바른 삶을 강조해 왔다. 그것이 옛 길이며 건전한 길이다. 그것이 성경적 기독교이다. 고린도교회는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을 소유한 교회이었지만(고전 1:7) 영적으로 어린아이였다(고전 3:1). 영성의 표는 그리스도인다운 인격과 삶에 있지, 어떤 은사에 있지 않다. 은사는 영성의 표나 척도가 될 수 없다.
신구약성경은 초자연적 은사들의 경험보다 성도들의 바른 지식과 바른 인격과 삶을 더욱 중시하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을 사모하거나 구하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말고, 오직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믿고 순종하고 전파하는 것으로 충분한 줄 알아야 한다. 오늘날도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역사와 새롭게 하시고 부흥케 하시고 성장케 하시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확신하자. 교회의 참 부흥은 다른 것을 통해서가 아니고 오직 신구약 성경의 성실한 강론과 전파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3. 초자연적 은사들의 실재성이 의문된다.
셋째로,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그 실재성이 의문된다.
첫째, 계시와 예언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22:18은 성경 외에 무엇을 더하지 말라고 했다. 또 교회 역사는 은사주의 주장에 반대된다.
둘째, 방언에 대하여, 성경에서 방언은 외국어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방언 현상은 외국어의 성격을 갖지 않는 것 같다. 또 방언 현상은 역사상 기독교의 이름을 가진 어떤 불건전한 단체나 이단 종파에도 있었고 심지어 기독교 밖에도 있었다. 또 오늘날 은사운동에서 흔히 방언 훈련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분명히 인위적이며 비성경적이다.
오늘날의 방언 현상은 하나님의 섭리의 방식과 성경의 충족성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일 가능성은 매우 작다. 오히려, 많은 비평가들은 오늘날 방언 현상이 심리적 현상이거나 위조품이거나 심지어 마귀에게서 기원한 것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병고침에 대해서도, 성경에서의 병고침의 사례들은 즉각적이고 비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은사운동의 신유 은사들은 이런 특징을 가지지 않는 것 같다. 또 병고침의 현상은 기독교 안팎의 신비주의적 집단들에서도 있어 왔다.
4. 교회연합운동과 함께 간다.
넷째로, 은사주의자들은 자유주의 교회들이나 천주교회를 배격하지 않고 오히려 세계교회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됨을 강조하고 있다.
이상의 점들을 종합할 때, 오늘날의 은사운동과 신사도운동은 하나님께서 현대교회에 주신 부흥의 표가 아니고 영적 어두움과 혼란을 추가시키는 일일 뿐이라고 판단된다. 이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참 교회들과 신자들은 은사운동과 신사도운동의 위험을 인식하고 그 운동을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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