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안식일 개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안식일에 관한 율법은 십계명의 제4계명입니다. 유대인의 모든 절기가 안식일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연구해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만들었습니다. 안식일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지킬 것인가만 연구했지 왜 지켜야 하는지는 질문하거나 연구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어떻게’는 ‘왜’에 종속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본래 목적과 상관없는 일을 하게 됩니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거나 해서는 안 될 일까지 하게 됩니다.신앙생활 규칙들이 왜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면 변화되어야 합니다. 종교적 위선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중요한 것을 사소하게 여기게 됩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몇 가지 규칙에 집착하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편협한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이 만든 ‘미슈나’라는 규정집이 있는데 거기에는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서른아홉가지 목록이 있습니다.‘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이 말씀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소극적이고 하지 말아야 될 것을 지켰습니다.
규칙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에 따라 거룩한 바리새인인지 아닌지를 평가했습니다.
거룩하게 지키는 안식일이 아니라 사람에게 짐을 지우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드는 제도입니다.주전 167년경 당시 안티오푸스 에피파네스 황제의 군인들이 안식일을 이용해 유대인들을 공격했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방어하지 않고 죽었습니다.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죽음도 각오해야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그들의 선택이 옳았는지에 대해 질문해야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배가 고파 밀 이삭을 먹은 것을 바리새인들이 비판합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을 지나가시는데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서 먹었습니다. 그러자 몇몇 바리새파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이오?’”(1~2절).제자들이 배가고파 길을 지나다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먹었습니다.신명기 율법을 보면 배가고픈 사람들이 추수 전후 밀 이삭을 먹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대신 밀 이삭을 먹을 때 낫을 대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 포도밭에서 포도를 먹는 것은 허용하지만 바구니는 들고 가지는 말라고 했습니다. 낫을 대면 욕심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먹을 만큼만 먹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욕망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제어하신 것입니다.
포도밭에 바구니를 들고 가지 말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그날이 안식일인 것이 문제입니다. 안식일에 먹은 것이 문제는 아니지만 손으로 비벼 먹은 것이 문제입니다. 유대인들은 손으로 비벼 먹는 것을 타작행위로 생각했습니다.
안식일에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로 문제를 삼았습니다. 참 피곤한 사람들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만들어놓은 종교적 규칙을 어긴 것입니다.
사무엘상 21장에 다윗이 사울의 위협을 피해 도망갔을 때 아히멜렉이라는 제사장에게 가서 먹을 것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다윗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이라는 떡을 얻어먹고 생명을 유지했습니다.이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들이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이야기가 자신들의 모순을 지적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제사장들만 먹도록 규정된 떡을 먹었지만 하나님은 벌하지 않으셨습니다. 아히멜렉도 벌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도와줬다는 이유로 아히멜렉을 힘들게 했습니다.하나님의 규정은 사람을 죽이는 규정이 아닙니다. 살리는 규정이다. 인간의 필요를 억누르고 무시하는 벌이 아닙니다.
인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은 규정도 뛰어 넘으십니다. 어떤 종교적 규칙도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를 억압하거나 착취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은 대부분 종교분쟁입니다. 이념분쟁입니다. 민족 간의 갈등, 극단적인 테러주의자들은 잘못된 종교적 이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적 위선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잘못된 종교적 위선이 사람을 차별하고, 억압하고, 착취하고 있습니다. 버려도 되는 전통, 지키지 않아도 되는 종교적 규칙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억눌려 있습니다.
인간의 필요를 존중하고 채워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회당에서 가르치는 예수님이 안식일에 잘못된 일을 행하는지, 고소할 트집이 없는지를 엿보고 있었습니다.그때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사건을 일으킵니다. 회당가운데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사람에게 일어나 앞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안식일에 고소할 일을 찾기 위해 엿보고 있던 바리새인들에게 질문했습니다.“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과 악한 일을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옳으냐? 사람을 살리는 것과 죽이는 것 중 어느 것이 옳으냐?’”(9절).예수님은 그들의 속마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이 질문하자 그들은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둘러보신 후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병을 고치는 것은 금지목록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바리새인들은 병을 고치는 것도 안식일에 일을 했다고 확대해석했습니다.“그러나 그들은 화가 나서 예수를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 의논했습니다”(11절).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손이 펴지는 기적을 본 바리새인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이 행한 기적에 놀라지 않고 예수님이 안식일을 어겼으니 어떻게 처리할지를 연구했습니다.그들이 무엇 때문에 화가 났습니까. 예수님이 안식일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만든 종교적 규칙을 어긴 것 때문에 분노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할지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종교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종교생활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신앙을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수 있게 만듭니다.
기독교는 종교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이상해지는 이유는 종교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규칙을 만들어놓고 그 규칙을 잘 행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어기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종교생활입니다.바리새인들은 장애가 고쳐지는 역사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안식일 규칙을 어겼다는 것에 집착해 하나님의 뜻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참된 신앙의 무엇인지를 설명하셨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선을 행하는지, 아니면 죽이든지 악한 일을 행하는지가 기준입니다.예수님은 율법의 본질을 이해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이유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율법은 그 시대의 문화와 상황에 맞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목적입니다.
문제는 왜라는 질문을 잊어버리고 어떻게 행할 것인가에 집중하다 보면 사랑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안식일에 대한 종교적 규칙을 지키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인생을 살면 모든 율법을 이루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예수님은 안식일에 밀 이삭을 따서 손으로 비벼 먹은 일, 회당에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준 일을 정당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근거를 말씀으로 설명하셨습니다.“그러고 나서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5절).여기서 인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제정하신 분이기 때문에 규례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 증거로 안식일에 회당에서 병을 고치신 것입니다.요한복음 5장에도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고치신 사건이 나옵니다. 병이 38년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응급환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응급환자만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팔을 고치신 이후 누워 있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 광경을 보고 문제를 삼았습니다.
왜 안식일인데 자리를 들고 걸어다느냐는 것입니다.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38년 된 병자가 일어났는데 그 사건을 보고 놀라지 않고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을 문제 삼습니다.예수님이 의도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것입니다. 병만 고쳐주셨으면 바리새인들이 흠잡을 것이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한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왜 안식일을 어기냐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예수께서 안식일에 이런 일을 행하셨기 때문에 유대 사람들은 예수를 핍박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한다.’ 유대 사람들은 이 말 때문에 더욱 더 예수를 죽이려고 애썼습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을 어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 부르며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요 5:16~18).예수님은 안식일의 규례를 의도적으로 깨뜨렸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규례에 해당되지 않는 하나님입니다.여러분,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만든 제도입니다. 성경에는 창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안식, 인간이 지켜야 될 안식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하나님은 안식일에도 생명을 주십니다. 안식일이라고 사람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안식일에도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도 태양은 뜨고 우주는 돌아갑니다. 하나님이 늘 일하시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이 자신의 권위를 주장하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이 만들어놓은 안식일을 의식하고 그 날을 피해 병을 고쳤다면 권위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규례를 깨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안식일 규례를 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행동은 잘못된 종교적 위선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안식일에는 왜 일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왜 쉬라고 했을까요. 일이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일을 멈추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일이 사람을 부리게 됩니다.또 안식일을 통해 우리 인생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쉼을 명령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거룩히 지키라’는 것은 참된 주인을 경배하라는 뜻입니다. 참된 주인이신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을 ‘어떻게 거룩하게 만들 것인가’에 집착하면 종교적 규칙이 주인이 됩니다. 종교적 규칙을 만든 사람이 주인이 됩니다.
종교적 규칙에 갇히면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여러분, 혹시 종교적 위선에 빠져있는 것은 아니지 확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묵상하다 ‘왜’ 행해야 하는지를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사람을 살리는 교회가 되지 못하고 사람을 얽매는 종교적 교회가 되고 있지는 않는지 확인해야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종교적 위선을 제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합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합니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Who We AreWhat We EelieveWhat We Do
2025 by iamachristian.org,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