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임재연습 (로렌스 형제 지음)
독후감/ 주종화
로렌스 형제 (1605-1691) 본명 니콜라 에르망. 가톨릭 신자. 맨발의 가르멜 수도원에 50에 들어감. ‘주방의 성자’로서 평신도 수도사 생활을 한 사람. 하나님과의 임재를 통해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누린 사람. 가장 하찮은 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과 순전한 동행을 한 모습이 담긴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현재의 나를 비추어 보면서 느낌이 있었던 내용들을 적어본다.
자기 자신에게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었던 로렌스는 그 마음의 에너지와 방향을 이제 더 이상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렸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기”라는 단순한 생각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머슴살이와 같은 천한 일까지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행하고 그 일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접근하는 의식적 의지적 순종이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당연하다. 우리는 그렇지 못하고 있고, 우리 자신의 기준에 맞춰서 하는 일에 대해서 따지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나 자신도 그렇다. 목사로서 사역을 함에 있어서도 사소한 일, 하찮은 일에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고, 그런 일이 맡겨지면 매우 기분이 유쾌하지 않아진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내 스스로 알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상이 있다. 한 날이 다른 날과 거의 다를 바 없어 보일 때, 가장 최악의 상황이거나 최상의 상태가 아닌, 그저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끊임없이 집중하는 것, 나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는 것, 나 자신을 부인한다는 실제적인 방법론같은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처지, 고통에 지나치게 빠져들지 않는 것이다. 그 자신 다리를 절면서 평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싶어하고, 그분과 동행의 기쁨을 얻게 되는 시초랄까? 그 출발점은 분명히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에 대해 고상한 깨달음을 얻을 때”다.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에 관한 개인적인 경험, 체험”은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나 자신 즉 육신의 욕구로부터, 어쩌면 그동안 강력하게만 보였던 어떤 보이지 않는 존재(마귀)의 유혹으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져 나와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싶은 삶 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 좋은 의도가 바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하나님을 기억하기, 하나님에 관해 생각하는 것을 찾는 것이다.
이야기의 소재도, 가급적이면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하나님에 대해 배운 것을 나누는 것이 좋다. 로렌스 형제는, 오직 자신과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단념하기로 결단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렇게 살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관계성에 있어서 절제함을 볼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우선순위를 지키고, 산만한 요소들을 제거하고, 만들지 말고, 하나님에 대해서 집중하는 것, 하나님에게서 벗어나지 않는 것, 다른 비결이나 단계도 없다.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에 있어서의 동력은 믿음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고, 임재함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며, 영적으로 교제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이 규칙은 오직 믿음이다.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도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것은 모두 헛것이다.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 기억해야 한다. 믿음이야말로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하게 하고, 온전한 상태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신앙의 문제는 믿음의 결핍에서 온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행동의 동기는 사랑이어야 한다. 사랑이 없이 하는 모든 것은 믿음이 없이 하는 것과 같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존중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은혜주시기를 거절하지 않으시기에, 우리의 의식과 감정 가운데 기쁨으로 대해주신다. 은혜보다 앞서가지 말자. 우리는 은혜를 받기에 무가치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은혜를 주신다. 우리가 은혜에 젖을 때는 산 정상에 올라 신선한 공기를 절로 마셔지듯이, 우리는 그분의 은혜와 임재를 기쁨으로 흠뻑 들이 마신다. 일상적인 일을 함에 있어서도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다.
기도할 때만 하나님께 가까이 한다는 것은 지극히 일부적인 신앙이다. 기도할 때만이 아니라 행동할 때 하나님께 가까이 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일상에서의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다. 이것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일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 이것이 신앙이다. 신앙의 본질은 믿음, 소망, 사랑인데, 가능하게 하고, 덜 어렵게 하고, 쉬어지는 것을 넘어 기쁨의 단계, 예배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상황과 환경 가운데에서, 온갖 종류의 아픔과 수고, 위험과 암초에 노출된 존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상황과 조건에서라도 그리스도인은 더욱 겸손하게 우리를 낮추시는 하나님의 수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또한 고통과 질병 속에서 매일의 삶을 살아가지만, 대부분 이 고통을 피하기에 급급하다. 나에게 있는 고통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하지만 겸손의 수단으로 나에게 작용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를 빚으시면서 더욱 우리를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신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만을 소유하시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가장 소중한 존재로 존중해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친밀감을 유지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이런 감정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 안에 작은 예배당을 만들자.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던 바울의 음성은 그래서 귀하다.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잠시 조용히 물러나서 내 안에 있는 작은 예배당에서 하나님을 만나자.
영적인 삶, 부르심을 받은 삶은 주님의 완전한 사랑을 깨달을수록 비천한 두려움, 은밀한 굴욕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얻기에 목말라 하며,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게 하신다. 우리의 영혼이 비워질 때 하나님은 채워주신다. 우리의 영혼이 소란스러운 것으로 채워질 때 주님이 계실 곳이 없다. 하나님 외에 다른 모든 위로를 잃어버릴 각오가 되어 있다면 된다.
내 안에 모든 기능을 지배하는 것은 의지다. 의지를 통해 방황하고 배회하는 우리의 영혼을 주님께 순종시켜서 하나님께 데리고 가야 한다.
인생의 어느 한 부분에서는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우리를 붙들어 두시는 때가 있다. 거기에서 건짐이 우선이 아니라 힘과 인내가 필요한 시기다. 적당한 때가 오면 하나님은 다시 풀어주신다. 하나님의 손 안에서 고난을 당하는 것은 오히려 행복하다고 로렌스 형제는 말하지만, 그는 실제로 온갖 고통을 겪으면서 살았다. 하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연약한 모습을 보일 때가 더 많다. 질병에서 오는 고통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로 여기자. 그게 쉽지 않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으로 볼 때 우리는 은혜가 보인다. 그 속에서 슬픔과 근심만 보이면 그것은 여전히 나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혼의 질병을 치료하시기 위해서 몸의 질병을 보내시기도 하신다. 나의 약함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한 순간이라도 홀로 두시면 나는 비참하고 비천한 상태가 되고 말기에, 더욱 하나님을 붙잡아야 한다.
로렌스 형제는 자신을 살펴서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는 어떤 행동이나 말이나 생각도 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그 말이 맞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고 우리 삶의 목적을 정했으면서 실제의 삶에서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생각, 말, 행동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단 말인가?
감각적인 은총을 바라면서 하나님을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즐겁게 하려는 것이 되기에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단순한 믿음의 행동, 이것이 우리를 하나님께 이끌어 주신다.
우리는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막 7장, 마 15장) 전적으로 멸시를 받기에 마땅하다. 모욕과 자격없음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 약하고 질병 가운데 고통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
세상, (세속적인 삶의 풍토 – 하나님 없는 삶, 현세적 삶, 육신의 자랑,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육신 (자기 자신을 높이려는 모든 의도, 성령을 따르지 않고 육신의 만족과 자신의 번영만을 최고로 여기는 것, 위로 하나님을 보기 보다는 아래로 자신을 응시하는 것), 마귀는 힘을 합쳐서 우리의 영혼을 공격한다. 여기에 맞설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만이 가능하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전적으로 망각하는 대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집중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실 때까지 그저 평화롭게 기다리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다.
일의 사소함이 섬김의 가치를 조금도 경감시키지 않는다. 일의 위대성이 아니라 그 일을 하도록 자극하시는 사랑의 위대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자신보다 하나님의 선물에 더 만족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영혼이 연약해 있다는 아주 흔한 증거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Who We AreWhat We EelieveWhat We Do
2025 by iamachristian.org,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