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remissionem peccatorum): 구원의 중심
사도신경은 구원론에 대한 신앙고백을 한 마디로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이것은 오늘의 신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무언가 미흡한 느낌이 들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의 구원론은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단어들만 나열하더라도, 칭의, 성화, 중생, 그리스도와의 연합, 영화, 구원, 해방, 천국 등등이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다 생략하고 단 하나 죄사함만을 말한 것이다. 사도신경의 이 표현을 구원론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신앙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의 내용을 죄사함이란 단 하나로 표현하고 있는 사도신경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변호한다.
사도신경은 현 시대 안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 말하면서, 단지 죄의 용서만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자. 루터와 칼빈도 그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당시에 신앙에 의한 의인이라고 불렀던 죄의 용서라는 본질적으로 단 하나의 진리만을 내세웠다. 그들이 이렇게 기독교의 모든 것을, 즉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의 모든 것을 단 하나의 사항으로 간추렸던 것은 정당하였나? 나는 이렇게 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사도신경과 종교개혁자들은 옳았다. 왜냐하면 죄의 용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나 신앙이라고 불려질 수 있는 모든 것의 기초이며, 요약이고, 기준이기 때문이다.53)
바르트에 의하면 기독교는 사람들이 2세기경부터 그렇게 이해하기 시작했듯이 새로운 법, 새로운 삶의 규칙만은 아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가 그것과 비교할 수 있는 다른 모든 법들로부터 구별된다. 그런데, 복음이 더 이상 그것들과 구별되지 않을 때, 복음은 또 다시 일종의 유대의 율법주의가 되어버리고 만다. "복음은 어떤 점에서 유대적이고 이교적인 도덕들과 구별되고, 그 결과 우리가 그것을 그것들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인가? 대답은 이렇다: 정확히 이 모든 새로운 법, 복음의 이 모든 새로운 명령은 죄의 용서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54)
그리스도인의 삶은 죄의 용서 위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다른 개념들이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도덕이나 지식과 같이, 죄의 용서에 종속된다. 모든 것은 죄의 용서에 의해 영감을 받고, 감당되고, 창조된다. "그러므로 나는 신조와 종교개혁자들에 의해서 주어진 질문, 즉 '무엇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인가?'에 대해서 이 대답이 완전하고 정확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모든 것은 죄의 용서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죄의 용서와 관계없는 모든 원리는 단지 비기독교적일 수 있을 뿐이고, 결국 그리스도인의 삶과 인간의 삶 모두에게 위험할 뿐이다."55) 판넨베르크도 죄사함을 기독교적으로 구원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특징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하였다.56)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내용을 죄사함 하나로 고백하는 것은 미흡한 표현이라기 보다는 오늘의 한국교회에 주는 중요한 메시지로 여겨야 할 것이다. 오늘의 교회는 많은 구원론을 이야기 하다보니 그 핵심을 잃어버리고 있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라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 오늘의 교회에서 많이 왜곡되고 있지는 않은가? 교회는 2000년 동안 전파한 구원의 본질을 다른 지엽적인 것으로 교체하고 있지는 않은가? 죄사함을 전파하는 문제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 있는 것처럼 가르치지는 않는가? 사도신경은 이러한 교회의 모습을 정신나간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구원의 역사에 봉사하는 공동체이며, 구원의 핵심은 바로 죄사함이라는 것을 사도신경은 가르쳐준다.
V. 맺는 말
칼 바르트는 사도신경의 해설을 마치면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는 많은 우리 기독교의 증언의 무기력이 우리가 서슴치 않고 솔직하게 하나님의 위대함을, 그리스도의 승리를, 성령의 우월성을 고백하지 못한다는 이 사실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염려한다."57)
우리는 기독교의 전통을 너무 경홀히 여기고 있었음을 사도신경 하나만을 연구해보더라도 쉽게 발견하게 된다. 신조와 신앙고백은 2000년 기독교역사가 이룩해놓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가장 정교한 해석이다. 이것을 경홀히 여기는 것은 기라성 같은 위대한 신앙선배들이 물려준 보화를 내다버리는 것과 같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에 물밀 듯이 밀려들어오는 현대의 신학은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위협할 정도로 혼란스럽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 있듯이 새로운 지식은 옛지식의 터전 위에 온전히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우리는 피선교 120년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신학을 정립할 필요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물려받은 것이고 날마다 고백하고 있는 신앙의 전통을 깊이 해석하여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 사도신경은 모든 신조와 신앙고백 가운데 가장 탁월한 것으로 모든 교회가 인정하고 있다.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두 신학자라고 할 수 있는 바르트와 판넨베르크는 이 사실을 깊이 인식하여 사도신경을 해석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을 이 졸고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전해준 믿음의 진리와 그 향기를 오늘 우리들이 사도신경을 통해서 공유할 수 있음에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1) Phili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vol.1(Grand Rapids, Michigan: Baker Book House, 1990), 15.
2) Ibid., 14.
3) Wolfhart Pannenberg, Das Glaubensbekenntnis, 정용섭역, 『판넨베르크의 사도신경 해설』(한들출판사, 2000)[이하 W. Pannenberg로 표기], 184.
4) P. Schaff, 14.
5) W. Pannenberg, 12.
6) 이장식, 『기독교신조사(I)』(컨콜디아사, 1982), 9.
7) ( )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은 사본의 차이에 의한 것임. 이하도 마찬가지.
8) Ibid.
9) Ibid.
10) W. Pannenberg, 27.
11) 로마교회의 카톨릭(Catholic)이라는 말은 보편이라는 말이다. 한편 루터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고쳐 사용한다.
12) Karl Barth, Credo, 신경수역, 『칼 바르트 사도신경해설』(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1)[이하 Credo로 표기], 39.
13) Ibid., 43.
14) Karl Barth, La Confession de Foi de l'Eglise, 최영역, 『교회의 신앙고백』(다산글방, 2000)[이하 La Confession으로 표기], 112.
15) W. Pannenberg, 52.
16) Ibid., 52.
17) Ibid., 48-49.
18) La Confession, 113.
19) 이형기편저, 『세계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한국장로교출판사, 1991), 79.
20) 문: 왜 다만 한 마디로, 그가 죽으셨다고 말하지 않고 본디오 빌라도에 관하여 말하며, 그에게서 고난을 받았다고 말하는가? 답: 그것은 단순히 이 이야기의 확실성을 우리에게 증명하기 위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의 죽음이 유죄선고를 포함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참조, 이장식, 『기독교신조사(I)』, 152.
21) Credo, 86.
22) 이장식, 전게서, 153.
23) 문39: 그분이 다른 형태의 죽음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사실이 무슨 더 큰 의의를 갖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십자가의 죽음을 볼 때 내가 당해야 할 저주를 그분이 당하셨음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저주 그것입니다. 참조, 이형기, 전게서, 82-3.
24) Credo, 70.
25) Ibid.
26) Ibid., 71.
27) Ibid., 77.
28) La Confession, 154.
29) Ibid.
30) Ibid.
31) Ibid., 155.
32) W. Pannenberg, 98.
33) Ibid., 99.
34) Ibid.
35) Ibid., 100.
36) Ibid.
37) Ibid.
38) Ibid., 100-101.
39) Ibid., 103.
40) La Confession, 156.
41) 박일민, 『개혁교회의 신조』(성광문화사, 1998), 39.
42) 이장식, 전게서, 154.
43) 박일민, 전게서, 377.
44) Credo, 95-98.
45) La Confession, 166.
46) W. Pannenberg, 122.
47) Ibid., 123.
48) W. Pannenberg, 125.
49) Ibid., 126.
50) Ibid., 126-127.
51) Ibid., 128.
52) Ibid., 128-129.
53) La Confession, 229.
54) Ibid.
55) Ibid., 232.
56) W. Pannenberg, 201.
57) La Confession, 245.
최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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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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