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와 십자가

목사와 십자가


목사와 십자가


죄가 뭔지도 모르고 십자가를 안다 할 수 있을까?

“죄인이 십자가로 구원받는다”고 말은, 그 어떤 자에게도 십자가가 빠지면 구원이 안 되고, 십자가를 건너뛰어도 구원이 안 된다는 말이다. 고린도전서 1장에서,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이라는 말은 십자가에서 구원의 능력이 나온다는 뜻이고, 이 십자가 능력이 접하게 된 자에게만 비로소 하나님이 보시는 안목에서의 죄가 뭔지를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실제로 십자가 능력이 임하지 않고 십자가를 운운하게 되면, 자신이 왜 죄인이지도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십자가를 시답지 않게 여기게 된다. 마치 거룩한 것이 개에게 소용없고, 진주라는 보석이 돼지에게는 무의미한 것과 같다.(마 7:6)

십자가란, 예수님이라는 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사건이다.(갈 3;13) 이것은 모든 인간은 아담에 속했기에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아 마땅한 죄인이라는 선언하는 사건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런 자기를 미워해야 하는데 (요 12:25) 도리어 자기를 소유하려고 버티게 된다. 이런 자기 소유성에서 나오는 결과가 바로 “최선을 다하자” 설교다.

“최선을 다하자”는 말은 “챙길 수 있는 대로 챙기시면 그게 자기 것이 되고 복입니다”는 주장이다. 즉 “최선을 다하자”고 목사가 외쳐버리면, 교인들로 하여금 점점 ‘자기 소유성’에 집착하게 만들어서 십자가의 길, 자기 부인의 길에서 탈선하도록 부축이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영광이란, “십자가 복음만으로 너무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저 같은 자의가 행한 모든 죄를 용서했기에”라는 감사의 모습으로 나와야 성경에 합당하다. 전도를 하던, 예배를 드리던, 헌금을 하던, 봉사를 하던 항상 십자가 복음의 능력에서만 쏟아져 나오는 그 사죄의 은총이 뿜어져 나오게 되는 것이 성령 안의 참 성도의 모습이다.

그런데 자기 부인이 되지는 않고 도리어 자기 소유성을 더욱 다지고 공고히 하고 더욱 강화시킨 상태에서 “최선을 다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제발 날 건드리지 마. 날 무시하지 마. 날 비난하지 마. 나의 가치를 모독하지 마, 날 비난하면 죽여 버린다”는 악마 근성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이 사람은 예수님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제로 예수님의 영이 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을 예수님의 십자가 피 앞에 세울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오로지 주변만 두리번거리며 살 뿐이다. 타인을 경계한다. 그래서 행여 자신의 가치와 존재 의미를 주변에서 건드릴까봐 살피면서 살아간다.

이런 목사가 강단에서 열심히 설교하는 것도 열심히 교인들을 가르치면서 그 ‘가르침’의 위세에 교인들이 눌려서 교인들이 더 이상 목사의 신앙을 의심하거나 탐색하지 못하도록 사전 차단조치를 행사하는 방어술에 불과하다. 그래서 성령 받은 적이 없는 목사의 특징은 자꾸만 ‘목사직’과 ‘목사권위’가 강화하려는 것이다. 즉 “너희들은 나에게 배우기만 해. 내가 당신들 안 건드릴 테니 당신들도 날 건드리지 마. 내가 당신들 위에 있다는 이 자존심만큼은 어떤 경우라도 난 포기 못한다.”는 식이다.

그런데도 왜 교인들은 이런 목사를 그냥 방치하는가? 이유는 단 한 가지, 예수님의 복음 앞에서 자신의 죄인 됨을 알려고 교회 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서로 의지하고, 서로서로 힘이 되기 위해서 교회를 오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목사가 자신을 가르치는 것을 용인을 하되 그냥 쇼라고 쳐주는 것이다. 즉 교인들의 관심사는 예배에 있거나 설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에 노닥거리면 스트레스 푸는 것에 주관심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조금이라고 설교 내용 중에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을 치는 내용만 나오면 주저하지 않고 교회 안 나올 자들이다. 따라서 목사는 두루 뭉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설교하면 교인 떨어질 염려는 없는 것이다. 고객이 원하는 바는, “최선을 다 하시면 원하는 축복은 받게 되어있습니다.”는 설교뿐이다. 혹은 “이제는 십자가를 그만 잊으세요. 이미 죄용서 받은 자가 새삼 죄가 무엇인지 더 알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 친목단체나 재미있게 꾸려갑시다. 열심히 봉사하고 희생하셔야 교회가 그나마도 재미나게 유지됩니다”는 설교 외에는 달리 설교할 게 없게 된다.

십자가가 빠진 교회는 사람만 남아 있다. 각자 정(情)들을 만들어내서 그 정(情)들로 버터보자는 식이다. 과연 십자가 생각을 멈춘 자들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을까?

십자가 피를 잊는 순간, 사랑도 그저 자기 사랑일 뿐이다.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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