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의 질문과 답변-광주 모임에서

어떤 분의 질문과 답변-광주 모임에서

세례 요한을 죽인 그 권력에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습니다. 그러면 헤롯은 뭔가? 예수님의 일을 위해 보조 역할을 하기 위해 권력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어요. 심지어 마귀도.

질문: 그럼 헤롯도 자기 역할을 하고 죽어서 지옥 가나요?

답변: 그렇지요. 세례 요한도 죽이고 예수님도 죽이는 일을 하고 지옥 가는 거지요.

질문: 그러면 진리라는 큰 시나리오 안에서 각자 자기 역할을 하는 것이고 지옥 갈 자는 지옥으로 가는 것인가요?

답변: 그럼요. 언약의 속성 중에 축복도 있고 저주도 있습니다.

질문: 그럼 축복과 저주 중에서 하나님이 자기 원대로 주시는 건가요?

답변: 정답입니다.

질문: 그러면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 되잖아요?

답변: 그러니까 안 믿어야 되는 거예요.

질문: 안 믿어야 돼요?

답변: 안 믿어야 되는데 인간은 계속 믿죠. 왜냐? 본인이 본인을 관리하고 싶은 속성을 버릴 수가 없기 때문에. 내 인생 내가 책임지지 않으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니까 내가 예수를 믿겠다는 것입니다. 즉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해서 거기에서 자신이 납득이 되는 믿음을 끄집어내니까 한심한 거지요.

질문: 그러면 지금 세상의 많은 종교들 중에 아무것도 믿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 사람이 오히려 구원에 가까운 사람인가요?

답변: 종교라고 하지 말로 문화라고 생각하세요. 문화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하면, 인간의 행위로 구성되어 있어요.

질문: 세상은 종교로 구분을 해 놓았잖아요.

답변: 인간들이 일방적으로 구분해 놓은 것이지요.

질문: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가 이것이 종교 중 하나라고 인식하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잖아요.

답변: 대부분이 아니라 전부입니다.

질문: 그렇다면 예수를 모르는 상태에서 예수님이 참 진리라는 것을 모르고 살다가 죽는 사람이 오히려 구원에 가까운가요?

답변: 모든 인간이 다 그래요. 구원에 가깝다는 것은 없어요. 왜냐? 구원은 인간에게 해당사항이 아닙니다.

질문: 그러면 다 지옥에 가야 하나요?

답변: 당연하지요.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추방할 때는 아담의 후손들은 이미 추방된 상태에서 살아갑니다. 아까 질문하실 때 ‘인간’이란 말을 하셨는데, 우리가 ‘인간’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이 잘못입니다. ‘인간’이 아니라 ‘죄인’이라고 해야 됩니다. 우리는 날 때부터 죄인으로 났어요.

질문: 그러면 하나님은 어차피 죽어 지옥 보낼 인간들을 왜 태어나게 하셨어요?

답변: 하나님은 인간과 상대하지 않지요. 언약에 따르면 하나님은 예수님과 상대하십니다. 예수님을 주로 드러내기 위해서 사람들이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했지요. 아담이 선악과 따먹고 바로 죽었습니까? 아니지요. 결혼해서 자식을 낳았고 930년을 향수하고 죽었어요.

아담이 몇 년을 살겠다는 목표가 있었습니까? 없지요. 자식 몇 명 낳겠다는 목표가 있었습니까? 없지요. 그냥 주께서 죽일 인간을 충분히 활용하고 죽였어요. 그리고 활용한 그 후손이 저와 질문하시는 분입니다.

질문: 그럼 우리는 어차피 죄인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으면 구원과도 상관이 없나요?

답변: 없지요.

질문: 만약 그것을 아는 순간 어떤 사람들은 더 이상 사는 것이 의미가 없고 힘들기만 하기에 지금 죽어버려도 상관없나요?

답변: 그것을 진작 알아야지요. 사실은 태어날 때부터 알아야 하는데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자신이 의미 있다고 착각하고 사는 거예요.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베들레헴 주변에 2살 이하의 아이들이 다 죽임 당했어요. 그들이 2년 살고 죽으나 90년을 더 살고 죽으나 죽으면 살아온 것이 전부 무효가 됩니다. 거기에서 ‘나는 예수 믿었다. 성실하게 살았다.’는 것이 의미가 없어요.

질문: 그러면 힘든 세상 왜 삽니까?

답변: 내가 살고 싶어서 사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살려 주시니까 사는 거예요.

질문: 그러면 내가 선택해서 죽어도 상관이 없는 거예요?

답변: 죽을 힘을 주셔야 죽을 수 있어요. 자살도 자살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가능합니다. 그 예가 가룟 유다입니다. 우리가 하는 어떤 일도 내가 하고 싶어서 되는 일은 없습니다.

지금 여기 감이 있는데 저는 감 있는 줄 몰랐어요. 이것도 내 뜻이 아니에요. 내 키가 작아서 좀 더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도 이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요. 내 발걸음을 내가 헤아릴 수 없어요.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밤에 잠이 들기 전에 ‘내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식사 준비를 해야지.’ 생각하고 잠을 잤어도 잠이 들면 끝입니다. 하나의 물체가 됩니다. 잠든 중에도 계속 심장이 뛰게 하시고, 아침에 눈을 뜨게 하셔야 살아요. 그래서 주기도문에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하지요.

질문: 그러면 우리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지만 결국은 우리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인가요?

답변: 그게 바로 소급입니다. 그동안 자신은 예쁘게 미화시킨 겁니다. 자신이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흙이 되기 전에 주께서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흙 아닌 인간처럼 살게 하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인데 마치 그 약속을 단독적으로 내가 관리한다고 오해하게 된 것은 태어날 때부터 죄에 물들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질문: 그럼 그 오해를 다 풀고 제대로 이해하고 죽는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

답변: 아무도 없어요. 오해를 풀면 안 됩니다.

질문: 그러면 내가 풀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답변: 풀려 한다는 말은, 내가 나 바깥으로 나가야 ‘이건 아니야.’라고 할 수 있는데, 어느 누구도 나 바깥으로 나갈 수 없어요. 그러니까 풀겠다는 자체가 또 하나의 착각을 만든 겁니다.

질문: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답변: 주께서 은혜 주시는 대로 살면 됩니다.

질문: 주께서 주신 은혜인지, 아니면 내 생각인지 어떻게 구분하지요?

답변: 그건 남에게 물을 필요 없어요. 본인이 알아요. ‘네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 알게 하신다.’ 요한1서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남에게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목사에게 확인받고 인정받으려 할 필요도 없어요.

질문: 저는 아직 모르겠는데, 아직 성령이 작용하지 않아서 모르는 거예요?

답변: 모르겠다는 것은 본인의 의사가 아닙니다. 알고 모르고를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본인이 있지 않아요. 그런데 자신을 판단의 위치에 세우게 되면 두 개의 자아가 됩니다. 내가 나를 판단할 자격도 없으면서 판단하는 나와 판단 받는 나가 생깁니다. 이 자체가 성경에 없는 이야기입니다. 판단은 주님이 하시지 본인이 판단하면 안 돼요.

질문: 주님의 판단인지 내 판단인지 본인이 알 수 있다는 말인가요?

답변: 자기만 알 수 있지요.

질문: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답변: 모르겠다는 말은 저에게 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모르겠다고 할 때는 반드시 다른 것은 안다는 말인데, 그 아는 기준을 본인이 세울 수 없는데 왜 본인이 세웁니까? ‘이건 알고, 이건 모르겠다.’는 말은 아는 부분은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안다는 것 자체가 주님 보시기에는 모르는 것에 포함되어 있어요. 알고 모르고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내가 오늘 주님 은혜로 살았다는 것이 중요하지, 이것을 뒤늦게 안다고 더 살려주고 모른다고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질문: 그러면 성경 공부는 왜 하는 거예요?

답변: 주께서 하게 하셔서 하는 거예요. 마치 내가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살게 하시는 것이 주의 뜻인 것처럼 하게 하신 거예요.

지금의 대화를 분석해 보세요. 저는 원인을 주님께 두잖아요. 그런데 질문하시는 분은 내가 어느 정도는 알고, 또 약간은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본인으로부터 모든 것을 출발해요. 본인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을 제가 나무라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 모든 사람이 다 그러하니까요. 소위 성령 받았다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두 가지를 다 알아요. 내가 시작하는 경우와 그리고 내가 시작하는 이것조차 주님께서 하게 하셨다는 것 둘 다를 알고 있어요. “나는 모르겠어요.”라고 말하시면, 제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제게 어떤 일을 행하시는가?’ 이것에만 관심을 두면 됩니다. 내 것 만들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면 지금까지 질문하신 것들은 전혀 궁금해 할 필요 없는 것들입니다. ‘주께서 지금 어떻게 일하십니까?’ 이것을 궁금해 해야 합니다.

“성도님은 주님이 살아 계신다고 생각합니까?” “모르겠습니다. 저는 교회 다니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질문을 잘 못 했네요. “최초에 인간을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모든 인간은 우주보다 누가 먼저 있었다는 생각을 반드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냥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로마서 1장 21절에 보면 “하나님을 알되”라고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아니고 방금 질문하신 분이 말씀하신 그 ‘하나님’입니다. 영어로 하면 nature. 한자로 하면 自然(자연). 그래서 방금 이야기한 것을 철학이나 과학에서는 ‘자연은 자연적으로 있다.’고 합니다.

방금 본인이 이야기했으니까 그것은 믿습니까? ‘자연은 스스로 있다.’고 생각합니까? “제가 태어나보이 모든 것이 있었으니까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후에 있었던 간에 나보다 먼저 있는 것이 있지요? 그러면 문제가 간단해 졌어요. 자연이 나를 지배하고 있지요? 그럼 나의 의미란 없습니다.

자연이 나를 만들었기 때문에 자연이 죽으라고 하면 죽고, 살라고 하면 살고. 그러면 나 나름의 의미나 목적을 갖는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 반역이고 죄가 되는 겁니다. 그럼 본인은 지금 죄인이기 때문에 자연이 죽으라고 하면 이유도 물을 필요 없이 죽어야 돼요. 자살해서 빨리 죽어야 하나? 빨리 죽든 늦게 죽든 시간은 의미 없어요. 물에 빠져 죽을까, 번개탄을 피워 죽을까? 관계없어요. 어쨌든 죽으면 자연으로 흡수되지요.

문제는 이것이 정답이에요. 그런데 이것을 제가 강요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이렇게 되면 아까 하신 말씀처럼 나의 사는 의미, 행위의 의미가 없어지잖아요.

질문: 의미가 없더라도 힘들지는 말았으면 좋겠는데요.

답변: 힘든 것도 자연이 주는 것인데요. 윗사람이 힘들게 살라고 하면 힘들게 살아야지 별 수 있나요? 부분이 왜 전체에 대해 반항하지요?

질문: 반항하면 안 되나요?

답변: 반항하세요. 그런다고 해서 자연이 겁을 냅니까?

질문: 사는 것이 힘드니까 반항이라도 하고 싶어요.

답변: 반항하고 싶은데, 아무리 반항해도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을 제가 지금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정리하면 돼요. ‘반항해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나는 자연에 복속되어 있다. 이것이 세상이다.’ 이렇게 정리하면 되잖아요. 자꾸 정리를 안 하려고 하시는데, 제가 정리하라고 도와드리는 거예요. ‘반항을 하든 뭘 하든 그것은 전체의 일부일 뿐이다.’ 해답이 나왔지요?

‘반항을 하든지 자살을 하든지 이것도 자연의 일부다.’ 이것을 성도는 알고 있어요.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세례 요한이 왜 죽었는가? 자연을 만드신 분이 예수님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죽은 거예요. 요한이 죽은 것은 장차 오실 예수님(세상을 만드신 분)이 이 땅에서 어떻게 죽으실 것인지를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가 이것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펼쳐진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믿는 것은 누가 강요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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