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누가복음 19:28-36 제목: 나귀 새끼
‘아무도 타보지 않는 나귀새끼’가 예수님과 상봉하게 됩니다. 이 관계를 아는 이는 예수님과 나귀뿐입니다. 나귀 새끼가 예수님의 무대에 등장하시는 것은 ‘시간’을 다루는데 있어 기존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스가랴 9:9에 보면,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귀새끼’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겸손을 말함입니다. 즉 왕으로 오실 분은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겸손의 면을 외부에 드러내면서 일하시는 왕이라는 겁니다. 왕이라는 존재는 공격적입니다. 파괴와 전쟁과 심판 그리고 새로운 통치라는 면들을 담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백성은 왕을 위하여 존재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보다 우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왕이 나귀새끼라는 겸손의 양상으로 등장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심판이 기준과 다르다 는 것을 말씀하기 위해서입니다. 왕이 다르다는 말은 왕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왕국에 속할 사람들도 왕의 겸손을 이해하고 동참하는 식으로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 의의를 드러낼 것이라고 겁니다. 그런데 겸손하다고 해서 왕이 아닌 것이 아니듯이 성도들의 겸손은 왕 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반영해서 보이는 겸손이기에 인간대 인간으로 비교해서 겸손을 말해서는 아니 되는 겁니다. 예를 들면, “나는 복음을 알면서 너무나도 겸손하기에 복음을 감추고 싶다”는 식의 겸손은 아니됩니다. 도리어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나 같은 자도 예수님의 겸손의 혜택을 입어서 구원되었다”는 것이 진정 이 어두운 세계에서의 겸손입니다. 즉 자기 자신의 의로움을 가지고 세상에 다가서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성도 자신이 예수님께서 받은 혜택은 오직 ‘죄인됨’입니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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