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분당중앙교회(담임목사:최중천 목사) 당회는 목사를 내보내는 조건으로 연봉 6억+위로금 20억=26억을 주기로 결정하자 그 교회 교인들이 “위로 받아야 될 자들을 우리인데 어떻게 해서 목사한테 무슨 위로금을 20억을 주냐”고 들고 일어났다.
이 소식을 접한 전국에 있는 목사들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나도 같은 목사인데 왜 나에게는 26억 주겠다는 사람들이 없는지…”
요즘 MBC 방송국에서 행한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화제다. 이 제목 자체가 현대인의 삶의 형식을 제대로 보여준다. 즉 “나는 ( )다”는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 ) 안에 뭐가 담길까? 그것은 너무나도 자신만을 최종 사랑하기에 그 사랑하는 자기를 위하여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집어넣고 투자하고 온종일 매달리고 있는 자기 직업을 거기다 담게 된다. ‘나는 가수다’, ‘나는 목사다’, ‘나는 사업가다’, ‘나는 화가다’, ‘나는 결혼에 성공한 사람이다’ 등등
그런데 이런 투로 자아를 외부에다 발산하게 되면 남들도 가만 있지 않는다. ‘나도 가수다’, ‘나도 목사다’, ‘나도 사업가다’, ‘나도 결혼에 성공한 사람이다’를 들고 나올 것이 뻔하다. 이렇게 되니 사회라는 것이 마치 침대 매트리스 밑에 각각 독립적으로 장착되어 있는 ‘포켓 스프링’처럼 자기만의 절대 영역 확보 차원에서 삶을 영원하게 된다. 이것을 다원주의, 혹은 보편적 상대주의라고 말한다. 자기 안에 갇혀서 밖으로 나올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지나가는 타인의 것을 가져다가 자신의 절대영역 확장을 꿈꾸게 된다. 심지어 이 정신은 자기 집안 내부까지 이어진다. 즉 “결국 나의 원수는 같은 집안 식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 )이다”라는 이처럼 자기 속에 갇혀서 사는 이 지독한 독아적(獨我的) 태도가 왜 문제인가?
성경에서 ‘나는 ( )다’고 말 할 수 있는 분은 구약에서는 여호와요 신약에서는 예수님뿐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 14:6) “나는 생명의 떡이요 나는 빛이다”라는 발언은 오직 하나님 몫이다. 직접 하나님을 만났던 성도들이 외친 고백은 “나는 ( )이 아니요”라는 형식을 사용한다. “나는 메시아도 아니요 나는 선지자도 아니다”(요 1:20-21) 세례 요한이 했던 말이다. 오늘날 성도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 “나는 길도 아니요 나는 진리도 아니요 나는 생명이 아니다”고.
정 ‘나는 ( )이다’는 형식을 사용하려면 자신에게 언약적 존재 변화를 야기 시킨 그분의 활동성을 보여주는 단어가 ( ) 안에 들어가야 한다. 즉 “나는 소리다” 쉽게 말해서 성도는 ( ) 안에 자신이 매진하는 직업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에서 말한 속성이 담겨야 한다. 즉 “나는 안개입니다.” “나는 이슬입니다” “나는 풀의 꽃에 불과합니다.” “나는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갑니다.”(시 90:9) 특히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딤전 1:15) 같은 예다.
특히 ‘나의 ( )가 아니다’는 형식의 결정판은 갈라디아서 2:20에 나온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즉 자기 안에 자기가 살아 있는 형식으로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언약의 능력이 사도 바울의 내부를 장악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성도는 결과물이다. 새언약의 결과물로서 주님이 벌이신 일의 증인으로서만 존재의의를 가진다. 다른 가치, 다른 의미, 다른 의의는 필요치 않다.
이처럼 ‘나는 ( )다’는 식이 아니라 ‘나는 ( )이 아니다’는 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진정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당성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구원받았다”고 한다면 오늘날의 풍토에서는 “너만 구원받았나? 나도 구원받았다”라고 나올 것이고, “나는 성도다”라고 하면, “너만 성도냐? 나도 성도다”라고 나올 것이 뻔하고, “나는 십자가 복음을 안다”고 나오면, “너만 십자가 복음 아냐? 나도 안다”고 나올 게 뻔하다.
이것은 바로 ‘나는 ( )이다’ 형식을 통째로 ( ) 안에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위하여 피 흘리시는 기능을 하셨다]라는 형식에서 이 (죄인)분을 무엇으로 전락하느냐 하며는 (나도 복음 아는 정당한 존재다)로 전환시켜 이것을 따로 뽑아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런 결과가 된다. [나는 (나도 복음 알고 예수님 제대로 믿는 정당한 존재다) 이런 존재]가 되어 버린다. 이렇게 되니 결국 나는 최종 나를 증거하는 존재로 다시 돌아와 버리는 것이다. 곧 “나는 나다!”이다. 혹은 “나는 나뿐이다!” 혹은 “나는 나만 사랑한다!” 혹은 “나는 나를 기어이 버릴 수 없다. 비록 내가 지옥에 가더라도 그런 나를 나는 끝까지 사랑할 것이다”가 된다. 하나님 앞에서도 이 주장을 늘어놓는 자들은 악마와 그 악마에 속한 자들뿐이다. 쉽게 말해서 성령 받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런 성질이 평이하게 툭툭 내뱉는 것이 바로 “나도 복음 안다”, “나도 구원받은 자 맞다”, “나도 목사다”, “나도 가수다” 등등이다. 새언약의 능력이 가져다주는 변화가 궁극적 자아 미움까지는 이어지지를 못한 것이다. 그저 어쨌든 건전하고 우수한 최종 자아 다듬기에 평생을 보낸 것이다.
“나 교회 내 놓을 테니 누구 저에게 26억 줄 사람이 없는가요?”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사람은 “나는 26억이다”로 돌변한다. 곧 “나는 돈이다”가 된다. 사람들이 돈으로 보일 때만 곧 자신이 곧 돈이 되어 있는 것이다. 평생 우리는 이 유혹과 이런 속성을 지을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 성령께서 성도를 다음과 형식을 통해서 예수님을 증거하게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너는 돈이다=죄인 중의 괴수)를 만들어 내십니다.]를 고백이 쏟아지게 한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세상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서 우리를 책망하시면서 보살펴 주시기 때문이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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