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2:15-17 영원한 위로
구원은 들음에서 나며, 들을 수 있는 재료는 하나님의 말씀 뿐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하나님께서 친히 보낸 자가 하는 기능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은 아름답습니다.(롬 10:13-15) 이처럼 말씀을 전하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구원을 하시는 것은, 인간들의 생리가 언어를 통해서 이 지상에 집단체계를 형성하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들은 타인으로부터 위로받으면서 생에 활력소를 넣으려고 합니다. 힘들거나 때로는 지루하고 괴로울 때에 자기보다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지켜주기를 원합니다.
이 큰 조직체가 유지되는 것은 그 안에 인간들의 말(언어)들의 관계가 얽히고 섥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언어들을 많이 섭득하는 쪽이 그 사회의 엘리트가 됩니다.
이런 식으로 인간들이 기대하는 구원이란 자기가 원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획득해놓으려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영원한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도리어 위로는커녕 하늘의 위치를 자초하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 인간 세계를 방문해서 말들을 쏟아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율법과 명령들을 이 세상에 풀어놓자 인간 세상은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마 3:9-10)
자신들이 스스로 위로받을 수 있는 세계를 구성하려고 분투노력했지만 예수님으로 인해 그것이 무산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는 인간들이 스스로를 달래는 식의 위로와 정면으로 충돌됩니다.
즉‘나를 지키려는 위로’는 애초에 하나님이 주신 적이 없습니다. 하늘의 위로는 예수님의 가치를 지키는 위로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위로받기를 포기해야만 느껴지는 위로입니다. 즉 ‘나는 위로받을 가치도 없음’을 기쁘게 자인하는 것은 벌써 하늘의 위로 속에 있는 자만의 하는 고백입니다.
이 땅에서는 본인이 원치 않더라도 맹렬한 언어의 폭격에 시달리는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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