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능력치유(Power Healing)
하나님은 치유능력을 모든 사람에게 주시고자 하십니다. 어떤 이에게는 치유 은사가 있는 이가 있어서 삶 가운데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치유사역을 하시길 원하십니다. 실제로 특별한 은사가 없어도 전도할 수 있는 것처럼 특별한 치유 은사 없어도 치유사역은 할 수 있습니다. 치유의 기도는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치유사역을 위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시길 바랍니다. 치유사역자가 되려는 소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치유 사역자가 되어 병자의 형편을 듣고 병자를 위하여 간구하고 치유의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1.항상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도록 최선을 다하십시오.
주님이 부여한 동기가 무엇입니까? 주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동기를 두었습니다. 사역은 오락이 아닙니다. 병자에게 어떤 깊은 인상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Show가 아닙니다. 치유사역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이해하고 감동받아야 합니다. 치유사역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2.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할 것을 모두 배우십시오.
배울 것이 많습니다. 기도는 간단한 것 같으나 기도해보면 그것이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고로 치유사역을 위하여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치유사역을 공부합시다. 성경 전반에 걸쳐 치유의 내용을 깊이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의 치유사역을 공부합시다. 그리고 최근의 믿을 만한 학자들의 책자들을 통하여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 들 중에 프란시스 맥너트의 "Power to heal",
존 윔버의 "능력전도" "능력치유"
켄 불루의 "치유사역"
M.T 겔시의 "치유와 기독교"
“능력전도” 끝부분에 신유사역의 성공적인 역사가 나와 있고 능력치유에 그 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3.훈련 받을 기회를 많이 찾고 구하십시오.
예수님은 가르치시고 훈련하셨습니다. 배우는 것이 중요하지만 훈련가운데 얻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절로 치유사역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치유사역자는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훈련받을 기회가 있으면 어떤 기회이든지 최선을 다하여 참석하여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여 훈련하도록 하셔야 합니다.
4.성령께서 매일 매일 새롭게 하시길 기도하십시오.
치유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병을 우리가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고로 그분이 어떻게 계속 역사하시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치유를 경험합니다.
매일매일 치유를 위하여 당신은 성령님의 음성을 듣습니까? 인도함을 느낍니까? 음성을 듣고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능력과 은사를 경험하여도 보혜사로 인도받고 그 같은 경험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느끼고 인도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5.나서서 병자를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위험을 감수하십시오. 큰 대적은 불신앙입니다. 두려움입니다. 불신은 하나님의 능력을 막습니다. 두려움은 주어진 은사를 막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느냐? 하십니다.
믿음이 있으면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막9:23) 믿음을 가지고 실제로 나가서 그 일을 행하여야 합니다. 병자를 고치는 것은 열정이 담긴 사랑 입니다.실로 구원과 치유는 함께 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포로 된 자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구원이 주님의 사역이십니다. 공생애시 치유사역의 대부분이 바로 그것입니다. 12제자와 70명의 제자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렇게 행하시길 원하십니다. 지금 수많은 사람이 목자 없는 양같이 유리하고 있습니다. 누가 일군입니까? 바로 당신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외치고 죽은 자를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이 시간부터 더욱더 하나님의 음성을 감지하시고 병자의 형편을 이해하시면서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열정을 가지고 치유사역에 임하시길 바랍니다.
받아들이라!
'받아들이라' 여러분 어떻습니까? 지금 만나는 중에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 그 상황들, 나와는 다른 기질의 사람들, '하나님, 난 이런 사람과는 일 못해요' 하는 사람들, '난 그곳은 가지 못해요'하는 사역지들 나와 다른 면을 지닌 사람들을 한국 사람들은 참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외국에 나가보면, 다인종 사회라 다른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용인이 쉬운데, 한국은 단일민족의 획일적인 문화 전통이 있어 이 받아들임이 참 어려운 환경입니다.
그래, '다른' 것이야 주의 이름으로 용납한다지만, 그럼 '틀린' 것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앙인의 양심 상 틀리다고 판단된 것, 그렇다고 배운 건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처음으로 맞은 여리고 성, 그 성을 점령한 방법은 그저 도는 것이었죠. 하나님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전략을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여 성이 무너진 것이죠.
그런데 바로 다음 아이 성 전투는 어떠합니까? 아간의 죄로 인하여 패배당하고 맙니다. 그는 '틀린', 틀려먹은 인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를 이스라엘 전체가 받아들일 공동의 문제, 공공의 죄로 알게 하십니다. 그런 틀려먹은 것도 역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아간은 갑자기 나타난 인물이 아니죠. 애굽 노예 때도, 출애굽 때도, 광야 때도, 이스라엘 안에 그와 같은 성향은 계속 있었습니다. 다름을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의 방법을 알았다면, 틀림을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이 말했듯이 성도는 세상과 구별된 자들입니다. 거룩이 무엇입니까? 세상과의 구별, 성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는 소극적 의미의 거룩입니다. 거룩의 본질은 그렇게 구별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자리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세상과 구별된 삶이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는 삶이 될 때, 거룩의 적극적 의미를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거룩한, 성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데, 세상은 어떠합니까? 세상 속의 우리들은요? 세상에는 절대적인 기준이 사라지고, 기준점이 흔들려 양 갈래로 왔다 갔다 합니다. 그것이 애굽의 노예근성과 바로의 폭군 근성입니다. 보상 심리와 보복 조치입니다. 프로이드의 ‘에로스’(성 본능)와 ‘타나토스’(공격성, 자기 파괴)입니다. 자살심리와 적대 심리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원리입니다. 무슨 일을 하면, 세상 사람들은 보상을 바라거나, 보복이 두려워 일을 합니다. 자기를 부정해서 죽거나, 남을 부정해서 죽이거나 입니다.
제4장 속사람의 치유
욥기 17장 1절에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예비 되었구나!”고 했습니다. 성경 원어에 보면 ‘내 영이 상했다. 깨졌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난 정말 죽고 싶다. 나의 날이 다 하였다.’ 이것은 정말 실제적인 경험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한 심령 속에 살게 되면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상한 심령이 우리 안에 오게 됩니까? 잠언 15장 13절에“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어떤 때 슬픔을 느낀다.’ 이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상한 심령은 나쁜 뿌리가 자라게 하는 기반입니다. 상한 심령은 바닥이 없는 컵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상한 심령을 치유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 앞에 마음을 여신다면 그 과정이 아주 빠르게 될 수 있습니다.
시편 62편 8절에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시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마음을 토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장 15절에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토한 것뿐이오니”라고 했습니다. 한나는 자기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다 토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물 쏟듯 하나님 앞에 쏟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든 아픔을 하나님 앞에 물 쏟듯 쏟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더 깊은 곳에 있는 상한 마음일지라도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육체의 질병은 의사의 지시에 따라 약물로 치유할 수 있지만 속사람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의료 행위로는 치유하기 어렵다. 속사람 즉 마음의 치유는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리려는 정신적 또는 영적인 행위인 것이다.
똑같이 신앙생활을 시작했는데도, 한 부류의 사람들은 구원의 확신 속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가운데 영적인 성장을 지속해 나가는 반면, 다른 한 부류의 사람은 그렇지 못하고, 믿음을 갖기 시작한 이후 어느 정도는 잘 자라가다가 어느 시점에 가서는 성장을 멈춰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이들은 한 때 열정적으로 주님을 섬겼고, 신앙 체험도 하였지만, 이상하게 의기소침해지고 특별한 이유 없이 영적 침체에 빠진다. 이들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이것은 오히려 공로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며, 다른 교인들과 목회자에게 상처를 주고, 심지어 교회의 분열의 주동자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해결되지 않은 상처는 그를 불행하게
만들고, 다른 교인들과 목회자와 교회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동안 우리 한국교회는 이런 문제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성경공부 잘하고 열심히 기도만 하면 이런 정서적인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것처럼 생각하였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쓴 뿌리가 되어 본인은 물론, 그가 속한 가정과 교회를 병들게 한다.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고, 목회자들이 속사람 치유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목회 현장에서 속사람 치유 사역을 행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코자 하며, 이를 위해 먼저 속사람 치유의 일반적 이해를 살펴보고, 속사람 치유가 목회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고자 한다.
1.속사람 치유에 대한 일반적 이해
1)속사람 치유의 정의
속사람 치유는 어떤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관념적인 개념일 수 있다.
속사람 치유 사역자마다 그것에 대한 정의와 강조점이 다르다.
“단순히 과거에 받은 상처를 위로하거나 어두운 기억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성령과 복음의 능력 안에서, 성경적인 원리와 방법들을 통해서,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이나 사건으로부터 해방되고 회복되며, 마음이 새롭게 됨으로써 점점 성화되어 가는 것을 돕는 치유 사역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2)속사람 치유의 목적
속사람 치유의 목적은 다음과 같이 3가지 단계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 과거의 고통스럽고 어두운 기억이나 사건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에서 비롯된 아픔과 억압에서 해방되어,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으로 회복시켜 주는 데 그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속사람의 상처로 인한 가장 흔한 결과는, 특히 그것이 어린 시절에 받은 것이라면, 정서적인 성장이 멈추는 것이다.
우리는 신체적으로, 지적으로, 사회적으로, 영적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지만, 우리 정서적인 발전의 어떤 부분은 여전히 미성숙한 상태로 묶여 있을 수 있다.
속사람 치유를 통해 이런 정서적 성장의 장애 요인들을 제거함으로 정서적인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두 번째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루어지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창세기 1:27에 나온 대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내면에서 완성시켜 나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 목적을 이루어 나가고 계신다.
마음에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특징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왜곡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보기 때문에, 그의 눈이 바로 되기까지는 하나님의 모습이 결코 바르게 이해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이루어 질 수 없다. 속사람 치유는 이렇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막고 있는 마음의 상처들을 제거해 줌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일을 도와준다.
마지막으로, 속사람 치유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임하도록, 그래서 하나님의 영역 주권을 회복시키는 건강한 도구가 되도록 속사람을 옥토 밭으로 가꾸는 작업인 것이다.
속사람 치유를 통해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해 질 때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딤후 2:3)로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쓰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속사람 치유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마음의 상처로 인한 고통과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어 정서적인 회복을 가져오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막고 있던 상한 마음을 치유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며, 우리의 속사람을 건강하게 만들어 줌으로써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기여하게 하는데 있다.
한 마디로, 그 목적은 영적 성숙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3)속사람 치유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
우리는 성경의 여러 곳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감정을 치유하시는데 관심을 갖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은 어두움에 숨겨진 것을 아시고(시 139:11-12, 단 2:22) 사람의 영혼과 마음에서 나오는 것(막 7:21-23)을 아신다.
그 분이 그렇게도 애타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기시고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는” 것이다(사 25:8). 그 분은 “상한 심령을 고치시려고”(사 61:1, 눅 4:18)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예수님은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던”(사 53:3,4) 분이다.
그 분은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시려고 자신의 생명을 대속물로 내어 주셨다. 우리가 주님을 찾을 때 그 분은 우리를 모든 두려움에서 건지시리라고 약속하셨다(시 34:4).
이것을 잘 알았던 바울 사도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고 권면하였던 것이다.
우리의 상한 마음을 치유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열망은 예수님의 사역과 생애에도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예수님은 문둥병자들이나 죄인, 부정하고 버림 받은 사람들을 대하실 때 육체의 질병뿐 아니라 감정적인 상처들도 치유해 주셨던 것을 볼 수 있다. 문둥병자는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 있을 때 “부정하다!”고 외침으로 다른 사람이 근접치 못하도록 하였으며, 그로 인한 감정적 상처는 분명 육체적 아픔 만큼 심했을 것이다. 문둥병자는 부정(不淨)한 자로 간주되어 버림받음, 거부, 미움, 분노, 조롱, 학대 등을 견뎌야만 했으므로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자기 증오, 열등의식, 절망 그리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향한 깊은 분노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문둥병자들의 육체 뿐 아니라 깊은 내면의 상처들도 치유하기 원하셨기 때문에 그를 만져 낫게 하시고 제사장에게 보내어 그 병이 치유된 것을 증명하게 하심으로 앞으로 사회생활에 온전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이다(막 1:40- 45).
이와 같이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당신의 백성들의 상처 난 마음이 온전히 치유받기를 원하시는지, 즉 속 사람 치유에 대한 주님의 열심을 확신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는 하나님의 뜻이며, 오늘날 목회의 현장에서도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2.속사람 치유가 목회에 미치는 영향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 이웃, 환경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는 이러한 관계들을 왜곡시키고 막고 있는 상한 마음을 치유함으로써 각각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그 회복된 관계들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영적 성숙을 가져오게 한다.
1)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상한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의 결여를 가져온다. 왜곡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보기 때문에 그의 눈이 바로 되기까지는 하나님의 모습이 결코 바르게 이해되지 못한다. 입으로는 하나님에 대해 많은 말을 할 수 있지만, 깊은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해 가지는 인상은 심히 부정적이다.
또한,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은 영적 삶에 있어서 심한 굴곡과 침체를 겪는다.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신앙의 태도가 항상 주변의 상황에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심한 굴곡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신앙 연수가 오래되었는데도 생활 속에 어려움이 생기면 항상 근본적인 회의에 빠져서 하나님이 계신 것인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가? 등의 유아적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이런 놀라운 은혜와 체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에 묶여 있고, 하나님에 대해 왜곡된 생각을 하게 된다거나, 삶 속에서 고쳐지지 않는 죄의 습관을 지속해 나가는 부분이 공존한다. 가장 무섭고 심각한 것은 불신이다. 죄로 인해 상한 마음 중에서도 버림받은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끊임없는 욕심으로 세상을 향해, 우상을 향해 달려간다. 결국 하나님을 불신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마음의 상처는 하나님에 대해 오해를 일으켜 하나님과의 관계를 왜곡시키게 되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풍성한 사랑과 은혜를 차단하여 개인의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철저히 방해하는데, 이는 바로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은 물론 구원의 확신과 하나님과의 친밀감 있는 교제가 가능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 개인의 영적 성숙을 가져오게 한다.
2)자기 자신과의 관계 회복
죄로 인해 깨지고 상한 마음의 내적 질병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참 자아를 잃어버리게 한다. 그래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한다. 계속적인 근심과 걱정을 안고 있으며 자신을 부적합하게 여기며 열등감을 갖게 된다. 자기에 대한 올바른 자아 개념을 갖지 못하면 우리의 일상적인 삶과 신앙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마음의 상처로 인한 이러한 현상은 자신에 대한 자존감 결여로 나타난다. 자존감의 결여에는 두려움, 의심, 분노, 악심, 걱정 그리고 죄책감 등이 해당된다.
이러한 자존감 결여는 열등감과 부족하게 느끼는 것과 자신의 가치를 무시하는 감정들을 갖게 하여 놀라운 영적 경험과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속박한다. 그 결과 우리의 생활을 실패와 패배로 이끌어 간다. 자존감이 결여는 우리의 잠재력을 마비시키고, 꿈과 이상을 파괴시킨다.
상하고 포로 된 마음이 더 심한 병적 상태로 빠지게 되면 갇힌 마음이 된다. 이는 내적 질병의 최종적인 상태로써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우리의 영혼과 영적 자아가 억눌림과 자기 학대를 통해 갇혀지는 것이다. 이 갇힌 마음의 외적 증거의 하나가 완벽주의이다. 지나친 완벽주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평강의 누림을 빼앗아 가고, 무엇인가에 쫓기며 많은 패배감을 경험하게 한다.
이렇듯 상한 마음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 면에서도, 한 개인을 병적인 상태가 되게 하여 무기력하게 만들고 철저히 속박하여,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풍성한 삶에서 누리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속사람 치유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회복되면,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과 인식의 확장 현상이 나타난다.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사랑 받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신의 존재 인식과 새로운 존재로서의 삶의 양식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것은 곧 자기 자신의 성숙과 직결된다.
3)이웃과 환경과의 관계 회복
상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대인 관계의 영역에 있어서도 큰 어려움이 있다. 지배하려거나 소유하려는 태도가 있을 수 있고 반면에 극도로 의존하는 경향도 있다. 지배하는 사람의 경우, 모든 상황을 자신이 왕처럼 지배하려 하고 모든 것을 간섭하려고 한다. 지나친 의존의 모습의 경우에는, 자신의 뜻과 생각은 아무 것도 없고, 지극히 피동적인 삶을 나타내게 된다.
또한, 감정이 오랫동안 억눌려 있음으로 해서 상한 마음을 갖고 있을 경우에는 마음에 벽이 생긴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과 감정을 주고받지도 못하고 자기 얘기만 늘어놓는 사람이 되고 만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자신 안에 들어 있는 감정을 스스로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어려운 시절을 보낸 많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바로 감정이 속으로 숨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 결과 깊이 잠재해 버린 감정이 다시 살아나지 않아 상담도 불가능하게 된다. 이렇게 마음의 상처로 인해 감정이 죽어버린 사람은 말하거나 행동할 때 생명력도 없다. 감정은 상호작용하면서 역사를 일으키는 것인데, 그런 사람들은 감정이 죽어 버려서 누구와도 감정적인 상호 작용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속사람이 병든 사람은 사회생활과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사랑을 주고받는데 큰 장애를 일으키며 사회 공동체와 사회 구조 그리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그 곳을 병들게 하며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또한 자연 생태계에 대한 바른 지식의 결여로 자연 생태계까지도 병들게 하여 결국 그 결과가 자신에게 돌아오게 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속사람 치유는 존재와 생활양식에서의 자신과의 관계성 회복을 가져오는데, 이것은 다시 이웃사랑의 관계로 발전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난다. 그 결과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 섬길 수 있게 되며, 하나님의 동역자(고전 3:9)로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기쁨으로 헌신하는 성숙한 삶이 가능하게 된다. 이렇게 성도 개인에게 있어 속사람 치유는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 그리고 이웃 및 환경과의 관계에서의 회복과 성장을 가져오게 되어, 결과적으로 성도 개인의 영적 성숙을 돕게 된다.
3.가정 회복과 속사람 치유
가정은 하나님의 인간 창조와 함께 시작된 기관으로 하나님께서 결혼을 통하여 허락하신 기관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며 자연을 다스리는 삶에 축복하시기 위하여 가정을 만드셨다(창 1:28-29).
시 133편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가정에 대하여 선하고 아름답다고 찬양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영생의 축복을 약속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가정이 오늘날 하나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가정 폭력, 자녀 학대, 이혼율 증가 등으로 날로 상처로 얼룩져 있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가정도 속사람 치유를 통해 회복될 수 있다.
1)역기능 가정의 치유
오늘날 상처투성이인 가정을 한 마디로 ‘역기능 가정’(dis-functional family)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역기능 가정’이란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신체적인 욕구와 정서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가정을 말하는데, 이것은 역기능적 결혼에 의해 만들어진다. 비정상적 부부관계는 병적인 부모 자녀 관계로 나타나는 것이다.
역기능 가정이란 원래 알코올 중독자 가정에만 적용되었던 말로써, 이제는 도박꾼, 과식 및 거식으로 나타나는 섭식 중독자, 이단이나 병적인 신앙생활에 심취하는 종교 중독자, 분노 중독자, 성 중독자, 충동구매 중독자, 일 중독자가 있는 가정에도 적용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상호 복종적인 동반자 부부관계(엡 5:21)보다는 가부장적 가족 문화에서 충효를 절대 가치로 가르치며 남존여비를 근간으로 삼았던 수직 윤리의 유교 문화, 일제 36년간의 억압, 6.25전쟁의 상흔, 그리고 고질적인 가난은 갖가지 역기능적 요인을 잉태하여 가정과 사회 전체를 역기능적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역기능 가정의 특징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관심이 집중되어 있으며, 감정표현이 제한되며, 명백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마음 놓고 말할 수가 없고, 자녀들로 하여금 부정적인 역할을 하게 만들며, 자녀들의 성장을 위해서 적절한 보살핌을 제공하지 못하고 바깥 세상에 대해서 폐쇄적인것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는 역기능 가정을 속사람 치유 개념을 기초로 한 여러 가지 치유 모델들을(예를 들면, 가족 치유 등) 통해서 치유함으로써, 각 가정이 창조 당시 원래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정상적인 가정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
2)성인 아이의 치유
앞에서 살펴 본 역기능 가정은 ‘성인 아이’(adult child) 낳게 된다.
성인 아이란 역 기능 가정의 산물로써 성인의 문제를 나이에 맞지 않게 조숙하게 다루어야 하는 ‘성인화 된 아이’(adultified child)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해소되지 않은 어린 시절의 문제(unfinished business: 미완성 과업)를 아직 처리하고 있는 18세 이상의 성인을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되고 있다.
성인 아이들은 가정에서 가족들 간의 상호 작용을 통해서 자아 정체감을 형성하지 못했으며, 어린 시절의 가정에서 위로 받거나 충족 받지 못한 결과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의 감정과 행동들 가운데는 많은 부분이 유년기 흔적이 남아있다. 그 결과 이들에게는 여러 가지 증상들이 나타나게 된다. 성인 아이에게 나타나는 증상들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소외감’을 들 수 있다. 성인 아이는 항상 자신이 남과 다르다고 느끼며 무엇이 정상적인 행동인지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며 친밀한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둘째, ‘자기 정죄’로써, 자신을 무자비하게 비판하고 끊임없이 인정과 칭찬을 원하며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에게도 충성한다.
셋째, ‘긴장감’을 들 수 있는데, 재미있는 시간을 갖는데 어려움을 느끼며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어떤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추구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넷째, ‘불신’이다. 병이나 퇴직과 같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변화에 과민 반응을 보이며 아무런 대책 없이 결과를 고려하지도 않고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마지막으로, ‘지나침’을 들 수 있다. 성인 아이들은 ‘지나침’과 익숙하여서 지나치게 성취하려 하고, 지나치게 먹고, 지나치게 일하고, 지나치게 운동하며, 지나치게 소비한다. 그들은 섹스, 고통, 음식, 신앙, 권력, 돈, 소비 등 무언가에 중독이 되려한다. 성인 아이의 더 큰 문제점은 그가 성장하여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었을 때, 그는 다시 역기능 가정을 만들 수밖에 없고 그 역기능 가정을 통해 다시 성인 아이를 배출하게 됨으로써 역기능의 고리가 계속 연결된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이런 성인 아이도 속사람 치유를 통해 치유 받음으로써 성인 아이 본인이 회복됨을 물론, 회복된 그를 통해 그의 가정도 역기능의 고리를 끊고 온전히 회복되어 창조 당시 원래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3)교회 성장과 속사람 치유
교회 성장은 하나님의 뜻이다.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일’(마 28:19-20)을 교회에 위임하셨다.
그러므로 교회 성장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이며, 목회사역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인 것이다.
속사람 치유 사역은 교회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3가지 측면에서 말할 수 있다.
a)구원받은 백성의 증가와 속사람 치유
속사람 치유는 구원받은 백성을 증가시키는 사역이라는 점에서 교회성장을 돕는다. 인간 역사의 왜곡과 영혼의 본질적 그릇됨은 죄의 결과이며, 그 주역은 사단이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으로 인하여 이 세상은 사단의 지배 아래 있으며, 이 사단의 권세는 하나님의 창조하신 세상을 총체적으로 왜곡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질상의 상처와 이로 인해 파생되는 질병은 사단적인 특성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 M. Green은 질병과 사망은 마귀가 자기의 유혹에 응해 준 대가로 인간에게 준 사악한 선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사람은 누구든지 정신적인 문제에 연관되어 있으며 영혼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자신의 정신적인 생활을 먼저 개선하지 아니하면 육신의 개혁을 기대할 수 없으며, 영혼이 치유되지 않는 한 정신의 개혁은 일어날 수 없다.
터너(John Turner)는 육체적 질병의 50%가 감정적, 정신적, 영적, 내적 스트레스와 긴장에서 온다고 하였고, 맥너트(Mcnutt)도 우리의 육체와 정신, 영적 건강 사이에는 깊은 상호 관련성이 있으며 어떤 질병은 근심과 고뇌의 뿌리가 기도를 통해 제거될 때 깨끗이 사라진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기독교의 인간 이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몸과 마음과 영으로 구성되는 분리할 수 없는 전인(살 5:23, 히 4:12)으로서 영과 육과 마음이 서로 연관성을 가진 뿌리인 상한 마음에 대한 속사람 치유는 왜곡된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며, 나아가 이런 상태보다 더욱 나아지는 성숙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인간의 치유 대상을 단순히 육체적 질병으로만 국한시켜서는 안 되며 왜곡된 내면의 세계와 영혼 전체를 포함하는 전인적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
교회 성장이 내적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날마다 더하게 하는 것이라면 온전케 되는 전인적인 인간을 날마다 더하게 하는 속사람 치유 사역이야말로 교회 성장을 위한 사역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속사람 치유는 치유 자체에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자아, 온전한 영혼을 지향하는 전인적인 구원을 그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이 사역을 통한 치유가 계속될 때 날마다 구원받은 백성을 더하게 할 것이므로, 교회 성장을 돕는 사역인 것이다.
b)복음 증거의 주역들의 역동성 강화와 속사람 치유
이는 복음을 증거하는 주역들의 역동성을 강화시켜 주므로, 이것은 교회 성장에 도움을 준다.
건강한 사람만이 일을 할 수 있다. 마음이 유약한 사람, 열등감에 시달리고 낮은 자존감으로 방황하는 사람은 복음의 자신 있는 전파자는 될 수가 없다. 또 이런 사람들이 많이 모인 교회가 부흥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실제로 부흥하는 교회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 복음의 뜨거운 열정과 복음에 관한 한 높은 자존감이 가득찬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복음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는 신학적인 훈련의 미숙에도 그 원인이 있지만 전도자의 인성에도 적지 않은 요인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소극적인 자신감의 결여는 많은 요인이 과거에 입은 내면의 상처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데이빗 A. 씨맨즈 박사는 그의 책 『상한 감정의 치유』에서 낮은 자존감은 자신의 잠재력을 마비시킨다고 말했다.
이것은 복음전파를 위해 역동성을 강화시킴에 있어서 속사람 치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충분히 보여 주는 것이다.
과거에 받은 내면의 상처들, 죄책감과 열등감에서 해방되지 못한 마음은 결코 교회 성장을 위한 사역자로서는 적합하지 않다. 위대한 전도자, 선지자, 그 외의 많은 복음의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부름에 앞서 죄책감과 열등감에서 자유 함을 받는 경험이 바로 이 점을 증명해 주고 있다. 교회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에 앞서 하나님이 관심을 갖는 부분은 상한 심령의 치유라고 생각한다. 즉 상한 심령의 치유야말로 교회 성장의 역동성을 강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속사람 치유는 교회 성장의 주역들의 역동성을 강화시켜 줌으로써 교회 성장에 도움을 준다.
c)사역자 양성 훈련과 속사람 치유
속사람 치유 사역은 진정한 사역자를 양성하는 훈련이라는 점에서 또한 교회 성장을 돕는다.
우리는 앞에서 치유 사역이 구원 받은 백성을 증가시켜 교회를 성장케 하는 역동성을 강화시켜 주는 사역임을 역설하였다.
그렇다면 이 사역을 수행하는 요원을 양성한다는 것은 보다 더 근본적인 목표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목적 중의 하나는 혼자 건강하여 즐겁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 가는 군사와 병기가 되는데 까지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치유를 받게 되면 반드시 사역에 관심을 갖고 헌신하게 된다. 그래서 이는 어떤 측면에서는 헌신자들을 위한 사역 프로그램일 수도 있다. 이를 위해 더 깊은 치유의 경험이 필요하고 또 치유의 강도가 깊어질수록 사역에 대한 헌신도가 높아지게 된다. 다시 말해 이는 스스로 치유를 경험한 사람이 또 다른 치유 사역자를 배출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며, 하나님 치유 능력의 최대 승리로 간주한다. 즉, 상처 입은 자신의 상태를 치유의 원천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상처를 경험한 사람들을 변화시켜 치유 받은 사역자를 만든다는 것이다.
데이빗 A. 씨맨즈 박사는 이 과정을 가리켜 ‘재생하는 은혜’(recycling grace)라 하였다. 건강한 속사람 치유 사역자는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이해하고 용납하는 온유한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사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이 치유를 경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가장 위대한 치유자인 것은 이 모든 것을 경험하신 온유한 치유자이시기 때문이다. 결국 상처와 아픔과 연약함으로 손상된 속사람을 재생시켜 그 경험을 사용하여 또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치유 사역자로 재생산하여 나가는 과정이 속사람 치유 사역의 종착점이다. 그러므로 유능하고 훌륭한 치유 사역자를 많이 배출하는 교회는 더 빨리 성장하는 교회로써 부흥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속사람 치유는 구원받은 백성을 증가시켜 주고, 복음을 증거하는 주역들의 역동성을 강화시켜 주며, 그리고 진정한 사역자를 양성하는 훈련이라는 점에서 교회 성장에 큰 유익과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렇게 한 개인이 속사람 치유를 통해 상한 마음이 치유되고 영적 성숙을 가져올 때, 그가 속한 가정도 치유와 회복을 가져오게 되며, 이것은 결국 그 가정이 소속된 교회의 건강과 성장을 가져오게 되어 교회의 사명을 다하게 되는데, 바로 여기에 속사람 치유 사역이 목회에 꼭 필요한 이유가 있다.
4)결 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대부분 병든 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신, 인간관계, 정치, 사회, 교육, 그리고 자연 생태계의 측면에서 볼 때 건강한 삶을 누리기가 불가능하다.
급진전하는 산업사회를 인간의 정신은 따라갈 수가 없는데, 서양에서는 800년 동안에 일어난 변화가 우리나라에서는 불과 30년 동안에 일어났다. 게다가 최근에는 최첨단 과학의 발달, 물질주의 가치관의 팽배, 사회 경쟁의 심화 등으로 인해 인간은 더욱 소외되고 정신이 황폐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각종 마음의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다. 또한 가정은 가정대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가정 폭력, 이혼율의 급상승 등으로 인한 역기능 가정의 증가로 가정은 이제 상처 난 문제아들을 생산하는 공장처럼 되어 버렸다.
사회와 가정에서 양산된 상처 받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게 되는데, 안타까운 것은, 교회가 이들의 상한 마음을 싸매고 치유해야 함에도, 교회는 치유 기능을 상실한 듯하다. 오히려 교인들 상호간에 혹은 교인과 목회자간에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있으며, 많은 교회들이 이로 인해 중병을 앓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 한국 교회가 물량적인 부흥과 외형적인 양적 성장에만 치중한 나머지, 예수님의 3대사역(가르침, 설교, 치유) 중의 하나이기도 한 치유 사역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21세기에 들어선 한국 교회가 새로운 목회적 접근 방법, 특히 속사람 치유 사역을 목회 현장에 도입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상처 난 사람들을 치유하여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들을 회복시킴으로써 영적 성숙에 이르게 할 뿐 아니라, 성인 아이를 양산하는 역기능 가정을 회복시킬 수 있으며, 이것은 결국 교회의 성장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속사람 치유야 말로 21세기에 들어선 한국 교회가 목회 현장에 도입해야 할 가장 필요한 사역 방법들 중의 하나이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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