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쓴 뿌리
에베소서 3장 16-19에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 속사람을 어떻게 다루시는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7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뿌리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계획은 우리가 사랑 안에서 뿌리가 박히는 것입니다. 뿌리는 기반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 안에서 뿌리가 박히면 놀라운 기반이 채워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씨앗처럼 우리 안에 박힙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우리 가운데 심겨지면 그것이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삶이 사랑 안에 뿌리가 박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어떤 사람은 그 뿌리가 우리 안에 자라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다른 뿌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뿌리들이 우리의 행복하지 못한 가정으로부터 왔습니다. 거절의 뿌리, 쓴 뿌리, 그런 뿌리들이 우리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우리 안에 심겨졌을 때 옛날 뿌리와 새로운 뿌리들이 마치 전쟁이 있는 것처럼 뿌리들이 자라는 것이 너무 힘이 듭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도 없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깊은 체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까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18,19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안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알 수 있습니다.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아는 것, 이것은 정말 우리의 삶을 깊이 있게 변화시키는 그러한 경험입니다.
로마서 5장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된다고 했지, 우리 정신에 부은바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말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신으로는 생각합니다. 마음으로는 느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부은바 된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들은 “예, 저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느낄 수 없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알겠는데 그런데 제 가슴으로는 느낄 수는 없습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는 우리가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3,4절에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의 이시요,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서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말씀을 이번에 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실 때 아주 독특하게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1장 26,27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하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어떠한 동물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것이 없습니다. 오직 사람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얼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돌아보십시오. 다 얼굴이 틀리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 다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습니까?
하나님은 삼위일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세분이 다 하나님이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보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흠 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을 때 영과 혼과 육이 하나가 되게 만드셨습니다. 어떤 동물도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없습니다. 오직 사람만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으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영은 우리의 한 부분인데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영이 우리가 영원토록 영생하는 그 영과 동일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에게 혼이 있습니다.
혼은 우리의 정신과 감정과 의지입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혼적인 부분에서도 회복이 필요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혼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에게 몸이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몸에 거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실 때 우리를 죄인 되게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의 죄악 된 속성 때문에 우리가 죄인이 된 것이고 그것은 묶여버린 것입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길 모두가 죄인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개인적인 교제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우리의 죄는 용서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우리의 삶이 변화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악을 이기는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의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령님이 거하시는 전이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역시 이런 세 가지가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삼위일체시고 우리도 그렇게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몸은 일시적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게 되면 완전한 몸을 갖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몸입니다. 끝이 없을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나이에 대해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은 아주 완전해 질 것입니다. 흠도 없고, 우는 것도 없고, 죄도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천국에서 완전하게 영원히 가질 몸입니다.
예수께서 처음으로 사역을 시작하실 때 이 땅에서 무엇을 하러 오셨는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목적과 계획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나누셨습니다.
이사야 61장이 예수님의 사역의 목적이셨습니다. 이것을 위해 내가 여기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61장 1-3에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죄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의의 나무가 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성경 말씀 중에 나무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열매가 많고, 계속해서 성장하는 좋은 나무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려고 하신 일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말씀하신 것이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여기서 어떤 우선권과 하나님께서 정하신 순서를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가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소식은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용서받은 것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없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가 용서받은 것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계속해서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 하나님께서 우리와 너무 먼 것같이 느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죄책감이 있으면 하나님과의 어떤 관계를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사람의 소리만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가 씻김을 받게 되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가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시간은 결코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시간은 결코 우리의 문제를 다룰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치유하십니다. 용서함을 받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그 죄악을 다 소멸시키시고 씻어버리셨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용서한 다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른 것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라고 말씀하십니다.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위로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 말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우리의 전 인격, 영과 혼과 육의 모두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사역의 처음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마지막 부분은 어떤 것입니까? 이사야 53장 3-7에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말씀하시기를 “다 이루었다, 다 끝냈다. 모든 것이 다 처리되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 일들을 다 해결하신 것입니다.
첫 번째로, 우리의 죄의 대가를 십자가에서 대신 치러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의 대가를 우리가 치룰 필요가 없고 우리의 죄는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아주 놀라운 것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여기 히브리어 원어를 보면 예수님께서 고통, 고난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육체적인 고통, 정신적인, 감정적인 고통, 영적인 고통,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아주 많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계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죄가 용서함을 받았고 우리의 고통이 우리의 아픔의 짐이 더 가벼워졌고, 그것이 없어질 수 있고, 우리가 주님 안에서 평강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채찍을 맞으신 것이 그냥 몸에 맞은 것, 그것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것으로 인해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몸과 영과 혼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전 인격이 나음을 입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굉장히 놀라운 사실입니다. 우리의 모든 인격이 치유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 각자는 각기 제 길로 가버린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계획대로 세우고 우리의 삶을 멋대로 조정해 가면서 주님이 십자가에 가심으로 인해서 우리가 주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 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계획이 우리에게 최고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획하신 길이 최선의 길(Best way)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갈 때 거기에만 온전한 성취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뜻 가운데 살아가지 않으면 진정한 충만함이 우리 안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길로 가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뿌리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자랄 수 있는 흙이 필요합니다. 흙이 없으면 뿌리는 자랄 수 없습니다. 또 흙에 심겨질 씨가 필요합니다.
잠언 18장 14절에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누가 일으키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심령이 상한 것, 그것이 바로 나쁜 뿌리들이 자랄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흙입니다.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긴다고 말씀합니다.
육체적으로 약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몸에 병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그 병으로 고통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목발을 짚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주 사랑하고, 육체적으로는 아주 좋지 않았지만 그렇지만 그 분은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의 심령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여기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상한 심령을 갖게 되면 누가 그것을 일으키겠느냐? 심령이 상하는 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것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하기 원하시는 멋있는 좋은 일들을 보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실망하고, 좌절하고 낙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한 심령을 갖게 되면 우리 삶에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자라기가 힘이 듭니다. 변하기가 힘이 듭니다. 성경 말씀에 우리는 변화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믿음에서 믿음으로 우리는 자라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정상적인 단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상한 심령을 갖게 되면 굉장히 힘들게 됩니다. 영광에서 영광이 아니고, 문제에서 문제로, 위기에서 위기로, 낙망에서 낙망으로, 실망에서 실망으로, 그것이 바로 우리가 상한 심령을 갖게 되면 그렇게 되는 결과입니다. 우리의 삶에 희망이 없어져 버립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지만,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지만 우리가 모임에 오지만 언제나 마음에 갈등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원하십니다. 우리의 상한 심령을 치료하기 원하십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1. 혼적인 질병의 기원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후로 인간의 영이 죄로 인하여 죽고, 영의 지배를 받는 혼도 질서를 잃고 질병에 걸리게 되었다. 아담과 하와가 죄에 대하여 책망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고백하는 대신에 다른 이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회피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뿐만 아니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스스로 수치를 극복하려는 자력종교인의 모습도 띠게 된다. 아담과 하와의 아들들로 태어난 가인과 아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부모의 죄로 인한 영향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를 기뻐하시자, 질투심으로 가인은 하나님께 반발하였고, 나아가서 자신의 혈육인 동생 아벨을 들판으로 불러내어 돌로 쳐서 죽이고 말았고, 그 죄를 책망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하는 대신에 뻔뻔스럽게 하나님께 대들었다. 아담과 하와의 마음속에 죄책을 회피하는 쓴 뿌리, 가인의 마음속에 동생에 대한 미움의 쓴 뿌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2. 혼적인 기능의 마비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자, 아담은 아내인 하와와의 관계에, 가인은 동생인 아벨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죄책감과 두려움에 시달리게 되었고, 시기심과 질투심, 미움, 불안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건강하지 못한 혼의 기능으로 인하여 인간은 심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처를 지니고 살게 되었고, 잠언 17:22절에서 “심령의 근심을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에 말씀하신 것처럼, 육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대신,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계획을 좇아 살게 되었으며, 이렇게 해서 신본주의 대신 인본주의가 지배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마귀의 뜻이나 생각을 좇아 살아가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바벨탑 사건은 인본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게 된 것이다. 인본주의와 사탄주의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성경적인 믿음, 영적인 믿음이 사라지고, 나아가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본주의적 믿음, 이신론, 무신론, 다신론, 범신론, 우상숭배, 사탄숭배 등이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3. 혼적인 질병과 관련되어 사용되는 용어
학자들에 따라서 상한 감정의 치유, 내적치유, 기억의 치유, 인격 장애의 치유, 상한 마음의 치유, 혼의 치유, 쓴뿌리 치유 등 다양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4. 혼적인 질병과 창조질서의 파괴
하나님이 세우신 원래의 질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인간의 영-혼-육-환경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불신자들은 영이 죽은 상태에 있음으로 해서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됨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여 혼이 육을 지배하고 환경을 지배하거나 오히려 환경과 육의 지배를 받는 상황도 생기게 되며, 나아가서 마귀의 지배를 받게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마음속의 우상이나 현실속의 우상들을 만들어내고, 우상들을 숭배하고 심지어 사탄을 숭배하게 되는 것이다.
5. 혼적인 질병인 쓴 뿌리
쓴 뿌리에 대한 언급이 성경에 나타난다. 신명기 29:18절에서는 “너희 중에 남자나 여자나 가족이나 지파나 오늘 그 마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서 그 모든 민족의 신들에게 가서 섬길까 염려하며 독초와 쑥의 뿌리가 너희 중에 생겨서”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자,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하여 에덴동산에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서 동산을 망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패역하게 되어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숭배 하는 자들을 따르게 되는 모습에 대해서 책망하시는 말씀이다.
히브리서 12:15-17절에서는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게 될 때 마음의 상처와 좋지 못한 기억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여 사람들의 삶속에 쓰고 독이 있는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경고의 말씀이다.
이렇게 해서 쓴 뿌리로 인하여 스스로 신앙의 길에서 떨어져 나와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게 되고, 에서와 같이 세속적이고 순간적인 이익에 눈이 멀어 하늘에서 내리는 축복을 무가치하게 여기고 변절하여 세상과 간음하는 자와 같이 된다는 것이다.
6. 타락한 세상과 삶의 과정에서 형성되는 쓴 뿌리들
사람은 태아기에 모태에 있을 때부터 모태의 영혼육의 상태나 모태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가정의 상황이나 사건이나 언어전달 등에 의해서도 많은 영향을 받고 자라게 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도 태교가 중요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적치유를 할 때 태아가 태중에 있는 상태를 기간별로 점검하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존 샌포드와 폴라 샌포드와 같은 내적치유와 축사사역의 전문가들 역시 이 사실을 분명히 확인하고 있고, 의학적으로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성장과정에서도 유아기와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를 거치면서 받게 된 상처를 통하여 내적인 쓴 뿌리가 형성이 되고 그것이 삶속에서 온갖 악하고 나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체벌의 경험이나 부모나 배우자나 가족이나 친척이나 애인이나 친구나 심지어 애완동물의 죽음에도 상처를 받게 된다. 교통사고나 천재지변이나 성폭행을 비롯한 폭력의 문제, 도박이나 술, 담배, 마약, 따돌림과 같은 일들을 통해서도 거절감정이나 소외, 고독, 중독현상 등의 쓴 뿌리가 생겨나서 삶을 고통스럽게 하며, 정서적으로나 사회생활에 있어서 문제가 생각게 함으로 단계별로 점검하는 가운데 내적인 상처와 쓴 뿌리를 치료받아야 하는 것이다.
쓴 뿌리로 인하여 가정적으로 부모의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비정상적인 가정, 즉 역기능가정에서 자람으로 인하여 내적인 상처와 쓴 뿌리가 배태되거나, 어린시절의 상처가 해결되지 않음으로 육체는 성장하였으나 정서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는 성인아이현상이 나타나, 자신뿐만 아니라 직장이나 모임이나 교회와 같은 공동체 생활을 할 때 장애나 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 당한 성폭행, 성희롱, 강간, 근친상간, 동성애, 애완동물 등의 문제로 인하여 이성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든지, 결혼 이후에 부모로서의 정상적인 역할이나 배우자로서의 정상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생기기고 한다.
또한 강도나 도둑맞음, 직장해고, 부도, 전쟁, 국가의 변란, 교통사고, 안전사고, 강제 이혼, 이사, 이민, 천재지변과 같은 일들을 통하여 스트레스나 상처를 입게 됨으로 해서 쓴 뿌리가 생겨나 삶의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7. 쓴뿌리의 치유방법
Michael Scanlan은 우리의 기억을 표면기억(Surface memories-의식속으로 불러낼 수 있는 기억)과 뿌리기억(root memories-무의식속에 깊이 파묻혀 있는 기억)로 구분하여 치료가 전문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한복음 14:26)라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근거하여 성령님께 태아 때부터 유아기, 유년기,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삶의 과정 속에서 알게 모르게 혼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쓴 뿌리와 상처들을 생각나게 해 달라고 가르쳐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단계별로 생각나게 하시거나 가르쳐주시거나 떠오르게 하신 상처와 쓴 뿌리나 좋지 못한 기억에 대해서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상처를 준 사건과 상처를 준 현장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상처에 대해서 토설하는 일을 행하여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상처를 주어 미움과 쓴 뿌리를 나게 한 이들을 무한히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용서하고 축복하며, 자신에게 있는 모든 쓴 뿌리와 잘못된 기억과 상처들을 예수님의 보혈을 적용하여 깨끗이 씻어내고,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상처와 쓴 뿌리를 끊어내고, 성령의 불로 태워달라고 요청하며, 성령의 기름을 발라 그 상처를 온전히 치유 받도록 한다.
제6장 관계
하나님은 참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삶 가운데 승리함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우리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과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히브리서 12:14,15에 보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했습니다.
14절은 기본적으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십자가를 생각해 봅니다. 십자가는 수직으로 되어있고, 수평으로 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에 하나의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많은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야말로 가장 강력한 능력 있는 메시지입니다.
그중에 한 가지 메시지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수직으로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길이 되셔서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십자가는 역시 수평으로 되어있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인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또한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화해할 수 있습니다. 치유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이런 종류의 좋은 관계를 할 수 없다면 15절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14절에 말하기를 우리는 정말 조심해야 되고 관계에 있어서 반드시 이대로 해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5절에 너희는 이러 이러함과 두려워하면서 돌아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슬프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프게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말하고 있는 것은, (이것은 제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쓴 뿌리가 나서 우리 삶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쓴 뿌리와 거절감의 뿌리는 서로 같이 연결되어 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치 쌍둥이 같이, 여기에 그런 뿌리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절에서도 만약에 우리가 제대로 된 올바른 관계를 따라가지 않는다면 잘못된 관계 속에 들어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음행하는 것도 할 수 있고, 삶에서 충실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15절을 중심으로 말씀드립니다. 우리 마음 안에 뿌리가 있다면 아무도 볼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 속에 이것은 심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멋있는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아주 꼭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 왔을 때는 너무너무 아름다워 깜짝 놀랐습니다. 굉장히 좋은 그림입니다. 여기 나무 그림이 있습니다. 나무뿌리가 있죠? 그렇지만 우리는 살아있는 뿌리는 볼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뿌리는 땅속에 있습니다. 비가 오고, 태양 빛이 빛치고, 뿌리는 땅속에 있는 영양분을 빨아들이고 계속해서 자라게 됩니다. 역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우리 안에 뿌리가 있으면 거절감의 뿌리, 쓴 뿌리, 어떤 뿌리이든지간에 뿌리들은 영양분을 먹고 자라게 됩니다. 어떤 영양분을 먹게 되죠? 그 뿌리는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먹고 자랍니다. 그것이 바로 뿌리들이 자라는 방법입니다.
뿌리들은 두 가지 방향으로 자랍니다.
첫 번째 뿌리는 땅속으로 자라서 더 많은 영양분을 빨아들이려고 밑으로 자랍니다. 땅위 표면으로 자라는 뿌리가 있습니다. 땅 속에 있는 세균들이나 벌레들을 보면서 자랍니다.
만약 우리 안에 뿌리가 있으면 그것이 바로 뿌리가 자라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밑으로, 밑으로 깊게 깊은 곳까지 자랍니다. 어쩌면 마음 가운데 둥그렇게 꽈배기를 틀듯이 자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꽉 눌러 짭니다.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줍니다. 우리를 마음을 점점 단단하고 굳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의 쓴 뿌리로 인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아픔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 밖으로 자라는 뿌리가 있습니다. 15절에 말씀하시기를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는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곤란을 준다는 것입니다. 위로 올라와서 첫 번째 문제는 관계의 문제입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과 관계에 문제를 줍니다. 만약 우리 안에 올라오는 뿌리가 있다면 정말 하나님과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하기가 너무나 힘이 듭니다. 모든 사람이 기도하면 우리도 똑같이 함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사생활 가운데서는 이런 뿌리가 안에 있으면 기도하려고 하는데 안 됩니다. 어쩌면 생각만 할지 모릅니다. 어떤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결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성경읽기입니다. 모임에 오면 쉽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어디에 펴야 할지 압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으려고 하면 이런 것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덮어버립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이야기하지도 못하고 아무런 말씀도 못 듣는다는 것입니다. 정말 힘든 일입니다. 하나님과 대화가 단절되는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내 안에 역사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뿌리들이 자기 속사람에서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영역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너무나 쉽게 다른 사람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져 가는 것입니다. 아주 나의 가까운 친구 사이에서도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도 그렇게 됩니다. 너무 쉽게 관계가 깨어져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삶 가운데서 그런 쓴 뿌리들이 다 제거되기를 원하십니다. 정말로 많은 뿌리들이 우리 관계들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만약 그 뿌리들을 땅속에 놔두면 언젠가는 이 뿌리가 위로 올라와서 자라서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 가운데 뿌리가 있다면 어느 날인가 그 뿌리가 우리 삶 밖으로 나올 것입니다.
뿌리가 나오는 통로들 - 부정적인 말들, 비판하는 말들, 수군수군 대고 남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것들, 바로 이것들이 뿌리가 나오는 통로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말들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손상을 줍니다.
만약 한 사람에게 쓴 뿌리가 있어서 그것이 입을 통해서 네 사람에게 나간다면 네 사람 다 밑으로 침체시켜 버립니다. 한 사람은 거절감에서 나온 뿌리로 말하고 다른 사람들을 죄의 그물에 걸리게 만듭니다. 그것이 바로 입에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뿌리를 제거할 수 있을까요? 만약 우리가 땅 속에서 뿌리를 뽑기를 원한다면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우리가 한 가지 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뿌리를 뽑기를 원하면서 위의 것들의 가지를 치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위를 잘라서 나무를 손상 입히게 됩니다. 정말 상처를 입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뿌리는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죠? 다시 자랍니다. 그렇게 위를 아무리 치는 것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해야 할 일은 두 가지 일입니다.
첫 번째는 힘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온유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바로 그 뿌리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 조심스럽게 그 나무를 뽑아 올릴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뿌리가 있는 밑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뿌리가 잘 빠져나올 수 있도록 흙을 파헤칩니다. 아주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어떤 뿌리가 잘라지지 않도록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뿌리가 부러지게 만든다면 그 속에 남아서 또 자라게 됩니다. 그래서 아주 부드럽게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먼저 그 뿌리를 흔들고 흙을 파헤쳐서 뿌리가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뿌리를 느슨하게 한 다음 모든 뿌리를 위로 끌어 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흙 들은 흔들어서 밑으로 떨어지게 하고, 뿌리는 다른 곳에 버립니다. 다시는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 있는 뿌리도 똑같이 합니다. 만약 우리 안에 뿌리가 있으면, 성령은 능력 있고 강하지만 또한 부드럽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 뿌리가 있는 깊은 곳으로 들어가시도록 초대합니다. 그 어린 아이가 있을 것 같은 우리 마음 깊은 곳으로 성령님을 초대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그 어린 아이를 끄집어 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이 어린 아이는 나가버려야 합니다.
우리 자신부터 그 뿌리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많은 종류의 뿌리가 있었습니다. 어떤 것들은 이것이 무슨 뿌리인지조차 모르는 것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뿌리를 제거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호세아 10:12에 보면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고 했습니다. 자 여기에 주의 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묵은 땅을 기경하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땅을 공개해서 그 땅을 기경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그 땅을 공개적으로 사람들이 이용하도록 공개해야 합니다. 농부가 가까이에 있는 땅을 발견하면 먼저 농부가 땅을 파헤칩니다. 아주 보기에 좋습니다. 그런데 산 밑에 있는 땅은 한 번도 갈아 본적이 없는 땅이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좋은 것만 보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뭔가를 할 수 있고, 보기 좋게 꾸밀 수도 있고, 사람들이 그런 것만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묵은 땅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공개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묵은 땅 거기에 뿌리가 심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묵은 땅, 숨겨져 있는 땅을 하나님 앞에 공개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로써 열어놓고, 그래서 그 뿌리들을 다 공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 묵은 땅 속으로 들어가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 뿌리들을 다 제거해 주십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첫 번째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보통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정말 안에서 무엇인가가 올라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눈에서 눈물이 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이것은 가끔가다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정말 그것이 뿌리가 나오면서 고통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삶 가운데 아픔이 많기 때문입니다. 너무 너무 아프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고통에 대해서 표현하고 싶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있는 아픔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아마도 기도할 때 그런 아픔을 느낄 것입니다. 만약 그런 아픔을 느끼시면 스스로 그 아픔을 삼키고 자꾸 밑으로 누르려고 하지 마세요. ‘나는 괜찮아’하면서 삼키지 마십시오. 성령께서 그것을 꺼내도록 허락하십니다. 성령께서 그것을 전부다 뽑아가 버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뿌리들은 영원토록 가버릴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몇 번밖에 못 보았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떤 사람은 무엇인가가 입에서 올라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간에 그것이 쓴 뿌리이든, 거절감이든지, 교만이든지, 어린아이가 안에 있는 것이든지, 모든 것이 다 나오게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도록 먼저 기도하여야 합니다. 보통 손을 가슴에 얹고 기도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만약 여러분 안에 뿌리가 없다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보 기도해 주십시오. 만약 뿌리가 있다면 기도하시면서 여러분이 기도하실 때 성령님께서 그 뿌리들이 아주 쉽게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바로 우리 삶 안에서 뽑혀 나올 수 있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뿌리가 나온다는 것을 확실히 믿게 됩니다.
굉장히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치유함을 받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래서 믿기는 이 뿌리가 쉽게 나오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이 아픔을 느끼시면 두려워하지 마시고, 그 아픔이 나오도록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해주세요. 우리가 그렇게 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쏟아놓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쏟아 부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계십시오. 이것은 너무 깊은 치유입니다. 뿌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삶을 치유해 주고 계십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뿌리가 나왔다는 것을 느낀다면 이제 하나님 앞에 찬양하고 감사하기 시작하십시오. 만약 여러분 중에 지금도 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고 느끼시는 분은 계속해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치유하시고 회복시키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정말 어떤 갈등과 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너무 너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고통과 아픔들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쓴 뿌리들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거절감 같은 것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계속해서 상처받아왔던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회복시키고,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쓴 뿌리들이 우리 삶 가운데 떠나간 후에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아나갈 수 있겠습니까?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첫 번째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는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 성경말씀은 무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베드로전서 2:1-5에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 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사람에게는 버린바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이 말씀을 볼 때 예수님께서 어떤 식으로 말씀을 하시는가를 보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만약에 첫째, 둘째라고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 순서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여기서 아주 분명히 첫째, 둘째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보통 2절 말씀은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에 보면 2절은 1절 말씀 다음에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1절 말씀에 이야기하기를 모든 나쁜 태도를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 가운데 이런 나쁜 열매를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들을지라도 자랄 수가 없습니다. 먼저는 나쁜 열매가 사라져버려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을 여러분 안에 많이 갖고 있는 것, 그것은 정말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성경에 대해 많이 배우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많은 성경지식이 결코 우리를 성숙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 사람들이 삶은 성숙하지 못합니다. 굉장히 안 좋은 일을 하고 쉽게 화를 내고 사람들과 죄악 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많은 성경지식이 우리를 성숙하게 하지 못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가 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반응할 때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게 할 때 그렇게 됩니다. 말씀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우리를 회복시키고 그렇게 합니다. 그게 바로 우리를 성숙하게 합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항상 1절이 2절 앞에 옵니다. 그 다음 3절에 주의 인자하심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4절 말씀을 주의 깊게 봅시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세가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에게 버림받은 바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에 의해 택하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는 보배로운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5절에 보면 “너희도"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에게 버림받았죠?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보배로운 분이십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버림받았죠? 거절한 사람들은 우리가 거절감을 받은 것조차 모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절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보배롭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사람에게 의해 버림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듯이 여러분도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보배롭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보배로운 것을 믿으세요? 아마도 평생 동안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당신은 보배로운 분이라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여러분은 보배롭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중 어떤 사람은 그렇게 말하기가 힘든 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정말로 보배롭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선택받았고 보배롭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를 보겠습니다. 2장 10절에 “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로 영어 번역으로는 한국말로, 중국말로 다른 많은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었는데 좀 잘못 번역되었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헬라어 원어에 보면 이것이 진짜 의미입니다.
‘Poiema'(포이에마) 이것이 어원이 되어 영어에서 poem 시(詩)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시'(詩)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번역하는 사람이 이 의미를 제대로 번역할 수 없었습니다. 헬라 원어에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詩)입니다.
여러분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시'(詩)입니다. 아주 여러분만의 독특한 ‘시'(詩)입니다. 아주 특별한 ‘시'(詩)입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은 시를 써 보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행복할 때 시를 쓰실 것입니다. 시는 여러분의 마음의 표현입니다. 여러분의 안에 있는 것들을 자기 자신이 표현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시'(詩)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시를 통해서 표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를 통해 표현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시'(詩)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Poiema'라는 것 중에는 창조된, 걸 작품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갤러리에 한 번 가보십시오. 비싼 미술품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걸 작품이고 그것이 포이에마입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창조하신 걸 작품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걸 작품이다."
처음부터 이야기한 것을 다시 말해 봅시다. “나는 하나님께 선택받았다." “나는 하나님께 보배로운 자다" “나는 하나님의 시이다." “나는 하나님의 걸 작품이다."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께 선택받았고 여러분은 보배롭고 하나님의 시이고 하나님의 걸 작품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다른 말을 많이 듣죠? 우리는 부정적이고 비난하는 말을 들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친절이 결핍된 말을 들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이것이 진리입니다.
만약 우리가 승리 가운데 살기를 원하신다면 첫 번째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 보시는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믿으세요. 한 가지 더, 제발 여러분에게 가까운 특별한 친구에게로 가지 마십시오. 친구에게 가서 이야기 하지 마시고, 여러분이 말하지 않았던 사람에게로 가서 그분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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