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고난
은혜와 고난
빌립보서 1:29-30
은혜와 고난은혜란 선물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 선물이 고난이라면 믿어지십니까? 이 고난을 ‘애매한 고난’이라고 합니다. 즉 억울함에서 오는 고난이라는 겁니다.
이는 곧 ‘믿음’이란 예수님의 억울함에 동참되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 것을 지키고 방어하려고 합니다.
모든 생물체의 본능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세계란 원래 그러합니다. 아무런 원인이나 이유도 없이 저절로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안에 ‘각자 나의 것’으로 무장하며 냉정하고 단호한 얼굴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해가 된다는 것을 단호히 배격하고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고 여기는 것에만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받아들입니다.
고난을 최소화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성도 안에 계시는 주님께서는 성도에게 이런 본능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점을 섭섭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신기하고 놀랍게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를 둘러싼 세상은 항상 ‘하나님 없음’의 증거를 부지런히 수집하는 것이 그들의 인생관 정립의 일환이기 때문입니다.
묻지도 따지지 않고 ‘하나님은 없다!’입니다. 이런 세상 사람들의 주장을 성도도 충분히 이해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도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기 전에는 그러했으니까요.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은 이러한 ‘하나님 없음’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성도에게 아무리 큰 고난과 힘든 일이 있더라도 ‘없는데서 있게 되는 구원’의 능력을 취소하거나 희석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각 개인의 특징’이나 자라온 성장과정하고는 상관없이 성도라면 누구나 그러합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이것은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의 한 몸의 특성을 성령을 통해서 공급받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로서 성도는 자연적인 신체적 성질 외에 다른 성질로 인하여 새로운 영적 환경 속에 공동적으로 놓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