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경영학 원론 요약 9-1(손병호 저)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7) 목회자의 자기관리론을 간단하게 요약하라.

목사도 사람이다. 그래서 목사역시 감정적인 존재이다. 그래서 자기관리에 관한 일가견이 있어야 한다.

 

1) 뿔 달린 양떼 - 민중신학적 차원에서 목사를 민중의 봉사자로 여기는 쪽에 교인들이 서있다. 그래서 목자를 비판하고, 성토하고, 갈아 치우고, 내쫒기도 하고, 고소를 하고, 타도코자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목회자는 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그들을 사랑하며 그들을 용서하며 그들을 교훈하지 않을 수 없다(p.167).

2) 용기있는 목회자 - 주님은 용기있는 지도자였다.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서 분명하게 이야기 하신 용기 있는 분이셨다. 사람들이 원하는 이야기, 타협에서 나온 이야기를 하신적이 없다. 주님은 편리와 실리에 의존하지 않으셨다. 용기있게 진리를 전할 뿐이었다. 목사는 자기가 믿는 것을 말하며 믿도록 말하는 것이다. 목사는 믿는 바를 주님처럼 용기 있게 방향을 제시하고 사랑하고 전하는 자를 말한다. 교인들에게 어떤 의무를 가르치기보다 주님처럼 용기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목사는 진리와 정의에 서 있어야 한다. 니고데모역시 용기 있는 자였고 교회사에 나타난 인물들, 즉 루터, 칼빈, 후스등 모두 용기 있는 자들이었다. 목회자는 용기 있는 지도자여야 한다. 그리고 교인들이 용기있는 사람들이 되게 목회를 해야 한다. 그 용기는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정가에서, 상가에서도 발휘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교인이 비굴할때 그것에는 주의 의가 확장 될 수 없다.

3) 신사도와 정도를 걷는 목회자 - 목회자는 정상인이어야 한다. 정상 비정상은 정신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정도란 바로 바른 정신 상태에서 좌로나 우로도 치우치지 않고 바른 목회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비록 재미가 없고 인기를 못 끌고 매력이 없는 것 같더라도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유연이 나약은 아니다. 힘만 능이 아니다. 강함만 이기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강해야 할때가 있고, 유연해야 할때가 있고, 힘을 써야 할때가 있다. 이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가능한것이다.

신사도에는 친절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후 6:6, 엡 2:7, 골 3: 12, 갈 5:22). 그리고 공손이 있어야 한다. 모세, 예수님 모두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데 유연함이 있었다. 이 유연함은 곧 배우고 수련하는데서 이루어진다.

4) 목회자의 관용과 용서 - 목회자가 목회를 하다가 보면 관용적이어야 한다. 이것이 목회의 성패를 좌우한다. 목사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번갈아가며 가르치고 선포한다. 공의와 사랑은 상반적일때가 많다. 속이 넓과 관용해야 한다.

5) 목회자와 진실성과 정직성 - 목회자는 정직하고 진실해야한다. 목회의 정도는 정직성과 진실성에 있다. 지도자의 기본 소양은 정직이다. 예수님은 모든것의 표준이다. 목회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궁극적인 진리라는 확신과 구체적인 실증을 들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은 회당에서나 성전에서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시고 진리를 말씀 하셨다. 진리는 친절과 사랑으로 옷을 입어야 한다.

6) 전통과 인습에서 떠난 자여야 한다 -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다. 목사는 전통과 인습에서 떠나야 한다. 율법에서 떠나 은혜와 복음으로 옛 종교에서 떠나 새 종교로, 유대 종교에서 기독교로의 전환과 개종과 변화를 바라신다. 주님의 목회는 유대 종교에서 과감히 떠나거나 벗어날 것을 말씀 하셨다.

목회자는 근본적인 데서 떠나 너무 지협적인 데 지체하면 안된다. 그러다가는 중요한 것을 다 놓친다. 생명을 위협하거나 진리를 짓밟으려는 전통은 그 무엇이든 깨뜨려져야 한다. 주님에게 있어서는 하나님 그다음에 사람이 우선이었다. 전통이 사람보다 우선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아셨다. 목회자는 무엇이 첫째이고 무엇이 다음인지를 분명히 알아야한다.

7) 목회자의 권위와 권세 - 권위란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상담없이 자기 스스로 행할 수 있는 힘 또는 권리를 말한다. 권위와 권세는 두가지 경위를 통해서 온다.

첫째는 직위의 권위나 권세이다. 그 다음은 인격적 권위나 권세이다.

조작, 범죄나 부끄러운 일이나 무지, 위협, 두려움은 권위가 아니다.

8) 목회자와 에고 - 에고라는 말은 헬라어의 1인칭 주격으로 ‘나’라는 말이다. 에고이즘은 이기주의, 자기주의, 아집을 말하며 자기밖에 모르는 자를 말한다. 목회자는 이 에고이즘에 대한 깊은 반성과 회의와 가책을 느낀다. 목사가 개성, 취미, 특기, 여가를 갖는 것을 부정하는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한편 목회보다 이런것들을 우선시 하는 것 역시 바람직 하지 못하다. 교회의 사회성 결여는 바로 에고, 에고이즘때문이다. 물질 사용에 있어서도 모든것이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사용해야만 한다.

9) 목회자의 의분과 화냄과 성냄과 분냄 - 의분은 나쁜것이 아니다. 예수님도 의분을 내셨다(요 2:15). 그러나 목회자가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분을 내어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은 마22:7 “임금이 노하여...”를 통해 화를 내도 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에베소서 4:26절의 ‘오르기젯쎄’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다니엘 윌러스는 “에베소서 4:26에서 바울은 필요한 상황에서는 화를 내야 하는 신자들의 도덕적 의무르 제시하고 있다. 그의 지시가 신자들 상호간에 서로-세상과 더불어서가 아니라-어떻게 행해야 하는가를 다루는 권면적 단락속에 있기 때문에 아마도 그는 교회의 징계에서 그 절정을 이루는(그러나 반드시 공식적으로 행해져야 할 필요없는)의로운 분노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이 의로운 분노는 하나님을 본받아야 하는 우리의 반응의 한부분이기 때문에, 그것은 ‘교화된 분노, 은혜로 말미암아 표백되어진 분노’임에 틀림없다. 하나님 자신께서 분노 속에 거하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분노가 하나님의 어두운면 - 그의 비상한 사역 - 이니만치, 분노가 신자의 특징이어서는 결코 안된다. 그러나 우리가 이 명령에 순종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대적이 우리 교회로 침투해 들어오는 길을 계속해서 잘 딱아 놓게 될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은 우리의 거룩한 분노를 억누름으로써 ‘불구 인간의 한 표본’으로 전락하게 될것이다”라고 함으로써 의분은 필요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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