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급진신학 운동과 신자유주의 신학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캅은 1977년 과정신학의 체계적 영육이론서인 “자연 속의 정신, 과학과 철학의 상호작용에 관한 소론”을 발간하였다.

이 책에서 캅은 인간의 영혼, 혹은 정신이 어떻게 신체와 구별되면서도, 유기적으로 존재하는지를 밝히려 애쓰고 있다.

캅의 이러한 유기적 이원론이 이후에 생명신학을 만들어 내는 데 공헌하게 된다. 1985년 생물학자 찰스 버치와 함께 책 "생명의 해방"을 공동 집필, 이 책에서 미시적 분자로 이루어진 생태계는 물론, 세포 단위의 유기체적 생태계, 그리고 인간들이 살아가는 범지구적 생태계 등이 한결같이 하나의 공동적인 생명의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런 과정신학의 생태학 이론은, 고전적 철학이 전제하는 기계론적 자연관이 낳은 많은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것의 대안으로서의 새로운 생명신학을 소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캅이 제시하는 새로운 생명신학은 단지 새로운 생태계 이론을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왜냐하면, 언제나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가도록 되어있는 인간은 단지 인간 이외에 자연세계에만 관심을 가지는데 그치지 않고, 다른 소외된 인간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캅은 생태학적인 입장에서 새로운 생물학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서, 그런 새로운 생명관이 정치경제적인 영역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책 후반부에서 새로운 정치경제학에 근거한 해방신학을 제시하고 있으며, 한마디로, 그는 오늘날의 이상적인 사회는 모든 인간이 다른 모든 인간을 경외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정의롭고도 지속 가능한” 사회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의롭고도 지속가능한 사회란 과도한 성장과 소비 위주의 정치경제학을 배격하고, 에너지와 소비재를 최소한도로 사용하면서, 모든 정치경제학적 문제를 생태학적인 관심 하에 해결해 나가려는 사회를 말한다.

캅의 입장은 정치경제학과 농업경제, 에너지 정책, 교통정책 등에 적용되어서, 제 1세계의 자본주의에 의해서 소외된 제 3세계 민중들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려 시도해 왔다. .

이처럼, 캅의 사상은 단지 형이상학적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매우 실용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왔다.

중요한 것은 캅이 90년대에 발표한 저서들은 평신도를 위한 저서로서, 과거의 문명, 즉 서구정신에 기초한 문명과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학문적-이론적 풍토가 먼저 개선되어야 하는데, 또한 이런 풍토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 내에 평신도들이 가지고 있는 관습적 사고가 변혁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콥은 화이트헤드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그의 “기독교 자연신학”에서 밝혔는데 화이트헤드는 또한 베르그송의 과정철학을 이어받았다. 베르그송의 과정개념과 창조적 진화개념은 헤겔의 절대개념이 점진적으로 완성, 실현되는 우주의 진화개념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헤겔은 우주가 동적(動的)이며, 항상 완성을 향하여 진행 중인 점에 착안하여, 실재(實在)는 정 반 합(正 反 合)의 변증법적 운동임을 밝혔다. 이러한 진행과 변화 속에서 절대적 개념이 실현되어 간다는 것이다.

콥은 헤겔, 베르그송, 화이트헤드의 과정 사상을 신학적으로 적용시키려 하였다. 그는 특히 화이트헤드의 과정사상 위에 기독교 자연신학을 확립하려 하였다. “과정신학”(Process Theology) 저술에서, 과정신학은 철학적 신학임을 밝히고, 과정신학에서 신의 개념은 전통적 개념과 다르다는 5가지 점을 경고하였다.

-1 하나님을 우주적 도덕주의자(cosmic moralist)로 볼 수 없다.

-2 하나님을 불변하고 무정한 절대자로 볼 수 없다.

-3 하나님을 현상 유지(Status Quo)의 지지자로 볼 수 없다.

-4 하나님을 주권자의 능력으로 볼 수 없다.

-5 하나님을 남성으로 볼 수 없다.

과정신학은 이상의 다섯 가지 잘못된 전통적인 신 개념에 반하여, 신 개념에 있어서 보다 부드럽고 자유스런 유신론을 주장한다. 전통적인 고정적 신 관념이 아니라, 응답적 사랑으로서의 하나님과 창조적 사랑으로서의 하나님을 말한다.

과정신학은 범신론의 약점을 회피하면서, 성서적 유신론과 달리 하나님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 역사를 밀접하게 연관시킨다. 신의 창조설과 예정설을 부인한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으며, 신의 발전과정(becoming)을 주장한다. 그들은 삼위일체론을 부인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이상적인 한 인간에 불과하며, 신의 사역과 인간의 행동 간에 구별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을 진화적 계속성과 과학적 단일성으로 대치하였다.

성서의 계시는 인간의 경험과 철학적 추리에 계시적 권위를 빼앗기고 말았다. 자연과 초자연의 구별은 과학이전 시대의 유물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초자연적인 이적도 있을 수 없고 죽은 자의 부활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트숀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과정 자체이며 이루어져 가는 가능성이라는 것이다. 그는 제 3의 유신론을 제기했는데, 지금까지의 유신론과 무신론은 극단성의 모순을 범하여 왔으므로, 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3. 급진신학 비판 

     급진신학에 속한 신학사상들은 그 배경과 양상이 서로 다르고 강조점과 특색이 서로 다른 가운데 공통점이 있다.

a) 현세주의적이다.

     급진주의 신학자들은 전통적 교회들이 사회적 관심이 부족하다며 매우 비판적이다. 기독교의 강령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것을 가르친다. 복음은 양면성을 띠고 있는데, 우리는 복음의 불변성과 현실성을 함께 믿어야 한다.

복음의 수직성과 불변성을 외면한 채, 평면성과 현실성을 추구할 때 그것은 이미 복음이 아니다. 급진신학자들은 하나님 없는 “성인탑”의 정상에서 종교없는 기독교의 횃불을 밝히며 세속화 시대를 구가하려 한다. 복음에서 내세의 축복과 사죄의 메시지를 배제시키고, 대인 간의 화해의 액션만을 강조한다.

b) 합리주의적이다.

     신앙보다 이성을 앞세우는 점에서 종교개혁의 전통 대신에 르네상스 인본주의 정신을 우선시한다. 성인세계의 관념은 본회퍼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르네상스의 주제가였으며, 계몽시대의 중심 사상인 것이다.

칸트의 자율주의 사상이 계몽주의의 개화를 초래하였는데, 계시의 빛을 거절한 채, 합리주의의 그늘에서 급진신학이 대두한 것이다. 신학에는 반드시 성경의 전제가 선행되어야 하며, 거기에 대한 신앙 다음에 오는 이성을 통한 사색은 계시에 의존하는 사색이어야 할 것이다.

c) 경험주의적이다.

     급진 신학은 역사적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관을 경험적인 기독론으로 축소시켰다. 이웃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강조하면서, 그 사랑의 주체인 그리스도의 주체성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d) 낙관주의 신학

     틸리히의 진화적 비전에는 죄악의 뿌리가 경시되고 있다. 과학적 발달에서 오는 인간 가능성의 과신(過信)이 죄로 말미암는 인간의 근본적 문제점을 외면케 하고 있다.

급진신학의 결정적 약점은 죄의 문제를 지나치게 가볍게 취급한 데 있다. 창조계의 조화와 완성은 죄에 대한 심판 다음에 올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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