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어느 날의 글 [교 인 들 ]

지난 어느 날의 글 [교 인 들 ]


교 인 들

2009-07-14 08:49:24  이름 : 이근호
 

교인이란 교회를 다니는 인간을 뜻한다. 그래서 교인들은 사는 모습은 인간이 사는 모습과 동일하다. 단지 교회라는 이름의 세상 속에서 그 행세를 또다시 반복하는 기회를 갖는다는 차이뿐이다. 인간이란 주변의 환경에 따라 자기 본질에 더욱 가깝게 변신해가는 경향을 띤다.

젊은 시절의 눈에 들어오는 세상은 온통 신비로움으로 둘러싸여 있다. 산 너머 또 산이 중첩되어 있듯이 자기가 사는 마을의 골목이 끝나는 거리에만 나가도 또 하나의 신비세계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두려움과 더불어 끌어당기는 마력의 손짓을 또한 잊을 수 없다. 세상은 넓고 그 넓은 세상은 모두 내가 밟을 수 있는 진보의 공간이었다. 보이는 것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융화되어 나름대로 꿈의 세계를 영글어내면서 살게 된다. 이것이 신화의 세계이다. 그러나 자기만의 신화는 법과 조직의 폭력에 눌려 계속해서 추억거리로만 누적된다. 어디를 가도 거기에는 규제하는 법이 버티고 있었다. 일체의 꿈과 신화와 상상의 사고는 압수당한다.

조직에 복종하고 질서에 따를 때만 살아남을 수 있다. 현존의 질서는 어릴 때의 아버지를 대신한다. 말을 듣지 아니하면 어린애처럼 간주해서 좁은 공간에 가두어 버린다. 감옥소란 죄수들은 어린애 같이 취급하자는 취지에서 등장했다. 질서의 세계를 제대로 파악 못하고 아직도 신화의 세계 속에서 자기 자유만 꿈꾸기에 현실을 알게 하는 강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질서의 세계를 현실의 세계로 읽을 줄 아는 교육을 시키는 곳이다. 흔히 이것을 '벌받는다'고 표현한다. 나쁜 인간이라는 뜻이다. 왜 나쁜가? 질서의 세계를 모르고 자기 것만 알고 자기를 꺾을 줄 모르니 나쁘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긍정적인 자아상을 스스로 포기해야 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자기가 무너지는 것과 동시에 세상도 좋아 보이지 않게 된다. 긍정적 세계관에서 부정적 세계관으로 변모된다. 나를 반겨 주지 않고 존중해 주지 않고 무시하는 세상이기에 세상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된다. 어디를 가나 내면적으로 세상과 다툴 각오를 한다. 비록 극히 왜소해지기는 했지만 그나마 남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반항심을 버리지 않는다. 점점 자기 지향적인 성품이 된다. 이나마도 자기 지켜 냄이 없다면 자기는 있어도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생활 태도가 반복된다. 지루하고 지루한 힘 겨루기가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결국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이 된다.

가정에서 태어나 일단 세상으로 뛰쳐나가 봤지만 거기는 꿈꾸어 왔던 세계도 아니요 끝없이 희망을 던져 주는 곳도 아니었다. 그저 자기밖에 모르는 군상들의 집합이었다. 조직과 질서, 윤리와 도덕, 관행과 관습이 신의 얼굴처럼 작용하고 있기에 그나마도 작은 자존심을 건질 수가 있었다고 고백해 본다. 늙은이들은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 세상이라는 것은 세상 안에도,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들은 자기를 잡아당기는 죽음과 싸운다. "죽을 때 죽더라도 자존심을 간직한 채 죽자!"라는 각오로 산다. "죽음이 나를 불러도 나는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았노라!"라는 마지막 반항심을 유일한 훈장처럼 달고 죽으려고 한다.

곧 없어져 버리는 자신의 존재와 아직도 남아 있는 자기의 존재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끝까지 죽음을 곱게 인정하지 않고 거북스러운 것으로 외면하려는 그 속성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비록 세상 질서에는 고개 숙였지만 자신을 죽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 끝까지 굴복하지 않겠다는 반발심만은 왜 포기하지 못하는가? 세상 질서에 반항하는 것이 '나쁜 자'라는 판정을 받거늘 하물며 영원한 신과 그의 나라에 반발하는 엄청난 죄악의 심각함은 왜 현실 그 자체로 못 받아들이겠다는 것인가? 이 고집이 인간의 원래 얼굴이다. 인간은 자기만 사랑하는 존재로 탄생했다가 그 속성만을 드러내면서 죽어 간다.중간에 일어나는 각종 선하고 착한 모습은 환경이 제공하는 이상과 희망을 건지기 위해 자신을 잠시 양보한 경우에 불과하다.

구약 시내산 위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뜻을 전달해 오셨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 20:3) 혹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 "(출 20:4 전반부)이다. 인간은 자신이 최우선 과제이며 중심점이다. 그런데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그러지 말라고 하신다. "너를 위하여"를 용납 못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땅에 오셔서 다음과 같이 분명히 자신의 뜻을 되풀이하셨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 14:26) 여기서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 12:25)라고 하셨다.

자기만을 염두에 두고 태어난 존재가 어떻게 자기를 미워할 수가 있는가. 자기를 미워하려면 자기를 미워하는 어떤 더 높은 차원의 안목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그 높은 안목을 구태여 가지려고 할 이유가 없지 아니한가? 결국 인간은 자신과 모르고, 타인도 모르고, 세상도 모르고, 세월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고 서서히 해체, 분해해 가는 진흙 뭉치에 지나지 않는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시 90:3)

그러면 교인의 처지는 어떠한가? 다른가? 교회라는 이름의 세상 속이라는 점 이외에 그 안에서 생기는 상황은 똑같다.

우선 교인들의 신화는 보다 치밀한 종교적 용어와 지식으로 채워져 있다. 더욱 희한한 일은, 그 용어들과 지식들을 잘 조립하면 하늘의 신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땅에서 인간들에 의해 조작한 질서대로 하늘의 질서가 어쩔 수 없이 따라와 준다는 것이다. 주간 내에 특정 날에 의미를 두고 모이면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제공하고, 수입의 10%를 자기가 다니는 교회 단체에 기부하면 배 이상으로 보상해 주고, 정해진 기간 동안 밥 굶어 가며 기도하면 하늘의 문도 트인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다 하나님이 약속한 언약이기에 하나님도 자기 언약을 지키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것이다. 즉 자기 마음대로 신을 부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신화가 마냥 신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쉽게 정치적 권력 단체로 구체화된다. 신화의 세계가 현실화되어 소유 가능한 것이 되었다고 좋아하는 것이다. 이런 정신 상태 속에는 하나님의 율법은 자신들이 지킬 수 있다는 희망이 담겨 있다. 즉 자신들이 지킬 수 있기에 내려 준 하늘의 법이지 만약 지킬 수 없는 법이라는 무엇 때문에 모세를 통해서 내려 줄 필요가 있겠느냐는 인식을 펼친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거부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19-20)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입이 하나님에 의해서 막힌 줄로 모른다.

계속 입이 터져 있다. 터진 입으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옛날 구약 신자들이 죄와 능력 부족해서 율법을 성취하지 못했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자신들의 믿음과 충성과 성령의 도움으로 율법을 달성해 낼 수 있고 따라서 그 율법이 약속한 복도 더불어 따낼 수 있습니다."라고 말이다. 이들은 율법이 말하는 죄가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데 있음을 알지 못한다. 이들은 계속 자신을 스스로 지키려고 한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미워하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고수하고 사랑한다. 자기가 자기를 살려내기 위해 예수를 선택한다. 성령님께 간구한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에게 성부, 성자, 성령은 어디까지나 자기 구원을 위한 성부, 성자, 성령이다.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구호는 버릇에 불과하다.

근본 바탕에는 "나를 위한 하나님 영광"의식이 깔려 있다. 바로 이런 자들이 일치 단결하여 예수님을 죽였다.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요 12:39-41) 모든 성경 말씀은 오직 주의 영광에만 초점이 모아져 있다. 그러나 자기 영광이 근본인 자는 도저히 주의 영광을 대신 세울 수 없다. 왜냐하면 영광의 최후 자리는 오직 한 자리만 이어야 영광스럽기 때문이다. 자기 미움이 안되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논할 자격조차 없다.물론 거짓 예수를 만들어 믿는다. 인간의 영광에 따라 놀아나는 거짓 예수를….

이 거짓 예수의 신봉자들의 아이디어에서 만든 것이 정치판으로서의 교회이다. 천국이라는 신화의 현실화라고 짐작했던 교인들은 이렇게 세상 정치판으로 움직여지는 조직 사회를 보고 솔직히 실망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래나 저래는 피할 곳은 없다고 여긴다. 이런 교회라도 아예 안 다니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고 여긴다. 즉 교회는 다녀서 계속 교인이 되어 있어야지 만 구원의 가능성에 다소 유리하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기껏 반발심으로 발동으로 나름대로 실속 챙기는 몸짓이라는 것이 겨우, 진짜 소중한 것은 내 자신과 내 가족뿐이라는 다짐 같은 것이다. 자기와 자신의 가족을 위하지 않고 자존심을 긁는 일이 일어나면 정말 용단을 내려 다른 교회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니고 천국을 간절히 사모해도 결국 자기만의 세계로 되돌아 와 버리는 것이 교인이 운명이다. '자기 미움'의 속성은 끝까지 보여주지 못한다. 교회에서 장례식 치러 줄 때에도 망자의 마음은 여전하다. 인간은 교인이 되어도 동일한 것이다. 종교를 기독교로 선택한 것이 구원에 전혀 도움되지 않았던 것이다. 착실한 교회 출석과 봉사와 질서 순종이 자기 구원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여전히 그는 교인이라는 이름을 추가적으로만 달고 다니는 세상인 이었던 것이다. 하나님도 모르고, 주님도 모르고, 세상도 모르고, 타인도 모르고, 자신도 모르는 채 지옥으로 그냥 자연스럽게 합류되는 그런 교인이다.

천국을 찾아간다고 교회로 빠지고 교회를 고수하다가 결국 자기만을 위한 교인으로 전락한 것이 교인들의 실상이다.



결 론

교인이 되면 안 된다. 교인이 되면 죽는다. 그저 교인 된 채 멸망할 뿐이다. '무교회주의'를 표방한다는 모인 교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어쨌든 '우리 단체', '내 단체'의 정당성을 부각시키고 미워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교인이 천국 가는 경우는 전무(全無)하다. 교인을 구원하는 예수님이나 천국은 없다. 따라서 교인이 되면 안 된다. 비(非)교인이 되어서도 안된다. 아예 '교인'이라는 단어조차 의미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하늘나라는 신자만 찾지 교인을 돌아보지도 않는다.

신자는 교인과 무관한 개념이다. 신자에게는 '교회 소유 개념'이 없다. 도리어 이런 현상을 싫어하고 미워한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영광을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자기를 미워하는 자가 자기를 옹호하는 단체를 긍정할 리가 있겠는가! 신자는 항상 어떤 식으로든지 교회에 둘러싸이게 되는데 늘 부정해야 될 대상으로서의 교회일 따름이다. 주님은 이런 증인을 통해 자신을 증거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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