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남자인가?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하나님은 남자인가?

 

이제부터 하나님에 대해 그야말로 솔직히 이야기해 보자. 예수 바로 믿기는 하나님을 바로 아는 데서부터 출발할 뿐만 아니라 바로 아는 것이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신관과 관련해 최근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신이 남성인가 여성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 논쟁을 제기하는 측의 주장은 하나님이 성경에서 남녀평등을 이야기했지 남녀 차별을 이야기한 적이 없음에도 지금까지 기독교가 하나님을 남성으로 가르쳐 왔고 신이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측을 이단시해 왔다는 것이다. 여성의 지위가 남성의 부속물쯤으로 여겨졌던 때는 신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아니면 반드시 남성으로 가르쳐지던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 여자의 신분이 남자와 동등하게 되었으니 지금까지의 오류를 정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신을 남성이라고 명시적인 교리로 주장한 적은 없지만 신이 여성이라고 할 때는 이단시해 온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이유가 남성 우월 사상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신의 성별 여부와 무관한 문제다. 신은 분명히 남성이 맞는데 여성으로 주장하니 이단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신의 성을 따질 만큼 신을 피조물인 인간과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신은 성으로 따져서는 안 된다. 신이 남성인가 여성인가를 논하는 것 자체가 헛된 것이다. 신의 품성을 이해할 때에 남성적인 측면도 있고 여성적인 측면도 있지만 신이 성(ao)의 한 쪽을 소유하지 않는다. 절대적인 하나님이라 어쩔 수 없이 남녀 양성을 구유(Iyeo)하고 있다고 주장해서도 안 된다. 신은 성을 초월한 존재다.

하나님은 절대적이다. 절대적이라는 본성상 신이 한 쪽에 치우쳐서는 안 되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 중 한 쪽을 택할 수 없고 양성을 구유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절대적'이라는 개념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절대적인 것이 무한히 큰 것도 되고 동시에 무한히 작을 수밖에 없다는 상호 모순되는 개념이 양극에서 조화롭게 만난다는 것은 절대가 될 수 없다. 절대란 어떤 질·양의 극한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질·양의 완전함, 그래서 어떠한 상황과 조건하에서도 그 완전함이 털끝만큼도 영향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절대의 개념이다. 최대와 최소의 극한치가 서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수학이나, 상대성 원리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신의 개념에서는 배제되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질적·양적으로 무한히 클 수도 적을 수도 있다면 전지전능이란 속성이 생길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신 분이라고 표현할 때에 하나님의 지식과 능력의 수치가 양(+)의 극한치와 음(-)의 극한치를 동시에 포함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완전히 동양의 이원론적 음양 사상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동시에 무한한 천재이면서 무한한 바보일 수 있을까?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는 것은 절대적 진리로서 하나님의 지식과 능력에 있어서 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 완전하기 위해선 당연히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야 된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질적·양적 절대치라는 것은 어떤 일정 수치로 표현되는 극한치가 아니라 무한대적 수치 자체도 초월하는 완전치(eCiio·)이다. 수리적으로 따질 수 있는 범위 내의 극한치와는 다르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기에 전지전능하신 것이지 전지전능해서 완전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을 구태여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으로 규정한다 해도, 정(ia) 쪽의 극한치이지 부(Y¶) 쪽의 극한치도 될 수 있다는 법은 없다. 모순되어 보이는 두 견해가 서로 용납될 수 있다고 하면 그것은 완전이 아니라 이미 타협이다. 그래서 '도도주의'가 되면 그 용어 자체가 의미하듯이 상대적인 것을 의미하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도도주의가 용납되면 벌써 그것만으로도 신이 아니다. 신은 남성도 되고 여성도 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과는 무관한 존재이며 그 자체로 완전한 절대자이다.

따라서 신에게는 양자택일의 개념이나 이항대립이 성립되지 않을 뿐더러 양극의 조화도 적용되지 않는다. 오직 완전한 절대자일 뿐이다. 남성도 되고 여성도 되고 식의 '도도주의'야말로 동양적인 사고에 바탕을 둔 상대주의이다. 남성도 되고 여성도 되고라는 말이 일견 맞는 말인 것같이 보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남성도 되었다가 다른 경우에는 여성도 될 수도 있다'는 개념이 그 속에 내포되어 있으므로 절대자가 되지 못한다. 절대적인 개념을 단지 한 가지로 제한된 극단적이고도 배타적 개념으로 해석하니까 마치 상대적인 것이 더 맞고 옳은 것처럼 주장하지만, 신에 한해서는 절대가 배타적인 한 극단의 의미가 아니라 어떠한 경우에나 완전한 존재라는 의미에서의 절대적 개념이다. 양극을 다 포함하는 '도도주의'가 되면 완전이라는 개념이 성립될 수 없다. 최하(oIu≫)의 부(Y¶)의 개념과 최상(oIß¾)의 정(ia)의 개념이 동시에 성립되는 완전이란 없다. '도도주의'는 오직 불완전하고 상대적인 인간에게만 적용될 뿐이다.

상대적인 '도도주의'를 신에도 인정하면, 그 신의 개념이 어디까지 가버리는가 하면 이 세상을 최악의 상태로 만들 수도 있는 신이 되어 버린다. 최고로 흉포하고 더러운 죄악의 현장에도, 극심한 대립과 전쟁의 와중에도, 가장 추잡한 성적 문란의 관계에도 소극적으로는 그 배경에 신이 존재하고 있고 적극적으로는 그 현상을 산출해낸 자가 신이 되어버린다. 완전과 거리가 먼 것이다. 신이란 완전한 절대자이지 단순하게 무조건 어느 쪽도 다 수용할 수 있는 무한한 존재는 아니다.

절대적 존재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세상에서 유일무이(eæieUii£)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진리는 세상 어떤 것으로라도 영향받지 않는다. 지구가 돌 수도 있고 안 돌 수도 있다든지, 지구 쪽에서 보면 태양이 도니까 지구는 멈춰 있고 태양이 돈다고 우기는 것은 어디까지나 수사학적 표현, 혹은 보는 사람의 관점의 문제이지 엄연한 객관적 진실과는 다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도 보는 사람에 따라 남성적 측면이 있다든지, 여성적 품성도 발견된다든지 해서 그분의 속성을 좀더 잘 이해해보자고 하는 연구 내지 접근책으로서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이 남성인가, 여성인가 하는 문제는 인간의 연구 내지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절대자가 유일무이하다는 점에서 그 이름은 하나님(모든 속성에서 완전하신 오직 한 분)이 되어야지, 하느님(하늘에 있는 무한히 능력이 크신 분)으로는 부족하다. 하나님이 남성이 되든지, 여성이 되면 이미 세상에 하나가 있는 분이 아니게 된다. 남녀 성을 초월하는 분만이 오직 하나일 수 있고, 절대이며 영원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을 성경에서 너무나도 정확하게 표현한 부분이 있다. 모세가 시내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임재 하신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이름을 물어 본 적이 있는데, 이때 하나님은 당신의 입으로 자신의 이름을 직접 말해주었다.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도 간혹 여호와의 사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계시해 준 적이 있지만 그 이름들은 하나님의 한 속성만을 강조해 표현한 것들이다. 그래서 그 이름들은 단어 표기에 남녀 성을 명시적으로 나타낸 것이 아닐지라도, 그 이름의 의미에 함유되어진 하나님의 속성을 해석하다 보면 성적으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져 해석되어질 소지가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직접 들려 준 야훼 하나님의 이름은 다르다. 유대인들이 감히 인간의 입으로 부를 수 없었던 바로 그 이름이다.

우리말 번역으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라고 되어 있어 문장 구조상 하나님의 이름 자체가 마치 "스스로 있는 자"처럼 되어 버리는데, 원문으로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매우 심오한 의미가 있다. 히브리어로는 이 문장의 구조는 특이하다. 영어 문법적으로 따지면 주어와 Be 동사뿐이다. 영어 문장은 잘 아는 대로 5가지 형식적 구조를 갖고 있고 문장이 되려면 최소한 이 중에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이는 영어뿐 아니라 어느 나라의 언어라도 공통적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에 가장 간단한 형태가 [S주어+V동사+C보어]로 중학교 1학년 들어가 제일 먼저 배우는 'I am a boy.'가 그것이다. 주어를 보어가 수식하는 형태로 주어와 보어는 동격이 되며 주어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내용은 무엇이든 보어의 위치에 올 수 있다. 예를 들어 student, Korean, Chulsoo(이름), tall, young¡|, 무엇이든 좋다. 만약 'Chulsoo is an American girl.'라고 하면 주어 '철수' 와 이를 설명하는 보어의 내용이 불일치하므로 틀린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히브리 원문에 'I am'이라고 한 것은 영어로 치면 모세가 하나님에게 'What is your name?'이라고 물었고, 그 대답은 문법적으로 따진다면 'My name is Jehova' (혹은 Ellohim, Immanuel, God 등)로 대답해야 함에도 하나님은 'I am'으로 대답한 꼴이다.

이 대답에는 참으로 깊은 의미가 많이 내포되어 있다. 우리말로 치면 말 그대로 '내다', 혹은 '내라니까'와 같은 어감이다. 이름을 물었는데도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말이다. 첫째로 이름이 없다는 말이다. 이름이 있게 되면, 벌써 그 이름이 가지는 이미지·의미·상징성·대표성·뉘앙스 등으로 하나님의 품성이 제한받을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내다'라고 모세에게 가르쳐 주시면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같은 포괄적인 의미이든, 치료하시는 하나님처럼 제한적인 의미이든 인간으로부터 자신의 특성을 어떠한 형태로도 제한받는 것을 하나님 스스로 미리 막으신 것이다.

구약성경에 여러 가지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지만, 그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별칭과 같은 성격이지 하나님 당신의 이름은 아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우리가 가진 언어로는 단 한마디로 다 표현할 수 없으니까, 그 속성 중의 하나 혹은 여럿을 특별히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의 사자가 가르쳐주었거나 인간의 영적 체험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어떤 사람이 아주 다재다능하면서 개성이 강하고 유머와 재치가 넘치며 컴퓨터도 도사이고 여자에게도 인기 만점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본명은 '김철수'라도 별명은 '만물박사·괴짜·개그맨·천재·IT도사·카사노바' 등으로 불리우는 것과 같다. 그 별명만 들어도 김철수라는 사람의 특성을 일부 짐작할 수 있고, 또 그 본명 '김철수'라는 이름만 들어도 별명을 제대로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친한 친구라면, 그 여러 가지 이미지가 자동으로 떠오르게 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본명은 모세에게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 그 이름이지만, 그 이름만으로는 하나님의 속성을 제대로 알 수 없으므로 여러 별칭을 성경의 여러 상황 속에 계시하셨다. 신자가 성경을 숙지하고 실제 삶에서 각 별칭의 품성이 뜻하는 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체적으로 체험하면, 나중에는 하나님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그 품성들이 전부 자동적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런 뜻에서라도 문서설에서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이름이 각각 달라 성경의 사실성을 못 믿겠다는 주장은 억지일 뿐이다.

둘째, 인간의 어떠한 극상치의 아름답고 고귀한 표현일지라도 하나님은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다. 'I am a boy.'에서 'I'와 'boy'는 동일한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 'I am' 다음에 인간이 익히 알고 있는 사물·사건·형상·상징 등 그 어떤 것도 보어로 올 수 없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어떤 존재와도 동일시되거나 비록 상징적인 의미로도 폄하될 수는 없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으로 이 세상과는 초월된 존재이지 이 세상 안의 존재가 아니다. 피조물이 아니며, 물질이 아니며, 가시적인 것이 아니며, 한시적인 것이 아니다. 그래서 단지 'I am(내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이것 외는 알 수 없고 알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말의 '하나님'이란 이름은 참으로 독특하면서 그 자체로도 은혜가 된다. 아마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현존하는 언어 중에선 가장 좋은 이름인 것 같다. 하나님- 세상에 유일무이한 분이라는 뜻이다. 그 어느 것으로도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I am'의 본질적인 의미에 가장 근접한 이름이다. '하느님'만 되어도 벌써 하늘에만 있는 영적 존재 중 좀 고귀한 분으로 의미가 제한되어 버린다. 하나님은 하늘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다. 영어로는 'God, Lord'이지만 이는 '신들·성주·주군·주인'들과 그 의미가 겹친다. 그래서 신을 표기할 때는 대문자로 적지만 이 또한 자칫 신들 중에 가장 힘이 센 신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일본말도 그렇다. 발음상 가미사마(aeaÆ)로 '신님' 정도의 의미인데 벌써 가미는 종이·머리카락 등 여러 뜻과 중복이 된다. 우리말에는 하나님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낱말이 하나도 없다. 어떤 것으로도 그 뉘앙스가 오버랩되지 않는다. '하나님'이란 이름만으로도 그 의미를 깊이 새겨볼 줄 알아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로는 지금 논쟁이 되고 있는 하나님의 성에 대한 시비를 종결지을 수 있는 이름이다. 하나님 스스로 본인의 이름을 밝히신 출애굽기 본문에서 '나(I)'라는 주어를 사용했기에 성의 구분을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자신이 성적으로 구분되어 한쪽 성으로 제한받으시는 것조차 막으셨다. 남성 신이냐 여성 신이냐를 따지는 인간의 부질없는 논쟁 자체를 그 근원부터 차단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남과 여, 암컷과 수컷으로 나뉘는 성을 누가 만들었는가? 하나님 당신이 만드셨다. 하나님은 성이 구분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셨고 하나님이 계신 후에 성이 나누어졌다. 양성을 만들었다고 해서 하나님 당신이 양성을 구유한 것이 아니라 성과 관계없이 성을 초월한 존재다. 성 자체를 만드신 분이라 성과는 관계없다.

자동차의 왕 포드가 승용차와 화물차 두 종류를 다 만들었지만, 승용차 제조업자 혹은 화물차 제조업자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동차 제조업자일 뿐이다. 또 승용차와 화물차 중에 어느 것을 더 좋아했는가 식의 질문도 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는 둘 다 사랑했다. 열 손가락을 깨물어 아프지 않는 손가락이 없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하물며 만물을 만드시고 그 만물에 성을 부여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남성인가 여성인가, 혹은 어느 성에 편향적인가 따지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성경에 나오는 이름의 어원과 성과 그 사용빈도수 등을 분석해서 하나님의 성을 따져 보자는 자체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겠다는 또 하나의 예일 따름이다.

물론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여성적인 측면이 많은 속성과 남성적인 측면이 많은 속성으로는 구분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공의의 하나님과 사랑의 하나님이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우리 인간이 인식하고 표현하는 한도 내에서 이해되어져야만 하지 그 자체가 성을 나눌 수 있는 기준은 아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라는 속성을 이해하기 위해 공의는 부성애적인 징계와, 사랑은 모성애적 사랑에 비교해보면 알기 쉽다는 것이지 하나님의 남성적인 속성이 공의이고, 여성적인 속성이 사랑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하나님의 100% 완전한 하나님다우심은 공의나 사랑이나 각 속성에 아무 차등 없이 충분하고도 완전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남성적인 면을 기대한다든지, 여성적인 면에 의지한다든지, 또는 남성적 속성과 여성적 속성 중에서 하나를 고른다든지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될 뿐 아니라 부질없는 짓이다.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일 뿐이다.

지금껏 서양의 기독교적 문화와 사회 통념상 또는 기독교 메커니즘이 교리를 해석하고 적용함에 있어, 하나님을 남성 편중적으로 이해되게끔 한 잘못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일반 대중에게 좀더 쉽게 잘 이해시키기 위해 가부장 우선적인 사회 통념에 맞추어 설명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 하나님 당신의 성이 남성이라고 전한 것은 아니다. 근래 와서 하나님을 여성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 까닭도 따지고 보면, 이제는 여성이 갖는 장점·특징·역할·특유의 감성 등을 동원해, 하나님을 좀더 폭 넓게 이해하고 더 쉽게 접근하자는 노력의 일환이지 않는가?

그럼에도 지금까지 남성 일방적 신관은 잘못되었으니 이제 여성적 신관이 더 낫다든지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노력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지금껏 남성적으로 오도했다고 지적했던 동일한 잘못을 역으로 저지르자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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