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아 ] 평

영화 [노아 ] 평

[ 노아 ] 영화평



(줄거리)



가인의 후예들이 하늘의 천사(기괴한 거대한 돌 뭉치 형태의 감시자: 영화 트랜스 포머에 나오는 움직이는 기계 덩치와 같은 모습이다.)와 한참 전쟁을 벌이면서 땅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하다. 그 황폐한 대지 위에서 노아는 아내와 함께 쌍둥이 아들인 셈과 함과 더불어 힘들게 살아간다. 어느 날 우연히 ‘일라’라는 소녀가 죽음직전에서 노아 가족에서 구출되는데 그 ‘일라’도 노아 가족이 되고 셈과 사랑을 나눈다. 반면에 함은 자기 짝이 없음에 대한 매우 불안해한다. 야벳도 뒤늦게 태어난다.



어느 날 노아는 할아버지가 되는 므두셀라(창 5:22)를 만나게 된다. 그로부터 조상 대대로 전달된 에덴동산의 사태를 듣게 되고 그 에덴의 일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뱀의 허물을 노아에게 넘겨준다. 그리고 장차 이 세상이 홍수로 멸망당한 것도 예고 받는다. 대책으로서 방주 짓는 업무는 노아가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계시 받는다.



이런 노아의 방주 건조 작업은 지상에서 활동하는 ‘감시자’의 도움을 받는다. 문제는 가인의 후예들이다. 기계의 조상 두발가인(창 4:22)을 왕으로 한 이 집단은 노아에게 시비 걸면서 가인의 후예를 악한 집단으로 간주하는 그 하나님의 뜻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낸다. 만약 방주를 만들면 방주마저 점령해버리겠다고 협박한다.



노아의 할아버지 므두셀라는 노아에게 어떤 생명의 씨앗을 주고 땅에 뿌리게 하는데 그 작은 씨앗이 땅에 떨어지자마자 황폐한 대지가 졸지에 엄청난 숲으로 둘러싸여지고 그 속에서 감시자의 부지런한 협조 하에 3층짜리 길쭉한 방주는 착착 만들어진다.



노아는 하나님으로부터 앞으로 계획을 전해 듣는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심판하기 위해 홍수를 내리게 되며, 홍수가 끝난 그 시점에서는 노아 자신의 부부와 셈의 부부와 함도 죽는 시나리오와 더불어 결국 남은 자는 오직 야벳을 통해 새 땅에 합당한 새 인류를 이어나가시는 것이다. 이는 죄를 심판을 통해서 끊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취지에 부합되는 조치라는 겁니다. 즉 방주 이전을 경험한 모든 세대는 다 죽이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셈에게 아랫배가 결정적인 상처를 입어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인이 방주에 동승하더라도 그녀의 후손은 더 이상 없음을 두고 안심한다.



그런데 함이 자꾸만 말썽을 일으킨다. 그래서 숲속 너머 따로 도시를 형성하고 있는 가인의 후예 속에서 어떤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 당시 가인의 후예의 도시는 먹을 게 없어 어린 자식을 강제로 뺏어 그 인육을 나눠 먹을 정도로 비참한 생활상을 보인다.



아직 비가 내리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새 떼가 먼저 알아서 방주 앞 입구를 통해서 얌전히 횃대에 나란히 정돈해 앉아 잠이 들고 그 다음에는 각종 뱀과 짐승들도 한 쌍 씩 알아서 입구로 기어 들어와서 얌전히 잠을 잔다.



드디어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고 므두셀라가 방주 바깥 어느 숲 속에서 몰래 작은 산딸기가 발견되는 것을 신호로 더 이상 홍수 심판은 개시된다. 한편 가인의 후예들이 정착촌을 이룬 곳에서는 두발가인을 필두로 한 가인의 후예들은 무장을 하고 방주 탈취를 위해 공격을 해오고 있고 함을 부리나케 방주가 있는 숲속으로 자기 여자와 더불어 달려오고 있었는데 두발가인이 쳐놓은 짐승의 덫에 여자가 걸려 넘어진다. 이 때 끝까지 함을 포기하지 않는 아버지 노아가 이 두 사람을 발견하고서는 함을 데리고 가고 여자는 사람들에게 밟히도록 방치한다.



이런 일로 인해 함은 내내 아버지 노아에 대한 분개로 남아 있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하늘에게 빗줄기가 쏟아지자 다급해진 두발가인 군대는 저돌적으로 방주를 탈취하기 위해 입구로 달려드는데 기괴한 암성덩어리 모양을 한 감시자들에 의해 저지되고 노아가 필사적으로 방주에 그들에 못 들어가도록 맹렬한 칼싸움을 벌린다. 그리고 땅 속으로부터 땅이 샘이 터지면서 방주를 향해 돌진해오는 엄청난 숫자의 가인의 후예들을 수시로 몰살시킨다.



하지만 가인의 후예의 왕인 두발가인은 자신의 도끼로 방주 옆면을 몰래 침투하여 방주 벽에 에 손상을 내고 간신히 방주 안에 들어오는데 성공한다. 결국 방주가 전면적인 홍수에 의해 완전히 떠오를 때, 방주 안에는 노아와 그 아내, 셈과 그의 아내인 일라, 야벳과 함, 그리고 몰래 들어온 두발가인, 모두 총 일곱 명이다.



그런데 노아가 한 가지 몰랐던 일이 있다. 그것은 셈의 부인이 일라가 므두셀라로부터 축복을 받아서 탑승 직전에 불임이 사라지고 임신가능한 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망망대해를 방주 홀로 떠다니면서 그 안에서는 셈의 아내 일라가 임신을 하게 되면 노아도 이 사실을 통해 방주 갑판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지시를 묻게 된다. 그가 받은 하나님의 지시는 이것이었다. “아들이면 살려두고 딸이면 죽이라”이다.



이 받은 계시에 대한 셈과 일라와 그리고 노아의 부인마저 격분한다. 그리고 가장에게 대든다. 하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뜻을 관철하려 한다. 홍수가 끊어졌지만 방주 안은 악마의 영을 지닌 두발가인의 탑승으로 인하여 혼란스럽다. 잠자고 있는 곤충을 막무가내로 식량으로 잡아먹고 함에게 칼을 주면서 기회를 봐서 아버지 노아를 살해 할 것을 명한다.



한편 셈은 자기 자식을 ‘신의 계시’를 이유로 딸일 경우에 살해하겠다는 아버지 노아에 대해서 역시 살해하고자 긴 창을 들고 덤빈다. 한바탕 노아와 두발가인의 혈투를 겪고 난 뒤 사태는 두발가인의 죽음으로 진정이 되고, 드디어 셈의 부인 알라가 딸 쌍둥이를 해산한다. 방주 맨 위 갑판까지 따라온 노아는 칼을 들고 자신의 두 손녀를 죽이려는 순간, 거기에서 노아는 사랑으로 충만한 아이를 보고서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칼을 거둔다. 이로서 드디어 방주의 탑승 인원이 8명이 된다.



드디어 방주는 육지에 도달되고 날씨는 쾌청하다. 산꼭대기에서 방주는 두 조각으로 깨어져 있으며 여기 저기 그동안 방주 안에서 잠자던 짐승들이나 가축들이 흩어져나와 평화롭게 노닌다. 하나님의 계시를 위반했다는 죄책감에 노아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포도를 가지고 포도주를 만들어 먹고서는 벌거벗은 채로 자게 된다. 함이 먼저 봤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셈은 동생 야벳에게 눈 감아라 고 지시하고 뒷걸음질 쳐서 아버지의 몸체를 담요로 덮어준다.



그 모습을 본 함은 짐 싸들고 어디로 떠난다. 그는 걸핏하면 자기 여자 친구를 구하지 않은 아버지의 냉혹함에 불만을 품고 아버지 곁을 떠나려는 것이다. 아버지 노아는 셈과 야벳에게 축복을 한다. 조상 대대로 에덴동산의 비사(秘事)를 나타내는 증거물인 뱀의 허물을 종교적인 상징물이 그려진 천 조각 앞에 놓고서 함을 제외한 온 가족은 하나님께 경배할 때에 하늘은 무지개가 연이어 퍼지는 현란한 파티장이 되고 영화는 끝난다.




(평) 영화는 끝까지 왜 하나님께서 인간을 몰살시키는 심판을 내리는지 의문점 드러낸다. 즉 인간이 스스로 이해하는 죄악으로서 일괄 몰살 시키는 벌을 대등한 무게감으로 이끌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들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도 않는 정의감을 하나님께서 무턱대고 실시하니 그 대변자인 노아로서는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노아 입장에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 조치를 ‘정의(正義)’에 입각해서 설명을 해야 하는데 본인조차도 그 정의 개념이 납득되지 않아 영화 내내 우왕좌왕한다. 아무런 생각 없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방주도 건조하고 손녀를 제거하고자 하지만 결국 자기 딸을 향한 어미(일라)의 애절한 자식 사랑에 밀려 노아는 하나님의 정의감이라는 것도 내려놓는다.



결국 영화를 기껏 나름대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류 시대를 물 홍수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서, 과거 가인의 후예들의 죄악에 물들지 않는 새로운 인류 존재를 물로서 정화된 새 땅에 합당하게 세상을 꾸려 나가도록 조치한 취지가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노아 홍수 이 후 인 이 세상을 함께 사는 인간들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과거 가인의 후예들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지는지가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가인의 후예의 왕인 두발가인은 늘 다음과 같이 영화 속에서 불평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는 이 땅에서 이렇게 힘들게 노동하도록 살게 하셨다”는 것이다. 즉 “이 땅에 풍부하고 풍요하면 죄 지으라고 해서 죄 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죄를 수밖에 없는 조건을 조성해놓으시면 자꾸만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 하나님의 조치는 앞뒤가 앞 맞는 부당한 조치라는 것이다. 요약하면, 하나님의 물 심판 조치가 아무리 봐도 불합리하고 부당한 조치다 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하나님의 불합리에 맞서 우리 인간들은 착하면 된다는 것이다. 노아도 결국 인간의 착함에 순복하여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칼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복음적 평가)


감독은 창세기가 이런 식으로 기록되어야 될 흐름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죄악이 먼저 있고 그 다음의 노아 홍수 심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 노선에 따르는 ‘정결한 제물의 죽음’(창 8:10)을 겨냥해서 노아 홍수 심판이 진행되기에 인간은 심판의 프로젝트에 반드시 가담되어야 하는 존재다. 정의라니 사랑이라니 심판이라니 하는 모든 개념은 인간이 제 자리에서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정결한 희생제물’이 되실 분에 의해서 최종 규정될 내용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죄는 심판 속에서 비로소 밝혀진다. 죄에 합당한 벌이 아니라 벌에 합당한 죄인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사태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 3:6-7)



예수님 십자가 앞에서 우리 인간은 자신이 영원한 유황불에 들어갈 합당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창세기는 십자가 사건을 겨냥한 흐름 위주로 전개되고 그 시작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전쟁’이다.



(p.s) 같이 영화를 보고 나오시면서 서경수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런 쓰레기 같은 영화를 만들려고 큰 돈을 주고 수입하다니!” 즉 성경에 나와 있는 줄거리만 지켜주어도 이렇게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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