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탄) 어느 목사님의 질문

(3탄) 어느 목사님의 질문

(질문) 2015.3.1

목사님. 안녕하세요. 평안하시죠? ^^

겨울이 짧게 지나갔습니다.

몇가지 여쭈어봅니다.

1. 신281-14은 순종하여 받는 복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7)

'~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11)

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2. 복에 대한 글이 있으면 십자가마을에서 어디로 들어가야 되는지, 혹은 없으면,

목사님의 글좀 부탁드립니다. 목사님 바쁘시겠지만, 짧게 2-3줄 보다 조금 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3. 마가복음을 조정재목사님과 토론한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저 또한, 마가복음을 새출애굽관점으로 보여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중심사상에 기록된 종의 관점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부분으로 읽혀집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설교하신 마가복음 설교 내용에서는 강해로 되어있지만, 종의 관점이 많이 부각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성경중심사상에서 장별로 풀려진 창세기와 같이 종의 관점에서 풀린 마가복음의 풍성한 글이 있으면 좀 부탁합니다.(사이트 위치를 알려주셔도 됩니다)

4. 3번과 같은 맥락에서 누가복음을 풀어놓은 글도 좀 부탁드립니다.

눈이 벗겨져야하는데, 잘안되어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5. 갇피플에 "신구약 성경에 대한 질문과 답변" 책이 두 권으로 나와있던데,

예전에 제가 넌지시 십자가마을인가? 어느 사이트에서 위의 책 내용의 일부분을 읽었던 것 같은데, 제가 찾지를 못하겠습니다.

혹시, 십자가마을 및 우리교회 및 같은 노회에 위의 책 내용을 찾으려면 어디로 들어가서 볼 수있을까요?

(답변)

1.

구약 해석을 할 때는 필히 언약이 유발해낸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언약 안에는 새로운 창조가 펼쳐집니다. 동시에 창조된 것들이 또 다른 새로운 창조를 위하여 소멸됩니다. 따라서 만들어진 이스라엘도 멸망하고 만들어진 가나안 땅에 소멸합니다. 만들어진 성전도 소멸하고 만들어진 율법도 소멸하고 만들어진 복도 소멸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만들어놓으신 바를 인간에게(이스라엘이 대표자가 되어서) 손대게 하시면서 자진 파괴당하시는 방식을 행하시므로서 그 안에서 언약에 준해서 새로운 창조가 언약에 의해서 출현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새 언약’(신약) 까지 이어집니다. 새 언약에 들어와서는 오신 메시야가 인간이 손대므로서(유대인) 스스로 파괴당하십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요 10:18)

이렇게 되면 모든 자연 세계와 인간 세계가 메시아에 대해서 적대적 상황이라는 것이 확정지어집니다. 즉 어느 누구도 구원받거나 복을 얻을 권리나 자격자는 없고, 오로지 하나님의 율법에서 약속한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예수님에게만 합당하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7)

그 다음부터는 예수님의 고유 권리 행사로 돌입합니다. 죄를 사해주시든지 누구를 구원하시든지 하는 것은 사람들의 요구나 열심과는 상관없이 오직 아버지와 아들의 결정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확정되어 버립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요 5:21-22)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

따라서 신명기의 위치가 신약이 아니고 구약인 것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 3:19)

순종을 언급하고 복을 언급해도 그것은 인간이 자력으로 이룰 수 없는 처지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갈라디아서 3:22에서는 죄에 갇혀 있다고 하심) 알리는 율법적 기능 발휘를 위해 주신 말씀입니다. 죄인은 필히 그 죄됨이 노출되어야 합니다.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말씀도 역시 약속의 땅의 특성을 보여주게 됩니다. 말씀은 그 자체의 효력을 얻지 않고서는 철수하는 법이 없습니다. 여기에 이스라엘이 말려든 겁니다. 이방민족이 이스라엘에게 쫓겨서 두 번 다시 재결합될 수 없을 정도로 뿔뿔이 파산나든지 아니면 이스라엘이 이방민족에서 쫓겨서 다시 재결성할 수 없을 정도로 풍지박산이 되든지 어쨌든 분명한 결과를 낳게 하시는 말씀이 이스라엘에게 도착한 것입니다.

토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땅을 영구히 차지하게 될 것인지 아니면 이방나라에 쫓겨서 영원히 토지를 갖지 못하든지 그것은 이스라엘의 말씀 준수여부에 달렸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러한 벌칙조항이나 혹은 복 조항이나 모두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요구했다는 점에서 인간은 전혀 요구에 부응할 처지가 못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아이디어와 유착될 성질의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신명기 말씀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망하도록 해서 이스라엘 백성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다 애초부터 저주받아 마땅함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구원이란 인간들의 탐욕일 뿐인 것입니다.

2.

복이란 창조 성격의 팽창을 두고 말합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만들어진 공간’을 채우고 채워진 그것을 팽창하는 것을 복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창조 이후에는 ‘하나님의 형상’됨의 팽창입니다. 다스리고 정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인간은 해당되지 않고 예수님에게만 해당될 사항입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2-3장에 들어와서 인간은 흙으로 환원되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에 하나님의 형상은 이스라엘 속에 ‘하나님의 이름’에 실려서 ‘언약의 팽창’으로 등장합니다. 그 속에서는 ‘아브라함 자손(=예수님)의 확장과 약속의 땅(=천국)의 확보와 하나님의 의(십자가 피 안에서의 관계)의 번창’을 두고 말합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언약 안에서(=예수 안에서) 죽는 것이 곧 복된 자입니다. (골 3:1-4/합 3:16-18 참조).

복의 글이 어디 있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워낙 많아서요.

3.

마가복음을 종의 관점으로 보자는 기존의 성경신학자들의 말을 믿지 마세요. 그들은 언약관점을 경유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언약관점, 즉 십자가 복음 안에서 성경을 보지 않게 되면, 신학을 하는 그 행위 자체가 죄라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성령님은 복음을 전하라고 했지 신학을 하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신학의 철학의 아류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신학을 위한 책이 아닙니다. 신학이란 교회 유지를 위한 정당성과 관련된 학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언약에 의해서 교회도 소멸되어야 하고 파괴되어야 한다는 것이 언약에서 말하는 참 복음 정신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스스로 구원활동을 하기 때문에 인간의 협조와 동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늘 나라는 일체의 인간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1번에서 언급했듯이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접촉하면서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적대적 관계임을 대표적으로 증명해주는 단체로 규정될 뿐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백성은 예수님의 혼자 작업으로 다 무사히, 아무 탈없이 성사됩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9)

마가복음은 현재 광주 강의에서 하고 있습니다. 참조하시면 됩니다.

4.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을 차이점에 그렇게 예민할 필요없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바는, 그런 차이점을 인간의 힘으로 가려낼 수가 없음을 인정하는 겁니다. 출애굽 사상은 신약 전편에 걸쳐 다 있는 겁니다. 특정 지점에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누룩처럼 전체다 확산되어 있습니다.

5.

‘신구약 성경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라는 책은 오래전에 나와서 아마 대장간 출판사에 문의하면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직접 모임에 참석하셔서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목사님. 지난번의 긴 답변을 잘 읽었습니다. 글이 기니깐, 훨씬 더 선명합니다. ^^

(질의)

목사님.

구약과 신약을 보면 삼위일체의 사역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 구약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등장하면서 동시에 자연적 현상(번개, 우뢰, 불, 등)과 천사, 여호와의 사자로

등장하는 성자의 모습이 있습니다.

역사서에서는 왕의 모습이 부각되고,

선지서에서는 선지자와 친필인 글이 부각되어 성자의 모습을 계시한듯합니다.

신약에 넘어오면 예수님께서 나를 본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1. 잠언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말씀이 자주 등장하는데,

구약 사람들이 '여호와'라는 말을 할 때에 '여호와' 단어 안에 이미 메시야에 대한 의미를 알고 말을 했을까요?

2. 여호와라는 단어가 구속역사에서(오경에서 역대기로, 역대기에서 선지서로 등) 어떻게 변천되어졌는지를 제가 잘 이해하고싶은데,

여기에 해당되는 글이 있으면 좀부탁합니다.

제가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부분에 율법(오경)에서 '여호와'와 잠언에서 '여호와'의 의미가 신약으로 넘어가는데 있어서

남은 자(유대인)가 바르게 이해한 부분을 알고 싶어서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바르게 이해해야 제게 있어서도

메시야의 구속사역이 조금 더 바르게 이해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답변)

1. 메시아란 이스라엘이나 유대인들에 있어 이미 자신들의 혈통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그렇게 유대인들은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실체있는 민족을 이 지상에 펼쳐실 때는 그들 속에서 메시아를 형성하기 위함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접촉점이 바로 '다윗의 자손'입니다. 다윗의 후손을 통해서 그들은 메시아가 지상에 임재한다고 믿었습니다.

2. 여호와에 관한 글들은 저의 책들마다 다 담겨 있습니다. 안 담겨있는 책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택] 및 모든 책이 다 들어있습니다. '주의 이름'와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저의 글도 어디엔가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에 대해서 인간들이 이해하는 것과 그리고 언약을 앞장세워서 이스라엘 속에서 구체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작업은 서로 대적하고 반대가 되는 취지로 성취가 됩니다. 그 와중에서 힘들고 곤란한 처지에 놓인 자들이 바로 선지자들입니다.

3. 따라서 노아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언약이 주어진 그 현장에서, 언약이 숨겨놓은 비빌스러운 참 하나님이 뜻을 위해 서러움받는 자들의 연결선 안에서 예수님과 이어지는 원리가 깔려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유대인들은 결코 '남은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참된 '남은자'를 핍박하기 위해 '남은 자'로 행세하는 악마의 하수인들입니다. 참된 '남은 자'들은 '가짜 남은자들의 구박'을 통해서 비로소 그 현장에 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우기고 교회라고 우기는 그들을 통해서 구박받는 그들은 참된 이스라엘입니다. 따라서 참된 이스라엘은 따로 하나의 단체로 규합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규합하는 순간부터 그들은 자신들을 믿는 비-신자로 행세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남은 자는 구약 때의 선지자들처럼 오직 메시야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입니다.

(질의 )

목사님. 평안하시죠? 벗꽃이 지려고 하는 시기입니다.

한 가지 여쭈어 봅니다.

행12장은 헤롯 왕을 통해서 야고보가 순교당하고 베드로가 살아남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 내용 행11:28-30을 보면 아가보를 통해 큰 흉년에 대한 예언과 부조를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전달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에 이어서 12장이 기록되고, 12장 마지막에는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2장 사건으로만 보면 마치 세계에 흉년이 들었을 때 애굽으로 올라가는 야곱족속과 같은 모양으로 보이고,

눅22장 사건으로 보면 마치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경험하고 부활한 자로서 등장하여 로데 여자아이를 만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과 동일한 모습으로요.

여기에 부조 이야기가 시작과 끝을 인클루지오로 이루고 있는데,

11장 마지막과 12장 전체와 마지막을 구속사로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까요?

참 어렵습니다.

(답변) 복음 적용의 지역이 유대로부터 유대 외부에 벗어나면서 그냥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극력하게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에 사도들이 참여하는 식으로 벗어나게 하십니다. 이로서 인간들이 이해하는 ‘세계’라는 인식의 범주가 복음 전파와 더불어 수정되면서 확장됩니다. 즉 지역적으로는 유대지방을 떠나 더 넓은 지역으로 번지는 것이 바로 선교의 확장, 내지는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으로 간주되겠지만 실상은 그것은 사후(事後)의 인식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예수님의 아픔의 참여하는 자들의 증가가 곧 심도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바른 실현입니다.

이로서 선교의 중심이 더 이상 유다라는 지역에 매이지 않고 탈피되어 사도라는 인물 중심으로 예수님의 작업 중심점으로 이동됩니다. 그렇게 해서 유대를 향하여 도리어 이방인들이 부조를 보내게 되지요. 결론적으로 현재 예수님의 아픔에 동참하는 자가 곧 주님과 함께 한 선교지입니다. 따라서 예배당 소지(소유)를 가지고 ‘내 교회’라고 여기는 순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목회) 사업에서 생기는 수단에 동참하는 것으로 전혀 주님의 일이 아닌 것입니다.

(질의)

기근과 부조를 그리스도의 아픔에 동참하는 것으로 말씀하신 부분에 공감이 갑니다.

동시에, 13장 본론 안에는 야고보의 죽음과 베드로의 탈옥 그리고, 기도 중에 만난 베드로,

헤롯의 죽음

이 내용들은 어떻게 연결해야 할까요?

"성경 전체를 풀어주세요"라는게 더 쉬운 질문인데, 이 부분은 감히 요청을 못할 것 같구요

성경의 한 장 전체라도 부탁을 드려봅니다(행12장)

(답변)

12장은 베드로와 바울이 겹치는 대목입니다.

즉, 1장부터 12장 까지는 베드로의 장

13장부터 28장까지는 바울의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장 바울의 장

앉은뱅이 거지의 치료(3:1-10)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치료(14:8-11)

베드로와 마술사(8:14-25) 바울과 마술사(13:4-12/19:13-19)

다비다 혹은 도르가를 살림(9:36-43) 유두고를 살림(20:7-12)

베드로의 수감(4:1-22/5:17-42) 바울의 수감(16:16-40)

베드로의 기적적인 출옥(12:7-11) 바울의 기적적인 출옥(16:26-34)

예루살렘에서 매맞은 베드로(6:40) 빌립보에서 매맞은 바울(16:22-23)

베드로를 경배하려는 시도(10:25) 바울을 경배하려는 시도(14:8-18)

스데반의 돌 맞음(7:54-60) 바울의 돌 맞음(14:19-20)

예루살렘 회의에서 연설하는 베드로 예루살렘 회의에서 연설하는 바울

(15:7-11) (15:12)

성경을 연구하는 내시(8:26-40) 성경을 연구하는 베뢰아(17:10-12)

사도들이 계속에서 설교하도록 천사가 바울이 계속해서 설교하도록 환상이

격려함(5:17-21) 격려함(18:9-11)

베드로가 유대적 의식을 따름(3:1) 바울이 유대적 의식을 따름(18:18/

21:23-26)

산헤드린 앞의 베드로(4:5-22/5:22-42) 산헤드린 앞의 바울(22:30/23:10)

베드로가 아픈 사람들을 치료함(5:15/16) 바울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함(28:8-9)

베드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바울이 박수 엘루마를 눈 멀게 함

저주하여 죽게 함(5:1-10) (13:8-11)

예수님의 사건의 반복성이란 예수님의 지상 생애에서 예수님의 초월됨이 역사성 안에서는 고난으로 계시되듯이 사도들의 삶 속에서 십자가 사건은 반복됩니다. 야고보의 죽음과 베드로의 투옥과 풀려나옴 속에서 십자가 사건의 능력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산물로 고넬료가 구원받게 됩니다. 이와 같은 원칙이 이제 바울에게 바턴이 넘어갑니다.

헤롯왕 유대 지역과 유대 백성에게 국한된 관련된 구세대 정치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보다 큰 대국인 로마의 가이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로서 복음이 전 세계 지역에 영향을 행사하는 쪽으로 움직입니다. 따라서 구세대라 할 수 있는 유대 지역은 도리어 바울에게서 복음을 들어야 할 처지에 있습니다. 구심점이 바울에게도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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