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성숙과정과 위기
1. 서론
(1) 영성의 정의 우리는, "목사가 되기 전에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든가, "신자가 되기 전에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위와 같은 말의 배후에는 심오한 진리가 숨어 있다. 먼저 인간다운 인간이 되지 않으면 신앙도 유치해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있다. 영성이란 모든 인간에게 내재하는 영혼의 핵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능케 하는 신적인 능력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는 자리이다. 이 인간의 영성은 정체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변화하고 성장해 가는 동적인 능력이다. 인간의 영성은 특정 종교와 상관없이 어느 누구에게나 내재하고 있는 생명의 핵이며, 생명의 씨앗인 것이다.
(2) 영성의 구분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영성의 씨앗(영성의 바탕)을 갖고 태어난다.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보여지는 영성이 보편적 영성이다. 다음으로 종교적 영성이 있다. 보편적 영성과 종교적 영성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보편적 영성의 기반이 없이 종교적 영성의 발전은 불가능하다. 종교적 영성이란 보편적인 인간의 영성이 어떤 특정 종교에 몰입했을 때 나타나는 영적인 변화과정을 의미한다.
2. 보편적 영성의 성숙과정 (1) 아동기 영성- 충동단계 아동의 영성은 감정적이어서 느끼는 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아동의 세계는 생동적이고 감정일변도이며, 때와 상황에 따라 한 가지 감정이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다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신앙의 눈을 떠 간다. 이때의 성인들 가운데에도 이런 아동기 신앙의 수준에 머물러서 선한 일을 해야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구원의 필수 조건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수준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께서 상으로 은혜를 내려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 청소년 전반기와 영성 - 순응단계 사춘기의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신념과 가치를 중하게 여겨 그 안에 머물러 있고자 하며, 밖으로 뛰쳐나가 자신의 세계를 새롭게 성찰하고자 하는 생각은 약하다. 이 단계에서의 위험은 순응주의적 경향이 지나쳐 과도한 의존성을 갖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때 중요하다고 여기는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을 때 하나님에 대한 절망으로 연결 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해 추상적이고 신학적인 사고가 가능한 시기에 청소년들은 신체적 변화와 함께 갈등과 불안 같은 심리적 위기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심리적 갈등과 회의를 겪으면서 하나님에 대해서도 회의와 거부감을 나타내는 수도 있는데, 하나님의 섭리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런 고통의 경험이 후에 그의 인생을 전환시키는 경우도 많다. 어거스틴도 청소년 시절에 충격적인 경험을 한 뒤, 하나님 앞에 돌아와 회개하고 감사할 수 있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
(3) 청소년 후반기의 영성 - 양심적 순응단계 이 단계는 순응의 단계에서 양심의 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로서 자기의 내적인 삶에 더욱 민감해진다. 언제까지나 사회적인 원칙에 따라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새로운 자아의식이 자라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외적인 권위에 따르는 영성이었으나 이제는 스스로 자신의 내부에 권위를 형성하는 영성을 갖게 된다.
(4) 청년기 영성 - 양심단계 이 단계의 영성은 사춘기 이후에 주로 나타나는 영성 수준이지만 대다수가 이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30대 내지 40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이 단계의 영성을 깨닫게 된다. 양심단계에 도달한 사람은 이전의 타인 의존적인 생활태도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만의 의미 구조를 갖는 세계관을 지니게 된다. 이렇게 확립된 정체성과 세계관은 독자적인 성격을 지니며, 이것을 기초로 하여 자신의 행동파 다른 사람의 행동을 판단. 분석한다. 이 단계의 사람이 다음 단계의 영성으로 진입할 때, 그가 속해 있는 집단의 이념과 사상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교회가 인습적인 신앙분위기를 유지하면서 교인들로 하여금 습관화된 외적 권위와 집단의 정체성에 계속 의존하게 할 경우, 교인들의 영적 성숙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게 된다. 양심단계의 영성이 성숙되려면 외적인 권위에 대한 의존이 중단되어야 하고,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권위에서 벗어나야 한다.
청년기 영성단계에서는 자기 양심의 법에 따라 살아가게 된다. 이들은 올바른 목적과 이상, 건전한 자기 반성, 책임감 등 성인으로서 지녀야 할 여러 가지 중요한 덕목에 대하여 생각하고 실천에 옮긴다. 이들은 도덕적 양심을 진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느낀다. 운명에 자신을 내맡기기보다는 자기의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게 되며,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도 성숙해져서 사랑과 미움, 시시한 것과 중요한 것, 의존과 독립, 내적인 삶과 외적인 삶 등을 서로 대극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5) 중년기 영성 - 자애 단계 이 단계에서는 자신의 과거를 재조명하고, 깊은 내면에서 울리는 자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 사회의 모순과 역설성에 대해서 관대해지며, 지금가지 자신에게 위협으로 느껴졌던 현실이나 사건에 대해서도 회피하기보다는 직면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지금까지 자신을 억압해 온 억압적 사고로부터 자유함을 느끼고, 인간 개성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개성을 존중하게 된다. 자신의 한계를 깨달으며, 인간의 유대관계를 가장 값진 것으로 여긴다. 이 단계의 사람들은 마음속에 개인의 욕구와는 다른 어떤 충만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계층, 종교, 민족에 의해 제약을 받지도 않는다. 자신만을 위하던 사고관념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바칠 준비를 한다. 지금까지 자기가 쌓아 온 세계의 일부를 포기해야 함을 알고, 어떤 지고한 명령에 자신을 내맡기는 삶을 만들어 간다.
(6) 성숙기 영성 - 우주적 단계 우주적 단계의 영성은 모든 단계의 완성을 의미하며 극히 드물다. 이전 단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갈등을 초월하는 단계이며 자아가 통합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 이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인간의 삶 속에 성육신 되어 존재하고 있음을 통찰하는 경지에 와 있다. 이들은 이 세계의 역사를 하나님의 성육신 된 말씀 속에서 이해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과 이웃 가운데서 체험하며, 자신과 이웃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며 산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총의 도구가 되기를 원하고, 또 되기도 한다. 파울러는 우주적 단계의 영성을 보편적 신앙단계라 불렀다. 이 단계에서는 절대적 사랑과 정의의 명령이 성육화되고, 현재가 초월적인 실재로 바뀌는 데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 단계의 신앙인은 초월적인 도덕성과 종교성을 구현하기 위해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고 그 일에 몰두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의 기준을 뒤흔들어 오해를 사기 쉽다. 이들은 언제나 인류 전체와 우주적인 공동체을 추구하며, 이를 방해하는 편견과 불의에 맞서 사랑에 바탕을 둔 행동을 실천해 나가며, 탁월한 확신과 용기를 소유한 사람들이다.
3. 종교적 영성의 성숙과정
(1) 신비 체험(Awakening) 아브라함 매슬로우(Abraham Maslolw)에 의하면, 성숙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은 거의 모드 '신비 체험'(Peak Experience)을 했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신비의 체험을 자주 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고차원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영적인 성장의 가능성을 풍부하게 지닌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사소한 일에도 쉽게 감격하고 놀라며 그 속에서 우주적 진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특히 신앙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이런 사람이 많다. 일상사 속에서도 가슴 터지는 환희를 맛보기도 하고 신비한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택하시고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강한 소명감을 갖는다. 이러한 체험은 자기 자신을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준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신비 체험에 긍정적인 자세로 대처하면 영성이 발전하지만, 이것을 부정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처하면 영적인 성장은커녕 오히려 퇴보해 버린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신비의 자각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소명의식을 깨닫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2) 정화단계 신비 체험을 통해서 깨닫게 된 자신에 대한 자각은 오랫동안 지속된다. 신비 체험의 기억이 살아 있는 동안 또 다른 신비의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식으로 거듭해서 새로운 자신을 경험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정화단계로 넘어간다. 정화단계에 접어든 사람은 신선한 영적 생활을 체험하면서 변화와 성장을 함께 이루어 나간다. 낡은 상처가 치유되는가 하면, 이기심이 줄어들고 마음속에서 충만한 생명력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생활이 어느 정도 지속되면, 어느 순간에 자기도 모르게 오랫동안 자기 내부에서 억압되 왔던 어두운 그림자, 즉 반항 심리가 머리를 쳐들고 일어나기 시작한다. 마음속에서 격렬한 갈등의 폭풍이 일어난다. 그것은 고통과 기쁨, 선과 악, 믿음과 불신 사이에 갈등이 일기 때문이다. 정화단계에서 처음으로 자신에게 불어오는 이런 갈등의 폭풍을 잠재우는 일은 중요한 과업 중의 하나이다. 한 마디로, 갈등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고자 하는 자신과 자기 멋대로 살고 싶어하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올바르게 이루어지려면 갈등의 폭풍과 싸워 이겨야 한다. 정화단계에서 이따금 나타나는 현상은, 아무리 깨끗하게 살려고 해도 순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의 본성 때문인데 이기주의, 자기 중심적 사고, 방종과 자만, 책임회피, 불의, 자기합리화 등등의 형태를 띤다. 이런 갈등들이 어느 정도 지속되면 부정적인 욕구가 슬며시 고개를 든다. 모든 것이 귀찮게 여겨지고 지금의 영적인 삶을 포기하고 옛날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과도기의 사람들에게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사도들을 어떻게 훈련시키셨는가를 들려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연약해질 때나 세상 적인 목표에 정신을 팔 때 호되게 꾸짖으셨다. 이 과도기적 폭풍을 극복하고 나면 신비의 체험에서 얻었던 것과 같은 또 다른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신비 체험에서 부르심의 소명을 받았다면, 이제는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런 체험은 영성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게 되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감이 깊이 자리를 잡는다. 이전에는 자주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혔었지만 이제는 소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신뢰감은 성령의 역사와 함께 온다고 믿는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상태가 얼마 동안 지속된다. 이런 신뢰의 과정을 통해서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던 이기적인 자아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다. 하나씩 둘씩 자아들을 상실해 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갈등이 또 한 번 머리를 드는데, 심한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이 시기의 특징이다. 왜 이런 불안감이 일어나는 것일까? 정화단계에 들어선 사람은 새로 자각한 생동감 있는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접근한다. 그런데 자신의 태도가 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거부 당하기 일쑤다. 자신을 솔직하게 열어 보이고 나서 오해를 사기도 한다. 이런 경험이 거듭되면서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사람을 용서해 보려고 애를 쓰는데도 쉽게 되지 않는다. 이런 갈등의 시간이 얼마 동안 지속되면서 마음속에 회의가 자리를 잡는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경험할 수 없었던 무서운 싸움에 직면하게 된다. 노력하면 할수록 더 이상 지탱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이런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붙잡는 싸움이 몇 달이나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처절한 영적 싸움이 지속되는 동안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잃어버리고 허탈감과 외로움의 수렁에 빠진다. 이런 허탈감과 외로움의 수렁에서 허덕이는 동안 모든 것을 상실해 버린 마음 한가운데서 깊은 새벽의 고요가 깔리기 시작한다. 고요 가운데 새벽의 먼동이 터 오듯 신비스런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그때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힘의 원천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바로 계몽단계의 시작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정화단계에서 마지막으로 오는 위기는 새로운 도약의 징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화단계에서 혹독한 절망에 싸인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부정적으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오히려 새로운 도약을 위한 몸부림으로 알고 도와주어야 한다.
(3) 계몽단계 영성생활의 초기에는 하나님을 저 먼곳에 존재하는 분으로 생각하는데, 계몽단계에 들어서면 초월의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제는 자신의 자유를 억압하던 심리적 요인도 사라지고, 자기를 지키려는 방어심리도 무너지며, 자신 안에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역사하고 계심을 실감한다. 계몽단계의 사람은 하나님은 어디에서나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며 기도가 시냇물처럼 흘러나온다. 아름다운 세계와 선한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아무리 추한 곳에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본다. 계몽단계에 있는 신자의 마음은 뜨거운 사랑으로 가득하다. 계몽기 영성의 사람은 새로운 생명의 빛을 보는데, 그 빛은 자신에게서 나오는 빛이 아니라 자기에게 비추어지는 빛이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대와 비판도 줄어들고 대신에 이웃을 수용하려는 마음이 강화된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친구가 된다. 영성발달 초기의 기도는 자기 독백이고 복음의 교훈에 자신을 비추어 보는 기도이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는 그리스도와의 조용한 대화로 바뀐다. 이전에는 시끄러운 모임이나 커다란 찬송과 기도가 도움이 되었으나 이제는 흥미 밖으로 물러간다. 말의 속도가 서서히 느려지고 찬송도 조용하고 부드러운 멜로디로 변한다. 계몽기의 영성에 있는 사람들은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임재를 실감하는데 자기의 의지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되어진다. 이들에게 두드러진 현상은 고요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관상의 기도를 드린다는 것이다. 관상의 기도란 기도 가운데서 자기를 잊는 깊은 경지의 기도이다. 그래서 기도하다가 시간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이따금 생긴다. 또 하나의 특징은 강하고 건전한 자아상의 현상이다. 하나님의 은사가 자기에게 주어졌다는 확신과 함께 긍정적 사고가 강화되고 어떤 모험도 감행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다. 파괴적인 면과 건설적인 면, 외향적인 면과 내향적인 면, 독립적인 면과 의존적인 면, 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면 등이 계몽기의 영성단계에 이른 사람들에게서는 서로 조화를 이룬다. 또 하나 두드러진 현상은, 이들은 언제나 의에 주리고 목말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의가 손상을 입는 현장을 간과하지 못한다. 정화단계에선 정의를 행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의 칭찬이나 보상을, 또는 이해를 기대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초월한다. 고통과 배반을 안타까워하고 아파하긴 하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이런 평화로운 시기가 오래 계속되었으면 좋겠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여기에서 머물지 않는다. 또 다른 차원의 영성으로 성숙시키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에서 성장은 반드시 십자가의 고난을 동반한다. 하나님의 역사 원칙으로 보자면, 고난 속에는 새로운 차원의 성장과 도약이 내포되어 있다. 또한 성장과 도약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에 또 다른 성장을 위한 고난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계몽기 영성의 평화가 다시 찾아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견디기 힘든 태풍이 지나가야 한다. 주의해야 할 것은 계몽기 영성이 절정에 달했을 때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만에 빠져서 영적 속물로 전락해 버린다는 것이다. 자기만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다는 교만에서 다른 사람들, 특히 아직도 성장과정에 있는 신앙인들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계몽기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자신을 더욱 자세히 드려다 볼 수 있게 된다. 놀라운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동시에 선과 악을 소유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자신을 비추는 빛이 너무 밝아서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추한 모습의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그 순간 그토록 추악한 모습을 가진 자신에 대하여 깊은 충격을 받게 된다.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영적 욕심과 탐욕이다. 지나친 자만심과 자기만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임무를 받은 것처럼 확신하는 것이다. 이런 영적 교만에 빠지게 되면 삶 속에서의 다른 책임을 무시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영적 탐욕은, 자신에게 심한 불만을 느끼던 사람이 초월적인 영적 상태에 지나치게 빠져들어, 자신을 보상받아 보려고 할 때 자주 발생한다. 건전한 영성의 성숙은 자기에 주어진 일상생활의 과업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하나님을 만날 때 가능해진다. 또한 영적 자만심은 자신의 놀라운 영적 체험을 아무하고나 나눌 수 없을 때 오는 심리적 충격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이렇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빠져들어 간 사람들을 도우려면, 이들을 거부하거나 비판하지 말고 수용해 주면서 이들이 가고 있는 길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시키고 올바른 길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영적 탐욕이나 자만심이 영성발달 과정에서 흔히 일어나는 형상이라는 사실도 일깨워 주어야 한다. 이와 같은 고난 속에서 얼마동안 씨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칠흑 같은 어두움이 사라지면서 새벽의 여명이 밝아온다. 이때 더 높은 경지에서 하나님과 해후하게 되는 연합의 영성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4) 연합영성단계 연합영성 단계도 앞서의 두 단계와 꼭같은 단계를 밟아서 성장해 간다. 연합의 단계에 도달하는 것은 순수하게 성령의 은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연합의 영성에 으르르면 마음에 고도의 평정이 오고 청결해지며 어떤 시험과 유혹에 부딪혀도 노력 없이 자유자재로 자기의 행동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자기를 괴롭히던 심리적 갈등도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된다. 이런 영성은 인간의 영역이라기보다 신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태평성대가 어느 정도 지속되는가 싶으면 또 다시 태풍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자유와 해방을 맛보는가 하면 여지없이 깜깜한 먹구름이 덮이기 시작하고 외롭고 고독한 감옥에 갇히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하나님을 기쁘고 즐겁게 하고 싶은 데도 그렇게 되지를 않는다. 대인관계도 모두 단절된다. 영적으로 고도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들은 이번이 영적 위기의 마지막 단계라고 평가한다. 위와 같은 암흑의 수렁에서 얼마동안 시달리다 보면 또 다시 밝은 태양이 빛난다. 이때 나와 하나님이 하나로 완전히 연합되는 영적 결혼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4. 결 론 인간의 영적 성숙은 자기가 자라온 성장 배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 자라온 배경이 영성의 씨앗을 잘 움트게 하고 성장하게 하는 환경이었다면 하나님과 더욱 가깝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한 영성이 어느 순간 뜨겁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면 수없이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고도의 경지에까지 성숙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십자가의 고난이 없이는 부활도 없듯이 고난의 고비를 겪지 않고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은 없다. 이런 점에서, 예수를 따르기로 결단한 사람들은 수많은 고난의 고비가 예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고난의 고비는 또 다른 새로운 도약과 성장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어야 한다. 영성발달 과정에서 자기 혼자만으로는 고도의 단계에 이르기 어렵다. 그래서 자기보다 더 많은 고비를 극복하고 넘어선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는 것은 필수적이다. 지도자의 도움이 없으면 쉽게 영적 자만심과 탐욕에 빠져 영적 속물로 전락해 버릴 위험이 있다. 마지막으로 고도의 영성차원은 인간의 힘에 의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으로 온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정태기>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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