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성령을 믿사오며
1. 성령의 명칭과 의미
성령의 명칭에 대해서 이때까지 한국교회에서는 성신이라고 불러왔는데 성신보다 성령이 더 정확한 이름이다. 원어에도 ‘하기오스 프뉴마’라고 부르고 있는 반면 한 번도 성령을 ‘하기오스 데오스’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신보다 성령으로 부르는 것이 더 성경적이다. 우리가 성령을 믿는다고 할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성령이 하나님이시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사도신경만큼이나 오래된 니케아 신조는 성령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성령은 주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며,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예배와 영광을 받으시며, 그에게 관하여는 이미 선지자들이 예언하였느니라.” 성령은 성경의 둘째 절에 나올만큼 일찍 언급되었다. 창조 당시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셨다”(창1:2). 이것은 성령께서 처음부터 계셨음을 암시하고 있다. 단지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이 있기 전에는 은밀하게 인류의 역사 속에서 역사하시다가 성자 예수님의 사역이 끝난 싯점에 본격적으로 활동하신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속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2. 성령의 속성 및 기능
성령은 단순히 신적인 능력이나 감화력이 아니다. 성령은 분명한 의지와 감정과 지성을 갖는 인격자로서 일하시고 행동하신다. 성령은 아무도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숨은 비밀을 알고 나타내어 알게 하신다(고전2:11-16).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부르시고 붙잡아서 그리스도의 뜻을 순행하게 한다. 생각하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한다(롬8:26-27). 성령은 우리의 비밀을 알고,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한다. 성령을 속일 수는 없다. 그것은 죽음을 가져온다(행5:1-6). 성령은 복음을 선포하고 전도하는 능력과 용기를 준다. 말씀의 신비를 이해하게 하며, 교회를 진리와 능력의 말씀 위에 세우고, 믿는 자를 의롭게 하고 성화시킨다. 성령은 환란과 박해의 시련 속에서도 교회를 붙들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내적인 자원을 선사하고 위로한다. 또한 성령은 은사를 베푸시며 교회의 넘치는 생명의 원동력이다. 성령은 죄악과 정욕의 노예로서 사는 옛 사람을 빛의 자녀로 만든다. 우리는 성령이 우리를 붙잡아 쓰시도록 우리의 모든 것을 드려야 한다.
3. 구속사적인 의미
구속사적인 측면에서 이 부분은 또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구약시대 대제사장이 1년에 한번 속죄제사를 드릴 때 속죄제사를 다 마치고 흰 세마포 옷을 제사장의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올 때 비로소 속죄제사가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만일 오랫동안 기다려도 나오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은 것이므로 밖에서 제사장의 몸에 묶은 끈을 잡아당겨 그 시신을 처리하였다. 이것은 레위기에 나타난 모형적 속죄제사에 대한 설명이다.
이제 실제적 속죄제사를 예수님께서는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에 피묻은 몸을 가지시고 하나님의 보좌에 들어가셔서 단번에 드리심으로 속죄사역을 완성하셨다는 증거로서 성령강림이 오순절에 이루어진 것이다. 다시말해서 성령강림은 예수님께서 속죄사역을 완성하셨다는 반증인 셈이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약한 우리들을 위해 이처럼 확실한 증거로서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6장 7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 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속죄사역을 완전하게 마치심으로 말미암아 오순절 이래로 성령님을 성도들의 마음속에 모시게 된 것이다. 성령님은 성도가 출애굽하는 순간 우리 속에 들어오신다. 그때부터 성도가 천국가는 그날까지 우리를 성화시키기 위해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엄밀한 의미에서 성화되는 것도, 정결하게 만드시는 것도 모두가 성령님의 주권적인 사역이다. 단지 우리는 의지를 드릴 뿐이다. 그러나 그 의지까지도 붙잡아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시다. 그러므로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인 셈이다. 이제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성도는 성령님께 다 내어드리고 마음껏 역사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의지를 내어드리는 생활이 진정 성령님께 순종하는 길이요 살아있는 신앙고백이리라 생각한다.
4.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1) 거룩한 공회
옛 로마 사도신경에는 ‘거룩한 교회’라고 되어 있으나 우리말 번역에는 ‘거룩한 공회’로 되어 있는데 이 공회라는 말에는 ‘보편적 교회’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교회를 가르쳐서 거룩하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요,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거룩하다고 할 수 있다. 교회에 모이는 사람이야 일반 대중과 다를 바 없지만,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그 머리되시는 예수님을 따라 모든 성도가 모이고, 그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영의 양식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이 곧 교회이기에, 교회를 거룩하다고 한다.
보편적 교회라는 말은 catholicam ecclesiam을 번역한 말이다. 그런데 이 ‘카톨릭’이란 말이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 왜냐하면 이 말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대명사처럼 쓰기 때문이다. 본래 카톨릭(catholica)이란 말은 희랍어 ‘카톨리케(καθολικη)’를 그대로 로마어로 쓴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희랍어의 ‘카톨리케’라는 말의 뜻은 ‘보편적’, ‘일반적’이란 뜻이다.
이 말을 사도신경에 넣은 이유는, 교회를 언제, 어디에서, 누가, 세워주었다 해도 그것은 그 교회를 세운 사람의 종교적 생활여하에 따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있는 교회이든간에, 그 교회가 교회의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면 그 교회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다른 교회와도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어떤 한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전 세계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교회요, 전 세계의 교인들이 한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재발견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기 위하여 모이는 모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를 보편적 교회라고 불렀다.
2)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사도신경의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이라는 문자적 의미는 성도의 교제를 의미한다.이 성도의 교제는 사도신경의 문맥으로 보아 성령에 대한 고백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도의 교제가 이어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함을 의미한다. 성도의 교제는 신령한 교제이다. 교통이라는 단어는 희랍어로 코이노니아(κοινωνια)로 번역되는 라틴어 코뮤니오(communio)에서 나온 말인데 단순한 친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코이노니아는 연합, 결합, 교섭, 영적인 사귐, 친교, 친근한 관계, 참여, 나누어 가짐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한다는 말은 모든 참 신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합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서로가 각기 연합되는 것을 알게 된다. 만약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또 당신이 연합된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연합되는 것이다.
코이노니아가 성서안에서 쓰여질 때는 하나님과의 사귐, 그리고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인간 상호간의 친교를 동시에 의미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성도가 서로 교통한다’는 말은 단순한 평면적인 관계가 아니라 입체적인 관계를 지칭하는 것이다. 성도들은 먼저 위로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교제를 해야하고, 성도 상호간에 수평적인 교제를 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성도간의 교제는 교파를 초월한 보편적인 교회의 개념안에서의 교제이며, 전 우주적인 의미에서 현재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도 다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의 미래까지도 현재적인 시각에서 보고 계시지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카톨릭에서 말하는 ‘통공’이라는 개념은 전 우주적인 성도의 교통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에서 시간과 공간을, 하늘과 땅을 포괄하는 성도의 사귐을 엿볼 수 있다.
5. 죄를 사하여 주는 것과
1) 죄의 실제죄는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를 뜻합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참된 일치의 관계를 깨는 데서 발견된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고 만물을 지배하려 한다. 하나님을 거역한 사람은 자유 의지를 지니고 있지만 진리, 정의, 선을 행할 수 있는 의지의 자유를 지니지 못한다. 그들의 자유 의지는 악을 행하는 데는 자유하다. 여기서 죄의 본질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다시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인간의 심령과 육체속에 들어온 죄성 즉, 죄악성이 근본임을 알아야 한다. 이 죄성이 인간의 부패된 정욕의 세력과 연합할 때 우리는 자범죄를 짓게 된다.
2) 속죄 은총의 준비사도신경에서는 죄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그는 사랑이시오,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오, 사람을 살리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어떻게 죄를 사하여 주시는가 그 방법에 대해서는 이미 사도신경의 이전 부분 특히 예수님의 탄생,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심, 부활, 승천, 재림, 성령강림등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성경 말씀(롬6:23)대로 아담이래로 죄를 범한 인간에게 죄용서의 방법은 죽음 밖에는 없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공의의 분명한 한계이다. 이 공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에 하나님께서 직접 구원의 역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 사건이다. 이렇게 탄생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버림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속죄의 은총을 마련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막연한 하나님의 사랑을 근거로 죄 용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양측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
3) 속죄 은총의 적용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하나님 보좌에 피묻은 몸으로 들어가심으로 사죄의 은총과 성결의 은총을 준비하시고 성령 강림을 통해 이제 준비된 사죄의 은총을 성도들에게 공급할 준비가 완료되었다. 이제 성도들은 성령님의 도움으로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고 출애굽이라는 구원의 첫걸음을 내딛을 때 성령님께서 우리 심령 안에 들어오시면서 그 때까지 지은 모든 자범죄를 용서해 주신다. 이 때부터 성도는 범죄할 때마다 회개를 하게 되는데 바로 이때 사죄은총이 이제 주관적으로 개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가 없이는 결코 객관적으로 준비된 사죄은총이 적용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죄 용서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4) 공로설의 오류비성서적인 죄사함의 방법중에 대표적인 견해가 바로 공로설이다. 이는 보상주의가 교회에 침투하여 신학화된 개념이다. 예를 들면 도둑질한 것이 있으면 고아원을 세우기도 하고 악행을 했으면 고행을 하려고도 한다. 적선을 하고 고행을 함으로써 보상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죄의식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생각에 근거한 속죄 행위나 보상 행위가 결코 죄를 사해 줄 수는 없다.
이러한 사상은 중세기에 강하게 대두되었는데 이 이론에 근거하여 면죄부를 판 것이다. 즉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면서 막대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를 만들어 교인들을 상대로 팔았던 것이다. 심지어 죽은 사람이라도 그 후손이 면죄부를 대량으로 사면 그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가게 할 수 있다고까지 했다. 실로 엄청난 오류인 셈이다. 예수님의 보혈로 준비된 속죄은총을 제외하고 죄용서를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는 이것을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을 받은 그 은혜를 진실로 받았다면 우리의 행실 또한 그에 상당하게 빛된 열매를 맺게 된다. 그러므로 선행은 죄사함을 받은 결과 나타나는 것이지, 죄 자체를 사해주는 효과는 없는것이다. 요즈음은 너무 믿음을 강조한 나머지 행실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믿음과 행실은 마치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아야 하겠다.
6.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1) 부활 신앙
사도신경을 암송할 때마다 우리는 육체 부활에 대한 신앙을 확고히 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이 따라야 할 모형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1)고 말했다. 또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3:21)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육체가 중요하며 내세에도 육체가 있음을 믿는다.
우리의 육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으므로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체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범죄의 수단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의의 병기로 사용해야 한다. 우리의 육체가 완전한 부활체를 입는 순간이 완전한 구원을 이루는 순간인 것이다. 부활은 다음에 언급되는 영생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예수님께서도 궁극적으로 인간을 구원하셔서 그 자신의 생명인 영생을 주시는 것이 최종의 목적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할례인 예수님의 생명의 내주합일을 말하는 것이다. 즉,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2) 영생
사도신경의 제일 마지막 조항에 이르러 사도들은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사실 이 영생이야말로 전 인류가 언제든지 갈구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생에 대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구약의 경우의 예를 들면 전도서 3장 11절에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하는 것을 볼 때, 구약에 있어서도 사람에게 현세를 넘어서 내세가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둘째로 구약의 구원관은 사람은 음부에서 해방되어야 완전한 축복의 상태로 갈 수 있다고 한다(시16:10, 49:14-15).
셋째로 구약의 부활관은 영생에 직결된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욥19:23-27, 시16:9-11, 17:15, 49:15, 73:24, 사26:19, 단12:2).
다음에 신약의 영생에 관한 가르침을 본다면 구약보다 더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첫째는 선한 사람의 영이나 악한 사람의 영이 육체의 죽음 후에도 그대로 남아있어서, 생전의 생활의 정도에 따라 상벌을 받는다는 것이다(마10:28, 눅23:43, 요11:25, 14:3, 고후5:1).
둘째, 선인이나 악인이 다같이 부활한다.
셋째, 신자들은 장차 부활하여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과 영원불변한 축복의 상태에서 계속 산다(마13:43, 25:43, 롬2:7, 10, 고전15:49, 빌3:21, 딤후4:8, 계21:4, 22:3-4). 이와 같은 증거를 볼 때 성경에 관한 한 부활이나 영생에 대한 사상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본다.
과거의 창조의 역사나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섭리,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계약 관계나 예수님의 성육신 목적이나 사람의 부활의 목적이 다 이 영생으로 연결되는 것이며, 영생에 있어서 그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영생의 성질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신적이요, 지상적인 것이 아니라 천상적인 것이다.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완전한 것이며,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일체의 성질을 제거한 후에 주어진 생명이며 죄있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온갖 본성을 제거한 뒤에 주시는 생명이다. 이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이므로 인간의 이성으로 완전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생은 오직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만 가지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생한다는 것은 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한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D. 아멘
"아멘"이라는 마지막 단어는 ‘틀림없습니다’, 혹은 ‘그렇습니다’라고 번역해야 하는 히브리어이다. 그래서 “아멘”이란 사도신경 전체를 훑어 보고나서 ‘옳습니다. 이것은 진리이며 내가 진정으로 믿는 내용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당신은 사도신경 전체의 내용에 대해 아멘할 수 있는가? 이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참되다는 것을 단순히 믿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데서 우러나와야 한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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