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 계통
십일조 계통
히브리서 7:8-10
십일조 계통이스라엘 내에는 지상에서 열심히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특이함으로 차별나게 일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레위인들입니다.
다른 이들은 스스로에게 먹일 양식을 생산하는 일에 종사하지만 레위인들은 그것도 정반대되는 일을 합니다. 쉽게 말해서 “죽어도 좋아”라는 식의 각오로 임해야 하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일에 인간들의 죽음의 근원과 관련되어 가장 근접성을 지닌 일임을 반복적으로 실시하게 하셨습니다.
즉 레위지파는 이 세상에서 그 어느 인간보다 가장 위험한 극한 직업이 되게 하십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여호와의 관유가 너희에게 있은즉 너희는 회막문에 나가지 말아서 죽음을 면할지니라 ”(레 10:1-2,7)
이러한 죽음에 대해서 레위지파는 여타의 사람들과는 차이나는 태도를 가져야 됩니다. ‘죽음과 가장 가깝다’는 것은 늘 ‘진리를 가까이 두고 산다’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하는 서늘한 느낌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단순히 ‘고맙다’를 넘어서서 영광스러운 위치라고 여겨야 합니다.
이 영광은 레위지파를 관통하는 십일조 율법축에 의해서 그 실제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즉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아브라함이 레위지파 안에서 십일조 율법을 통해서 여전히 그 실재성을 발휘하고 있는 겁니다.
즉 죽은 자가 언약이 이어지는 공간 안에서 여전히 함께 살아 있는 겁니다. 이것이 멜기세덱 가족의 신기함입니다. 멜기세덱 자기네 만의 가족 구성을 위하여 언약이 주어지고 십일조 율법은 언약 출처와 알려주는 표현입니다.
인간 세상은 나름대로 육신의 원천과 연결된 계통을 유지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조상 제사’입니다. 언약이 없으니 그것이라고 해서 자기 세대의 정체성을 확보하려고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