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관계에 대한 성경적 근거
1. 구약시대의 결혼 1) 태초의 결혼 결혼은 하나님에 의해 제정되었으므로 신중하게 계발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결혼은 우리 인간의 성별의 목적과 성취이다.
그리고 가정 생활과 행복의 고유한 배경이 된다.
결혼에 관한 성경 구절들로는 창세기에서 발견되는 구절들보다 더 아름다운 구절들은 별로 없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우리는 성경안에서 원만한 가정과 함께 종종 실패한 가정을 읽게 된다. 그러나 이 실패들은 언제나 그들의 속성, 즉 하나님의 의도와는 다른 인간의 탈선들에 기인하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결혼을 위한 신약 성경의 표준들을 구약 성경 이야기들에 적용시키기를 주장한다면 우리는 실망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구약 성경의 양식들과 원리들이 의미 있는 친족관계와 행복한 가정들을 세우고 육성하는 방법에 관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과 바울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근거하여 결혼과 가족에 관한 그들의 가르침을 세우고 있는 사실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마19:4-5, 5:31).
(1) 결혼의 역사 창세기 2:18-21의 하나님의 창조사(創造史)를 읽게 되면 하나님께서 인류 역사를 시작하심과 함께 결혼의 기원을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자를 지으신 목적과 지으신 방법이 나온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 남자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창조되었으며, 결혼을 통해서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도록 하셨다(창1:26-28).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결혼을 허락한 것은 첫째는 성행위, 둘째는 남편과 아내사이의 반려 관계 형성, 셋째는 가족 경제기능, 넷째는 종교적 기능, 다섯째는 자녀를 낳아서 대를 이어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남자와 오직 한 여자와의 결합만 땅에 전제하셨다(창2:24참조).
(2) 결혼의 참 그림자 성경의 결혼역사는 아담이 첫 테이프를 끊은 이래 현실 세상에서 영구적이다. 그리고이것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혼인 잔치로 막을 내린다. 바로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의신비로운 연합을 상징하는 모형이다. 아담이 한 아내를 얻기 위해 옆구리를 찢기우고 피흘려야 했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의 옆구리를 찢기우고 피흘리심으로 교회가탄생했다(행20:28, 2:36-47참조). 바로 아담 부부의 범죄 후 인간 유죄시대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인 어린양 혼인 잔치에 의해 회복되고 인류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될것이다(계21:2참조).
(3)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전제에 비추어 결혼과 가정을포함한 인간 관계들을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가 창세기의 가르침을 이해하기만 한다면우리는 성경적 결혼관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은 인격적인, 이성적인, 신뢰할 수 있는, 창조적인, 주권적 및 영적인 피조물이다.
인간은 도덕적인 선택과 지성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다.
또한 깊고 의미 있는 관계들을 맺을 수 있다.
이것이 결혼에는 필수적이다.
물론 인간이 이러한 놀라운 능력들을 소유하고 있는 반면에 인간이 그 능력들을 완전히 조절하지 못하므로 해서 왕왕 좌절을 겪게 되기도 한다.
바로 이것이 성경은 '죄'라고 부르며, 그것을 또한 인간의 타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한 교리는 우리를 절망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소망으로 인도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을 실력대로 평가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그의 창조주에게 다시 순종하도록 촉구한다.
이 돌아서는 회심을 통해 인간은 그의 완전한 잠재력뿐만 아니라 동시에 새로운 자유와 다른 인간들과의 관계들 속에서의 새로운 차원들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을 닳은 인격임을 말한다. 즉 완전한 지(知)정(情), 의(意)를 갖추었다는 뜻이다.
그것은 또한 마음도 감정도 의지도 죄의 침해를 받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4) 남자와 여자로서의 인간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 들의 이름을 '사람' 이라일컬으셨더라".
우리가 '사람'(man)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우리는 그것을 남성에 제한시키는 경향이 있다. 위에서 인용된 구절들이 기록된 창세기 기사에서 '사람'(man)이나 '아담'(Adam)이라는 단어들은 두 가지 성(性)들을 나타내고 있다.
남성과 여성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으로 전체에 대한 보충적인 표현들이다. 창세기 1장에서의 창조 기사는 神중심적이고 개괄적이다. 창세기 2장에서의 창조 기사는 인간 중심적이고 세부적이다.
어떤 일시적인 독자들이 제시하고 있듯이 이 창세기의 장들 사이에는 전혀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다.
창세기 1장은 창조의 면류관으로서의 인간과 더불어 창조의 광범위한 영역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에 2장은 하나님(7절), 인간의 환경(9-14절). 인간의 책임(15-17절), 인간의 주권(19, 20절, 창1:26; 시8편)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의 성별(18, 20-24절)등과 관련된 인간의 관계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 인간성별의 주제는 우리의 당면한 연구에 중요하다.
창세기 2:18-21에서 말씀되고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는 몇 가지 사실들이 명백하게 떠오른다.
첫째, 그 이야기에는 한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아담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 실재한다. 이 이야기의 문맥 속에서 생각할 때 바로 이 관심이 하나님께서 하와를 창조하셨던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이 된다.
둘째, 우리는 인간의 상관적인 측면도 발견하게 된다. 한 인격적인 존재로서 아담이 고독하고 미완성적인 존재로 나타나고 있다. 즉 그는 창조물 가운데에서 비할 데 없는 독특한 존재의 위치에 서 있지만 돕는 배필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고유한 관계의 능력을 실현하려고 한다면 그는 관련이 될 어떤 존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성경이 지적해 주고 있듯이 인간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필요로 한다(창2:18).
이 필요성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더욱 발전된 증거가 된다.
성경의 하나님은 비인격적인 무정한, 독자적인 존재이신 것이 아니라 관계들 안에서 즐기시고 그 자신을 나타내시는 살아 있는 인격이시다.
셋째, 이 이야기 속에는 아담의 응답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은 하와를 남자와 전혀 관계없이 창조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그녀에게 즉시 반응을 나타내어 그녀를 그녀 자신으로 생각하면서도 그 자신과도 관계를 가진 존재로 이해했다.
그것은 마치 그 형상이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가 거울을 보고 그가 본 것을 좋아했던 것과 같다.
그것은 마치 그가 이렇게 말했던 것과 같다. "그녀는 '나'이면서도 그러나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를 나타내는 히브리어 단어인 '이쉬'(Ish)와 '이솨'(Ishah)에서도 암시가 되고 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더욱 자세히 고찰하게 되면 인간 관계들의 기본에 관해 아주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이 성경 기사는 하나님이 하와를 아담에게서 '만드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의 기사를 읽게 된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이 기사의 아름다운 묘사를 통해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들을 배우게 된다.
첫째, 남자는 여자의 창조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여자는 하나님의 수공품이었다. 이 이야기의 해설자는 남자가 잠들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단순히 마취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도 아담이 창조에 있어서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둘째, 여자가 남자에게서 독립된 존재이긴 할지라도 여자는 남자의 한 부분이다.
창세기 저자가 문자적인 의미에서 갈빗대 하나에 대해 생각하도록 우리에게 의도하고 있든지 안하고 있든지 그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고찰 중인 관계에 대한 것이다.
'갈빗대' 에 대한 히브리어 단어는 아마도 '옆구리'(side, NIV)로 해석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 그것은 '여자'가 실제로 남자의 인격의 한 온전한 면(side)이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거기에 여성에 관한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이 특성은 남성과 비교될 때 가장 잘 이해가 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간적 성별의 육체적인 면을 과장하고 악용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성경이 이 육체적 양상을 인정하고 있는 반면에 그것은 한 남자와 그의 부인의 심리적이고 영적인 연합에 주의를 환기시키는데 더 많은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설사 중상적인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리 시대의 여성 차별주의에 대한 논쟁에 있어서 성경이 남성 우월주의를 지원하는 문서들 가운데 하나로 공격을 받아 오고 있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다.
잘못 전해들은 여성 해방론자들은 성경을 남성 우월권의 대헌장으로 이해해 왔으며 여성의 권리를 확립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경을 출입금지 지역으로 선포해 왔다.
어떤 여타 문학도 성경보다 더 여성의 권위를 확립하고 여성들을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키는 데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이 진실이다.
더욱이 지금 우리가 고찰하고 있는 이 특별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그것은 여성이 아담을 위한 일종의 장남감으로서가 아니라 아담의 협동자와 보완자로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나타내고 있다.
신약 성경 구절을 인용해 보건대 아담과 하와는 남편과 아내로서 '생명의 은혜를 함께 유업으로 받을 자'들로 제시되고 있다(벧전3:7).
어거스틴(Augustine)은 이 창세기 기사를 주석 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여자를 남자의 머리에서 만들지 않으셨으며,
또한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여자를 남자의 발에서 만들지 않으셨던 반면에 남자와 여자가 서로 협력자들이 되도록 여자를 남자의 옆구리에서 만드셨다고 해석을 했다.
(5) 남녀의 차이 남자와 여자가 심리적으로 보완이 되는 것은 전혀 별 문제로 하고 남녀 간에는 서로의 육체적인 차이가 있다. 이 사상은 창세기의 창조 기사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성(sex)은 성경에서 추잡한 단어가 아니라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의 요소가 된다(창1:28).
하나님께서 최초의 결혼을 주례하셨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성경은 단순하게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하와)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성애(異性愛, heterosexuality)의 기적과 상호적인 사랑의 이적을 통해 남자와 여자는 심리적이고 육체적인 완성을 다같이 발견했다.
바로 여기에 결혼의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양식이 존재한다. 그 밖의 무엇이든지 다른 것은, 즉 동성애 관계나 혼외 정사 등과 같은 것은 탈선이며 실제로 하나님의 질책과 심판을 받게 된다(출20:14; 신22:2; 레18:22; 20:13).
자녀의 출산은 결혼의 완전히 자연적이고 예기된 결과이다. 이상적으로 말해서 자녀들은 성적 욕구를 동시에 만족시켜 주는 사랑의 행위에 의해 출산이 된다. 바로 이것이 결혼과 가정 내부의 안전을 받혀주는 기반이다. 이것은 다음의 말씀들이 지닌 의미의 본질적인 요소가 된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6) 떠남과 연합 결혼과 가정의 여타 중요한 양상들이 '떠남'(leaving)과 '연합'(cleaving)이라는 말들속에서 표현이 되고 있다. 이 단어들은 모든 각 세대와 모든 각 새로운 가정 단위에 대한 독특하고 독자적인 역할도 암시하고 있다. 일단 자녀들이 성년에 도달하게 되면 그들이 가족의 둥우리를 떠나서 그들 자신의 가족들과 가정들을 세우러 나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당연히 예기되는 일이다. 그리고 각 새로운 가정은 대용물일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새로운, 독자적인 그리고 책임 있는 가정이기도 하다.
또한 이 단어들은 사람들이 적절하게 '떠날' 때만이 책임 있게 '연합'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책임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에게 결혼을 위한 준비를 시켜야 될 책임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결혼이 성립될 때 그들의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들이 단절되는 것을 허용해야 된다는 것도 의미한다.
또한 그것은 이제 함께 결합한 새로운 부부가 책임을 수납해야 하며 새로운 가정 단위를 성실하게 세워야 된다는 것도 암시하고 있다.
위협을 느끼는 젊은 기혼자들은 '연합' 이 '떠남' 을 요구할지라도 '연합'은 '떠남' 에 대한 변상들 이상의 것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이해해야 된다.
'연합한다' 라는 단어는 결혼 관계의 영속성을 암시한다. 나중에 이것에 대해 더 많이 언급하게 될 것이지만 하여튼 창세기 기사는 아주 최소 한도로 일부일처제, 정절 및 영속성 등을 분명하게 암시하고 있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Who We AreWhat We EelieveWhat We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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