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과 주일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안식일과 주일

(출20:8-11)

 

오늘 이 시간은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 곧 제 4 계명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4 계명은 안식일 계명인데, 출애굽기 20장 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원문을 직역하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기억하라.”가 됩니다.

안식일은 이스라엘 백성이 신 광야에 있을 때 주어졌습니다. 엿새 동안은 매일 아침에 만나가 내리고, 일곱째 되는 날에는 없었습니다. “내일은 여호와의 안식일이다. 각자 자기 처소에 머물고 나오지 말라.”(출 16:21-26) 그런데 하나님은 이제 시내산에서, 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거룩하게 하라”는 것은 다른 날들과 구별하라는 뜻입니다. 안식일에는 다른 일들을 일체 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드려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온전히 바쳐라는 것입니다. 본문 9-10절에 보면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 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선 엿새 동안은 힘써 모든 일을 행해야 합니다. 엿새 동안 빈둥빈둥 놀다가 일곱째 날에 교회에 오면 곤란하겠지요? 또는 엿새 동안 내내 쓸데없는 짓하다가 주일이라고 옷 차려입고 교회에 오면, 예배드리는 것은 좋은데 엿새 동안 논 게 마음에 걸리겠지요? 그런 사람은 예배 시간에 앉아 있어도 말씀이 잘 안 들어옵니다. 엿새 동안 힘써 모든 일을 행하고, 그리고 나서 일곱째 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야 참된 예배가 됩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 계명을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이것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훈련시켜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엿새 동안은 만나를 내려 줄 것이나 일곱째 날에는 없을 것이다. 들판에 나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들판에 나갔다가 허탕 쳤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화를 내셨습니다.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출 16:28)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이 되면 들판에 나가지 않고 자기 처소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이스라엘 사람이 안식일에 나무를 하다가 발각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끌고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 앞으로 데리고 와서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서 가두어 놓았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이 사람을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께로부터 답이 왔습니다.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민 15:35) 그래서 온 회중이 그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서 죽였습니다. 왜입니까? 안식일 계명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 나가서 나무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까짓 거 뭐 ... 안식일에 나무 좀 하면 어때? 나무 조금만 해 와서 불을 때서 밥해 먹어야지 ...” “안식일이 뭐 그리 중요해? 하나님이 명령하셨다고? 체 ... 내가 내 마음대로 하는 거지, 모세와 아론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 이처럼 이 사람은 안식일 계명을 무시하고 속으로 하나님을 업신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본보기로 이 사람을 처벌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온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안식일 계명을 잘 지키게 되었습니다. “오오~ 무서워! 안 지키면 죽는다.” 그래서 벌벌 떨면서 지키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주일날 교회에 안 오고 놀러 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이 벼락을 내리치시면 좋겠는데 ... “우르르 쾅!” 하고 벼락이 내리치면 놀라서 교회로 오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왜냐고요?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셔서 오래 참으시기 때문입니다. 또 마지막 때가 다 되어 이제 조금만 있으면 최후심판을 하게 될 터인데 지금 벌 줘서 뭐하나? 그래서 참으십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는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어긴 사람을 본보기로 처벌하였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으로 지켰습니다. 이사야는 “안식일에 오락을 행하지 말고 사사로운 말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사 58:13). 또 느헤미야는 안식일에 물건을 사고 팔지 말라고 했습니다(느 13장).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서기관들 곧 랍비들은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들 목록을 만들었는데 234개의 금지 항목을 만들었습니다. “안식일에 추수를 하지 말라.” “안식일에는 2천 규빗(약 1km) 이상 여행하지 말라.” 또 “안식일에는 병도 고치지 말라. 다른 날 고쳐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되면 장례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안식일을 엄격하게 지켰는데, 그러다 보니 너무 형식적이 되었습니다. 마음은 없이 겉으로만 지켰습니다. 안식의 참 의미를 잊어버리고 오히려 사람을 옭아매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셔서 안식일 날에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가서 말씀을 전하고 나오시는데, 그 회당에 병자들이 있으면 고쳐 주셨습니다. 병에서 놓이게 해 주는 것이 참된 안식이라고 해서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또 귀신 들린 사람이 있으면 귀신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마귀에게서 놓이게 해 주는 것이 참된 안식이고 자유이라고 하시면서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발끈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안식일에는 병도 고치지 말라, 엿새 동안에 병을 고치고 안식일에는 고치지 말라고 했는데, 너는 왜 안식일을 범하느냐? 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병자를 병에서 놓이게 해 주는 것이 참된 안식이다. 안식일에 병 고치지 말라 하는 것은 인간의 계명이지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계명을 바로 지키고 있다. 너희야말로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서기관들 사이에 안식일에 대해 논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안식일에 대한 가르침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안식일에 선한 일 곧 자비를 베푸는 일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병 고치는 일, 귀신 쫓아내는 일은 안식일에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같으면, 의사와 간호사들이 주일에 근무하는 일입니다. 주일이라고 환자를 안 돌본다고 하면 곤란하겠지요? 병원이 있는데 “주일은 쉽니다.”고 하면 급한 환자들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물론 응급실로 가면 대개 레지던트들이 있는데, 그런데 주 52시간 근무제라서 “오늘은 담당의사가 없습니다.”고 하면 곤란하겠지요? 사람이 죽어 가는데 주 52시간 근무제 운운 하는 것은 율법적입니다. 사람의 생명보다 인간이 만든 제도를 앞세우는 게 바로 율법주의이고 바리새주의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계명보다, 인간의 제도보다 사람의 생명을 더 중히 여기셨고, 병에서 놓임 받는 것을 참된 안식으로 보셨습니다.

 

둘째로, 안식일에 긴급한 일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실 때에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이삭을 잘라 비벼서 먹었습니다. 안식일에 이 마을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가까운 이웃 마을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셨을 텐데 왜 강사에게 밥을 주지 않았을까요? 이상합니다. 어쩌면 예배 후에 병자를 고쳐주신 사건으로 인해 분쟁이 일어나서 쫓겨났는지도 모릅니다. 안식일을 범했다고 해서, 죄인에게는 밥 줄 수 없다고 해서 쫓아 보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제자들도 같이 굶게 되었고, 그래서 배가 고파 밀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보고 또 공격했습니다. “당신의 제자들은 왜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합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갈 때의 일을 말씀하시면서 긴급할 때에는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거룩한 빵)도 먹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도 안식일이라도 자비를 베푸는 일과 긴급한 일은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긴급한 일은 오늘날 같으면 예를 들어 불 끄는 일입니다. 소방서에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주일날 불이 났어요. 그러면 급히 연락이 옵니다. 그런데 이 소방대원이 “지금 예배 중이라서 불을 끌 수 없습니다.” 이러면 되겠습니까? 또는 자동응답 멘트로 “지금 예배 중이니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또는 군대의 합참의장에게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핵미사일이 서울을 향하여 날아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합참의장이 “나 예배 중이니 예배 끝난 후에 다시 보고해!” 이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서울이 잿더미가 되고 합참의장도 잿가루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긴급한 일은 주일에도, 심지어 예배 중이라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린이 여러분, 질문이 있습니다. 주일날 점심 먹고 나서 아이스크림 사 먹는 것은 긴급한 일일까요? 아닐까요? 긴급한 일 아니지요? 그런데 어떤 아이는 “나는 점심 먹고 나서 아이스크림 안 먹으면 죽을 것 같아요. 저에게는 긴급한 일이에요.”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스크림을 안 먹으면 죽을 것 같다고요? 이런 사람은 뭔가 큰 병이 있으니까 빨리 병원에 가야 합니다.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해야 합니다. 뇌수술을 해야 해요. ... 그런데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잖아요? 먹으면 기분이 좋잖아요?

그래서 아이들이 주일날 아이스크림을 사 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미리 토요일에 사서 교회 냉장고에 넣어 두면 됩니다. 토요일은 노는 날이 아니라 예비일입니다. 주일을 준비하는 날입니다. 주일학교 교사들은 공과도 준비하지만 어린아이들 간식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이번 주일에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줄까? 떡볶이? 피자? 감자튀김? 이래저래 생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아이스크림도 좀 사다 넣어 놓고 ... 피자나 감자튀김 재료도 사서 넣어 놓고 ... 이처럼 교사들은 토요일에 교회에 와서 준비하고 또 한 번 기도하고 가야 제대로 된 교사입니다. 다른 성도들도 토요일이 되면 주일을 바라보며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일날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하고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토요일에 사다 넣어 두면 고양이를 조심해야 하는데, 혹 청년이 와서 살짝 먹고 갈지 몰라요. 그래도 기도하고 나서 하나 먹고 가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기도도 안 하고 아이스크림만 먹고 가면 곤란합니다. 얌체 고양이입니다. 도둑 고양이입니다.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중에 돈 벌면 먹은 만큼, 아니 몇 배로 사다 넣어 둘 것입니다. 어쨌든 자꾸 교회를 들락날락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 안식일 계명은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지켜야 합니다. ‘안식’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문자적으로, 율법적으로, 맹목적으로 지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는 1km 이상 가면 안 된다.” “안식일에는 불도 때면 안 된다.” “안식일에는 병도 고치면 안 된다.” 등등. 이런 것들은 사실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고 랍비들이 갖다 붙인 것입니다. 우리는 ‘안식’의 참 의미를 생각하고, 그 목적과 정신을 따라 바로 지켜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고 하셨습니다(막 2:26-27). 인자(人子) 곧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 중심으로, 예수님을 위해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안식일 계명, 제 4 계명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지켜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문자 그대로 일곱째 날을 지키지는 않습니다. 일곱째 날은 토요일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킵니다. 오늘날 안식교, 하나님의 교회 등도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꼭 토요일에 안식일을 지켜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오셨고 예수님은 율법을 다 이루셨고 율법의 완성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율법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해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지킵니다.

신약 성경에 보면, 처음에는 그리스도인들도 토요일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유대의 교회들은 처음에는 오랫동안 토요일 안식일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전도한 소아시아 반도의 드로아 교회는 “그 주간의 첫날에 떡을 떼려 하여 모였다.”고 합니다(행 20:7). 그리고 고린도 교회는 “매주 첫날에 헌금을 해서 모아 두어라”고 말합니다(고전 16:2). 그리고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에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어” 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계 1:10).

이처럼 초대 교회는 점점 ‘안식 후 첫날’인 주일 즉 일요일에 모이는 것으로 변천되어 갔습니다. 안식 후 첫날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령이 강림하신 오순절 날도 안식일 이튿날 곧 주일(主日)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주일은 2세기에는 정착되었습니다. 주후 100년경의 디다케에 보면 “주의 날에 모여서 빵을 떼고 감사기도 하여라.”고 말합니다(XIV. Cf. 바나바서 15,9; 익나티우스, 마그네시아 IX,1).

그러나 우리는 꼭 어느 날에 모여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토요일에 모여야 하느냐? 일요일에 모여야 하느냐? 이런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로마서 14장 5절에 보면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의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날마다’ 성전에 모였다고 합니다(행 2:46). 매일이 주일과 같았습니다.

따라서 날이 중요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사는 기독교인들은 토요일에 모여 예배드리는 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 날이 공휴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금요일이 안식일이니까 금요일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는 대개 일요일을 공휴일로 하고 있으니까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에 모이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날을 ‘주일(主日)’ 곧 ‘주의 날’이라 부르는데, 이 주일은 넓은 의미의 안식일에 속합니다. 곧, 신약의 안식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은 안식일이 아니다”고 하면서 “주일은 내 마음대로 해도 좋다, 자유다.”고 생각하는데, 주일도 안식일에 속한다고 보는 게 옳습니다. 안식일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의 안식일과 영원한 안식(히브리서)입니다. 영원한 안식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누리게 될 것인데, 우리는 지금 그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따라서 지금 주일은 영원한 안식을 맛보는 맛보기이며 예표입니다.

구약의 율법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다고 해서 그 율법이 폐지된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은 폐지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율법을 완성하셨다고 해서 이제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살인해도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간음해도 된다는 것도 아니고, 도둑질해도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신을 섬겨도 된다는 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고 하는 제 4 계명도 폐지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1절에서는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신명기 5장 15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의 주가 되시기 때문에 주의 날에 모여서 예배드립니다. 이처럼 안식일을 지키는 이유와 동기는 조금씩 다르고 변하였지만(즉, 창조 --> 구속(구원) --> 부활), 안식일 계명 자체는 우리가 존중하고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일을 더럽히고 훼손하고 있습니다. 주일날 마트에 돌아다니지 말고 물건을 사지 말라고 하면 요즘 성도들은 우습게 여깁니다. 전에는 주일날 청함 받아 설교하러 가면 난처한 일이 있는데 예배 후에 식사 대접한다고 식당으로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강사 대접한다고 좋은 식당에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는 식사기도 시킵니다. 속으로 난처하지만, 안 먹는다고 할 수도 없고 기도 안 한다고 할 수도 없고 ... 가시방석에 앉아 모래 씹는 기분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일들이 잘 없는 것 같아요. 요즘은 대개 교회 안에서 식사하는데 편하고 좋습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에서는 주일날 순서를 다 마치고 나서 무슨 모임을 식당에 가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학생들을 지도한다고 주일날 식당에 데리고 가서 밥을 사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열심을 내는 것은 좋으나 그렇게 계명을 어겨가면서 해서 잘 되겠나?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참 신앙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고 복을 주십니다.

 

요즘 한국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많이 나가는데, 교회 성도들도 많이 나갑니다. 이런 것은 좋은 현상인데, 문제는 주일을 끼워서 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일부러 주말을 이용해서 다녀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경우에 주일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아예 주일을 무시하고 여행하며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멀리 가면 부득불 주일이 끼게 되는데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오래 전에 신앙 좋은 목사들과 신학자들과 함께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주일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일은 호텔에서 에배드리고 쉬든지 아니면 주위의 교회 찾아가서 예배드렸으면 좋겠는데, 어른들은 어떻게 하느냐? 아침에 호텔에서 간단히 예배드리고 나서는 버스 타고 출발합니다. 완전 난감합니다. 같이 다니니까 나 혼자 돌아올 수도 없고 ... 그래서 그때 느낀 것은 단체로 같이 다니는 것은 문제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 후로는 같이 잘 안 다닙니다. 굳이 간다면 나 혼자 또는 가족과 함께 갑니다. 그런데 여행 중에 주일이 끼면 어떻게 하느냐? 저는 토요일과 주일 이틀치를 같은 숙소에 예약합니다. 그래서 주일은 예배드리고 쉽니다. 그리고 나서 월요일 아침에 출발합니다. 이렇게 안식하고 나면 몸도 편하고 마음도 가뿐합니다. 여행이 은혜롭고 의미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저마다 똑똑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도 큰 교회를 하고, 이래 저래 유명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똑똑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찾으십니다. 계명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도 신앙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의 계명은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저런 말들에 휩쓸릴 필요가 없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켜 행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귀히 여기시고 복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6장 2절에 보면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의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하지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와 같이 하는 사람, 이와 같이 굳게 잡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고 합니다.

 

이사야 58장 13-14절에서는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聖日)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쁨으로 주일을 지키고 즐거워하며, 이 날을 귀하게 여기고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하겠고, 은혜와 사랑이 풍성해야 하겠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지켜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귀하 여기시고 복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이 믿음으로 잘 자라고, 이 믿음을 계속 잘 전수해서 자자손손 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런 복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라고 사모하면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변종길 목사(필그림교회)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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