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왜 사느냐고 묻었습니다. 인생이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묻고 또 물어왔습니다. 이에 대해 철학자라고 불려지는, 인간 중에서는 비교적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신이나 우주 또는 자연에서 그 물음의 해답을 찾다가 중간쯤엔 성경에 등장하는 여호와와 예수라는 이름만 표절한 채 답을 주지않더니 근래에는 인간의 지고지순한 정신속에 그 해답이 있다는 듯이 공상만 해대다가 지쳐 최근에는 결국 확실한 진리는 지금 존재하고 있는 내 몸뚱아리 밖에 없다고 합니다.
철학은 한 동안 내 몸뚱아리 하나 건진 덕택에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그럴 듯하게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관념적이던, 실존적이던, 도덕적이던 인간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을 잘 포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있음을 고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나는 반드시 살아 남아야 해!!!”라는 우렁한 절규의 마지막 여운 속에 작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바로 그 놈 목소리 때문입니다.
“그런데, 너는 반드시 죽어……”라는 그 듣기 싫은 목소리……
몸만이 확실한 진리인데, 그 진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결국 죽음 속으로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거의 매일 확인받고 있는 것이 인간의 현실입니다. 예상치도 못한 일로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더니, 결국 자신도 죽습니다. 사실, 철학자, 예술가들이 자살도 마다하지 않고 질주하는 처절한 몸부림은 이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것이었을 뿐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저 죽기싫다는 짧은 대답 내놓기가 민망해서 ‘이렇기 때문에 인간은 살아야 해!’라고 힘주어 거짓말을 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늙고 자신의 몸이 쪼그라들면 ‘철모를 때 했던’ 자신의 주장이나 작품을 철회하고 수정합니다. 그토록 공격했던 그 자리로 자신들이 자진해서 들어와 누워버립니다. 그러면서 한마디 내뱉습니다. 진리를 수정합니다. ‘내 몸뚱아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진리가 아니라, 반드시 죽는다가 진리이다.’라고…….
그런데, 왜 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인간을 가만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존재하고 있는 이 몸 뚱아리 속에 무엇이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에 잠겼습니다.
내 몸뚱아리 하나 덩그라니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이 몸이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 불쑥 불쑥 무엇인가 치밀어 올라오는 힘에 의해 오늘은 이것을, 내일을 저것을 갖고 갖고 또 갖고 싶다하면서 아우성이고, 어느 정도 되었다 싶어 남들은 어떻게 사나 엿보았더니 여유만만했던 눈빛은 온데간데 없고, 뒤쳐지면 안된다는 불안에 휩싸여 좀더 가져야 겠다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불끈 주먹을 쥐고 있더랍니다.
이것 저것 마치 쓰레기 같은 것을 모아놓은 더미를 보고 ‘나’라고 하려니까 매일 버려지고 새로 만들어지는 더미 안에서는 도저히 진리라고 이름붙일 만한 고리가 전혀 없어 결국 ‘나는 매일 가짜다!’ 혹은 ‘자아라는 것은 결국 없다.’ 라는 솔직하지만 아리송한 해답을 내놓아 처음 했던 질문만 머쓱하게 만든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철학은 욕망이라는 주인이 몸이라는 공장을 가동시키다가 유통기간이 끝나면 죽음에게 팔아넘기는 것이 인생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욕망과 죽음 가운데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철학이 침묵하고 있는 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욕심이 낳고 있는 죄가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 실세라는 것을 철학은 모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죄를 모르니까 죄사함을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 전체가 견고한 죄의 성벽에 갇혀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인간 외부에서 누군가에 의해 거저 주어진 ‘불쌍히 여겨주심-대신 죽으심’에 대해 관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대속자라고 하니 십자가는 저주라면서 미련하다고 하고 거북하다고 합니다.
죄를 죄로 깨닫지도 못해 꺼내주어도 꺼내준 것이 별로 감사하지도 않은 성도의 본질 속에서 휙 바람이 불면, 몸뚱아리가 제값 할려고 질질 흘리고 다니는 죄가 얼마나 당연한지, 이 세상이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구원의 공로가 오직 십자가지신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좋은지 깨닫습니다.
내 몸뚱아리 하나 끌어안고 어디 내다팔까 고민하다가 불쌍히 여겨주셔서 죄를 깨닫습니다.그리고 죄 위에 “결코 정죄함이 없다”면서 고집스럽게 자기 백성 챙기시는 참 목자 덕분에 세상의 헛된 철학과 속임수를 배설물이라고 한 사도 바울의 마음을 살짝 엿봅니다. 매일같이 몸뚱아리의 것은 모두 쓸어버리시고 처음부터 새로 믿게 하시니, 성도에게 자랑할 것은 십자가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14)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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