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정신
십자가 정신
십자가 정신 2009-11-25 15:41:04 이름 : 김성환
십자가 정신은 죽는 것이다. ‘나’란 자아가 누군가에 의해서 무참히도 박살나는 것이다. 여기서 ‘정신’은 넓은 의미에서 ‘마음’ 혹은 ‘혼’으로 표현해 본다. 십자가의 혼은 자기부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이든 ‘나’란 중심에서 출발하다보니 자기부인이 되지 못한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죄의 본성으로 인하여 타인을 죽이는 살인기능만 하지 자신의 ‘자아’를 죽이지 못한다. 어찌 보면 바보중의 바보다. 자신을 죽이지 못하다니.
(시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물론 자살은 자신을 죽이는 행위다. 그리고 자신의 의미다. 그러나 자살도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아니다. 솔직히 자신은 자살하고 싶지 않는데 어떤 세력이 뒤에서 떠밀어서 죽는 것이다.
요즈음 고등학생들이 술 담배 했다고 교사에게 꾸중 받으면 자신이 받은 대우가 불공평하다고 아파트 옥상에서 메시지 남기고 뛰어 내린다. 이것도 자신 스스로 결단해서 자기 몸을 공중에 그냥 던져 버린 행위가 아니다. 학생은 아무 생각 없이 자살행위를 실천으로 옮겼지만 결국 학생을 통하여 악마는 자신의 행함과 존재만 주님 발 앞에 남길 뿐이다.
(눅 8:28)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눅 8:29)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이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가끔 이 사람을 붙잡으므로 저가 쇠사슬과 고랑에 매이어 지키웠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인간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어떤 세력(군대귀신)에 매여서 광야란 현장으로 내 몰린다. 신자 불신자 가릴 것 없이 자신도 알지 못한 채 죽음의 광야로 내 몰린다. 이리저리 내몰리면서
십자가 정신을 흐리고 먹칠하고 그 혼과 마음을 자신의 타고난 죄성으로 대체해 버린다. 인간은 선악안에 너무 영리하다.
(눅 8:35) 사람들이 그 된 것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 아래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귀신들린 자는 자신이 왜 광야에 와 있는지 왜 무덤 사이에서 지나가는 객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는지 모른다. 캄캄하다. 그런데 어떤 사건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벌어졌는데 자신이 왜 이 사건에 휘말렸는지 모르다가 군대귀신이 자신에게서 나간 후 알게 된다. 그런 후 정신을 차리고 옷을 입고 주님 발 앞에 앉는다.
이 일 후에 거라사인 지역 사람들은 이 사람으로 인해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고 야단법석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짧게 대답한다. ‘하나님이 네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집안사람들에게 소상히 알려라’고 말씀하신다.
(눅 8:39)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 하시니 저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하신 것을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십자가 정신은 인간의 타고난 죄성을 정당화시켜 주지 않는다. 죽음을 요구한다. 자기 부정을 날마다 죄안에 두고 만들어 낸다. 십자가의 영은 매일 자기 정당화를 치닫는 인간을 죽이고 피로 살려 낸다. 십자가 안에 죽이고 살려내는 작업을 통해 더러운 바닥을 닦는 걸레처럼 아이가 씹다가 버린 껌처럼 자기이미지가 모두 구겨진 죄인의 모습으로 만든다. 무참히도.
(시 51:8)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할 때까지 진리의 영은 인간 밑바닥의 쓰레기를 날마다 청소하시고 그 자리에 용서로 인한 감사를 만들어 내신다. 인간은 불가능하지만 성령의 능력은 가능하다. 성령은 십자가의 피를 양보할 생각이 없으시다. 모든 만물 구석구석 다 비집고 들어가 주님의 자녀를 찾아내어 주께서 꺾으신 뼈의 정신과 혼을 온 몸으로 체휼할 때까지 그 작업은 멈추지 않는다.
(시 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주님의 구원의 즐거움이 죄인에게 회복될 때까지 성령은 쉬지 않는다. 그리고 주님의 첫 사랑이 죄인의 심령안에서 만개할 때까지 성령의 활동은 피안에서 계속될 것이다.
(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십자가 정신! 내가 이룬 공적과 행함을 내 이름으로 내 놓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 정신은 주님의 처음 사랑을 날마다 주님 발 앞에 내 놓는 것이다. 자기 애착을 모두 빼버리고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만을 드높이는 상한 심령으로...숨이 멈출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