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영광 신학의 설교와 십자가 신학의 설교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2. 십자가 신학 - 바른 하나님 인식의 길

루터는 십자가 신학을 다음같이 정의한다: 십자가의 신학은 “하나님의 보이는 것, 그의 뒷면을 고통과 십자가를 통해서 보고 지각한다.”28) 루터는 출애굽기 33장 주석을 통하여 십자가 신학을 전개한다. 모세는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간구한다. 이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의 얼굴을 보는 자는 살지 못하리라“(출33;20). 하나님은 모세를 바위 틈에 두시고 그의 영광이 지나가기 까지 모세를 그의 손으로 덮으신다. 모세는 하나님의 뒷면만을 보고, 그의 영광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십자가의 신학은 하나님의 뒷면을 보는 신학이다.

십자가 신학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신자의 십자가를 하나님 인식의 기준으로 제시한다. 십자가의 신학은 하나님이 숨어 계신 처소, 즉 약하심, 미련함 속에서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인식하고자 한다. 십자가의 신학은 인간을 고난과 수난으로 부름 받은 자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이 십자가는 하나님 앞에 서는 인간을 무능화 한다. 인간이 스스로 무엇을 하는 대신에 오히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인간 속에 행하시도록 한다. 인간은 순수히 하나님의 공로와 은혜를 수용하는 자가 된다.29) 십자가 신학은 영광의 신학의 기준에 따르면 고난, 즉 악함과 미련함 속에서 하나님을 인식한다.

루터는 피력한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사역들로부터 하나님의 인식을 오용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시 고난으로부터 인식되기를 원하며, 보이지 않는 본성의 지혜는 보이는 본성의 지혜를 통해서 폐기되기 원하신다.”30) 루터에 의하면 하나님의 계시됨과 십자가 속에 그의 감추심은 대립된다. 루터에 의하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안에 진정한 신학과 진정한 신 인식이 있다.31) 십자가는 자연신학과 자연적인 에토스(ethos)의 자기의식을 깨뜨린다. 십자가는 인간의 성공이나 번영의식을 깨뜨린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죽음 속에서 우리를 만나신다, 그래서 인간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자기의 죽음으로 경험한다.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하나님의 지혜이다. 이에 반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세상의 지혜에는 감추어져 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연약하고, 우둔한 것이 나타나 있다. 십자가 신학은 십자가에 달리신 십자가에 감추어진 하나님을 증언한다. 이것은 오로지 겸허하고 가난한 마음을 통하여 가능하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폐(die Verhüllung Gottes)이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능(die Ohnmacht Gottes)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직접적으로 계시되지 않고 역설적으로 그의 무능과 낮아지심 속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루터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은혜는 그의 진노 속에 감추어져 있으며, 하나님의 선물과 복은 십자가 아래, 말하자면 “불행과 재난”32) 아래 감추어져 있다. 하나님의 진리는 세상의 눈에는 거짓(Lüge)으로, 세상의 거짓은 진리로서 나타난다. 루터는 하나님은 세상에 대하여 악마처럼 다가온다.33)

십자가 신학의 사고에 의하면 하나님은 수천명, 수만명이 모여서 열광하고 설교자가 스타(star)처럼 청중의 환호성을 자아내게 하는 설교단에 계시기 보다는 인간적으로는 너무나도 초라한 소수의 무리들이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간절히 말씀을 듣는 세상적으로는 너무나도 초라한 설교단에 임재해 계신다. 설교자가 마치 황제처럼 청중들을 종교적 열광으로 몰아가고 번영과 성공을 나누어주는 설교단이 아니라 청결한 마음을 지닌 소수의 청중에게 재난과 어려움과 질병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는 진실한 설교단에 하나님은 임재해 계신다.

 

III. 십자가적 신학의 설교 착상

오늘날 한국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받지 못하는 가운데 하나가 한국교회가 이기주의적 영성에 사로 잡혀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이기주의적 영성은 번영주의와 성공주의라는 세속주의 설교에 감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설교가 십자가 신학적으로 새롭게 갱신되어야 한다. 번영과 성공을 지향하는 영광신학의 사고에서 나눔과 헌신을 지향하는 십자가 신학의 사고로 나아가야 한다. 십자가 신학의 설교 착상은 다음과 같이 특징지울 수 있다.

1. 인간은 고난을 통하여 신에게 나아간다.

 

뉴욕타임스(NYT) 2008년 12월호에 의하면 미국 뉴욕주 맨해셋의 셸터 록 교회는 갑자기 불어난 신규 교인들을 수용하기 위해, 접는 의자 100개와 설교를 시청할 수 있는 TV 모니터가 설치된 소(小)예배실을 급히 마련했다. 교인이 6000명가량이던 시애틀의 마스 힐 교회도 지난 9월 이후에만 1000명이 새로 교인 등록을 했다. 뉴저지(New Jersey)주의 라이프 크리스천 교회는 교인들의 기도 요청이 평소의 2배가 됐는데 대개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거나 얻게 해달라는 내용이다. 미국인들이 월가의 금융부도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고통을 당하면서 안식을 찾으려고 몰려들고 있다. 이들 교회는 어려운 경제 상황에 걸맞게, 설교 제목도 '재정적인 평화' '불안한 시대의 신앙' 등으로 바꿔 교인들에게 실용적인 조언을 주려고 애쓴다고 NYT는 보도했다.34) 2009년 4월 뉴욕의 양키스 스타디움에서 조엘 오스틴이 설교하는 소망의 집회에 4만7천명이 미국인들이 모인 것도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도 미국 월가의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세계적인 불황기 속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의 한파를 맞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사회적 현실 속에서 진정한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먼저 소금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번영의 복음 보다는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해야 하겠다. 고난을 통한 인간 내면의 성숙과 하나님과의 만남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경제적인 어려움 등 각종 어려운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부르시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고난 속에서 인간은 자기의 한계를 깨닫고 초월자에게 나아갈 수 있는 마음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인간은 이기심의 극복, 자기와의 선한 싸움. 고난을 통해서 성화된다.

 

성경은 세상의 번영이란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전 5:19). 우리가 누리는 삶이 그 분의 선물이 아니라 나의 욕망과 이기적인 동기에 지배된다면 우리의 생활은 변혁되어야 마땅하다. 우리의 번영과 성공이 하나님의 선물과 은혜가 아니라 나의 노력의 대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만과 허영과 으스댐의 마음에 지배받는 것이다. 성경은 허영을 드러내는 치장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3-4). 첨단기술을 자랑하는 포스트모던 시대는 우리로 하여금 이웃을 경쟁의 상대로 바라보도록 왜곡해왔다. 진부한 차림새를 보이는 상대방을 무시하는 우리의 마음은 번영주의적 ‘왜곡’을 증명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속적 번영과 성공을 이룬 것이 바른 신앙의 표징으로 생각하는 것은 세속의 풍습에 물드는 것이다. 한국교회 강단은 번영과 성공을 찬양하는 영광신학의 설교를 바꾸고 고난과 인내와 나눔의 가치를 강조하는 십자가 신학의 설교를 해야 한다.

 

3. 이웃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자기 희생(고난)이다.

초창기 한국 기독교는 우리 사회에 들어와 하나님 앞에서 양반과 쌍놈이라는 사회적 신분제도를 철폐하고 하나님 안에서 주인과 종, 남자와 여자, 노인과 어린이의 벽을 허물므로써 봉건사회의 구습을 타파하는데 공헌을 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는 새로운 종교적 계층을 형성하고 신자들의 이해관계만을 챙기는 인상을 줌으로써 사회적으로 기독교신자들이 이기주의적이라는 냉소를 받는다.

 

이제 한국교회는 초창기의 대사회적 헌신과 지도자적 마음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교회의 존재는 이웃과 타자를 섬기는 것이다. 자기의 유익이 아니라 타자의 유익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은 무속적 기복신앙의 극복이다. 하나님을 소원 성취의 수단으로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속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옥합을 깨뜨린 여인처럼 나의 귀한 것을 주님에게 드리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헌신은 이웃을 위한 헌신과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세계적 경제적 위기의 상황 속에서 오늘날 설교는 가진 자가 덜 가진 자와의 나눔으로 표현되도록 십자가 신학적 설교가 요청된다.

 

4. 기독교 설교의 핵심은 십자가이며, 십자가 정신이란 이웃을 위하여 자기를 내어줌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난을 대표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다. 십자가 사건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신자는 칭의의 신앙에서 성화의 신앙으로 성숙해야 한다. 소유의 신앙에서 섬김의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 주님의 십자가를 따른다는 것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이 십자가는 내가 있는 처소의 어려운 문제를 위하여 나의 몫을 다하는 신앙이다.

본회퍼는 말하는 바 같이 기독교 신자는 그리스도 같이 이 세상에서 자신만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존재이다. 그리스도는 선한 사마리아인으로서 강도만나 죽게된 사람을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기름으로 상처를 닦아주고 부비(浮費)를 주면서 그를 살려 주었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의 진정한 삶의 자세는 이 어려운 시대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여기에 개혁교회의 설교는 십자가 신학으로 정위 되어야 한다. 자기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헌금을 드리고, 하나님 앞에 애걸하는 기독교인이 아니라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성숙한 신자가 되도록 설교하는 것이다. 이러한 십자가 신학의 설교는 무속신앙적 사고방식의 변혁을 말한다. 하나님을 내 뜻에 맞도록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뜻과 삶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성찰하고 변화되는 사고방식이다. 십자가 신학적 설교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갖도록 변혁적 설교를 해야 한다.

 

V. 번영주의 세계관에 대결하는 십자가 신학적 설교

오늘날 개혁교회의 설교는 물질주의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시대 속에서 올바른 개혁주의적 세계관에 입각한 설교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한 신학적 착상은 영광의 신학을 거부하고 십자가 신학의 착상에 입각한 설교이다. 설교는 문화변혁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오늘의 문화를 비판적으로 해부해야 한다. 개혁교회는 오늘날의 번영주의 세계관의 문제를 십자가의 말씀으로 드러내고 설교 자체는 십자가 영성에 기반해야 한다.

 

1. 번영과 성공주의 세계관과의 대결은 하나님 말씀의 선포

오늘날 한국교회의 침체는 바로 이러한 물량주의적 성공주의적 설교가 그 한계에 도달하여 사회적으로 불신을 받고 있다. “한국교회 부흥이 정체된 원인은 외부에 있다. 경제성장이 가속화되면서 교회도 물량주의에 합류했고 사회, 문화, 정치 전 분야에 걸쳐 리더십을 발휘하던 교회는 경제와 소비중심의 시대인 2000년대 들어 바른 소리를 내지 못한 채 사회적 매력을 잃고 말았다.”35) 오히려 오늘날 한국교회는 부정과 타락에 둔감한 모습까지 보인다. 고속 성장을 거듭하는 목회자들을 시기하며 ‘이단’ 정죄를 밥 먹듯이 하다가도 사회법에서조차 파렴치하다고 판결받은 비윤리적인 지도층에 대해서는 계도(啓導)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 자정(自淨)능력을 포기한 채 ‘하나님의 기준’을 버리고 ‘세상의 기준’인 돈과 권력, 명예를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36) 이제 한국교회 설교는 십자가의 말씀을 가지고 번영과 성공을 구가하는 세속주의적 세계관과 대결해야 한다. 그리고 희생과 헌신을 실천하고 열매를 맺는 십자가 신학적 세계관을 선포해야 한다.

 

2. 십자가 영성이 기반된 설교

 

십자가 신학의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목회자 자신이 십자가 영성을 함양해야 한다. 십자가 영성이란 하나님 주권적이며, 고난에 동참하며, 불우한 이웃과 나눔과 타자에 대한 사랑이다. 교회가 이러한 영성에 기반할 때 사회를 향하여 존재가치를 실현한다. 그렇지 아니한 설교는 능력없는 수사학에 불과한 설교이다. 회중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기 위해서 먼저 말씀으로 묵은 땅인 돌짝 밭을 갈아 엎어야 한다. 여기에는 말씀으로 죄에 대한 지적(나태와 안일, 자기애, 이기심, 교만, 자만 등)을 해야 한다. 그 후에 비로소 용서와 평안과 소망과 평강을 말씀을 전할 수 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게세마네의 주님의 영성이다. 그리고 기복적으로 이기주의적 영성이 아니라 자기를 모든 사람들의 대속으로 헌신하는 이타주의적 영성이다.

 

3. 청중의 인기에 연연치 않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설교

 

오늘날 포퓰리즘 설교로 오염된 한국강단에는 사도바울의 설교 자세를 되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보다는 청중들의 귀를 즐겁게 하기 원하여 설교로 변질되는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로 회중들의 관심을 끌 것인가 어떤 성공철학과 축복 사례를 소개하여 회중들의 마음을 흥분시킬 것인지 하는 경향에서 돌아서야 한다.37)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네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행20;27).

오늘날 하나님이 이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 무릎끓고 기도하며 본문에 대한 깊은 연구와 해석에 집중하려는 자세가 요청된다.

누가의 사도행전은 초대교회 성장에 있어서 사도의 가르침이 주도적 원리였다고 말한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2;42-47). 사도의 가르침은 오직 구속의 메시지였다. 다음으로 교제하며, 기도에 전혀 힘썼다. 사도들은 복음의 수용에 앞서 듣는 자들의 죄에 대한 회개를 강조했다. 죄를 깨닫기 위해서는 율법이 전해져야 한다. 루터는 말한다: “율법의 방망이로 영혼이 상처를 받은 다음에 은혜의 기름이 유효하다.”그래서 루터는 율법 속에 복음이 있고, 복음 속에 율법이 있다고 말했다.

종교개혁자 칼빈의 설교는 철저한 강해설교였고 구약의 배경으로 한 복음의 설명이었다. 그가 3년간 스트라스부르그(Strassburg) 피난민 교회를 섬기다가 제네바 성 삐에르 강단에 복귀하였을 때 그의 설교 본문은 3년전 설교하였던 본문 바로 그 다음 본문이었다. 그의 설교에는 웃기려 짜깁기 한 예화나 주관적 시사해설이나 인간적 성공과 축복을 내세운 포퓰리즘적 요소(popularistic elements)가 없었다. 칼빈의 설교는 성경 강해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증거하였다.

 

 

맺음말

 

오늘날 한국교회 설교는 미국의 실용주의적 번영신학에 기초한 설교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 그리하여 복음의 본질인 십자가의 헌신과 희생의 정신이 오늘날의 시대정신인 번영과 행복으로 바뀌며, 기독교 복음이 오늘날의 상업주의 내지 마케팅과 결부되고 있다. 이것은 복음의 변질이다. 한국교회는 양적 성장 중심의 번영설교에서 말씀중심의 질적 성장으로 그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번영주의와 영광신학에 입각한 인본주의 설교에서 말씀중심의 십자가 신학에 입각한 신본주의 설교로 바꾸어야 한다. 강단의 설교는 회중들이 듣기 좋아하는 소비자 위주의 설교가 아니라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해야 한다. 오늘날 포스트모던 시대의 실용주의적 세계관과 결별하고, 십자가의 말씀에 기초한 헌신과 충성의 세계관을 정립해야 한다. 강단설교가 그 패러다임을 미국에서 모방한 적극적 사고방식이나 번영주의 사고방식의 설교에서 말씀중심의, 십자가신학적 사고방식의 설교로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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