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의 거짓말

창녀의 거짓말


창녀의 거짓말


2011년 6월 28일 화요일 오전 7:26:47  김대식



참으로 신기합니다.


인간의 막살기는 두 패로 나누어지질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막사심은 두 패로 나누어 집니다.


인간이 은사를 받았다고 우기는 쪽은 아무리 해도 두 패로 안 나누어집니다. 오히려 일치성으로 이상한 짖꺼리를 합니다. 파시즘(하나되기)으로 종교를 자꾸 세웁니다. 조직분열와해가 두려운가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성령으로 일하시니 죽음의 바다가 쩍 하고 두 쪽으로 나누어 집니다.
(하나 되기는커녕 좀전 까지 친구요 가족이요 패밀리였던 화평하던 자들이, 서로가 서로를 으르렁 거리는 원수지간으로 갈라집니다.)


그래서 또 인간들이 안막살기를 해 봅니다. 그랬더니 두 패로 나누어지기는커녕 그냥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안막살기를 하시니 어 어 어 또 두 패로 갈라지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그 꼴을 보기 싫어서 예수님을 죽여버립니다.
또 어떤 인간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무슨수를 써서라도 막아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지독한 예수님은 그것 조차도 두 패로 나누이시고자 자신의 죽음을 마련하셨습니다. 죽음조차도 두 패로 가르는 매개체로 활용하십니다. 자신의 죽음도 말이죠. 일체 양보가 없습니다. 삶도 죽음도 ...


예수님이 이랬던 저랬던 새창조가 벌어지면서 한 쪽은 긍휼 또 다른 쪽은 진노로 나누어집니다.


아 이제야 알겠습니다. 왜 인간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이심을 막고자 했고
마귀가 그 십자가를 막아서고자 하는지?


인간이 십자가 지는 행사를 벌리고
인간이 십자가에 못 박는 행사를 아무리 벌려도
두 패로 나누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더욱더 일치성의 파시즘의 어울림한마당잔치가 되어 더욱더 결속하게 됩니다.


인간이라는 아기가 태어났다고 해도 두 패로 안 나누어집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니 온 세상이 두 패로 나누어집니다.


(눅 2:32, 개역)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눅 2:33, 개역)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
(눅 2:34, 개역)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눅 2:35, 개역)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인간들의 행함으로 자기멋대로 나누어졌던 이방(죄인)과 이스라엘(의인)의 나누어짐이
예수님으로 인해 급수정 되면서 재배치 됩니다.


자기 스스로가 봐도 더러웠던 죄인인 개같이 막사는 이방인들은
먼저 천국에 가는, 창녀와 세리가 천국에 먼저 가게 되고
(양과 염소의 비유에도 동일합니다.)


아무리 봐도 더러울수가 없는 막살지 않겠다는 의인 이스라엘은
짤려서 버리운바 되는 원가지도 아끼지 않는바 됩니다.


이런 예수님의 기준에
누가 감히 안막살겠다 라는 둥, 또 누가 막살겠다는 둥 할수 있겠습니까?
무슨 수로 그 심판의 기준을 내 쪽으로 끌어당겨서 막을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주님이 실시하면 그것은 두 패로 나누어지는 표적이 되는 겁니다.
인간은 아무리 해도 표적이 안되는 그 창조를 말입니다.


안막살기 해도 삶이 안되고
막살기 해도 삶이 안되는


주님의 막살기를 고대하고 고대하고
주님의 안막살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기생라합이 40여년 동안 기다려 왔던 그 간담이 서늘하게 만드는 두 패 나누이심을
그 어떤 인간도 원하는자가 없고 이스라엘 조차도 원치 않는


기생의 거짓말이 원하고 원했던 겁니다.


허상이 아닌 기생의 거짓말이 실상이 될 줄이야?


창녀의 거짓말이 실체가 될 줄이야?


뭐 ~~ 그래도 나는 안막살기로 끝까지 버텨보겠어 남들은 다 막살아도 나는 절대로 안막살거야 ~~~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에이 그렇다면 나는 막살기로 끝까지 버텨보겠어 남들이 위선떨며 안막살기를 해도 나는 끝까지 자유하는 막살기를 해 볼 거야


(요 11:4, 개역)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요 11:5, 개역)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요 11:6, 개역)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요 11:7, 개역)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요 11:16, 개역)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요 11:17, 개역)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그러나 나흘이라는 의도적인 간격을 백날 흉내내어도 좁힐수가 없습니다. 그 모순 그 부조리 그 부정성의 죽음의 3일을 말이죠. (일부러 나사로 죽을때까지 이틀을 더 머무십니다.)


그래서 백합화 보다 못한 것들이, 실상도 아닌 주제에
솔로몬의 영광을 그 앞에서 자랑하고 있는 겁니다. 그 허깨비를 자랑하면서 말입니다.


창녀의 거짓말?


그 까짖 거짓말이야 나도 하겠다.
식은죽 먹기죠. 하루에도 수시로 나오는 거짓말을 왜 못하겠습니까?


더군다나 거짓말로 예수님의 족보에까지 오를수 있다면 지나개나 다 하지않겠나요?


막살기 나도 까짓것 하겠다.


그러나 천군천사와 악마가 시퍼렇게 눈 뜨고 칼을 갈고 있는 그 사이 틈에서
과연 거짓말이 나올지 말이죠


하나님의 군사 이스라엘과 vs 사단의 군대인 가나안 족속과의 전쟁 전의


전쟁의 촉발로써의 그 거짓말을 과연 흉내 낼수가 있을까요?


두 눈 뻘겋게 돌삐 들고 있는 율법사 바리새인 과 예수님
그 사이에서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 있습니다.


간음이 아니고서는 충돌할 이유도 없고 잡힐 이유도 없지요. 예수님을 시험할 이유도 없죠.
그 싸움의 출발 빌미로써 간음이 현장에서 생생한 실상으로써 두 세계를 갈라놓는 미끼로 작용합니다.


그 비싼 향유를 땅에 그대로 쏟아버리니 정의로운 가룟유다가 화내지 않고 배길수 있겠냐 말이죠. 그러나 이 땅에 비싼 고급 기름을 땅에 버린 막살기가 예수님의 죽음과 결부되어서 복음이 증거되는 곳 마다 기쁘게 기쁘게 증거가 되는 겁니다. 누구에게는 부끄러운 짖이 누구에게는 기념이 되는 짖이 되니 참 신기합니다.


도대체 지금 다들 어딜쳐다 보고 있는지?
간담이 서늘하게 하시는 전쟁의 신 여호와는 안중에 없고
화평은커녕 검을 주러온 예수님은 안중에 없고


그 동안 쌓아올린 마일리지 쓰레기를 기껏 꺼내들고 그것으로 뭐 ~~ 두 패로 나누겠다고?


이 전운이 두렵지 않나요? 간담이 서늘하게 녹지 않나요?


(빌 2:5, 개역)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6, 개역)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개역)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8, 개역)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9, 개역)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 2:10, 개역)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1, 개역)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2:12, 개역)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13, 개역)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4, 개역)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예수님은 주의 이름을 포기하지 않으시기에 끝까지 그 이름 때문에
뭐든지 도구기계로 활용해서 가르고 가르고 끝까지 갈라서
주의 이름만 남기실 뿐입니다. 짤려야 할 것은 인간의 이름 뿐입니다.


이 주의 이름이 높여지고 유일하게 막사신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막살지도 못하는 인간(이름)만이 돌삐들고 방해를 할 뿐이지요.
시기와 질투 때문에 말이죠.


그래서 죽으시는, 막죽으심도 자유롭게 펼치시는 겁니다.
막죽지 못하는 인간은 막안살기로 버틸뿐이며, 그 빈터(부정한 십자가)를 채울려고 할 뿐입니다.


에라이 마귀가 잘도 속겠다.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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