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단계 2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기도의  2단계 광야

애굽이 능력이 임하는 곳이라면 광야는 십자가, 자기 부인, 정화의 장소입니다.

애굽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합니다. 권능의 세계, 불의 세계,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바로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들은 승리의 삶의 맛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기독교가 너무 좋은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살아 계신 분이심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기만 하면 모든 것들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그들은 광야로 갑니다. 그들은 온갖 낙관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들은 광야로 갑니다.

이곳은 달콤한 곳이 아닙니다. 고통과 쓴 뿌리, 눈물만이 가득한 곳입니다.

애굽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시간이 되었을 때 하나님을 발견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게 되는 곳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의 본성은 세상의 사람, 육체의 사람입니다.

광야는 주님의 깨우치심을 통하여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는 곳이며 영에 속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겉 사람이 죽음을 경험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기본적인 생명을 유지하는 것 외에는 모든 요구들이 거절됩니다.

애굽에서 경험했던 은혜의 하나님께서 이곳에서는 무서운 훈련의 채찍을 드십니다.

애굽은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통과했으나 이곳에서는 자기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갈5:24)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광야의 바깥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애굽에서 방언을 했든, 예언을 했든, 투시를 했든, 입신을 했든, 기적을 행했든, 수많은 병을 고쳤든 이곳에서는 자신의 고집을 주님께 굴복시키지 않고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애굽에서 기적을 맛보고 이스라엘 백성은 신이 납니다.

“와! 좋다! 이게 바로 예수 믿는 맛이구나! 오래 믿으면서 기쁨도, 능력도 없는 사람은 도대체 뭐야!” 그들은 신이 납니다.

앞날에 대한 비전, 이상, 즐거움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속에 무엇이 있는지 모릅니다.

아직 자신들이 주님을 섬길 준비가 되어있지 않음을 모릅니다.

아직 자신의 속에 처리 받아야 할 수많은 악의 목록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광야로 갑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주님이 요단강에서 성령이 임하신 후에(마3:16)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인도하십니다.(마4:1)

그것은 영적 여정의 모형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다윗도, 요셉도, 야곱도, 아브라함도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광야를 통과합니다.

이 시대에도 그 하나님의 법칙은 여전합니다.

누구나 애굽에서 약간의 권능과 승리를 맛보고 그 다음에는 참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하여 광야의 훈련을 통과합니다.

물질 훈련, 애정 훈련, 명예 훈련, 성품 훈련..

우리가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씩, 하나씩 십자가를 통과하게 하십니다.

빨리 깨닫고 순종하여 광야 2단계, 3단계.. 이렇게 발전하여 가는 사람도 있으며

‘억울하다, 억울하다, 내가 왜 당해야 돼.. 저가 나한테 그럴 수 있어..’ 하면서 오랫동안 광야의 낮은 곳에서 고통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윗은 사무엘을 통하여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고 이날 이후로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됩니다.(삼상16:13)

다윗은 신이 납니다. “오! 이 감동, 이 기쁨! 나는 기름 부은 왕이 될 꺼야!”

그러나 그는 광야로 갑니다. 그에게 사울의 창이 날아옵니다.

그는 왕좌에 오르는 대신에 굴속으로 도망갑니다.(삼상24:3) 환희의 춤 대신에 그는 살아남기 위해 미친 짓을 합니다.(삼상21:13). 그는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광야에서 왕이 되기 위한 수업을 받습니다.

미리암은 춤을 춥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출15:21)

그러나 그 찬양하던 입술의 침이 마르기도 전에 그들은 원망의 말을 토하고 미리암은 넘어집니다.

그녀는 불평하다가 문둥이가 됩니다.

벧엘의 하나님을 경험한 야곱.. 그는 감격합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28:16) 그러나 그는 광야로 갑니다.

놀라운 꿈의 사람, 요셉. 그러나 그는 광야로 갑니다.

주님의 손에 붙들린 바울, 그 빛에 거꾸러진 바울. 그러나 그는 광야로 갑니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내가 네게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 아브람은 순종하고 그곳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기근이 옵니다. 주님께 순종하자 기근이 옵니다. 그는 광야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가 광야에서 나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애굽에서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발견하고 광야에서는 자신의 죄성을 발견합니다. 몸은 애굽을 나왔으나 마음속에는 아직도 애굽의 속성이 있습니다.

여전히 죄를 좋아하고 편안함을 좋아하며 세상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합니다.

주님의 뜻을 좋아하지 않으며 나의 뜻, 나의 성향, 나의 취향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광야의 땅은 이러한 모든 땅의 성분을 죽이고 가나안의 요소, 하늘의 성분을 사모하게 하는 장소이므로 이기심, 고집, 정욕, 불순종, 자기 연민, 원망 등이 다 죽을 때까지 아무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광야 단계에 있는 사람은 항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많이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쉽게 남들을 비판합니다. 자신의 뜻에 맞지 않으면 하나님도 비판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항상 맞는 것 같은데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억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는 그의 영적 발달 단계가 이해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이 수준에서는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은데 실상은 거의 없는 단계입니다.

가르치기는 잘 가르치지만 자신도 그렇게 살지 못하고 이론만 제시할 수 있는 허상의 단계, 그것이 광야의 단계입니다.

누구든지 억울함과 원망이 가슴에 많이 쌓여 있다면 그는 결코 이곳을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오직 주님께 감사하고 굴복하고 순종할 때만 그는 이곳에서 나갈 수가 있게 됩니다.

초신자 때는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 받지만 조금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거꾸로 응답됩니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의 기도가 막히고 주님의 달콤함이 사라진다면, 특별한 죄도 발견되지 않는데 주님께서 당신을 매몰차게 다루신다면, 당신은 지금 광야의 문턱에 있는 것입니다.

잠시 주님께서는 당신에게서 긍휼을 제거하시고 당신의 어떤 부분을 다루실 것입니다.

이때는 은혜의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눈치 없이 응석을 부리지 말고 다음의 긍휼의 시간이 올 때까지 납작 엎드려서 시기를 통과해야 합니다.

조용한 기도를 할 때 애굽인들은 잠을 자지만 광야인들은 잡념이 많습니다. 그들은 생각이 복잡합니다. 광야에서는 모든 것들이 복잡해집니다.

신앙은 단순한 것이며 자신은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습니다. 전에 가졌던 많은 확신들이 이제는 퇴색되고 과연 자신이 지금 옳은 쪽에 있는지 확신을 할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당신이 헤매고 방황하며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의 이해가 흔들리는 것도 한 교육의 과정으로서 당신을 새로운 깨달음과 빛의 세계로 인도하시는 것이며 점차 당신이 자신의 이해가 아닌 그분에 대한 신뢰로서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이끄시는 것입니다. 이곳을 통과하기 위해서 우리는 침묵을 배워야 합니다.

단순히 소리의 침묵이 아닌 마음의 침묵, 의지의 침묵을 배워야 합니다.

어떤 변명도, 자기 연민도, 자기 합리화도 여기서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뜻과 인도하심에 오직 침묵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나의 기질에 맞는 것이든 아니든,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든 아니든, 내가 가장 할 수 없는 것이든 아니든 간에 오직 순종과 침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이,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과 같이(사53:7) 우리는 그저 조용히 걸어가야 합니다.

어떤 일을 겪어도 십자가 옆의 강도와 같이 우리는 마땅히 받을 것을 받는다고 고백해야 합니다.(눅23:41)

왜 그렇게 상처받는 사람들이 많고 왜 그렇게 억울한 사람들이 많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아직 광야에 있으며 아직도 그들의 마음이 높은 곳에 있으며 참된 깨달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 안에서 진정 억울하고 상처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훈련을 통하여 고집과 육성이 굴복될수록 그는 광야를 벗어나게 됩니다.

사소한 것에도 주님께 굴복되며 자기의 의견을 버리고 원망을 버리고 오직 주님의 뜻을 구하며 감사하고 순종하게 될 때 그는 광야에서 서서히 나가게 됩니다.

애굽도 신앙의 본질이 아니지만 광야도 신앙의 본질이 아닙니다. 이곳은 가나안에 입국하여 참다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훈련받는 귀한 믿음의 학교인 것입니다.

부디 주님께 온전히 순복함으로 이 과정을 벗어나십시오.

광야를 벗어나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갈 때 당신은 진정한 믿음과 영광의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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