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1: 1 그리스도와 사도와 성도
일반 사회에서는 통하는 ‘본받는다’는 말은 그리스도와 사도에게 그대로 적용시킬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사회에서는 인간들끼리는 대다수가 동의하는 것들을 두고 서로 본받는 식으로 이미 살아오고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현 시대에서 이질적인 모델은 거부하는 속성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생각합니다. “진리란 현 시대 생활에 가장 적합한 가치들을 말한다”고 이미 마음 속에 결정지어 놓은 상태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본받아야 될 모델’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구성원들 내에서 이미 결정져 있습니다. “우리 가문은…”, 혹은 “우리 가족은 …”, 혹은 “우리 부모님이 원하시는 바는…”라는 형식으로 인생관이 거의 정해지게 됩니다. 만약에 아이가 커서 세상에 나가게 되면서 지금까지 알았던 다른 인생관을 자기 마음 속에 심으려고 한다면 가족들의 극력한 반대에 맞설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기존 가족들은 말합니다. “네가 주장하는 것이 진리인 것을 증명해보라” 하지만 이 증명해서 내놓아봤자 소용없습니다. 가족들이 “그건 진리가 아니야”라고 의견을 모으면 가족에게 밉상받기 십상입니다. 이처럼 ‘상호 본받기’ 현상이 이 인간 세계에 꽉 차 있는 입장에서 새삼스럽게 예수님과 사도를 본받는다는 것은 ‘기독교 문화 흉내 내기’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되기 일 수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본받기’는 성령이 임하지 아니하면 불가능합니다. 아니, 성령이 임하기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과 예수님 관계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도 되기 전에 예수님을 본받으려고 애쓰다가 겨우 사도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이 안중에서도 없었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임하니 그는 지금까지 인간과 확연하게 딴 사람이 된 것입니다. 본받기 싫더라도 본받아야 됨을 강요당하는 대상으로 변모된 것입니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Who We AreWhat We EelieveWhat We Do
2025 by iamachristian.org,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