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자랑거리
성도의 자랑거리
빌립보서 1:25-26
성도의 자랑거리 빌립보서의 내용은 ‘기쁨’을 많이 강조하는 합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역설적으로 ‘죽음’과 관련시키고 있습니다. ‘죽음의 위협이나 공포보다 더 기쁘냐?’는 겁니다.
‘죽어도 좋아’할 만큼 기쁘다면 이는 그 사람이 자기 자랑보다 다른 자랑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성도들이 ‘예수님’을 자랑한다는 겁니다.
여러 자랑거리 중의 하나가 아니라 다른 자랑거리는 자랑도 아닐 정도로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을 자랑한다는 겁니다. ‘자랑’이라는 말은 ‘최종적 가치거리’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현상입니다.
아무리 인생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그것을 이겨낼 충분한 자랑거리가 있다면 세상 고생은 잊을 수가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세상 사는 것이 힘들까요?
그것은 자랑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꾸지 않을 만큼, 세상 전부보다 더 월등한 자랑거리가 있다면 자신에게 찾아오는 그 어떤 세파도 심각한 것이 아니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의 최고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겁니까?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는 ‘이미 죽었음’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한다면 죽음이 가져다 주는 공포는 대단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살아 있으면서 구축한 모든 가치를 무용지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힘쓰고 애쓴 모든 것이 죽는 순간에 일거다 다 소실됩니다. 사라집니다. 자기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먼저조각에 불과한 것이 드러날 때, 지나온 모든 시간들이 후회스러워울 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그동안 ‘내가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예 없음’을 제대로 알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즉 인생이 ‘내 시간’이 아니라 ‘주님의 시간’이었고, 지금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라 주님의 몸인 것을 그리스도를 아는 순간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의식을 유지하면 자꾸만 미래가 가하는 심리적 압력이 대단합니다. “장래에는 내가 잘 된 나가 되어야 될텐데” 불확실성으로 인해 현재 삶이 한시도 편안하지가 않는 법입니다.
그 미래가 곧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겁니다. 즉 나의 미래가 곧 그리스도의 세계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