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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궤 만진 웃사가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이유
법궤 만진 웃사가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이유법궤에서 나온 복 2009년 12월 13일 본문 말씀: 사무엘하 6: 6-15 (삼하 6:6, 개역) 『저희가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삼하 6:7, 개역)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삼하 6:8, 개역)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웃사라 칭하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삼하 6:9, 개역)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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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과 약 이야기
독과 약 이야기 하나님은 왜? 에덴 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생명과와 함께 두시고 아담더러 그것을 먹지 말라고 명하셨는가? 이건 한마디로 얘기하기엔 어려움이 있지만, 우선 분명한 것은 어떤 이들의 말처럼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지 아니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선악과를 거기 심어 놓은 것은 아니란 점이다. 하나님에게는 선악과와 생명과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두신 것이다. 생명과와 선악과 속에는 하나님의 중요한 속성이 담겨져 있다.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시면 서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즉 하나님은 살리기도 하시지만 죽이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이다. 이건 주인만이 행사할 수 잇는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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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탄) 어느 목사님의 질의와 저의 답변
(질의)목사님. 지난번 긴 답변에 감사를 드립니다.목사님의 글은 압축에 압축이 되어 있는데, 이번의 긴 설명으로 명확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질문)목사님.1. 창9장 노아가 함의 행동 책임을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말을 합니다.목사님의 창세기 설교를 들었을 때는 '함,가나안' 모두가 노아 속의 중보자를 통한 구원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다고말씀을 하셨습니다.그런데, 여기서 함은 들어가지 않고 가나안을 언급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요? 제 개인 생각에는 함의 불신앙은대표성의 원리로 아들 '가나안'이 언급되어 중보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자에게 임할 저주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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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밭 가는 소처럼
고린도전서 9:6-10 밭 가는 소처럼신명기 25:4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사도는 어떤 논리로 이 말씀을 가지고 사도 자신의 대가 받을 만한 업무와 연결시키는 것일까요? 모든 말씀은 다 예수님에게 최종 관련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활동과 남긴 업적과 연관지어 해석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논리 과정 속에서 필히 등장해야 할 것이 바로, 예수님의 생각과 정반대가 되는 생각들도 이 성경 말씀에 함유되어 있다는 겁니다.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울 농부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망을 씌우게 되면 농사를 망치기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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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이 누구신가?
◆ 설교 요약 ◆ 2010년 11월 21일 이근호목사〈 지난 주 설교 요약 〉예수님과 우리 인간의 만남은 우리가 품고 있을 죄를 들추어내기 위함입니다. 우리들이 얼마나 엉뚱한 것들을 고대하면서 신을 찾는지 그 허망함을 알려주어서 사람이란 존재할 가치조차 없음을 분명히 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쓰레기같은 존재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존재로 새롭게 탄생시키십니다. 그 가운에서 작용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축복이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약속을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즉 죄인을 용서하시는 그 약속 말입니다.< 이번 주 설교 요약 〉본문 : 누가복음 9: 18-24 제목 : 예수님이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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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전과 몸
고린도전서 3:16-17 성전과 몸 성전이냐 아니냐를 결정되는 것은 성령님이 오셔서 내주하시느냐 여부입니다. 아무리 경건되어 보이는 생활과 실천력을 발휘한다 할지라도 성령이 오시지 아니하면 그리스도 사람이 아닙니다.(로마서 8:9) 성령님이 오셔서 하시는 일은 인간으로 하여금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게 하시는 일입니다. 그 원래의 자리란 십자가의 자리입니다. 요한계시록 11:8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십자가 못 박히신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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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관리를 하지 말라
이미지 관리를 하지 말라 피조물 중에서 겉 다르고 속 다른 것이 유일하게 인간이다.성경은 인간을 일컬어 겉으론 평화를 외치지만 속으론 전쟁을 준비하는 자라고 한다.이는 죄의 속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다.죄는 항상 이기주의로 작동을 한다.그렇기 때문에 죄인의 마음속엔 항상 자기 사랑으로 가득채워져 있다.단 한 번도 자기 사랑을 타인에게 양보한 적이 없다.아니 양보할 수가 없다.이러한 자기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서 인간들은 마음에도 없는 자기 관리를 한다.세상 말로 이미지 관리 또는 인기 관리이다.연예인들을 보면 어제까지 방송에 나와서 잉꼬부부라고 해 놓고선 그 이튿날 이혼을 하는 사례들을 너무나 많이 볼 수가 있다.자기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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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들이여!
에베소서 5:22-24 아내들이여! 여기에 아내의 후보감, 즉 모든 여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아내의 미덕은 침묵입니다. 할 말이 없어 침묵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남편)가 상대할 가치가 없어 침묵하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에 여인이 침묵하지 않고 남성에게 대든다면 그것은 진리를 드러내고자 함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남자의 권력 자리가 탐이 나서 ‘진리’를 핑계 삼아 시도해 보는 겁니다. 가정의 주도권을 자기에게로 가져오려는 시도인 겁니다.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딤전 2:11-12) 남자나 여자는 숨겨진 하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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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인의 사도
디모데후서 4:17-18 이방인의 사도 이방인은 구약 율법에 의할 것 같으면‘할례 없는 자’입니다.(겔 28:10/삼상 14:6) 할례가 없다는 것은 거룩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된 백성이 되려면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입니다. 아브라함 가정에 속한 자는 이방인이라도 할례를 받아야 아브라함의 복을 받습니다.(창 17:12) 유월절날에도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유월절의 혜택을 누립니다.(출 12:48) 이처럼 할례받는 조건은 하나님의 약속 혜택에 있어 최우선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이방인에게 구원을 전한다는 것은 사도가 할례를 필히 실시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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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의 일
빌립보서 2:19-24 예수의 일 ‘저주유발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기꾼이 ‘기획 부동산 사업’을 벌린다고 선전하고 ‘투자 유치금’을 받아 잠적할 때, 목돈을 바친 자들은 ‘저주받았다’라고 비명 지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기꾼은 ‘저주 유발자’가 됩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실은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자신에게로 저주를 불러들인 겁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이런 존재입니다.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자체가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저주가 임하게 되어 있는 ‘저주 유발자’입니다. 행여나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예수님을 이용할라치면 주님께서 준비한 저주가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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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헛된 영광
갈라디아서 5:25-26 헛된 영광 영광에 있어 ‘헛된 영광’이 있다는 해서 사람들은 그다지 불편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영광스러움 그 자체가 최고의 삶의 보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고의 순간’이란 인간이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고의 순간’은 ‘최후의 순간’에 옵니다. 이 순간은 어떤 이에게는 최고의 순간이 되지만 어떤 이는 ‘최악의 순간’입니다. 따라서 ‘헛된 영광’이라는 영광 자체가 ‘최악의 순간’을 유발시키는 이유가 되는 겁니다. 영광 없이 살겠다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영광이란 인생 최고의 보상 같은 겁니다. 그런데 ‘헛된 영광’이란 하늘나라에게 안 받아주는 영광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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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네시모
빌레몬서 1:8-14 오네시모‘복음을 위해서’란 무슨 뜻일까요? 이는 ‘자기를 위해서’를 부정한 결과로 나타나는 겁니다. 자기를 부정하지 않고서는 ‘복음을 위해서’란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복음을 빙자해서 자신의 생존과 생계를 도모한다면 이는 성령님이 오시기 전의 예수님의 제자들의 행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는 방향이 예수님의 십자가쪽이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십자가가 있는 곳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으면서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영웅을 그리워하고 스스로 영웅이 되고자 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웅과는 정반대의 길을 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섬김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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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가 되는 원리
에베소서 4:1-3 하나가 되는 원리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은 인간이 시도하고 있는 모든 생각과 상상을 다 차단하는 효력을 발휘합니다. 성령을 받지 않는 한 사실상 뚫어낼 수 없는 세계가 바로 부활의 세계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인간 세상은 갇혀 있는 상태에 있음이 들통 난 겁니다. 전자랜지 속의 세계처럼 마이크로 파(전자파) 사정없이 쏘아대는 세상입니다. 그 안에서 불 없이 음식이 데워지는 것처럼 고요한 가운데 죽음으로 이끄는 저주파가 난사됩니다. 그 특징이 바로 개인위주의 삶으로 모두 마감된다는 사실입니다. 혈육이란 확고한 정서적 결합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런 단일성으로 인해 눈물과 슬픔을 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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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제사장
히브리서 4:14-16 대제사장 사람 가운데서 누구를 하나 세운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인간을 살리시겠다는 의지의 표출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통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그 자체만 해도 사람은 자기 목숨을 거기다 걸어도 영광이 되고 복이 됩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낭패와 손실이 온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통하는 줄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얻은 겁니다. 그렇다면 이 ‘대제사장’이라는 줄에 어떻게 붙들고 합류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 강력한 악마의 방해가 일어나게 됩니다. 대제사장은 죽음을 다루는 일을 하는 자입니다. 즉 ‘자기 죽음’을 마땅하고 당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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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와 불의
데살로니가후서 2:11-12 진리와 불의 모든 인간은 태생적으로 진리를 싫어하기에 십자가 사건이 터진 겁니다. 인간은 불의를 원하는 이유는 날때부터 죄 속에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왜 하나님께서는 친히 만드시 사람들을 이렇게 몰아세우시는 겁니까? 그것은 심판을 위해서입니다. 심판을 못하는 하나님은 주님이 아니십니다.또한 심판이 없으면 구원도 성립될 수 없습니다. 지옥이 없는 천국이 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인간들에게 의견을 물어 지옥의 필요성을 타진했다면 모든 인간들이 거부했을 겁니다. 그것은 전 세계의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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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심
데살로니가전서 5:24 부르심 고린도전서 1:2과 관련해서 살펴보면 내용이 보다 넓게 펼쳐집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여기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 부르심의 결과라 할 수 있는 성도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르는 모든 자’입니다. 특히 ‘모든’에 유념해야 합니다. 즉 예수님의 부르심에 있어 인간들이 기대하는 예측하는 모든 조건을 일체 인정하지 않고무산시켜 버리면서 주어집니다. 즉 ‘인간이 지정한 조건의 깨어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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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장하기
골로새서 2:18-19 과장하기 조작과 날조는 원본이 있는 따로 경우를 전제로 따질 수 있습니다. ‘과장됨’이란 어디까지나 ‘거짓’입니다. 악마를 ‘거짓의 시조’라고 말합니다.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왜 과도한 위장을 해야할까요? 그것은 자체적으로 온전치 못함을 예수님과 비교해서 알고 그것을 감추려고 억지를 부리기 곧 이미 온전하신 분이 따로 계시고 그 분이 이미 세상에서 나타났음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악마는 곧장 악마다움의 조치를 인간 세계 안에 발휘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등장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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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에베소서 1:21-23 교회 오늘 본문에서는 ‘교회’를 ‘힘의 충만’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평소에 인간이 자기 환경을 조절하고 개선하고 관리하고 감안하는 식으로 살아가는 그 모든 것을 일체 악한 일이라고 규정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힘입니다. 인간의 머리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마저 하나님의 허락과 조정이 아니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이 세상은 주님의 강력한 힘에 의해 지배받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힘은, 지금껏 인간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악마의 힘과 비교되면서 실시됩니다. 그동안 악마는 인간들로 하여금 자기 실력 되는 대로 살아가라고 독려해왔습니다. 희망을 가져도 실현될 수 없는 희망이 미끼가 되어 계속 지연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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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과 주인
에베소서 6:5-9 종과 주인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두 종류의 직원 비유를 관련해 보아야 합니다. 직원 세 명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열 달란트 받은 직원과 다섯 달란트 받은 직원은 주인을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한 달란트 받은 직원은 자기 생각이 우선이고 그 생각 속에 주인의 주인됨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주인임을 포기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 25:30) 도대체 이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이런 비참한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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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과 모세
히브리서 3:1-3 예수님과 모세 예수님과 모세, 모두가 존재하지도 않는 하나님의 집을 만드신 분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7:1-3에 보면,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 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변화산에 올라간 예수님의 세 제자들이 놀랐던 것은 자기네들이 사는 동네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자신들이 소속되지 않고 죽었던 모세와 엘리야가 소속된 나라가 따로 있는데 문제는 바로 거기에는 예수님 중심의 나라라는 점입니다
- The Cross Pendant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