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속의 그리스도'를 읽고 질문 드립니다

61페이지 첫 줄에 보면'예수님의 상처, 십자가 사건이 주님의 존재보다 먼저 있는거에요....~ 사건을 사건화 시키기 위해서 존재는 있다가도 허물어져야 될 그런 입장인 거에요'이 부분이 많이 어렵습니다.그럼 이것은 태초에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계실 때에도 십자가 사건이 그 전에 있었다는 말씀인가요?그렇다면 아담과 하와의 범죄함은 이 십자가 사건을 위해 당연히 터져나와야 할 수순인가요?

믿음의 말씀

로마서 10:4-8 믿음의 말씀사람들은 자신들에게는 각가지 재주들이 있다고 믿고 삽니다. 광대는 광대대로, 농부는 농부대로, 기능인들은 기능인들대로 노하우가 있다고 믿습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를 들었다 놨다 하는 재주가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 그리스도보다 더 대단한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바로 인간들의 숨어있는 포부는 이처럼 신마저 들었다 놨다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왜 이런 능력을 원하느냐 하며는, 인간이 자기 자신 말고 더 이상 누구를 믿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믿고 의지한다는 것은 사실 무척 자존심이 상할 굴욕적인 태도처럼 느껴지기 마련입니

예수 믿는 자

본문 : 로마서 3 : 25- 26 제목: 예수 믿는 자 성경에서 ‘믿는다’는 말은 마음의 결심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한 바를 접고 예수님의 행하신 바를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이라는 변화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 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안 믿는다’는 말은 매사가 불신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행하심보다 자신이 행하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노력하고 알아낸 것을 더 신봉한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것도 본인이 노력하고 연구하고 행한 결과라고 믿는다는 이것이 바로 불신앙이 되는 겁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과 그

돌들의 소리

본문 : 누가복음 19:37-40 제목: 돌들의 소리 소리는 누구나 지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누구를 증거하기 위한 소리냐’하는 겁니다. 비명이란 생존의 터전 곳곳에서 터져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추방되어버린 자들이 인간입니다. 고생하라고 내팽개쳐진 자들이 우리 인간입니다. 좋은 곳으로 돌아갈 기회조차 얻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생명나무로 통하는 길을 단단히 잠겨두고 천사들을 동원해서 감시하고 계십니다. 역류가 허용될 수 없는 운명이 곧 인간입니다. 이 운명은 예외없이 누구나 타고 났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제일 고생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인간에게 나름대로 고통을 내려주시고

성전 파괴

누가복음 21:5-9 성전 파괴무엇을 파괴한다는 것은 새로운 계획이 따로 수립되어 있다는 선언과 같습니다. 깨어질 것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성전을 부수는 하나님’, 바로 이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인간이 만든 성전을 부수지 않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악마의 숨겨진 실상입니다. 즉 계속해서 인간들로 하여금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촉구하는 겁니다. 악마가 이런 짓을 시켜서 사람들로 하여금 도대체 무엇을 못보고 지나가게 만들까요? 그것은 ‘사람들의 손으로 짓지 않는 성전’을 못 보게 만듭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을 인공물(人工物)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사람 손에

참 아름다운 신앙고백 글 (퍼온 글)

참 아름다운 신앙고백 글입니다. 이글은 정낙원 목사 블로그에 올려진 이근호 목사님의 글과 정낙원 목사의 글을 자신들의 까페에 옮겨 놓았다는 죄목으로 여러 곳에서 비판을 받으신 분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내용의 글입니다. 너무도 귀한 고백글이라 옮겨 놓습니다.비판하는 사람과 비판 받는 이 분의 관심사가 얼마나 다른지를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제가 너무도 고맙고 감사하여서 댓글로 흔적을 남겨두었습니다.참으로 귀한 믿음에 사람입니다.이런 분들이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줄 모르겠군요.아울러 이 분을 비판하는 자와 비판 받는 이 분을 비교하여서 여러분은 어디에 서 있는지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

다 거짓됨

로마서 3:1-4 다 거짓됨하나님께서 인간의 신체 자체에 거룩의 표시하셨다는 것을 두고서 사람들은 ‘나는 거짓되지 않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거짓이란 하나님의 요소가 자기에게는 기를 펴지 못하는 지경을 두고 말합니다. 참되신 하나님의 요소가 자기 내부까지 들어오게 되면 자동적으로 자신이 거짓된 존재일 리가 없다고 본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이런 사고방식이 반대로 뒤바뀐 정신이라고 단정합니다. 하나님의 것이 있기에 제대로 인간은 ‘거짓됨’이 확연하게 드러난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알거나 믿기 전에는 자신이 이만하면 훌륭한 존재로

아벨의 피

본문 : 누가복음 11: 45 -52 제목 : 아벨의 피 세상 끝 날을 순차적인 시간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위로 계산하는 것이 하나님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와 거기에 대한 반응을 보고서 세상 종말을 규정하는 겁니다. 따라서 종말 결정은 지상에 있는 인간들이 ‘전에 보다도 더 살기 힘들다’는 느낌과 하소연으로 판정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노인네가 몸이 아파 그만 살고 싶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 노인의 목숨을 가져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세상이 너무 좋아 더 살고 싶다고 해서 더 살게 하시는 것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하여튼 하나님이 보내신 자와 만남을 통해 세상의 본 성질이 외부로 펼쳐지게

안 ~ 돼 ~~~~~~~

안 ~ 돼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2011)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영화정보 > 개봉예정영화 >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58481&t__nil_upper_mini=title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관련 책정보 보기요약정보SF, 액션, 드라마 | 미국 | 106 분 | 개봉 2011-08-17 | 홈페이지국내 www.apeswillrise.co.kr 제작/배급20세기폭스 코리아(배급), 20세기폭스 코리아(수입) 감독루퍼트 와이어트 출연제임스 프랭코 (윌 로드맨 역), 프

낡은 옷과 새 포도주

《 설교 요약 》 2010년 5월 2일 이근호〈 지난 주 설교 요약 〉사람들은 자신을 인형처럼 가꿉니다. 하지만 그 모습은 하나님께 헌신해야 하는 성도의 본래의 모습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예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성도가 “죽어도 좋다”고 감격할 정도로 말입니다. 이 작업을 위하여 하나님은 ‘죄인’으로서 자기 백성을 불러서 ‘함께’ 하십니다. 이 ‘함께’하심을 통해서 예수님의 피가 성도에게 흘러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이번 주 설교 요약 〉본문 : 누가복음 5:34-39 제목 :낡은 옷과 새 포도주옷과 포도주의 공통점은 사람이 필요로 해서 생산해낸 생산품이라는 겁니다. 물론 관리는 사람이

예수님것만 번성하는 축복

◆ 설교 요약 ◆ 2010년 11월 14일 이근호목사〈 지난 주 설교 요약 〉예수님이 확실히 계신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겠습니까? 사람이란 진정 자신이 성공했다는 그 순간에도 알 수 없는 공포는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더욱 몰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노동으로 얻은 것 외에 더 한 것은 축복으로 간주해서 신에게 얻고자 하는 이들은 도리어 끝까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훼방하고 방해하는 자들입니다. 이럴 때는 자리를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싣고 다니는 그저 떠돌아 다니는 방주에 불과합니다. < 이번 주 설교 요약 〉본문 : 누가복음 9: 12-17 제목 : 예수님의 축복 축복이란

율법과의 혼인관계

로마서 7:1-6 율법과의 혼인관계여인이 남편과 혼인하기 전의 신분과 일단 혼인을 한 후의 신분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사실은 그 여인 개인적 입장에서는 상당히 억울한 일로 보일 것입니다. 혼인 전이나 혼인 후나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이라는 그물에 걸려있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결혼 전에처럼 동일한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이 죽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른 남자와 사귄다면 이는 ‘간음한 여인’이라고 규정지어집니다. 혼인 전이라는 전혀 ‘간음한 여인’이라는 평을 들을 이유가 없는 겁니다. 이러한 혼인 규정이 그대로 살아있는

심판의 자리로 몰림당하기 위한 화평과 동행과 하나님…

화평(사귐), 동행(함께 하나됨), 형상(닮은 꼴)을 보기 위한 심판의 자리에 몰림당함이상규 집사님이 웃사에 대한 이야기를 설교를 듣고 다시 질문을 했다. 왜 웃사가 죽을 수 밖에 없는가?그러나 사실상 웃사 자체의 행동 때문에 벌어진 죽음은 아니다.사람들은 어떤 이의 죽음을 통해서 그 죽음을 해석할려고 달려든다.이미 죽은 놈 뒤통수 치듯 씹어대 본들 죽은자가 반박을 하겠는가? 덤벼들겠는가?죽은자 보다 해석하고 판단하기에 딱 좋은게 없다.산자는 곤란하다. 그 판단이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다시 돌아올까봐 선뜻 산자를 향해서 해석을 적극적으로 나설려고 하는 이는 좀처럼 잘 없다.그래서 인간들은 살았다와 죽었다 앞에서 자신을 살

분쟁

고린도전서 1:10-13 분쟁내 것은 따로 없습니다. 넓혀갈 데로 넓혀가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따라서 분쟁은 없을 리가 없습니다. 나의 자존심이 있고 그 자존심을 실어서 나의 존재감을 확장하려는 시도가 멈추지 않는 한 곳곳에 분쟁이 일어납니다. 사람의 만남이란 곧 자존심의 만남이라고 보면 됩니다. 적당 선에서 협상하고 타협도 해보지만 그 휴전조항은 항상 확장을 시도하는 개인들의 욕망력에 의해서 항상 위반됩니다. 그리고 옆에서 치고 들어오고 주위에서 밀쳐오게 되면 진정했던 협상안도 무너집니다. 분쟁에는 이유도 없고 뚜렷한 목표점도 없습니다. 그냥 분쟁 그 자체가 있음에

믿음의 조상

로마서 4:14-17 믿음의 조상‘은혜’라는 말의 뒷배경에는 ‘행함은 절대로 될 수 없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이러합니다. 세계 돌아가는 역사를 인간의 행함의 결실로 본다면 그 어디에도 은혜를 찾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달리 말해서,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일들이 인간의 행함의 결과로 본다면 이는 전혀 하나님의 은혜됨을 찾지 못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믿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행함을 행함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수용하는 안목에서만 붙일 수 있는 단어입니다.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사건을 체험했다 하더라도 결과는 전혀 딴 판입니다. 한 사람이

잠언과 삶의 요령

노력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이 생각으로 삶을 살면서 한편으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려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드디어 제 나름의 삶의 패턴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농부가 농사를 하는 방식과 흡사합니다. 노력에는 보상이 있다는 것... 그 눈이 떠진 것 같습니다. 이때까지 노력보다 중요한게 재능이다 이런 말에 휘둘려 살아온 제 자신이 드디어 확고한 결론을 맺은 것 입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 이르기 전에 노력자체를 안하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 입니다. 그래서 노력보다 중요한 것이 재능이다 라는 명제는 대다수 사람들에겐 언제나 참인 명제일 것입니다. 근데 잠언을 읽는데 말씀 하나하나가

참 신의 증거

고린도전서 12:14-17 참 신의 증거 ‘신이 없다’는 말과 ‘신이 아니다’는 말은 같은 뜻이 아닙니다. ‘신이 없다’는 말은 ‘인간이 유일한 최고 존재라서 인간보다 더 존귀한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는 말이 됩니다. 반면에 ‘신이 아니다’는 말은 '참된 신은 따로 있는데 네가 제시한 신은 있지도 않은 가짜 신‘이라는 말입니다. 인간들에 의해 조작된 신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에게 신을 판정할 권리나 자격이나 확실한 기준을 가질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만약에 신이다 아니다를 판정을 내릴 위치에 누가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최고신인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기도

로마서 8:26-27 성령님의 기도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세상일은 버릴게 하나도 없습니다. 다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일어나고 있기에 성도는 그 흐름과 그 과정을 따라 삶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흐름과 과정을 이탈하게 된다면 이는 감사와 영광이 누락된 채 오로지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는 삶이 되는 겁니다. 이러한 탈선한 삶에서는 필히 불평과 신에 대한 원망과 투정이 튀어나오게 됩니다. 문제의 원인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면서 하나님이 만드신 현실을 비난하는 것은 ‘복음 위주로 흐르는 현

하늘나라와 어린아이

누가복음 18:15-17 하늘나라와 어린 아이이 지상에서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한 때 어린아이들이었고 점차 세월이 지나서 어른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른들이 다시 어린 아이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변하지 않고 고정된 몸을 지닌 채 미래를 내다보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몸도 자꾸만 당연히 후패해져가는 몸을 가지고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미래는 자신의 몸 밖에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의 몸을 통해서 미래가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거론하시는 것은 인간의

예루살렘 구원과 과부 선지자

우리교회 주보요약 - 이근호《 설교 요약 》 20010년 1월 17일〈 지난 주 설교 요약 〉이 세계의 주님의 세계의 인간의 세계가 아닙니다. 따라서 인간들의 자신만의 세계는 아기 예수님으로부터 찔림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죽으시는 표적이 발생합니다. 표적인 기적이 아닙니다. 인간들의 근원을 밝혀주는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따라서 인간들의 기적은 하나님의 표적을 핍박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천국으로, 하나님의 미워하심이 지옥을 만들어 냅니다. 〈 이번 주 설교 요약 〉본문 : 누가복음 2:36-39 제목 : 과부 선지자 예수님에 대해서

The Cross Pend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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