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종교 다원주의와 가톨릭교회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Ⅳ. 가톨릭교회와 타종교

 

다른 종교에 대해 개방적이며 적극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은 현대 가톨릭교회의 특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분수령으로 하여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전통적인 교회 중심주의와 타종교에 대한 배타주의를 포기하고 타종교들과 교회의 관계성을 주장하는 포괄주의로 입장을 변경했다. 뿐만 아니라 라너, 큉, 파니카, 니터 등 많은 가톨릭 신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필자는 가톨릭교회의 전통적인 입장과 현대적인 입장을 비교함으로써 가톨릭교회가 자연 계시 개념에 근거하여 교회 중심주의로부터 그리스도 혹은 신중심주의로, 기독교 절대주의로부터 종교적 다원주의 또는 포괄주의로 이동하고 있음을 밝히려고 한다.

1. 전통적인 입장

교부시대, 특히 변증가들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기독교는 다른 문화 및 종교와의 관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발히 논의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저스틴은 기독교 신앙과 고전 문화의 관계를 해명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았다.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국가 종교가 되기 이전까지 다른 종교와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다양한 태도를 취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교회 중심적 배타주의적 입장이 있었는가 하면, 고전 문화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 포괄주의적 입장도 3있었다.

2세기의 키프리안은 교회를 노아의 방주로 해석했다. 노아의 시대에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대홍수 때 구원은 노아의 방주 안에만 있었다. 방주 밖에는 구원이 없었다. 그러므로 교회 안, 기독교 안에 있는 사람에게만 구원이 있다는 논리이다. 4세기의 어거스틴 역시 교회를 그리스도의 영역과 신비스런 몸으로 해석함으로써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으며, 이것이 서방 교회의 전통적인 입장이 되었다.

한편, 동방 교회에 속하는 저스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안디옥의 테오필루스, 아테나고라스 등은 그리스도의 유일회성과 종국성을 고수하는 동시에 참된 계시와 구원의 가능성이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었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들은 로고스 개념에 근거하여 성서적인 구원사에서의 특별 계시와 다른 종교들에서의 일반 계시를 연결시키려 했다. 예를 들어, 저스틴에 따르면, 기독교인은 로고스를 따라서, 그리고 로고스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누구든지 로고스를 따라 사는 한 기독교인이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로고스의 씨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진리의 단편적인 면에 도달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성으로 산 이교도들은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 이전의 기독교인들이었다. “합리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무신론자라고 불리웠을지라도 다 그리스도인들이다. 헬라인들 중 소크라테스와 헤라클레이토스 등이 그러하였고, 야만인들 중에는 아브라함, 엘리야등이 그러하였다.”3 이와 같이, 저스틴은 이교철학에 어느 정도 진리가 있음을 인정했으며 철학자들의 지고한 학설은 성경의 진리와 일치한다는 것을 제시하려고 시도했다. 

헬라철학과 기독교의 조화를 시도한 저스틴의 입장을 수용하여 더욱 발전시킨 사람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이다. 그는 율법이 유대인에게 한 역할을 동일하게 철학이 헬라인에게 했다고 주장했다. 즉 율법이 유대인을 교육하여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 것 같이, 철학은 헬라인을 교육하여 복음에 이르게 했다.4

 

이는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에 대한 신념에 근거한 것이며, 이것은 473년 알즈(Arles)공의회에서도 확인되었다. “그리스도, 즉 우리의 주요 구세주가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죽음을 당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저주하고 “그리스도는 누구도 멸망하기를 원치 않았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대 교회의 입장은 중세시대에 이르면서 철저한 배타주의로 입장이 정리되었다. 1215년 라테란(Lateran)공의회는 키프리안의 신조를 강화하여 “교회 밖에는 전혀 구원이 없다”고 선언했으며, 1302년 교황 보니파스(Boniface)8세는 교회 밖에는 구원도 죄의 용서도 없다는 것과 교회에 복종하는 것이 구원에 전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천명했다. 또한 1442년 플로렌스(Fflorence)공의회는 이를 다시 확인하여 “자선을 베풀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피흘렸다 하더라도, 가톨릭교회 울타리 안통일성 안에 머물러 있지 않는 사람은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대 교회는 배타주의적인 입장과 함께 포괄주의적 요소도 지니고 있었으나 중세교회로 넘어오면서 교회 중심적 배타주의가 가톨릭교회의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2. 현대적인 입장

가톨릭교회는 트렌트(Trent)공의회(1545~1563)에서 다른 종교에 대한 종래의 극단적인 배타적 입장이 문제가 있음을 자각하고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과 교회의 필연성이 균형을 유지하는 신조를 채택했다. “만약 이교도들이 도덕적 양심을 따라 도덕적으로 살고 있다면 그들은 묵시적으로 교회에 들어오고 싶은 욕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고, 그에 따라서 구원의 문턱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선언은 가톨릭교회의 입장이 교회를 은혜의 유일한 통로로 보는 배타적 이해에서 포괄적인 이해에로, 그리고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신념에서 교회 없이는 구원이 없다는 신념에로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가톨릭교회가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주의를 포기하는 분기점을 이룬 것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이다. 이 공의회의 몇몇 선언은 다른 종교에 대해 더욱 긍정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특히 “비기독교적 종교들과 교회의 관계성에 대한 선언”은 다섯 항목, 즉 서론, 힌두교와 불교, 이슬람교, 유대교 및 보편적 형제애를 손상시키는 분리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선언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보편성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이 모든 인류를 만들고 그들에게 거주하도록 온 땅을 주셨으므로 모든 민족은 공통적인 기원을 가진 단일한 공동체를 형성한다. 하나님의 섭리와 그의 분명한 선하심과 구원의 계획은 모든 사람에게 확장된다.” 또한 가톨릭교회가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등 다른 종교 안에 있는 참되고 거룩한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들의 교훈이 모든 사람의 빛이 되는 진리를 반영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른 종교 안에서 발견되는 영적, 도덕적 요소들을 인정하고 보존, 발전시키라고 권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했으면서도, 하나님을 진실로 찾고 하나님의 은혜로써 자기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애쓰는 사람은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5

제2 바티칸 선언은 모든 종교가 구원의 길이라고 명시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했으면서도 진실로 하나님을 찾는 신도를 구원에 포함시키려 함으로써 전통적인 교회중심주의로부터 포괄주의적인 입장에로 방향을 전환했다. 

현대 가톨릭 신학자들은 바티칸선언과 보편계시 개념을 기초로 하여 종교다원주의에 개방적이고 긍정적인 응답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해석과 방법론은 학자들에 따라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라너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포괄주의를, 큉은 구원의 일반적인 방법과 특수한 방법을 주장하는 포괄주의를, 파니카는 종교 간의 대화를 중심한 다원주의를 그리고 니터는 신중심주의적인 다원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이들 중 라너, 파니카, 니터를 중심으로 현대 가톨릭 신학의 동향을 살피고자 한다. 

라너는 바티칸 선언 출현에 여러모로 기여한 신학자인 동시에 종교 신학의 개척자이다. 그의 신학은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의지와 그리스도의 유일성, 즉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한다는 것과 구원은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에 근거한다. 특히 1961년 4월 28일 바바리아에서 행한 강연 “기독교와 비기독교 종교들”에서 라너는 4개의 명제를 중심으로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이를 요약하면, 기독교는 유일한 절대 종교라는 것과 다른 종교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초자연적 은총의 요소를 지닌 합법적인 종교라는 신념을 동시에 수용하기 위한 대안으로 “익명의 크리스천(anonymous Christian)" 개념을 도입했다. 구원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교를 통해서도 구원에 도달할 수 있다면 다른 신앙인은 “이름 없는 그리스도인”크리스천인줄 모르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익명의 그리스도인은 자력으로 스스로를 구원한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회 밖에 있으며 역사적 예수의 이름은 모르지만, 그리스도인과 똑같은 신앙으로 하나님의 보편적 은총을 수락한 사람을 말한다.

한편 라너는 익명의 크리스천 개념을 주장하면서도 다른 종교의 타당성을 명확히 제한한다. 다른 종교 안에 구원의 은혜가 있으나 그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라는 것과 다른 종교의 타당성은 한시적이라는 것이다. 복음과 접하게 되면 그 효력은 상실된다. 

라너의 견해는 다른 종교에 대한 중요한 태도 변화를 의미한다. 다른 종교에도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의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기독교 배타주의를 포기한 것이다. 그의 입장은 한마디로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가능하지만 그리스도 밖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기준은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이다. 따라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전통적인 개념을 그리스도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개념으로 전환시켰다. 이러한 라너의 견해는 대부분 가톨릭 신학자들의 종교신학에 기초가 되었다.

파니카는 가톨릭 사제로서 저명한 가톨릭 신학자인 동시에 힌두교 학자이다. 스페인의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와 인도의 힌두교 신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가정적인 배경과 이 두 문화와 종교 전통 사이에서의 성장으로 인해 세계 종교의 정황 속에 기독교의 주장을 설정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대화의 방법을 통해 하나 이상의 종교에 종교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제시하려고 했다. “정상에 이르는 서로 다른 길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모든 길들이 사라진다면 정상 자체도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철저한 다원주의자란 사실을 분명히 했다. 그는 1960년대 초 이후 세계 종교들 사이의 일치를 목표로 하는 “범 세계적 일치 운동(ecumenical ecumenism)" 을 주도했다. 이것은 다양성을 유지하는 통일성을 추구했다.

파니카는 그의 처녀작 '힌두교의 미지의 그리스도(The Unknown Christ of Hinduism)' (1964)에서 기독교와 힌두교의 만남을 논의하면서 이론적이거나 교리적인 면보다는 실존적인 면에서의 만남을 강조했다. 파니카에 따르면 양자가 만나는 지점이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힌두교 안에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기독교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에게 속한다. 그리고 기독교와 힌두교가 그리스도에 속한다. 따라서 그는 기독교인이 숨겨진 그리고 미지의 그러나 힌두교에서 나타난 그리스도를 발견하기를 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파니카는 다른 종교와의 대화의 모델로 “대화적인 대화”(dialo gical dialogue)"를 제시했다. 이것은 다원주의를 근거로 한 대화이다.8 특정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절대화하지 않고 상대화한다. 상대를 자신과 동등한 주체로 간주하며 실존적인 차원에서 대화를 시도하기 때문에 진정한 상호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대화는 파니카 자신의 기독론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와 예수를 구분한다. 보편적인 그리스도(universal Christ)와 특수적인 예수(particular Jesus)개념이 그것이다. 그리스도는 예수 이외에도 크리슈나이스바라부처 등에서 현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의 구세주들은 기능적인 면에서 보편적 그리스도와 동일시된다.9 그러므로 그는 기독교와 다른 종교를 동등한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특정 종교가 우월하다는 것을 부정했다. 

니터는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종교 신학의 유형을 제시한 후 가장 유망한 것이 신 중심적 모델이라고 주장하고 그 자신이 이 입장에 서 있다. 이것은 하나의 중심에 이르는 많은 길들이 있다는 다원주의를 대변하는 것으로 교회 중심주의와 그리스도 중심주의로부터 신중심주의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 이론의 기초가 되는 것은 보편적이며 비규범적 그리스도론이다. 그리스도를 유일한 규범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신의 계시와 구원을 밝힌 보편타당한 구원자로 간주한다. 뿐만 아니라 예수에 대한 신약성서의 배타적 주장을 복음의 핵심이 아닌, 그 시대와 문화의 종교적 언어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했다. 

Ⅴ. 마무리 

이상에서 필자는 다른 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반응이 어떻게 표명되고 있는지를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가톨릭교회는 제2바티칸 공의회를 분수령으로 다른 종교에 대해 가장 개방적이며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 입장은 다음 몇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가톨릭교회의 종교 신학 흐름은 교회 중심에서 그리스도 중심을 거쳐 신중심주의로, 또는 배타주의로부터 포괄주의를 거쳐 다원주의로 변천하고 있다. 고대에는 동방교회를 중심한 포괄주의와 서방교회를 중심한 배타주의가 혼재하는 등 비교적 다양한 입장이 제시되었으나 중세에 들어서면서 제국주의의 영향으로 극단적인 배타주의와 교회 중심주의가 교회를 지배했다. 그러나 제2바티칸 공의회 이후로는 배타주의가 포기되었을 뿐만 아니라 최근의 많은 가톨릭 신학자들은 신 중심적 다원주의를 전개하고 있다.

둘째, 가톨릭교회의 공식 입장은 기독교 절대주의와 종교다원주의, 양극 사이에 위치한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많지만 규범은 하나라는 포괄주의이다.10 다른 종교에도 구원의 가능성이 있으나 그것도 그리스도를 통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대 교회가 수용하지 않았던 져스틴과 클레멘트 등의 포괄주의로 다시 복귀한 것이다.

셋째, 이것은 자연신학과 인간 본성의 선을 주장하는 가톨릭교회의 전통에 근거한 것이다. 교회 밖에도 하나님의 은총이 역사한다는 신념을 다른 종교에 대한 통찰과 종교 간의 대화에 대한 지성적 토대로 삼고 있다.

넷째, 가톨릭교회의 입장은 다른 종교권에 사는 무수한 사람들이 역사적이며 지리적인 우연으로 인해 구원으로부터 자동적으로 배제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의 반영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기독교 편에서의 중대한 태도 변화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리한다면, 다른 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태도는 성경적이어야 한다. 이 원칙을 벗어나면 기독교가 아니다. 따라서 다른 종교에 대한 태도는 성경관에 따라 달라진다.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된 무오한 말씀으로 믿는다면 선택의 폭은 좁다. 예수 믿어야 구원을 얻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비추어 볼 때, 종교적 다원주의는 성경의 진리와 일치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며 따라서 원칙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다. 가톨릭교회의 포괄주의는 양심대로 산 사람은 영생을 얻을 수 있다든지, 익명의 크리스천, 미지의 그리스도 개념, 그리스도와 예수의 분리 등의 개념을 받아들임으로써 원칙으로 부터 반쯤 벗어난 것으로 이해된다. 양심이 구원의 기준이 된다는 것도 양심이 보편적이냐, 상대적이냐 하는 또 다른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피레네 산맥의 이쪽과 저쪽의 양심이 다르다는 주장이 가능하지 않는가? 극단적인 예로 식인종의 양심과 기독교인의 양심을 비교할 수 있다. 식인종은 사람 잡아먹어도 양심에 문제될 게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관습적으로 행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마음으로 사람을 미워해도 이미 살인한 것이라고 교훈하고 있다. 반면 극단적인 배타주의는 인류의 대다수 사람의 영적 고향이 되는 다른 세계 종교들의 존재와 타종교 생활을 전적으로 무시하기를 요구하는 난점을 지닌다. 따라서 필자는 그리스도의 유일회성을 확산하는 동시에 비기독교권의 구원 문제는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는 온건한 절대주의가 성서적이고 복음적이라고 생각한다.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서 정의롭게 판단하실 것이다.

 

[주(註)]

1. John Hick and Brian Hebblethwait(ed), Christianity and Religious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1), pp 87~91

2. 니터, 폴 F, 오직 예수 이름으로? (서울: 한국 신학 연구소) 1985 p135

3. 한철하, 고대 기독교 사상 (서울: 대한 기독교 서회, 1970) p 38

4. Ibid, pp 62~64

5. Walter M. Abbott, S. J. (ed), The Documents of Batican (New York: Guild Press, 1966). 이 책은 바티칸 공의회 문서와 함께 논평을 수록하고 있다.

6. Hick, pp 52~79

7. 니터, p 250

8. Frank Whaling(ed), The World's Religious Traditious (London; T. T. Clarke LTd, 1984) p 207

9. 니터, pp 253~254

10. Ibid, p 199

[참고문헌]

1. 니터, 폴 F, 오직 예수 이름으로?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5

2. 카워드, 하롤드, 종교다원주의와 세계종교 (서울: 서광사) 1990

3. Aldwinckle, Russell F, Jesus-A Savior or the Savior (Macon: Mercer University Press) 1982

4. Hick, John and Hebblethwaite Brian(ed), Christianily and Other Religions.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1

5. Rouner, Leroys, (ed), Religious Pluralism (Notre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84

6. Thompson, Normah, Religious Pluralism and Relinious Education (Birmingham: Religious Education Press) 1988

Blog
About Us
Message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