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4:32-34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1) 세대주의적인 해석
위 성경본문에서 무화과나무를 이스라엘로 비유하고, 그 가지가 연하고 잎사귀를 낸 것을 1948년 이스라엘 독립으로 비유하고, 그로부터 시작하여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예수가 재림한다는 주장을 하는 자들이 많다. 한 세대를 50년이라고 하여 2000년 안에 재림이 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2000년이 지나자 입을 다물기 시작하더니, 한세대를 70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또 설치기 시작한다. 70년으로 계산하면 2018년이 되는가? 한세대를 100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은 비난받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안에 자신이 먼저 죽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3000년에 종말이 온다고 주장할지라도 그는 당장 피해를 주지는 않겠지만, 그도 역시시한부종말론자가 되어진다는 것은 명백하다.
문제는 하나님의 교회, 만민중앙교회, 구원파등과 같은 이단교회와 함께 신사도운동, 극단적 세대주의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으며,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교회의 J목사, K목사등이 이러한 주장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초대형교회 J목사가 1948년으로부터 50년을 한세대로 해석하여 2000년에 재림이 온다고 주장하였다가 시한부종말론으로 비난을 받고 이단성의 문제까지 가게되자 결국 공식사과함으로서 겨우 일단락이 되지 않았는가? 그러나 J목사는 그후에도 천국은 확실히 있다는 여자의 책을 번역하고 추천하여 또 문제를 일으켰는데, 그 여자가 미국의 대통령의 임기 안에 예수가 재림한다고 주장하여 문제를 일으켰던 적이 있었다.
또 어느 목사는 다니엘서와 계시록의 열뿔이 유럽연합이라고 주장하다가 지금 27개국이 되자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은행카드와 컴퓨터와 바코드가 666이라고 주장하던 목사들은 과연 지금도 은행카드를 갖고 있지 않는지 확인하고 싶으며, 과연 컴퓨터와 바코드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
이제는 베리칩이 666이라고 말을 바꾸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666은 과거적인 해석으로 볼 때에는 네로황제의 이름을 알파벳으로 합한 숫자를 뜻하며, 미래적인 해석으로 볼 때에는 기독교를 적대시하는 적그리스도를 상징할 것이다. 어떤 물질적인 표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잃게된다는 황당한 주장이 아니다.
성경66권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과 짐승의 표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은 실제로 어떤 물질적인 표나 도장을 이마나 손에 받는 것과 같이 문자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불신앙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을 뿐이며, 종말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하나님의 인)과 사탄을 숭배하여 짐승의 소유가 되는 자들(짐승의 표)에 대한 비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마와 손에 인(표)를 받는다는 것은 곧 짐승의 소유자가 그 낙인을 찍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소유를 표시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황당한 해석을 가르치는 대형교회 목사들 때문에 한국교회에서 신천지의 비유풀이같은 해석이 성행하는 것으로 본다. 대형교회목사들이 지금도 비유풀이로 성경을 가르치고 있으니, 신천지의 비유풀이가 황당하다는 것을 성도들이 분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목사들이 쓴 성경해석을 찾아 보면 웃지 못할 해석들을 지금도 볼 수 있으며, 그 목사들은 여태까지 단 한마디 수정이나 사과를 한 적도 없다.
무화과 잎사귀가 이스라엘 독립 년도를 비유한다는 해석과 신천지의 비유풀이와 무엇이 다른가? 하나님의 교회나 이재록도 동일한 해석을 한다. 이제 한국교회는 소위 영해라고 불리는 알레고리적인 엉터리 성경 비유풀이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 성경본문의 바로 뒷구절에는 "그 날과 때는 아무도 모른다"는 구절이 있다. 성경에서는 수없이 많은 부분에서 종말과 재림의 때를 알 수가 없으며 도적같이 온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종말의 시간을 성경에서 찾으려고 하는 자들이 많은가? 그 시간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이 성경적인 정답이어야만 하며, 목사들은 그렇게 가르쳐야만 하지 않는가?
마 24: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마 24: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마 24: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마 24: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성경에서 무화과나무가 이스라엘로 비유된 적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마24:32의 본문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상징한다는 어떤 근거나 그 타당성도 찾을 수 없다. 마24장의 무화과의 잎사귀는 자연적인 징조를 뜻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실제로 자연적이며 기후적인 현상으로 가지가 연하여지고 앞사귀가 나면 곧 여름이 온다는 뜻으로 비유되었기 때문이다, 즉 시간이 지나다 보면 그 종말과 재림의 징조에 대해서 가깝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가 있다는 것이 본문의 뜻이며, 그러나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과연 주후 30년경에 사는 제자들에게 장차 1948년의 이스라엘 독립부터 계산하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하여 그런 비밀의 비유법을 사용하셨을까?
더욱이 본문은 재림의 날짜가 아니라 재림의 징조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비유 직후에 예수님은 “아무도 그 날을 알 수가 없다”는 말씀을 하신 것을 반드시 기억하여야만 한다.
마24장에서 말하는 그 징조는 다음과 같다
1. 땅끝까지 천국 복음이 전파되야 함
2.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음
3. 불법이 성행
4. 거짓선지자와 적그리스도 출현
5.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
6. 해, 달, 별이 어두워지고 떨어지는 것
예를 들어, 오늘날 범죄와 타락이 만연하고 있으며 기근과 지진이 성행하고 있다. 또 이단교회의 거짓 그리스도들이 출현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징조들을 통하여 “예수님이 오실 때가 가깝구나”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는 것이 성경본문이 아닌가? 즉 그 시한과 년도를 알 수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때가 가깝다”는 징조를 알 수가 있다는 것뿐이다.
예수님이 “이 세대(this generation)가 지나기 전에”라고 말한 것은 “이스라엘 독립 후부터 한 세대”라는 뜻이 결코 아니며, 그렇게 해석할 이유와 근거가 전혀 없다. 오히려 문자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대화를 하는 그 시간부터 “이 세대”라고 보는 것이 문법적으로 옳다. 물론 “이 세대”라는 의미의 해석이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또한 마태복음24장은 주후 70년에 있을 예루살렘의 멸망을 포함한 “예언의 복합적인 성취”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즉 주님이 초림과 세상끝의 재림까지의 종말적인 징조를 동일한 캔버스에 그리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신학자 조지래드는 예언적 생략법(Fore-shortening)이라는 견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선지자들은 연대에는 관심이 없었고 미래는 언제나 임박한 것으로 보았다. 특히 구약의 선지자들은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를 섞어 한 캔버스에 그렸다. 성경의 예언들은 삼차원이 아니라 이차원이며 높이와 넓이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먼 사건도 임박이라는 투명함을 통하여 보았다. 초대교인들이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로 산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종말을 기대하며 사는 것을 가능케 만드는 것이 성경적 예언의 본질인 것도 사실이다”
2) 무화과
세대주의자들은 마21:19의 무화과를 예로 들면서 이스라엘이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마21:19도 자세히 살피면 이스라엘 국가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종교인 유대교를 상징하는 것이다. 동일한 비유가 기록된 마가복음을 살펴보자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막11:13-14)
참으로 이상한 내용이다. 아직 무화과의 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열매가 없고 잎사귀만 있다고 하여 그 나무를 저주하시니 말이다.
만일 열매를 맺을 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열매를 맺지 않는 무화과라 한다면, 저주를 하여도 그 의미가 분명히 전달되어질 터인데, 그 때가 아니기 때문에 잎사귀만 있는 무화과를 보고 책망하시며 저주를 하신다는 것은 그야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내용이 되어진다.
이 지역의 무화과나무는 일년 중 거의 열달 이상이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3. 4월에는 잎사귀만이 나오지만, 이때에는 지난해의 가지에서 자란 아직 익지 않은 푸른 열매들이 달려 있다고 한다. 이 무화과들은 6-7월 중에 익게 되며 (참고: 사28:4. 처음 익은 무화과) 봄의 새 가지에서 자라나는 두번째 열매들은 8-9월에 익는다고 한다.(참고: 삿9:11. 늦무화과) 이것은 진짜 무화과보다 먼저 나오는 것으로 아랍어로 타퀴시(taqsh)라고 부른다고 한다. 결국 예수께서는 이 무화과 나무로부터 타퀴시를 찾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식적인 의미가 아니라, 무화과로 비유된 유대교에 열매가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말씀은 무화과 열매를 맺는 때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항상 열매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그리고는 성전을 정화하셨다.
그 다음날 예수의 제자들은 어제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나무가 말라 버린 것을 발견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성전제도, 제사제도 중심의 유대교의 종교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것은 유대교의 멸망을 보여주는 것이며, 예수를 믿는 영적 이스라엘인 기독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는 형식 종교 속에서 성전으로 상징되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예수님이 이 일을 행하신 4월의 무화과는 완전히 익지는 않았지만 푸른 열매가 나 있어야만 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잎사귀만이 무성하였던 것이다. 이 사건은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는 그당시의 유대인과 바리새인의 의식적이고 가식적이며 종교적인 것을 상징하신 것이다.
구약에서도 무화과 광주리에 관한 예레미야의 환상은(렘24:1-10)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좋은 무화과)과 팔레스타인과 애굽땅에 정착한 이스라엘(나쁜 무화과)로 구분하였다.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악하여 먹을 수 없는 극히 악한 무화과가 있더라”(렘24:2)
성경은 열매가 없는 유대교를 비판하고 있지만, 기독교에서도 그 열매가 강조되고 있다. 성령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성령의 열매가 없는 오늘날의 기독교인을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약성경에도 열매라는 단어가 수없이 강조되고 있다.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벧후1:8-9)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눅3:8-9)
예수님이 말씀하신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이스라엘 독립부터 시작하여 재림 날짜 계산을 하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왜 이러한 터무니없는 해석이 한국교회에 만연하여 시한부종말론자들이 들끓게 되었는가? 한국교회들은 일년에도 몇차레씩 부흥회만 열고 있으며, 성경과 정통신학은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극단적인 세대주의적인 시한부종말론 책이 발행되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의 잎사귀를 비유하신 이유는 말 그대로 비유일 뿐이며, 봄에 싹이 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듯이, 무화과나무에서 잎사귀가 나는 것을 보면서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듯이 재림에 관한 징조를 보면 때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무화과로 비유하신 것은 이스라엘 국가를 무화과로 비유한 것이 아니라,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유대교를 열매없는 무화과로 비유하신 것이다,
3) 말세
성경에서 말세는 예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상당히 넓은 시간을 뜻한다
열처녀의 비유에서 신랑이 오시는 시간이 “더디 올새”라는 표현이 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세대”는 인간의 한 세대적 사이클이 아니라, 좁게는 유대교의 종말과 함께 기독교의 시작을 의미하며, 넓게는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말세에”라는 헬라어 단어 “에스카토스”는 반드시 종말에만 국한되어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다. 이 단어는 예수님이 사역하였던 당시에도 사용되었다.
히 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스카토스)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벧전 1: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스카토스)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성경의 기자들, 특히 신약의 기자들은 예수님의 초림의 시간을 마지막, 종말의 시간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유대인들이 말하는 “에스카토스”라는 단어는 예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를 말하는 긴 시간을 뜻한다. 물론 우리도 지금 시간을 “말세”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갈 것이다. 즉 이 단어는 종말의 시간만을 국한하여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약에서도 말일이라는 단어는 종말만을 뜻하지는 않으며, 어느 시한적인 때나 메시야의 시간을 의미한다.
단 10:14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대저 이 이상은 오래 후의 일이니라
사 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
참고하기 위하여 주석을 보자.
(호크마 주석)
말세에 - 욜 2:28의 맛소라 본문(MT; 욜 3:1)이는 '이후"(아하 레이 켄)로, 70인역(LXX; 욜 3:1)에는 '이(일)후'(메타 타우타)로 표기되었으나 베드로는 "말세'라는 표현으로 대체시켰다. 유대인들의 말세란 엄밀히 말해서 메시야가 오시는 때를 가리킨다(사 2:2; 미 4 :1). 베드로가 이 말을 오순절날에 임한 성령 강림과 관련하여 사용한 것을 볼때 이 말은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재림까지를 지칭하는 종말 개념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종말 개념은 신약 시대에 와서 생겨난 것으로 하나님 나라의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도요한이 요한일서 서신을 쓸 AD80-90년경에도 이미 적그리스도가 있었으며, 그 때를 마지막 때라고 불렀음을 알 수가 있다.
요일 2: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이 “에스카토스”라는 단어는 “끝, 마지막”이라는 뜻도 있지만, 현재 시간을 기준으로 “나중, 뒤”라는 의미도 있다. 다음 성경의 예는, “에스카토스”가 “나중”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성경적인 증거이다.
마 12: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에스카토스)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마 19: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에스카토스)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그렇다면 왜 2000년간 재림이 오지 않는 것인가?
벧후 3:9-10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그것은 모두다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며, 그것은 오히려 감사할 일이 아닌가? 예수님이 사역을 하시던 세대에 재림이 이미 있었다면 현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는 아무도 구원을 받지 못하였을 것이므로 우리는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 아닌가?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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