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안식교의 이단적 교리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ㄱ. 그는 네 뿔 네 나라의 패역자들이 가득할 때 태어났다.(마카비1:1-15)

 

 

 

ㄴ. 그는 궤휼에 능한자였다.(마카비1:11)

 

 

 

ㄷ. 그는 파괴를 행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능멸하였다. (마카비1:20-24)

 

 

 

ㄹ. 그는 평화한 때 많은 무리는 멸하였다. (마카비1:30)

 

 

 

ㅁ. 그는 만왕의 왕을 대적하였다.(마카비1:40-50)

 

 

 

ㅂ. 그는 사람의 손을 말미암지 않고 급사하였다. (마카비6:7-13)

 

 

 

ㅅ. 그는 예언대로 그 세력이 영화로운 땅 즉 이스라엘까지 미쳤고 예루살렘을 공격하였다.(마카비1:16-24)

 

 

 

ㅇ. 하늘 군대의 별(주의 종)인 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를 죽였으며 제사를 중지 시켰다.(마카비1:44-50)

 

 

 

ㅈ. 성전을 헐고 진리를 땅에 던져 버렸다.(마카비1:44-52)

 

 

 

ㅊ. 그리고 그의 횡포는 주전 167년 12월 25일부터 주전 164년까지 2300일 동안 계속되었다.

 

 

 

(맺는 말) 이렇게 명백한 해석을 무시하고 안식교의 교리를 만들기 위하여 작은 뿔을 로마로 해석하여 조사심판 교리를 억지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안식교의 2300주야의 해석과 조사심판의 교리는 명백한 오류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안식교의 이 조사심판 교리는 안식교의 교리의 기초요 큰 기둥과 주추가 되는데(엘렌지 화잇, 대쟁투, 456p) 이 교리를 뒷받침하는 성경적 근거가 이렇게 자의적인 해석이라면 그것은 심각한 현상이 아닐 수가 없다.

 

 

 

콘스탄틴 대제가 과연 안식일을 주일로 강제 변개시켰나?

 

 

 

<<안식교 주장>> 안식교인들은 초대교회에서도 안식일을 지켰으나 321년 로만의 콘스탄틴에 의해 예배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된 것이라 주장한다. 그래서 주일예배는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로마의 콘대제의 강제 법령에 의해 변경된 것이라 주장한다.(알론조 제이 워너. 성서기초교리, 1975. p.134.) <<반론>> 그러나 실제 역사적 사실을 고찰해 볼 때 이는 또 안식교에서 집필한 자체 교회사인 역사의 대쟁투를 기초한 것으로 하나의 역사적인 오류임을 알 수 있다. 몇 가지로 안식교 주장이 허구임을 말하고자 한다.

 

 

 

1. 콘대제 이전에도 주일예배가 드려지고 있었다.

 

 

 

ㄱ. 초대교회 초기에는 주일과 안식일을 혼합하여 지킨 흔적이 있으나 점차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일로 변동하여 지켰었다.

 

 

 

ㄴ. 107년 안디옥교회 감독 익나티우스의 서한 9절에 벌써 구약의 관습인 안식일은 끝나고 주일에 예배해야 하는 이유가 기록되어 있다.

 

 

 

ㄷ. 1세기에 쓰여진 초대교회 교부들의 교훈집이라는 디다케에도 그 증거가 분명하다. (디다케 제 14장 1절 참고) "제 14 장 주일 14.1 주님의 주일마다, 여러분은 모여서 빵을 나누고 감사드리시오. 그러나 그 전에 여러분의 범법들을 고백하여 여러분의 제사가 깨끗하게 되도록 하시오."

 

 

 

2. 콘대제는 기독교 박해를 그치고 기독교를 돕는 좋은 왕이었다.

 

 

 

안식교에서는 서기 321년 콘대제의 칙령을 안식일 변개칙령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콘대제는 기독교에 지극히 우호적인 왕으로 모든 박해를 그치고 기독교를 장려한 왕으로 그래서 그는 주일에 당시 공무원들은 물론 군사훈련 상업행위까지 금지시키고 주일 예배에 차질이 없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 로마에는 태양신을 섬기는 자들이 일요일을 지키고 있었는데 콘대제는 일요일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지 태양신의 날이 아니라고 의미를 바로 잡아 주면서 주일성수를 장려하였는데 안식교도들은 이를 가리켜 안식일을 태양신의 날로 바꾼 악한 왕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는 타당하지 않다. 만약 당시 기독교회가 지키던 안식일을 강제로 주일로 변개했다면 그는 박해의 왕일 것이므로 가당치 않다.

 

 

 

왜 엘린지 화잇은 거짓선지자인가?

 

 

 

안식교는 화잇을 선지자로 믿고 있으나 성경적으로 볼 때 참 선지자라고 볼 수 없다. 거짓선지자로밖에 볼 수 없는 이유는 먼저 성취되지 않는 거짓 예언을 했다는 점이다.

 

 

 

<<빗나간 화잇의 예언 목록 일부>>

 

 

 

1. 윌리암 밀러의 시한부 재림설을 첫째 천사의 기별로 예언함 --> 재림은 불발되고 신도들은 흩어짐

 

 

 

2. 살아서 재림을 맞을 자가 있다는 예언 --> 이 예언이 1856년의 일이니 150년전의 일이다. 그 당시 사람들이 다 죽고 없고 아직 재림은 오지 않았다

 

 

 

3. 미국 노예제도가 재림 시까지 계속된다는 예언 --> 지금 노예제도가 사라진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4. 안식일이 시작되는 시간에 대한 예언 번복 --> 해 돋는 시간이냐 해 지는 때이냐 이랬다 저랬다.

 

 

 

5. 돼지고기 먹으라는 계시도 오락가락 --> 먹어선 안된다, 먹어라, 다시 먹지 말라.

 

 

 

6. 스트리크닌에 대한 해독제가 없다는 계시 --> 소디엄아미탈이라는 해독제가 있었지 않는가

 

 

 

7. 개혁복에 대한 계시도 오락가락 --> 여인들의 무릅치마 옷에 대해서 안 된다 된다 9인치스타일로.

 

 

 

8. 미국이 남북전쟁이 패할 것이라는 예언 --> 1862년 남북전쟁 시 링컨을 비난하며 질 것이라 함 그리고 영국이 선전포고하면 모든 국가들이 참가할 것이라함.

 

 

 

9. 사람과 짐승의 혼종에 관한 예언 --> 노아홍수 전후 사람들이 짐승과 혼종하는 죄를 지어 혼합종을 내었다함

 

 

 

10. 유성에 관한 지시 --> 화잇이 여러 별과 달을 보았다 했는데 현대 천문학에서는 말하는 수효와 다름.

 

 

 

11. 베틀 크리크 위생병원 건축 지시 --> 예언으로 짓던 병원 헐었다 지었다 예언이 오락가락 등등 성경은 말씀한다. 신18:22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안식교는 출발부터 문제가 있었다

 

 

 

안식교의 출발 - 한 종파의 실체를 파악하려면 그 출현동기와 역사적 배경을 살핌이 중요하다. 안식교는 성경에 근원한 것이라 주장하지만 본래 시작을 보면 사도적 신앙에 기원을 두는 것도 아니오, 종교개혁에 근원을 둔 것도 아닌 1844년 10월 22일 시한부 재림설을 주장한 윌리암 밀러의 재림운동에 그 기원을 둔다. 안식교는 이 사실을 부인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 예언을 첫째 천사의 기별이라고 하는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다.

 

 

 

1. 안식교의 약사

 

 

 

(1) 밀러의 재림운동 대위 출신이요 농부인 밀러는 개인적으로 2년간 성경을 연구하다가 단8:14의 2300주야를 해석하여 재림 날짜를 1844년 3월 21로 정했다. 그러다가 시한부종말론자들이 늘 그러하듯 다시 동년 10월 22일로 변경했다. 그 근거는 2300주야를 2300년으로 보고 에스라 7장의 B.C. 457년을 그 기점으로 계산하니 서기 1844년이 되었고, 구약 속죄일을 현재 날짜로 10월 22일로 생각하여 1844년 10월 22일이 나온 것이다. 이 주장을 따르는 자들이 12만 명이나 되었으나 그 날이 와도 아무 일이 없자 크게 실망하여 따르던 자들이 기성교회로 돌아가거나 남은 자들은 여러 분파로 나누어졌는데 그 중의 대표적인 분파가 여호와 증인이요, 또 다른 분파가 제7일 안식일 재림교이다.

 

 

 

(2) 엘렌 지 화잇의 환상 안식교에서 선지자로 여기고 있는 이 여인은 본디 감리교 신자였으나 밀러의 재림운동에 가담했다. 많은 이들이 재림 불발로 실망에 빠져 있을 때 그녀는 예수께서 하늘의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시는 환상을 보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녀는 밀러의 2300주야 해석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단지 밀러의 계산은 재림 날짜가 아닌 예수님께서 하늘 성소에 계시다가 지성소로 들어가신 날이라 하여 소위 조사심판교리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화잇 부인의 주장을 따라 된 교파가 바로 안식교이며 조사심판 교리가 안식교 교리의 핵심의 하나이다.

 

 

 

(정리)

 

① 윌리엄 밀러는 신학적 기반이 없는 평신도 성경 연구가였다.

 

 

 

② 예수 재림교라는 명칭이 시한부 종말론에서 생겨난 것이다.

 

 

 

③ 재림 날짜를 잡았다는 것 자체가 밀러의 무식을 증명하며 그 날을 알지 못한다는 성경에서 이탈한 것이다.

 

 

 

④ 1844년에야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속죄사역 하셨다면 이미 히브리서가 말하는 속죄의 완성과 자유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요즘은 모순을 최소화하기 위해 밀러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는 주장으로 나간다고 한다.

 

 

 

안식교의 조사심판 연대계산 과연 옳은가?

 

 

 

<서언> 안식교의 조사심판의 교리는 아주 중요한 교리적 기초를 이루는 부분이다. 조사심판이란 단 8:14의 "성소가 정결함을 입으리라"는 예언에 의해 예수께서 1844년까지 성소 봉사를 마치시고 지성소로 들어가셔서 성도의 품성과 행위를 조사 혹은 도말하시며 그 행위에 따라 심판을 하신다는 안식교 교리이다. 안식교의 조사심판의 중대한 오류에 대해서는 차후로 지적을 미루고 1844년을 그 기산일로 잡은 것부터 얼마나 성경적으로 무근한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

 

 

 

1. 안식교 주장 - 1844년이라는 계산이 나온 근거 안식교에서는 예언의 하루를 1년으로 보고, 단8:14의 "이천 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한 예언대로 2300년 후에 이런 일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럼 언제부터인가? 단9:25의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라는 것이다. 엘렌지 화잇을 비롯 대부분이 그 때를 B.C. 457년 즉 에스라 7장의 세 번째 아닥사스다 건축령(547년)으로 성전이 완공되었으므로 2300주야의 시작 기산점으로 잡고 있다(일렌지 화잇, 대쟁투 합본 p366).

 

 

 

2. 반론

 

① 안식교 내부의 사건 - 화잇의 기원전 457년령에 대해 이는 성전건축령도 예루살렘 준공령도 무관함을 안식교 학자들이 점차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이 계산적 문제가 발생하자 어떤 이는 성전 건축령이 아니라 성읍 재건령이라 변명하기도 했고(신계훈, 우필원), 어떤 이는 성전과 성읍 재건령이 포함된 것이어야 한다(김상래), 혹은 재 건축령을 내린 날이라고 변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457년은 아닥사스다의 귀환령일 뿐이며(아래 도표 참고) 내부 학자들의 여러 다른 주장은 안식교의 대부격인 화잇의 계산을 자체적으로 뒤엎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② 1844년은 성전건축령이 아님 - 놀라운 사실은 성전건축 완공은 안식교가 말하는 457년 보다 59년 전 B.C. 516년에 이미 완공되었다는 것이다(스6:14-15). 그리고 스7:1-26에 언급된 아닥사스다의 조서는 성전건축령도 예루살렘 중건령도 아닌 이미 중건된 예루살렘에 돌아가도 좋다는 귀환령인 것이다. 이 사실을 안 안식교 내부에서 자체 혼란에 빠진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안식교가 기산점으로 정하는 457년은 성전중건령도 아니요 남아있는 자들에게 돌아가라고 하는 명령이 내린 때이다. 이것을 착각하고 계산했으니 조사심판도 틀린 것이 명백하고 더구나 1844년에 조사심판은 성경에 무근한 일이다. ※ 예루살렘 중건 역사 도표 기원전 536년 고레스 원년 예루살렘 중건령 (스1:1) 기원전 535년 성전 건축 중단 기원전 520년 다리오 2년 재차 중건령 (스4:24, 6:11) 기원전 516년 다리오 6년에 성전 완공 (스6:15-18) 기원전 457년 아닥사스다 7년에 에스라 귀환령 (스7:7)

 

 

 

* 기원전 445년 아닥사스다 20년 성벽 건축령 (느2:1) 동년 성벽 건축 52일만에 완공 (결론) 그래서 안식교에서 주장하는 조사심판 계산 기산점으로 보는 457년은 중대한 착각이었고 그럼에도 아직도 1844년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앞에서 필자가 각 시대의 대쟁투의 역사적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성경과 신학에 전문가가 아닌 화잇이나 밀러의 부족함을 이미 지적한 바도 있다. 그러나 안식교 교회사인 대쟁투를 맹신하며 안식교 주창자들의 식견 부족을 오히려 오염 없는 장점으로 여기는 것은 바르지 않다. 이 시점에서 최선의 길은 오류를 발견했을 때는 즉시 돌이킴이 최선인 것이다.

 

 

 

457년에 대하여

 

 

 

안식교 내부의 사건 - 화잇의 기원전 457년령에 대해 이는 성전건축령도 예루살렘 준공령도 무관함을 안식교 학자들이 점차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이 계산적 문제가 발생하자 어떤 이는 성전 건축령이 아니라 성읍 재건령이라 변명하기도 했고(신계훈, 우필원), 어떤 이는 성전과 성읍 재건령이 포함된 것이어야 한다(김상래), 혹은 재 건축령을 내린 날이라고 변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457년은 아닥사스다의 귀환령일 뿐이며(아래 도표 참고) 내부 학자들의 여러 다른 주장은 안식교의 대부격인 화잇의 계산을 자체적으로 뒤엎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설명) 안식일교 학자들이 점차 다르게 인식한 일이 결코 없습니다 이것은 안식일교만의 교리가 아니라 17세기에 만유인력을 발견한 천문학자요, 신학자 뉴턴도 아주 먼저 457년이라고 발표한 바 있으며 종교개혁이후 여러 학자들도 457년으로 누차 검증된바있는 일입니다 457년의 아닥사스다 령은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성읍 중건령이 맞지만 그 안에서 일부 성전중건도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무슨 변명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설명을 구체적으로 하느냐? 혹은 포괄적으로 하느냐? 의 차이 일뿐입니다 왜 457년이 일부 성전중건이 되는 이유는 이미 516년에 성전이 완공되었지만 그 후 또 성전을 또 손대어 아름답게 꾸몄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6;14)에 보면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서도 성전이 (최종) 완공되었다는 구절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스 6;14)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력으로 인하여 전 건축할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전"을 건축하며 필역하되,,,,"

 

 

 

** 안 그러면 516년에 완공 끝난 성전이 어떻게 그 후 59년 뒤(457년)의 아닥사스다왕의 조서를 쫓아서 함께 성전을 완공했다고 할 수가 있을까요 이 구절의 비밀은 오늘날 개신교목회자 어느 누구도 해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왕의 조서들"이 아니고 세왕의 조서로서 하나의 단수로 말하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아닥사스다 왕때에도 성전을 아름답게 하고자 성전을 꾸미고 고칠 것 같은 구절이 분명히 나옵니다(스 7;16) (스7:27) 결론적으로 457년은 귀환령도 당연히 맞지만 예루살렘성과 성읍(스 4:12)과 성전재건 그리고 백성들이 정치 종교 행정등의 자치권의 회복(스7;25)까지 되도록하여 그야말로 완벽한 예루살렘 중건 명령이라 할 수 있으므로 이 아닥사스다왕의 조서시점이 바로 단 9:25절을 충족하는 구절이 되는 것입니다.

 

 

 

그 조서이후 49년 후(408년)에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재건되었고요 아무튼 BC457년으로 기점을 잡지 않으면 단9:25절에서 말하는 기름 부은자 즉- 예수님 침례년도 AD 27년이 맞아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더 벗어야 할 안식교의 율법주의 안식교의 율법주의 안식교는 율법주의 교리를 고수하다가 1870-1880년대의 와그너와 존스를 통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교리를 받아들여 율법주의적인 경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오만규, 재림교회사, 127-140p). 그래서 안식교는 이신득의 즉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교회라고 공언하고 있다.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며 안식교도들은 율법주의라는 말 듣는 것을 싫어하지만 아직도 안식교에는 율법주의적인 잔재가 많이 있다.

Blog
About Us
Message
Site Map

Who We AreWhat We EelieveWhat We Do

Terms of UsePrivacy Notice

2025 by iamachristian.org,Inc All rights reserved.

Home
Gospel
Question
Blog
He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