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신약성경의 형성사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신약성경의 형성사

1) 개요

 

신약성경(新約聖經)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교훈을 그를 지지하고 신앙하던 제자들을 중심으로 기록한 기독교의 모태를 이루는 경전입니다  

 

신약성경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등 예수님의 족보와 삶과 행적을 기록한 4대 복음서와,  사도들의 활동과 세계선교 사역을 기록한 사도행전을 비롯하여, 사도 바울과  다른 사도들이 여러 지역과 교회들에 보낸 서신서와 그리고 사도 요한이 기록한 묵시록인 요한계시록을 정통신학으로 인정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글들은 당시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였던 사도들과 기독교인들이 서로 지역에 따른 언어 소통의 불편을 덜기 위한 수단으로 고대 그리스어의 방언의 일종인 코이네(koine, 공동)로 기록하였습니다

 

신약 성서의 형태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되는데,  첫째로 사도행전을 제외한 다른 4대 복음서는 예수그리스도의 행적에 포커스를 맞추어 기록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기록으로 이것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사도행전1:8)으로 부터 오순절성령사건과 베드로와 제자들과 사도바울의 세계선교를 향한 열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셋째는, 21권의 서신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가운데 대부분은 사도 바울이 기록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특히 로마서는 성경중의 다이아몬드라고 일컬어질 만큼 가장 중요한 성경적, 교리적 핵심을 다루고 있으며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삶과 실천에 관한 규정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넷째는 요한이 기록한 요한계시록으로 이것은 성경의 모든 미래와 지향점, 성경의 모든 질서와 가치를 마지막에 담은 결단을 촉구하는 메세지인 것입니다

 

서신서들은 예수님의 사후에 기록한 것이며 교회와 교회내의 분쟁, 이단종파에 관한 문제해결방안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후 130년~180년경 전후로  전 세계의 신학자와 성직자들이 모여 오늘날의 성경이 이루어졌으며 이 때 발견된 수많은 문서와 서신서들 중에서 어떤 것을 성경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과 원칙을 정하였으며 그것은 4가지로 정의 되었습니다

 

1. 사도가 직접 기록하거나 혹은 사도와 직접 만난 사람이 기록한 문서

 

2. 성령의 영감을 받아 쓰여진 문서

 

3. 다른 성경의 내용과 모순되는 사항이 없을 것

 

4. 믿음과 직제가 통합된 보편적인 정통교회(Catholic Church)에서 사용할 것

 

이러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내부에서 조차 성령의 뜻에 의한 구별이 쉽지 않았고 수많은 문서들 가운데 옥석을 가리는 일에 논란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외경과 위경등을 두고 오늘날 기독교와 로마가톨릭에는 많은 차이가 있으며 그것을 끝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분열되었습니다 

 

초대 교회 때에도 구약성경의 하나님과 신약성경의 하나님은 서로 다르다면서, 사복음서와 공관복음서만 성경으로 인정하거나, 사도 바울서신 외에는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마르키온주의(혹은 마르시온주의)도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에 비해 구약성경은 70인역이 주전 200년경에 확립되었고, 전체적으로도 주후 60년경에 구약성경의 정경 목록이 제정되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도 외경 문제가 있었습니다 정경과 외경을 제외한 다른 경전은 그 진실성이 의심스러운 경전들로 위경이라고 하였습니다  도마서(토마스의 편지)나 베드로복음이 여기에 속하는 것들로 내용의 구성과 적합성이 신뢰성이 없는 것들이 주류였습니다  대부분의 기독교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하는 교단과 교파는 다른 성경과 서적들을 탐닉하기도 하였는데 몰몬교와 조로아스터교 등이 이에 해당하는 것들입니다

 

2) 신약성경의 형성사

 

초대교회 성도들은 신약성경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예수를 믿고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은 신약성경 이전에 이미 교회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구약성경을 토대로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실제로 예수 께서도 구약성경을 여러곳에서 인용하셨으며 구약성경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기도 하였습니다

 

초기 교회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율법과 예언자들의 권위와 함께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 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는 직접적이고 명확한 것이었습니다   제 1세기 기독교 시대를 통해 사도들의 증거는 단지 말로서 뿐만아니라 여러가지의 경우 서면으로 전달되기도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자기들이 가르쳐야 할 신도들과 함께 있을때에는 구두로 교훈을 베풀었으나 자기들이 직접 현장에 있지 못할때, 필요에 따라서는 서신에 의해 그들의 교훈을 전달하였던 것입니다  그 일례가 바울이 고린도 교회와 로마에 보낸 고린도전서와 로마서 등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제 1세기 60년대에는 바울이 작성한 몇개의 서신과 다른 사도들의 서신들이  여러 개인과 교회에 소장되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즉후에는 예수님의 생애를 서면으로 기록해야 할 필요가 그다지 시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생애와 승리를 직접 목격한 증인들이 생존해 있어서 이를 직접 전해 주는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오순절로부터 약 30년이 가까워 지자 이러한 직접 목격자들이 점차로 희귀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이때 로마 기독교인들은 베드로의 동역자이자 통역자였던 마가를 초대하여 베드로가 그의 설교의 주제로 삼았던 그리스도의 사역과 고난을 영구히 보존할 수 있는 기록으로 남겨주도록 부탁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복음에 관한 마가의기록이 나타난 후, 의사이며 바울의 선교여행 동역자였던 누가가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하여 기독교회의  역사를 그 시초로 부터 정확하고 질서있게 기록하기 시작하였으니 이것이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2부의 역사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인 것입니다  또한 시리아 지방에서도 이곳 유대인 기독교 공동체들에 의해 보존된 몇가지 특징있는 소재들을 포함하면서도 이방인들이 설교에 특히 중점을 둔 복음서가 나타났는데 곧 마태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들은 누구든지 이를 소유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개인들과 공동체들에 의해 소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흩어져 있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약성경이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신약성경의 정경들은 몇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그 형성을 보게 되었고 정경의 공식인준은 교회의 실제적 필요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도들의 사후 복음에 대한 이해와 가치관에 따라 그노시스파와 마르시온파들의 이단적 주장이 나오는 등 진리를 헤치는 일련의 이단들이 등장함에 따라 정경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주후 140년경, 마르시온은 바울만을 유일한 사도적 권위를 소유한 자로 인정하고 바울주의 입장에서 신약성경을 편집하였습니다   이것이 신약정경 형성의 첫 시도로 보는 것입니다   정경(正經)이란 헬라어로 표준이란 뜻으로 마르시온의 정경편집은 교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습니다   당시 교회에서는 구약성경과 복음서 및 사도들의 서신들이 예배중에 읽혀지는 습관들이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때로 가경(假經)들도 소개됨에 따라 성경의 정경이 확정되기를 소망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의  핍박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성문서들이 유실되었고 일부분만 보관하게된 교회의 지도자들은 신약성경의 편집을 서두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약의 편집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주후 170~180년경, 로마에서 기록된 것으로 추측되며, 1740년 이탈리아 무라토리(Muratori)가 밀란의 도서관에서 발견한 것으로 그의 이름을 따라 무라토리 경전(Muratorian Canon)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무라토리 경전에는 4복음서, 야고보서, 사도행전, 바울의 13서신, 히브리서, 베드로전서, 요한1서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 후 2세기말, 이레니우스의 신약성경에는 4복음서, 바울의 13서신, 사도행전, 요한 1서, 요한 2서, 베드로전서, 요한계시록, 그리고 헤르마스의 목자서신(후에 경전에서 제외됨) 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2세기경의 경전의 기준은 사도성, 참교리, 광범위한 유포 등 3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했습니다   3세기에 와서 오리게네스(주후254년경 사망)는 신약성경의 낱권을 논란의 유무에 따라 분류하여 가짜(notha)와 성서(scripture)와 경전(Bible)으로 분류하였습니다 

 

4세기경, 유세비우스는 당시에 경전에 된 책의 명단을 공개하였습니다  그것은 4복음서, 히브리서, 바울의 14서신, 요한 1서, 베드로전서와 논란이 있었지만 교회내에서 읽혀졌던 야고보서, 유다서, 베드로후서, 요한 2서, 요한 3서, 요한계시록 등 27권이었습니다  신약성경의 결정은 주후 382년, 동방교회가 로마 전체회의에서 정경목록을 작성하고 395년 칼타고 회의에서 27권 전권과 목차가 확정되었습니다  

 

캐논(Canon)은 희랍어로 "곧은 장대",  "지팡이" 라는 뜻으로 표준, 근본원리를 기록한 책의 목록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신약성경의 정경에 관한 결정 기준은 역사적으로 사도적인 권위가 있는가 하는 문제와 영적으로 그 감화력이 사도들의 것과 동일한 가 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1. 정경 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그 문서들이 사도적인가 하는 관점이었습니다   즉, 사도 자신이 기록한 것이거나 사도의 동역자가 쓴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베드로의 동역자로서 마가의 서신이 포함된 사례입니다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 3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등의 결정이 늦어진 것은 그 문서들이 사도에 의해 작성된 것이라는 판단 여부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일례로 바나바서, 헬마스의 목양자, 클레멘트 서신, 솔로몬의 지혜 등이 사도적 권위의 결여로 제외된 것입니다 

 

2. 사도 이후 300여년간 많은 성경책들은 정경의 인준도 없이 초대교회에 널리 유포되었고 회람식으로 읽혀졌습니다   이렇게 읽혀졌던 성경들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되고 받아들여 졌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교회 회의 인준으로 정경화 된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성경으로 읽혀 내려온 것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정경으로 인정한 절차를 거친 것 뿐이었습니다 

 

3. 동방교회에서는 주후 367년, 아다나시우스(Athanacius)의 공적 서신에서 처음으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을 정경으로 밝힌 바 있으며 "사도들의 교훈" (Didache) 과  "목양자" (Shepherd) 는 정경과 구별하여 성문서로 취급하였습니다   이로서 382년 로마 전체회의에서 정경 목록을 작성하고 395년 칼타고 회의에서 신약성경 27권과 목차가 확정되었던 것입니다  아울러 서방교회도 397년, 어거스틴의 주도로 오늘날의 성경을 정경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4. 이러한 신구약성경의 확정에 있어서 당시 많은 이단자들에 의해 유사한 경전들이 만들어지고 사용되었으나 그들의 결국은 거짓으로 판명되고 얼마가지 않아서 소별되고 말았습니다   최근 유다복음서와 같은 이단서들이 일시적으로 논쟁되고 있으나 그러한 저급한 책들은 당시에 이미 존재하였고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무가치한 논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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