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출애굽기 파노라마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너희는 생명을 위해 짐을 지고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출애굽기 파노라마

출애굽기라는 명칭은 구약성서의 헬라어 역본인 칠십인역(LXX)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자는 창세기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입니다. 이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는 예수님께서 모세오경의 모든 말씀을 골고루 인용하시면서 오경이 모세의 글임을 증거하셨다는 점입니다(요7:19).

 

출애굽기는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자손들이 번성하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그들이 내려갈 때는 70명에 불과하였으나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출1:7)고 말씀합니다. 이점에서 명심해야할 점은 이들은 단순한 야곱의 자손이 아니라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창32:28)하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이스라엘 곧 특별한 소유로 삼으신(시135:4) 세계 선교를 위해 택함 받은 제사장 나라의 백성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학대하며 노예로 부리는데서 하나님의 구원의 필요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름 받은 선교사 모세는 바로와 애굽인들에게 보냄을 받습니다 (출6:2-3, 7:5). 모세를 불러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하시고 출애굽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출3:10). 모세는 전도하러 보냄을 받아 선교사로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막1:38).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선교에 대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보내시는 선교의 절정으로서 그 모습을 증거합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갈4:4). 모세를 통해 선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출7:6).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매"(출 7:5)

하나님은 애굽인들도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셨습니다. 모세는 바로왕도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고 타문화권 선교를 한 선교사였습니다.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출 7:5, 17, 14:4, 18)

"이로 말미암아 내가 세상중의 여호와인줄을 ..알게 되리라"(출 8:22)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출 9:14-16)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성에서 나가자 곧 내 손을 여호와를 향하여 펴리니 그리하면 뇌성이 그치고 우박이 다시 있지 않을지라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줄을 왕이 알리이다"(출 9:29)

 

예수님은 출애굽기에서 우리의 유월절 양으로(출12장) 예표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구원하기 위해 희생당

 

한 양은 바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지시로 모세가 만들었던

 

 성막 또한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의 주제

하나님께서 야곱의 자손 70명을 애굽으로 내려보내셔서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하심은 출애굽이라는 예표를 통해서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히2:15)이 사탄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게 되는 영적 출애굽을 계시하시려는 의도에서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림자로 모형으로 예표로 말씀하고 있으며 중심점은 복음인 것입니다. 모든 그림자와 예표의 실체는 그리스도입니다(골2:17).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체만 바로의 속박에서 구원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해 유월절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들의 영혼이 구원받게 하시는 것이 궁극적인 출애굽의 목적이 있습니다(벧전1:9).

출애굽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부분(1-18장)은 애굽을 출발하여 시내산까지의 여정이고, 둘째부분(19-40)은 시내산에서 약 1년 간 머무르면서 율법을 받고 성막을 짓는 내용으로 되어있습니다.

“너는 산에서 보인 식양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출 26:30)

 

애굽으로 내려간 70명이 장정만 60만 명으로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애굽으로 내려 보내시면서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46:3)하신 약속의 성취이고 또한 그들이 바로의 압제를 받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창15:13-14)에서 예시되었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13~14)

출2:23-25를 보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이 단지 그들이 부르짖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먼저는 하나님의 언약이 있었습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출2:23-25)

하나님의 언약은 언제나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엡1:9)것입니다. 430년(12:40)후인 이유는 쫒아 내야할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했기 때문(창15:16)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영적 출애굽을 계시하시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출6:5-8). 그러므로 출애굽기의 핵심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救贖)”입니다.

출10:1~2을 통해 대대로 전할 표징 곧 대대로 전할 복음을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케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너로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 가운데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출10:1~2)

  

 

유월절과 복음(출12장)

그렇다면 그 표징은 무엇이며 하나님은 그들을 어떤 방식으로 구속하여 그의 백성으로 삼으시는가?

바로 출애굽기 12장에 나오는 “유월절 양”입니다.

 

 

1)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집을 한 단위로 무엇을 준비케 하셨는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달 10일에 각 가족 단위로 (어린 양을) 한 마리씩 준비하라고 하라.”(출 12:3)

구약의 어린 양은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입니다(요1:29).그러므로 “어린 양을 취하라” 3절은 한 어린 양(a lamb)이라고 합니다. 4절은 그 어린 양(the lamb)이라고 합니다. 5절은 너희의 어린 양(your lamb)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한 어린 양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아무 어린 양이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이 정하신 그 어린 양(the lamb)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어린 양이십니다. 하나님의 그 어린 양일지라도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각 개개인이 자신의 양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행함과 노력과 의로움은 구원을 얻는 데 무가치하다는 것입니다(엡2:8-9).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아는 각 가족 단위로 어린 양 한 마리를 준비하게 하신 것 ”(출12:3)은 하나님의 원 뜻은 여호수아 2장의 라합과 누가복음 19장의 삭개오와 사도행전 11장의 고넬료의 예를 볼 때 유월절 어린 양이 개인만을 위하지 않고 온 집안 식구들이 구원받기를 원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행16:31)

 

2)준비할 양과 염소가 갖추어야 할 조건은 무엇인가?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羊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출12:5)

출애굽기 12장 5절을 볼 때 어린 양은 흠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온전하며 흠이 없다는 것을 상징합니다(요8 : 46).

모든 사람은 첫 사람 아담의 죄로 인하여 태어날 때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나 예수님만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죄가 없었고 모든 사람들은 죄를 범했으나 예수님은 완전 성결하게 사셨습니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벧전2:22)

또한 어린양은 일 년 된 수컷이어야 합니다. 일 년 된 것은 다른 목적에 쓰이지 않은 신선한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에 달린 주 예수는 하나님 보시기에 일 년 된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깨끗했습니다. 다른 목적에는 전혀 사용된 적이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구원 받기 전에 이미 다른 곳에 죄의 병기(兵器)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결코 악한 목적에 사용된 적이 없었습니다.

 

3)나흘 동안 점검받은 후에 누가 준비한 양을 잡는가?

“이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출12:6)

유월절 어린 양이 나흘 동안 점검받는 것처럼 우리 주 예수님도 같은 기간 동안 점검받으셨습니다. 체포되신 후 그분은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세 번, 로마법에 따라 세 번, 대제사장들과 빌라도 수하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그분으로부터 어떠한 죄도 찾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요18 : 38, 19 : 4,6). 로마병정들이 예수님을 죽였으나 예수님은 나와 믿는 성도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기에 이것은 우리 모두가 그분을 죽일 때 동참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4) 구속을 위해 어디에 피를 발라야 하는가?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출12:7)

히 9:22는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문설주에 바른 피는 구속하는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합니다(마26 : 28, 요19: 34, 벧전1 : 18-19).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발라졌다는 사실은 피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문을 열어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그리스도의 피로 보장되어 있습니다.

 

5)양의 피를 문에 바른 후 가족들은 언제까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출12:22)

이스라엘 자손들은 아침까지 집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었습니다(출12 : 22). 그리스도 안으로 우리가 들어가는 입구는 피가 발라진 문입니다. 우리가 우슬초로 피를 문에 바를 때, 곧 그리스도의 보혈을 우리 영혼에 바를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후에 우리는 그분 안에 머무를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주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그분과의 연합, 그분과의 동일시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6) 양의 머리와 다리와 내장은 어떻게 요리해서 먹어야 하는가?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출12:9)

고기는 날로 먹을 수 없었습니다(9절). 불에 구워먹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죽으심을 예표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어린 양의 고기를 날로 먹으려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흉내내고 모방해야 할 인간 윤리 생활의 본으로만 간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7)언제 고기를 먹어야 했는가?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출12:8)

밤에 고기를 먹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으면 죽음이었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

 

유월절 어린 양의 고기는 생명 공급을 위해 반드시 먹어야 했습니다(출12:8-1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6:53)

여기의 살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상징합니다. 당신이 사과에 대해 백년을 연구해도 먹지 않으면 사과의 맛을 모르고 영양가를 섭치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음식을 먹지 않으면 사람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듯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지 못하고 영원히 구원받지 못합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애굽 장자를 심판하신 것은 죄 때문이지 편파적인 보복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도 죄 아래 있기는  애굽 사람들이나 매 한가지였습니다. 똑같이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피를 보심이 없이 이스라엘 집을 넘어간다면 그것은 공평치 못한 일이 되고 하나님의 공의가 용납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구속의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출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어린양의 피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가히 구약에 나타난 십자가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영적 출애굽을 이해하는 데도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죄 값에 팔려 사탄의 노예가 된 자들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길은 죄 값을 대신 지불하는 구속이외에 다른 방도는 없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5:7)고 말씀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게 된”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길은 신약의 성도들만이 아니라 구약의 성도들까지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뿐임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어린양이라는 그림자를 통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봄으로 구원을 얻을 수가 있었고 신약의 성도들은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믿는 차이 뿐입니다.

 

 

 

유월절과 무교절

유월절의 영적인 뜻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고난과 죽음으로 인하여 죄인들이 그 공로로 속죄와 구원을 받게 됨을 의미합니다. 무교절은 반드시 유월절이후에 시작됩니다. 무교절은 1월 15일부터 일주일간 지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중에서 특별히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신 부활의 절기를 의미합니다. 누룩은 성경에서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는데 첫째는 마13장에서 예수님께서 천국을 누룩과 같다고 비유했습니다. 누룩의 퍼지는 특성을 복음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 이것은 좋은 누룩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고전5:7에서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무교절은 구원받은 자의 거룩한 생활입니다.

 

그리고 "떡"은 주님을 상징합니다. 요한복음 6장 22-29절에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룩없는 떡은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악이 없을 뿐 아니라 죽음이 그를 주장하지를 못하고 다스릴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의롭고 거룩하실 뿐만 아니라 생명의 근본이심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그 떡을 먹는 이스라엘 자신들에게 의롭고 거룩함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신약시대의 성도가 생명의 떡이 되시는 주님과 영적인 관계를 가질 때,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힘입을 때, 의롭고 거룩함만이 아니라 영생을 얻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천하 다른 이름으로 구원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그 구원에는 칭의, 거룩함, 생명이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 안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요6:39-54,롬8:10-23,고전15:12-57).그러므로 요한복음 6장 22-29절에 주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 되심을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주의할 것은 이 무교절은 1주간 계속됨입니다. 1주간은 일생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이 이 유월절과 무교절을 살펴보면 시간적으로 전주간과 차주간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그와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관계도 역시 시간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즉 주님께서 전 주간에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는가 하면 차주(次週)간인 안식일 후 첫날에 부활하셨습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들도 주안에서 죽으나 사나 주안에서 사는 부활의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망중에 살고 있습니다(고전 15:12-57,딤전 4:14-16). 차주간은 ,새생명 새신분, 새사명, 새능력, 새생활등을 의미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우리가 유념해야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있어“구속”이 핵심적인 요점이지만 구속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신 후에 방치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백성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복음화를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사용하시려고 준비시키셨습니다. 인류의 시조가 범죄 함으로 에덴에서 추방당한 사건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잃어버린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속의 목적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을 찾으심과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저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저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온 열방을 선교하며 주님을 섬기는 것 ”이것이 출애굽기의 중심 주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셔서 한 말이 일관되게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기리라”(출5:1,7:16,8:1,9:1.13,10:3)였던 것입니다 . 40년 동안 매일 같이 “만나”를 내려주시고 40년을 입어도 해어지지 않은 의복과 신발(신8:4,29:5) 전무후무한 우주적인 명품을 주셨고 생수를 마시게 하심도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율법을 주심도 자기 백성들이 “법 없는 자”(행 2:23)되는 것을  원치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갈 5:14)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그러므로 십계명의 서문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20:2)고 말씀하십니다. 십계명을 지켜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십계명은 이미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장 나라 백성답게 살도록 주신 말씀입니다. 누룩을 없애는 무교절의 생활, 곧 성결한 영혼과 마음 그리고 성결한 생활로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할 때에 이방인들이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신4:6). 다시 말하면 과연 하나님의 백성은 다르구나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세계선교하는 삶을 사는 제사장 나라의 생활양식(生活 樣式)입니다. 출애굽기 19장에서 하나님은 저들을 출애굽 시킨 궁극적인 목적을 분명히 밝히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세계영혼을 위한 선교사로 부르신 시내산 언약

출애굽기 19장 5절~6절에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는 세계가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 것이니까 어떻게 쓰든 이스라엘은 순종할 의무만 있는 것입니다.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이렇게 말하되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눅 19:31) 우리의 모든 것도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나를 어떻게 쓰시든 감사함으로 순종해야할 것입니다.

‘내 언약을 지키면’ 레위기라는 언약을 잘 지켜야 합니다(말2:4~5). 언약을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소유’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보물’ 혹은 ‘보배’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소중한 보물처럼 여기시겠다는 말씀입니다(사43:4).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말 3:17)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여기에서 ‘제사장’이란 말은 라틴어로 ‘폰티펙스’(Pontifex)인데, ‘다리 놓는 사람’ 즉 ‘중보자’(Bridge-Builder)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보물처럼 보호하시고 복 주시는데, 그 목적이 자기들만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아 누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다른 민족들 사이에 다리를 놓고 그 축복을 나눠주는 통로가 되라는 겁니다.

제사장은 첫째, 백성들을 위해 대속하는 삶을 삽니다. 나를 부인하고 나의 유익을 추구하지 않고 먼저 이웃의 짐을 지는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는 삶을 삽니다(고전9:19).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지옥가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죄인사이에 다리놔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삶입니다. ‘제사장 나라’ 라는 자체가 다른 모든 민족을 하나님과 사람사이에서 섬기는 세계선교의 사명을 나타내는 거룩한 직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만민가운데 복음을 증거할 증인으로(사43:10) 즉 선교사로 부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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