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교부들의 식사 양식은 매우 다양하였습니다. 공통점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절제였습니다. 피티리온은 목요일과 주일에 수프를 먹었고, 안토니우스는 이틀 내지 나흘 간격으로 식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어떤 원로는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하루 한 끼 식사하면 수도승이다. 하루 두 끼 식사하면 육적인 인간이다. 하루 세 끼 식사하면 짐승이다.”
지나친 주관적 주장이긴 하지만 어쨌든 사막교부들은 과식을 피하고 소식을 하였고, 잦은 금식보다는 매일 조금씩 먹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집트인들의 주식은 빵입니다. 카시아누스 시대에는 빵 2개(약 340g)가 그들의 하루 식량이었습니다. 하루에 빵 1개로 만족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메게티우스는 빵 하나로 이틀을 견뎠다고 합니다. 빵을 먹을 때는 소금을 조금 친 후 물에 담가 먹었습니다. 자고로 소금은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것으로 약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빵은 보통 밀로 만들었지만 보리와 누룩으로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빵만 먹은 것이 아니라 신선한 셀러드, 상추, 나물 같은 채소를 먹었고, 콩을 익혀 먹기도 하였습니다. 음식을 조리하는데 필요한 간단한 시설과 기구가 있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요리를 할 때는 아주 소량의 기름만 사용하였으며, 고기는 전혀 먹지 않았습니다.
포도주에 대한 사막교부들의 인식은 다음의 일화를 통하여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날 포도주 한 잔을 받은 원로기 이렇게 말하며 거절하였답니다.
“이 치명적인 독약을 내게서 치우시오.”
어느 병든 원로는 포도주 잔을 받아 들고 울면서 말하였답니다.
“내 생전 포도주를 마시리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소.”
사막교부들이 일반적으로 포도주를 멀리하였지만 때로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사실 방문객들을 위하여 실제로 포도주를 준비해 두기도 하였습니다.
음식에 대한 사막교부들의 자세는 “육체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만큼이 아니라 육체를 지탱하는 데 필요한 만큼 먹는 것”이었습니다.
사막교부들은 때로 금식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이나 모세처럼 40일씩 한 교부도 있었습니다. 금식과 관련하여 압바 모세가 카시아누스에게 한 말입니다.
"저 유명한 리코폴리스의 요한이 지나친 단식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악령의 충동질인 것 같다."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 한 법입니다. 신약의 사도들은 금식에 대하여 자랑한 바가 없습니다. 21일 금식하였다든지 40일 금식을 몇 번 하였다는 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무슨 집회에서 강사가 40일 금식을 몇 번하였다는 식으로 자기 자랑하는 것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40일간이나 금식을 하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으로부터도 칭찬 받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참다운 금식을 하였다면 될 수 있는 한 그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는 것이 더 덕스러울 것입니다. 사막의 교부들은 지혜를 구하기 위하여 장기 금식을 하였지만(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능력을 받기 위해 장기 금식을 합니다(받은 능력으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하여 말입니다).
도로테우스는 자기 육체를 향하여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너는 나를 죽이고, 나는 너를 죽인다.”
포이멘은 젊은 시절 금식을 할 때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나는 육체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주님 뜻에 흡족할 만큼 육체를 압박했다.”
안토니우스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금욕 수행으로 자기 육체를 망친 사람들은 분별력이 없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
팔라몬은 이렇게 탄식하였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런데 내 음식에 기름을 치다니!”
저자 뤼쉬앵 레뇨는 결론처럼 말합니다.
“탐식과 허영의 악령은 능수능란하게 우리를 유혹한다. 탐심의 악령은 고행을 완화시키고, 허영의 악령은 고행을 강화시킨다.”
먹는대 신경 쓰고 식탐을 부리고 하면 영성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광에서 인심 나고, 식탁도 목양이라고 하지만 교회에서 맨날 찌지고, 볶고, 삶고, 굽고, 데치고 하면 기도는 언제 하고, 성경은 언제 읽고, 전도는 언제 하고, 봉사는 언제 하겠습니까?
존 카시안은 7가지 대죄를 성문화 하면서 ‘폭식’을 첫 번째 순서에 두었습니다.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 따른 위험성에 대하여 정곡을 찌른 조치입니다. 소식하면 영성뿐 아니라 육체의 건강에도 좋습니다.
사막교부들에게 고독과 권태로움은 큰 적이었습니다. 교부들은 이것을 아케디아(akedia, 정오의 악령)라고 불렀습니다. 아케디아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큰 용기와 영웅적인 인내가 필요하였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독방에 계속하여 머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였습니다. 압바 모세는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독방에 머무시오. 독장이 모든 것을 가르쳐 줄 것이오.” 하나님을 체험하기 위해 교부들은 이처럼 고독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들은 독방에서 기도만 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와 노동을 병행하였습니다. 새끼를 꼬거나 돗자리나 고삐를 만들었습니다. 파피루스를 만들거나 필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노동을 중단하고 기도할 때는 아주 열정적으로 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루에 50번, 에바그리우스는 100번, 파울루스는 300번을 무릎을 꿇거나 부복한 다음 하늘을 향해 팔을 쳐들고 기도하였습니다.
사막교부들이 밤을 보내는 방법은 다양하였습니다. 엘피디우스는 매일 밤 시편 150을 다 외웠습니다. 베사리온은 40일을 뜬눈으로 서 있었고, 모세는 밤새 뜬 눈으로 서서 기도하며 독방에서 6년을 머물렀습니다. 아르세니우스는 밤새 기도하고 아침에 잠시 눈을 붙였습니다. 사막교부들은 돗자리나 맨땅에 누워 자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벽에 몸을 기대지 않고 독방 한가운데 앉아서 자는 아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포대 위에 몸을 기대어 자거나 나지막한 벽에 가슴을 댄 채 자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언제 일어나든지 맨 먼저 한 일은 하나님께 찬미를 드리고 시편을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교부들은 사막에서 생활하면서 특히 악령들에게 수없이 괴롭힘을 당하였습니다. 위대한 사막교부들일수록 더 자주 악령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악령은 겁쟁이나 태만한 자들은 내버려두고 가장 열심한 자들을 일차 목표로 삼았습니다. 한 위대한 독수도승이 악령에게 물었습니다. “악령아, 왜 나와 그렇게 싸우는 것이냐?” 그러자 악령이 대답했습니다. “나와 싸우는 것은 바로 너지.” 악령들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개, 사자, 곰, 표범, 황소, 늑대, 말, 당나귀, 뱀, 도마뱀, 전갈, 올빼미, 타조, 여자귀신, 고슴도치 등의 온갖 모습으로 위장하여 나타나 괴롭혔습니다. 모세는 우물에서 물을 깃다가 허리에 몽둥이 세례를 받고 일 년 동안 앓아누웠고, 리코폴리스의 요한은 사흘 동안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거의 죽을 뻔 하였습니다.
악령들은 사막교부들에게 부모친척, 재산과 부귀, 욕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고, 환각, 환영을 보여주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나거나, 성체를 분배하는 사제나 주교의 모습으로 위장하여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파콘은 무릎 위에 앉으려는 젊은 에티오피아 여인을 보았고, 아폴론은 자기 목에 올라탄 작은 에티오피아인에게서 교만의 영을 보았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로 위장하여 나타난 악령도 있었고, 천사들 무리 속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원로가 악령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이렇게 물리쳤다고 합니다. “나는 지상에서 그리스도를 보기 원치 않는다.” 악령은 때로 수도승에게 먹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하고, 밤에 계속하여 기도하도록 깨우기도 하였습니다. 악령은 필요하면 성경을 인용하되 꼭 구약성경만 인용하고, 설교도 즐겨 하였습니다. 마카리우스는 악령보다 여자를 더 무서워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막교부들에게 놀라운 일들을 보이셨습니다. 그들은 신비체험을 많이 하였지만 그것을 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저 세상에 대한 환시나 그리스도에 대한 환시,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탈혼을 체험하였습니다. 또한 수많은 환자들을 기적적인 방법으로 고쳤습니다. 심지어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기적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장수한 교부들도 많았습니다. 나쁜 기후 환경과 거친 음식 및 금욕으로 위장병과 같은 고질병으로 고생한 이들도 많았지만 마카리우스는 90세, 파울루스는 113세까지 살았고, 마르쿠스는 100세가 되기까지 이빨 하나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돌연히 찾아옵니다. 사막교부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대개 조용히 그리고 평안히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형제들은 대개 눈물로써 이별을 슬퍼하였습니다. 어떤 사막교부들은 독방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그들의 시신은 동료들에 의해 모래 구덩이에 매장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약속의 땅인 하나님의 나라로 갔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사는 것은 누구에게나 한 번밖에 허락되지 않은 이생의 삶입니다. 그것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유일의 삶입니다. 사막교부들은 예수님이 좋고 하나님이 보고 싶어 그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혼탁한 세상을 등지고 사막을 택하였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고독을 벗삼고 엄격한 금욕생활을 하며 남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 주님이었습니다. 주님을 제대로 만난 후 주님과 동행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고 더욱 가까이 하기 위해 그 길을 택하였던 것입니다. 온갖 유혹과 시련이 있었지만 영원한 천국을 향한 소망이 더 컸기에 최후의 승리는 그들의 것이었습니다.
비록 그들의 삶이 보편적일 수 없고, 극단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시대를 따라 그들을 택하시어 주님을 향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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