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 하마르티아와 오페일렘마 그리고 파라프토마이 본문에 있어서 죄라는 단어는 눅 11:4에서는 하마르티아(aJmartiva)가, 마 6:12에서는 오페일렘마(ojfeivlhma)가 사용되고 있다.누가복음에서 사용된 '하마르티아'는 '화살이 과녁을 빗나간 상태'를 뜻한다. 이 단어에 의하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있을 때 그것이 죄(sins)가 된다는 것이다.마태복음에서 사용된 '오페일렘마'는 도덕적인 실수, 빚진 어떤 것(debts) 등을 일컬을 때 사용되는 말이다. 누가복음의 '죄'가 상태 혹은 본질로서의 죄라면, 마태복음의 죄는 '관계'로서의 죄이다. 또한 누가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죄에 집중하고 있다면 마태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죄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다.마18:24-35에 보면 일만 달란트를 빚졌던 자가 가까스로 자기 빚을 탕감받고 길을 나서던 중 자기에게 일백 데나리온을 빚진 자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받은 탕감의 은혜를 잊고 자기가 입은 은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액수를 빚진 채무자를 자기 옥에 가두었다가 후일 이 일이 발각되어 자신도 옥에 갇히게 되었다는 비유가 등장한다.마태는 35절로 이 비유를 정리하면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소개한다."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형제의 그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그런데 한글 개혁판 본문에는 마태복음 원문에 있는 '그 과실'( oJ paravptwma) 이라는 단어가 누락되어 있다. 여기에서 사용된 파라프토마(paravptwma)는 계획적인 범죄, 고의가 아닌 실수, 진리로부터의 이탈이라는 복합의 뜻을 가진 단어이다.이 말씀을 누가의 입장과 연계하여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 친히 성육신 하신 주님의 값비싼 대속의 죽음으로 사죄의 은총을 입고 구원을 얻었는데 어찌 자기에게 사소한 죄를 지은 자를 용서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씀이 된다.비록 누가와 마태가 사용한 '죄'라는 단어사용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두 본문의 각기 다른 '죄'를 주목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예수는 용서에 대한 베드로의 물음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의 관념상 7은 완전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는 것은 완전한 용서를 촉구하는 말씀이다. 자기 이웃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는 자는 결코 하나님의 용서를 기대할 수 없으며, 형제에 대한 자비와 사랑의 마음이 없고, 동정과 용서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사죄의 은총을 누릴 수 없다.로마서 14:7-9에서 사도 바울은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고 말함으로써 다른 이들을 용납하고 이해하여야 함을 강력히 상기시키는 한편, 인간은 누구라도 하나님의 용서가 반드시 필요한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다.당신 자신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용서하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심같이 용서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주의 기도를 통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라고 말씀하심으로 용서의 마음을 촉구하신다. 진정 용서 하는 자만이 용서받을 수 있으며, 용서와 화해는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바울서신에서 본 주님의 사죄의 일바울서신들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사죄의 일은 '평화를 이룩'(골 1 : 20)하시고 만물을 자기와 화해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엡2:14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화평'이시다.에베소서에서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 또 국가나 사회생활에서 화해와 평화가 이루어지는 길을 가르치고 있다. 그 저자는 복음을 '평화의 복음'으로(엡 2:17 ; 6:15) 표현한다. 특히 2장 14-18절은 골로새서나 빌립보서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이론적 설명에 들어갈 위치에 들어있는 본 서신의 핵심적 부분인 것이 주목할 만 하다."에베소서 2장 14절-18절을 중심으로 그 안에 나타난 화해와 평화의 의미를 찾아보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기도의 참 뜻을 살필수 있을 것이다.에베소서가 기록된 1세기말 소아시아의 역사적 현실을 보면 "헬라지역에 널려 있는 유대인에 대해서 그들의 특수주의적 생활양식에 격분하여 일어나는 반셈주의 폭동이 있었고, 또 반면에 종교신앙을 찾아 회당에 몰려드는 이방인에게 대해서 빗장을 굳게 하며 그들의 부도덕과 무신성(atheoi-12절)에 대한 규탄이 유대인 쪽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에베소서는 고대의 반셈주의와 유대교의 이방인 멸시의 완화될 줄 모르는 적대와 보복과 증오의 사회에서 형제답게 살아가는 새인간의 탄생을 갈망"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이 서신의 기록연대를 A.D 60년 경을 전후해서 볼 때 이 시기는 아그립바 1세로부터 제1차 유대전쟁이 끝나기까지의 기간(A.D.41-74)이다. 이 당시는 아그립바가 헬레니즘문화의 옹호자로 자처하던 시기였고(44년까지), 44년 그의 사망 후 로마가 팔레스틴을 직접 통치하는 총독통치기였다. 총독들의 정책은 반감을 불러일으켰고 소요들이 발생 하였으며 경제적인 상황은 악화되었다.주기도에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려면 우리 자신이 먼저 해야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에베소서가 말하듯 '둘을 하나로 만드는' 화해의 일 즉, 서로를 용납하는 것이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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