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믿음의 확실성’은 매우 강합니다. 이것은 매우 강하기 때문에 금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믿음의 확실성은 우리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으며 우리의 전(全) 인격이 관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의 믿음을 매우 귀하고 소중하게 여깁니다. 자기의 모든 지위나 재물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깁니다. 자기의 처자식보다 더 소중한 것이고 심지어는 자기의 목숨보다도 더 소중하고 온 세상보다도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며 세상의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데까르트(Descartes)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고 말했는데, 이 말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우리 믿는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redo, ergo sum).”
II.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역사적 고찰
그 다음에 우리는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구원의 확실성은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이 중요한 구원의 확실성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해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간단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로마 가톨릭에서는 몇몇 사람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합니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들은 여러 면에서 우리와 교리가 다른데, 그 중에서 아주 분명한 것 중의 하나는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구원의 확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화란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에 독일의 어느 도시에 가서 특강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가톨릭 교회에 다니던 어떤 사람이 참석하였습니다. 강의 후 쉬는 시간에 그 사람이 여러 가지 질문을 해 와서 재미있는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그 때 옆에 계시던 어떤 목사님이 그 사람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자신이 있습니까?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글쎄요, 오늘 목사님(사실 그때 필자는 강도사였다)의 강의를 듣고 보니까 지금은 천국에 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글쎄요 지나고 나면 또 모르지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원을 그들이 행하는 선행(善行)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선행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구원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또 신부에게 의존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는 것이 아니고 신부에게 찾아가서 고해성사를 합니다. 또 신부가 베푸는 미사에 참여해서 신부가 주는 떡을 받아먹음으로써 죄 사함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들은 신부에게 얽매이고 로마 가톨릭 교회에 예속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가톨릭 교회는 이렇게 사람들을 교회 체제 안에 붙들어 매어 놓습니다. 심지어 사람이 죽고 나서도 수백 년간 연옥에 붙들어 놓습니다. 이처럼 무서운 것이 가톨릭 교회입니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내가 어떻게 교회의 계명을 지킬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가톨릭 신자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얼마만큼만 지키면 구원받을 수 있는가? 내가 얼마만큼만 선을 행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가?” 물론 그 신자들 중에는 “내가 얼마나 완전하게 지켜야 구원받을 수 있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적게 지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라고 질문하게 됩니다. 고등학생이 대학 시험을 앞두고 일류 대학에 들어가려고 할 때, “합격 커트 라인이 몇 점쯤 될 것인가?”에 관심을 많이 쓰게 됩니다. 이 때 “만점을 받으면 좋다. 점수를 아주 많이 받으면 무난하게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서 가능한 한 최대의 점수를 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내가 얼마만 받으면 될 것인가? 커트 라인을 조금 넘을 수 있는 점수만 받고서 나머지 시간들은 가능하면 놀고 쉬는데 사용하자.” 이렇게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가톨릭에는 항상 두 종류의 신자들이 있습니다.
첫째 부류의 사람들은 피상적인 종교생활에 만족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때때로 신부에게 찾아가서 고해성사를 하고, 가끔 주일이 되면 한 번씩 미사에 참여해서 신부가 넣어 주는 빵을 먹고, 그리고 금식 절기가 되면 일년에 한 번쯤 금식하고, 그 다음에는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교회가 구원받게 해 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자유롭게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교회도 잘 나가지 않고 죄를 지으면서 평안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피상적인 종교 생활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피상적인 생활에는 도무지 영혼의 평안함을 느낄 수 없어서 신비적인 방법과 금욕적인 방법을 통해서 세상과 구별되고 자신의 육을 죽이고 순수한 종교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들은 대개 수도원에 들어가서 수도원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들은 엄격한 수도원의 규율을 따라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행위 성화’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자기의 행함으로써 거룩하여지고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려고 하는 그런 행위 성화의 길을 걷고 있는데, 물론 이러한 노력들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실 가톨릭 신자들은 자선(慈善) 행위를 많이 합니다. 남을 도우며, 여러 자선 단체를 통해 선한 일을 많이 하려고 하고 있는데, 이런 것을 우리는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수도원에 들어가서 수도하는 분들의 온전한 헌신, 곧 온 마음을 다 바쳐서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헌신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런 것들은 우리가 크게 배워야 할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들의 생활은 독립적이지 못합니다. 그들은 형식적이고 율법적인 것에 얽매여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항상 “나는 충분히 행하였는가?” 또는 “내가 또 무엇을 더 행하여야 할 것인가?” 하는 이러한 질문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불안과 긴장 가운데서 갇혀서 살아갑니다. “내가 어느 정도 행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무엇을 더 해야만 할 것인가?” 항상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수도원에서 살아가는 수도승이라 할지라도 항상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불안과 긴장이 감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개혁자들의 믿음의 확실성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종교개혁은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갈구에서 탄생했습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처음에는 선행에서 구원의 확실성을 찾았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루터는 수도원에 들어가서 수도원의 규칙을 따라서 아주 열심히 기도하고 엄격한 규칙을 따라서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엄격한 삶을 통해서도 마음의 평안을 얻는 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나중에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에서 이 평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곧 로마서 1장 17절에 있는 대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에서 참된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고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루터는 이 사실, 곧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 용감하게 일어섰습니다.
1517년에 그는 95개 조항을 내걸고 과감하게 그 당시의 모든 교회의 세력에 대항하여 일어섰던 것입니다. 1521년에 보름스(Worms)로 소환되어 갈 때에 주위의 친구들이 말렸습니다. “지금 당신이 그곳에 가면 당신은 잡혀서 죽을 것이다. 화형에 처해질지도 모르니 제발 그곳에 가지 마시오.” 이렇게 친구들이 만류를 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보름스를 향해서 갔습니다. 그 때 가면서 말하기를, “저 지붕 위의 기와장들만큼 마귀들이 많이 있다 할지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의 믿음은 확고했습니다. 그의 소망은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니 누가 나를 대적하리요?” 이렇게 믿고서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 확실성이 루터의 신앙의 특징이었습니다. 루터는 종종 영적인 갈등을 했습니다. 마귀들과의 싸움 때문에 갈등하고 고민하는 것이 자주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루터는 마음속에서 나오는 이 확실성을 가지고 종교개혁을 진행해 나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개혁자들의 신앙의 특징도 확실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종교개혁자들에게 있어서 ‘믿음’이라 하는 것은 그저 ‘희망한다,’ ‘생각한다’ 또는 그저 ‘짐작한다’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서 믿음이란 확실한 지식을 말했고 견고한 신뢰를 말했습니다. 그들에게서 믿음이란 모든 의심과 두려움을 내어 쫓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들 각자에게 개인적으로 죄 사함과 영원한 의와 구원이 오직 은혜로 주어진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 은혜는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 주어진 것을 확실하게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유한 가운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의 영과 함께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했습니다. 그들은 믿는 고로 말하였습니다. 그들의 삶에는 진정한 자유와 독립성과 성숙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피조물에도 속박되지 않고 살았으며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에만 복종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이 세상의 다른 어떤 사람도, 어떠한 것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꿋꿋하게 나아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살아 있는 믿음은 17세기에 들어와서 차차 퇴보하였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1세기만에 이러한 살아있는 신앙은 차차 퇴보하고, 교리와 신학은 발전하였지만 신앙과 확실성은 차차 시들어갔던 것입니다. 이것을 표현하자면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그들의 신앙을 고백하지 않고 신앙고백만 믿고 있었습니다. 이 말은 곧,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살아있는 신앙고백을 하지 않고 문서화된 그런 신앙고백만 믿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17세기의 정통주의(正統主義)는 차차 합리주의(合理主義)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종교를 한낱 이성(理性)의 일로 생각했습니다. 역사적인 증거들과 이성적인 추론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 신앙인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을 때에도 그저 어떤 교리를 증명하는 증명 구절들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조금 뽑고 저기서 조금 뽑아서 ‘하나님의 전능성’을 증명하고, 또 여러 군데서 뽑아서 ‘하나님의 전지성’을 증명하고, 이처럼 성경을 교리를 증명하는 증명구절들로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딱딱하고 시들어지자 여기에 대한 반동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소위 18세기에 일어난 경건주의인데 이들은 ‘체험’을 중요시 여겼습니다. 이들은 “아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참된 신앙은 체험이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남이 체험한 것을 듣는 것으로는 족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체험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성도들이 천국 가는 길에 경험하게 되는 긴 일련의 체험들을 제시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의 비참함을 느껴야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깊이 깨닫고 슬퍼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율법의 정죄에 빠져서 죽는 것과 같은 그런 체험을 통과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갑자기 어느 날 복음의 해방의 선언을 체험할 수 있다.” 이렇게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믿음’과 ‘확신’을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이란 수년간의 탄식과 한숨으로 얼룩진 그러한 기간이요, 기도와 바람으로 보내는 세월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에 비해서 “확신이라 하는 것은 수년간의 체험 후에 갑자기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갑자기 주어지는 이러한 체험은 “특별한 계시를 통해서 나타날 수도 있고, 성경을 읽다가 어떤 성경 구절을 통해서 갑자기 우리에게 깨달음이 올 수도 있고, 또는 우리 영혼에 밝은 빛이 갑자기 환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또는 “확신을 찾고 있는 영혼에게 그리스도께서 직접 나타나서 그에게 기쁨으로 충만케 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체험은 소수의 그리스도인만 할 수 있고 소수의 성도들만 이러한 체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경건주의자들에 의하면 세상은 어둡고 비관적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고난과 슬픔에 찬 인생이요, 그래서 종종 세상을 비유하기를 광야(廣野)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갈 때에 경건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으로 만족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보통의 교회 생활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따로 모여서 기도회를 가지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성경공부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소위 ‘교회 안의 교회(ecclesiola in ecclesia)’라 하는 것을 조직해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 경건주의는 나중에 헤른후트(Herrnhut)의 친첸도르프(Zinzendorf)가 일으킨 ‘복음주의 운동’과 요한 웨슬리(John Wesley)의 ‘부흥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친첸도르프는 율법이 아니라 복음에 의해, 시내산의 천둥이 아니라 골고다의 사랑스런 음성에 의해, 모세의 엄격한 모습이 아니라 예수님의 친근한 모습에 의해 사람들의 영혼을 얻고자 했습니다. 친첸도르프는 경건주의자들의 소위 ‘영적 투쟁(Busskampf)’이나 ‘영적 돌파(Durchbruch)’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그런 경건주의자들을 불쌍한 그리스도인들이라 불렀습니다. 그는 탄식하며 불평하는 기독교가 아니라 찬송하며 기뻐하는 기독교를 원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랑의 구주’를 설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죄인들을 향하신 주님의 무한한 사랑,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그의 받으신 상처와 흘리신 피는 죄인들의 마음속에 강한 인상을 줄 것이며, 바로 이 인상 속에 그리스도의 구속이 역사하며 성령을 통한 생명 주심과 새롭게 함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예수님의 상처에서 안식을 얻으며 죄의식과 죄의 지배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그들은 이제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풍성한 예배 의식을 행하며, 수많은 감정적인 찬송들을 부름으로써 계속적으로 영양분을 공급받고 자라가게 된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요한 웨슬리의 부흥 운동은 좀 다른 길을 걸어갔습니다. 웨슬리는 친첸도르프보다 죄의식을 더욱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갑작스런 충격을 통해 영혼들을 거짓 평안에서 벗어나게 하며, 믿음의 확신에 도달하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믿음에 앞서 깊은 죄의식이 선행(先行)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열정적인 설교와 죽음과 지옥에 대한 무서운 묘사와 영혼을 감동시키는 찬송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갑자기 그리스도의 은혜와 구원이 제시되었습니다. 그래서 지옥을 향해 나아가던 영혼이 갑자기 천국을 향해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갑작스런 회심은 그 영혼이 분명히 의식할 수 있는 체험이라고 합니다. 그 영혼이 거듭난 날짜와 시(時)와 분(分)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웨슬리가 회심한 것은 1738년 5월 24일 저녁 9시 15분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구원의 확신을 경험한 사람은 더 이상 의심하지 않으며 사망에서 생명을 옮겨진 것을 압니다. 칭의는 이제 영원히 지나간 문제이며, 이제 그 앞에는 성화가 놓여 있습니다. 이제 그의 주위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구원받아야 할 수많은 영혼들이 있으며, 그들을 회심시키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소명이 됩니다.
이들 두 운동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들은 잠자는 영혼들을 일깨웠으며,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들고 나가도록 촉구하였습니다. 국내 전도와 국외 선교에 막강한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일학교와 여러 종류의 단체들을 설립하였으며, 성경과 소책자 배포, 복음전파와 이웃 사랑 등, 많은 좋은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봉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운동은 커다란 일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즉 한 쪽으로 치우쳤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이들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 등한시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의 첫 부분에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고백하는데, 이 경건주의자들과 웨슬리 계통의 부흥 운동가들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 등한시하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전도와 회개를 강조했지만, 그것보다 더 넓은 예술이라든지 학문이라든지 문학이라든지 정치라든지 또는 가정이라든지 사회 등의 넓은 영역을 무시하거나 또는 가치를 절하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예수의 보혈에서 안식을 얻고 회심한 것으로 만족했으며, 또한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것을 거의 모든 사명으로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들 경건주의자들과 부흥 운동가들은 감정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잘못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감정과 체험을 아주 강조했는데 그러다 보니 소위 ‘감상성(感傷性, sentimentality)’에 빠지게 되고, 또는 병적인 감성(感性)들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모이면 울고 눈물 흘리고 짜고 하는, 이런 병적인 감성들에 빠지기도 하였으며, 그들의 신앙생활은 지나친 긴장과 비이성적인 열정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종종 지성이 억압받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격은 지·정·의(知·情·意)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지·정·의의 균형이 깨어지고, 너무 지나치게 감정 쪽으로 신앙생활이 기울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 세상에 대한 성도들의 주권, 이런 것들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빛의 아버지로부터 오는 모든 좋은 것들을 감사함으로 누리는 것이 결핍되었고, 또 세상 직업에 성실히 종사한다든지, 넓은 마음을 가진다는 것 등이 결핍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신앙의 삶은 종종 인간의 삶과 분리되곤 했습니다. 이들에 있어서 신앙의 삶은 인간의 삶과 분리되고, 인간의 삶 위에 거하고, 또는 인간의 삶에 대해서 종종 적대적인 관계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비유로 말하자면, 이들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자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서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들에 있어서 기독교는 그저 자루 서말 속에 들어 있어서 가만히 한 구석에만 머물고 마는 그런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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