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예수를 믿으면 좋은 일이 많이 생깁니다.
쉬이 믿어지지 않겠지만 예수를 믿으면 뜻하지 않은 그리고 이전에는 별로 없던 좋은 일들이 실제로 많이 생깁니다. 물론 세상방식으로 논리적인 근거를 댈 성질의 일은 아닙니다. 좋은 일 발생에 관한 어떤 확률 같은 것이 학문적으로 검증된 얘기도 아닙니다.그러나 이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이라고 내가 힘주어 여기에 글로 밝히는 데 대해 예수를믿는 이들은 반박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이 쉰이 가까워 오도록 혼자서 세상 방식대로만 살다가 뒤늦게 예수를 믿기 시작한 사람의 말이니 여러분은 내 말을 믿어야 합니다.‘예수를 믿으면 왜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날까?’ 어느 날 나는 그 까닭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 일이 있습니다. 맞는지 안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나름대로 정리해 본 이치로는대략 다음과 같습니다.첫째, 예수를 믿으면 좋은 생각만 하게 됩니다. 좋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 남들도 나를 좋게보아줍니다.둘째, 예수를 믿으면 걱정이 없어집니다. 걱정이 없이 마음을 편하게 갖는 사람은 세상일도편하게 풀리게 마련 입니다.셋째, 예수를 믿으면 몸과 마음과 생활이 건강해집니다. 그런 사람한테 좋은 일이 안 생긴다면그게 오히려 더 이상하겠지요.넷째, 예수를 믿으면 작은 것 하나라도 선한 행동을 이웃에게 베풀게 됩니다. 베푸는 것은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내게 가르쳐 준 이는 왕년의 후라이보이곽규석 목사님입니다. 그 진리의 공식을 실제로 확인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한번실천해 보십시오. 이 부메랑 공식에는 예외라는 게 없습니다.22. 예수를 믿으면 적이 없어집니다.
젊은 날에는 잘 실감이 안 나겠지만, 세상을 좀더 살다 보면 차차 알게 됩니다.야박한 얘기 같지만 어느 사회나를 막론하고 우리가 사는 일상의 주변에는 수많은 ‘나의 적’들이 숨어 있게 마련입니다. 정치하는 이들의 세계에는 반드시 정적( ?n)이 있게 마련이고,학교사회나 직장사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은연중 나와 함께 경쟁관계에 있는누군가가 숨어 있게 마련입니다. 순수한 젊은이들의 세계에도 남녀관계에 있어 연적( m n)의존재는 흔한 상식 중의 하나입니다.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적’ 이란 선의의 넓은 의미에서 흔히 통용되는 ‘라이벌’ 의 개념으로 우선 이해해도 좋을 듯합니다 그런데 실제의 처세 현실에 있어서는 그것이 그처럼 그냥 항상선의의 의미로만 작용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평소 친한 친구로만 믿고 있던 사람이 어느 경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적으로 표변하는 수도 있고, 선한 이웃으로만 그냥 단순하게 여기던 사람이 어떤 이해관계가 얽힌 상황에 가서는졸지에 적으로 돌변해서 내가 추구하는 이익의 앞길을 가로막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심한 경우는 집안의 친척간이나 한 핏줄을 나눈 형제간에도 적이 생겨나 불미스런 송사( ?v)를 서로 주고받는다는 한심한 얘기도 간간이 듣습니다. 그래서 생각과 목적이 다른 여러 부류의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이 바로 원만한 처세와 처신이다.’ 하고어른들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또 ‘적이 많은 사람은 아무리 유능해도 출세를 하기 어렵다.’ 라고도 어른들은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어느 사회에서나 성공을 하려면 주변에 적을 만들지 말아야 된다.’ 는 뜻이 됩니다. 세상 경험이 많은 어른들의 말씀은 어느 경우에도 틀리는 법이 없습니다. 어른들의 말씀은 경험칙의 배경이 탄탄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어느 경우라 할지라도 예수를 믿으면 적이 생기지 않습니다. 예수의 말씀을 따라 겸양과 사랑과 이해와 봉사와 양심으로 늘 자기 반성을 하면서 정도( ??를 걷는 사람한테는 결코적이 생기지 않습니다.23. 예수를 믿으면 술을 끊게 됩니다.
술에 관한 한 그리고 예수 믿고 술을 멀리하게 된 경우에 관한 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한테 일가견이 있습니다. 제가 바로 그 샘플이니까 말이지요. 적절한 때와 장소를 가려 적당량의 술이라면 분명히 거기에는 건강상, 친교상, 또는 업무상의 순기능이 있습니다. 실제로 보면 점잖은 식탁에 모인 사람들끼리 식전이나 식후에 와인 한 잔을 곁들이는 경우가 보통인데 이것은식전에 입맛을 돋우기 위한 목적이라든가, 또는 식후의 느끼한 입맛을 가시게 하는 데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술이라는 것은 그 본성이 ‘때와 장소를 가려서’라든가 ‘적당량’이라든가를 엄격히 지켜내도록 되어 있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술의 본질은 그것을 섭취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도( ??와 정도( ??를 벗어나게하는데 있지 않을까 싶은데 범인( ??들의 경우, 그 ‘본질’로부터 자유스러워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난 젊은 날을 되돌아보면 나는 술을 참 많이 마셨습니다. 주변 친구들이 문학, 연극, 영화, 매스컴 등 주로 예술계통에 종사하는 이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일 년이면 300번쯤 술을 마시지 않았나 기억됩니다. 그것이 우정이었고, 그것이 삶의 희열이었고, 그것이 젊은 낭만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차츰 나이를 먹어 가고, 자식들이 커 가고, 건강이 이전만 같지 못하게 됨에따라 술로 인해 형성된 우정이며, 희열이며, 낭만이라는 것의 생명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회생활, 가정생활, 경제생활의 리듬과 균형이 서서히 뒤틀리기 시작하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왜였을까요? 온당한 삶의 노선과 목표가 허방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언뜻은 잘 닦인 길처럼 보이나 실제로 밟아 보면 발이 점점 빠지게 되는그것이 허방이지요. 술의 한계가 그것이었습니다. 남는 게 전혀 없지는 않았으나 그러나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게 훨씬 더 많은 그것이 바로 술의 한계였습니다. 천만다행이게도 그럴즈음에 만난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술꾼과 예수는 걸맞아 보이지 않지요?정말로 걸맞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그랬고, 남들이 보기에는 더 그랬습니다.그러나 어느 날부터 내 손에는 술잔 대신 성경이 들려 있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한줄 한줄읽었습니다. 긴 허방 속을 헤매던 눈에 성경말씀 하나 하나는 그 자체가 바로구원의 밧줄이었습니다. 결코 발빠지는 일이 없는, 견고한 길이 새로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내 몸이 곧 성전이라는 사실도 술의 덧없음과 함께 깨닫게 되었습니다.나뿐일까요? 누구라도 예수를 믿으면 술을 끊을 수 있습니다.24. 예수를 믿으면 병이 빨리 낫습니다.
나는 비교적 몸이 건강한 편입니다. 프리랜서로 독립해서 개인 사무실을 낸 이후 불가피한 해외 출장 때 말고는 지난 17년 동안 눈이오나 비가 오나 단 하루도 결근한 일이 없다는 게 그 증거입니다. 그래서 가까운 친구들이 농담합니다. “워낙 독종이라 병이 찾아 왔다가도 그냥 도망간다.” 고 말이지요. 그런데 어인 일로 내 주위에는 개인적으로 아는 의사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믿음을 가진 의사거나 아니거나를 막론하고, 그분들의 얘기 가운데는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환자는 병이 빨리 낫는다!” 물론 자신들의 일상적인 임상 경험을 통해서 얻은결론일 것입니다.예수를 믿으면 병이 잘 낫고 또 빨리 낫습니다. 참 신기하지요? 실제로 ‘치유하시는 은혜’ 와관련된 이야기는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우리를 만드신 이가 하나님이시므로 우리 몸과 마음의 고장을 고칠 능력을 가진 분도 바로 하나님이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일입니다.그래서 우리는 환자가 있는 병실을 찾아가서 하나님께 대신 기도를 해주기도 하고, 거리가 먼 곳에 있는 환자일 경우에는 여럿이 간절한 마음을 모아 중보기도를 해주기도 합니다.그런데 그 치유의 은사를 정말로 확실하게 받자면 그 어떤 방법이나 기도에 우선해서 한 가지전제가 따릅니다. 즉 환자 자신이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하심을 얼마나 확실하게 믿고 의지하면서 간절히 간구하느냐에 따라 사정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약반심반( 呵 ? )’ 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예수님 손이 바로 약손이지요.그러나 이런 은사는 하나님이 지니신 무한량의 여러 능력들에 비하면그야말로 매우 적은 한 부분에 불과할 뿐입니다.25. 예수를 믿으면 기쁨 충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삼십 년쯤 전의 일입니다. 나는 당시 인천의 한 모퉁이 거리에서 조그만 서점을 잠시 운영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서점 앞으로 동네 노인 한 분이 지나다니셨는데노인은 언제 보아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늘 기쁨에 가득한 미소를 짓고 다녔습니다.처음 한두 번은 무심히 보아 지나쳤지만 먼발치로나마 노인의 얼굴을 대하는 횟수가 거듭됨에 따라 나는 그분에 대해 호기심과 궁금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차림새로 보면 그렇게 부잣집 노인도 아닌 모양인데???. 무엇이 저 노인을 매일 저렇게 기쁘게 하나? 저 노인에겐 무슨 기분 좋은 일이 매일 생긴단 말인가? 도대체 저 노인은 뭘 해 먹고사는 사람일까?’ 당시는 60년대였습니다.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궁핍에 찌들어 찌푸린 얼굴로 살던 시대였습니다.따라서 당시의 사회상을 조금이라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 노인의 기쁨에 가득한 표정이여간 남다르지 않았으리라는 점도 함께 상상이 될 것입니다.얼마쯤 지난 후에 이웃 누군가로부터 들어서 알게 된 일이지만 그 분은 동네 교회 장로님이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아직 내가 예수를 믿지 않던 시절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 모를 동네 노인 한 분이 내게 심어 준 인상은 오래도록 지워지지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흐른 후, 중년이 된 나이로 마침내 나는 예수 믿는 생활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연히 알게 되었습니다.우선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님의 기쁨에 가득 찬 얼굴을 만나는 순간, 30년 전의 기억 속에숨어 있던 그 노인의 표정이 똑같은 느낌으로 다시 다가왔기 때문이기도 하였습니다.그 비슷한 표정을 나는 이후에도 교회를 통해 다수 만날 수 있었습니다.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마음속에 언제나 가득 찬 것이 오로지 기쁨뿐이라는 것을비로소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정말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누구나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만왕의 왕이신 그 거룩한 예수님이 내 가슴 속, 머리 속에서 언제나 내 영혼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 오로지 나를 위해 그렇게 함께 계신다는 사실! 나부끼는 갈잎과도 같았던 내가 지금은 하늘 아래서 가장 축복스런 진리의 복음에 의해 지난날의 모든 죄악들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런 사실들을 생각하면 누구라도 기쁨의 미소가 절로 얼굴에 배어 나올 수밖에 없게 되어있습니다. 누구라도 예수를 믿으면 기쁨에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이것은 돈이나 명예나 사회적 지위 따위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26. 예수를 믿으면 낙천가가 됩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사람을 지목하여 평가할 때 ‘그 사람은 좋은 사람???.’ 이라는 말을잘 씁니다.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에게 주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축복이지요.그런데 실제로 그 ‘좋은 사람’ 으로 가는 지름길이 우선 낙천가가 되는 것임을 실감하는 이는그리 많지 않은 듯 싶습니다. 낙천가란 늘 세상사를 좋게 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좋은 세상은 좋은 사람의 눈에 더 잘 보인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매사에 기우( ??가 많고 작은 일에도 꽁한 사람, 사물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옹졸한 사람은 이웃에게도 그만큼 심적인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좋은 사람’ 의 인상을 주기 어렵습니다.무리( ? )하지 않고 역리( c )하지 않고 늘 순리( % )를 택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이웃을 불편하게 하거나 이웃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이웃에게 상처를 주거나 하지 않습니다. 웬만한 고충이나 불편함의 장애물도 넉넉하게 극복해 나아갑니다. 작은 바퀴는 작은 돌에도 잘 걸리지만 큰 바퀴가 굴러갈 때는 자잘한 돌멩이 따위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 이치와 같다 할 것입니다. 예수를 잘 믿으면 언제나 근심 걱정을 모르는 낙천주의자가 됩니다.큰 바퀴와 같은 마음을 지닌 인간이 된다는 뜻입니다.모든 근심과 걱정을 하나님께 온전히 다 맡겨 버리고 환경에 순응하는 순리의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큰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문제가 문제로 드러나 있는 이상 문제 곁에는이미 문제의 해결방법도 함께 숨어 있게 마련이다.” 하는 요지의 변증법도 있습니다만,마음이 넓은 낙천주의자들은 그마저도 하나님의 선물 중 하나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한 번뿐인 인생을 과연 어떤 자세로 살 것인가는 이제 스스로가 결정할 일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낙천가가 됩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지으신 우리 본디 모습을 되찾자는 얘기입니다.27. 예수를 믿으면 행운이 따라다닙니다.
맨머리로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지요. 그 높은 예수님이 돈 받고 행운을 빌어주는 복술사 따위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분인데도 어인 일인지 예수를 믿는 집안을 보면 두루두루 모든 게 술술 잘 풀려나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도 예수를 믿는 사람을 보면하는 일마다 잘되니까 말입니다. 혹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있더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면 그 기도가 어김없이 통한다고 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부분을 오랜 시간에 걸쳐나름대로 연구를 해보았답니다. 그랬더니 드디어 해답이 나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지요.‘예수를 믿으면 행운이 따라다닌다’ 는 그 말은 사실이었습니다.여기서 중요한 것이 ‘믿으면’ 이라는 전제에 대한 해석입니다. ‘믿으면’ 이라는 말은 그냥 단순히 ‘교회를 왔다 갔다 다니면’ 을 뜻한다거나 ‘소설책 읽듯 성경을 얼마간 읽어보면’ 을 뜻하는 것이아니었습니다. ‘믿으면’ 이란 ‘사람이 근본부터 아예 달라져서 예수님의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면’ 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새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사고방식이나 행동거지를 모두 하나님께 내맡기고 오로지 예수를 본받는 그런 삶을 산다는 뜻이었습니다.여기서 말하는 예수의 삶이란 곧 자기를 버린 희생이요, 자기를 버린 낮춤이요, 자기를 버린 베풂이요, 자기를 버린 사랑이요, 오로지 자기를 버린 이해와 용서와 온유와 인내와 기다림과 감사와 기쁨이었습니다. 자, 이제 생각을 정리해봅시다. 정말로 우리 모두가 그렇게 자기 욕심을버린 선한 삶을 사는데 하늘의 복이 따르지 않겠습니까?그런 삶을 보고 감동하지 않는 이가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보고 마음으로부터 흠모하지 않는 이가 있겠습니까?그렇습니다. 예수를 실제로 믿/으/면/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삶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감사하고 행복하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둘러싼 사람들을 통해 끝없이 복을 베풀어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더러 사람들의 힘을 통해 될 법하지 않은 일은 손수 나서셔서 기적을일으켜주시기도 합니다. 그 행운의 기적을 우리는 곧잘 ‘우연’ 이라 여기고 말뿐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틀림없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다른 이름이 바로 ‘축복’ 이기 때문입니다.예수의 죽음 대신 우리가 받는 놀라운 보상이기도 하지요.
28. 예수를 믿으면 부자가 됩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은 부자를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말씀하기도 했지요.세상에서의 재물 추구보다는 천국에서의 영광을 더 중히 알고 그것에 예비하는 삶을살라는 뜻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물질의 풍요를 싫어하신 게 아니라 오로지 재물만을 최고가치로 여겨 따순 피 흐르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수전노를 싫어하셨던 것입니다.서양에는 이런 우스개 속담이 있습니다. “수전노란 거지가 될까 봐 겁나서 거지처럼 사는 사람!” 그런데 이 우스갯말을 음미해 보면 거지의 뜻이 조금씩 다름을 알게 됩니다.즉, 앞에 나오는 거지는 물질이 없어 가난한 거지 그리고 뒤에 나오는 거지는 마음이 가난한거지입니다. 두 거지의 공통점은 양쪽이 다 바람직한 삶의 모양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부자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물질부자건 마음부자건 예수를 믿으면 누구라도 부자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흔히 부자가 되려면 우선 돈을 많이 벌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내 생각은 조금다릅니다.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느냐는 사실 별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돈에 특성이 있다면 번 만큼 다 써버리거나 번 것보다 더 많이 써버리기가 쉽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비록 남보다 적게 벌더라도 돈의 못된 특성을 통제할 능력을 갖고 검약하면서 열심히 저축한다면 그 사람이 바로 부자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통장에 돈 얼마만 들어 있으면 그것이 근질거려서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정신과 치료 대상 가운데 ‘쇼핑 중독증 환자’ 같은 게 있겠습니까?요컨대 ‘통제능력’ 을 통한 검약생활인데 예수를 믿으면 그 일이 가능해집니다. 예수 말씀을따르는 생활을 하면 ‘통제능력’ 과 ‘감사능력’ 을 배우게 됩니다. 말씀 따라 이 두 능력만 배우고 나면 하나님께서는 지체없이 그에게 무한한 축복을 부어 주십니다.주위를 둘러보면 예수 믿고 나서 부자가 된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누구라도 예수를 믿으면 물질부자, 마음부자가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어김없는 약속사항입니다.29. 예수를 믿으면 걱정이 없어집니다.나는 50년 넘게 세상을 살면서 참 많은 갖가지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 왔습니다. 회사나 점포를 운영하는 장사꾼들, 고급 예술분야의 이름난 종사자들, 높고 낮은 관직 관료들,국회의원들과 그 추종자들, 언론 방송계 종사자들, 출판사경영자들, 전형직 장관들, 직장인들,수사기관 종사자들, 직업 세일즈맨들, 수많은 남녀 연예인들, 무역업 종사자들, 유흥업소 운영주들, 직업군인들, 부동산중개업자들, 떠돌이 유랑극단 사람들, 전문분야 프리랜서들, 세리들,의료인들, 교육자들, 전과자들???. 그리고 거기에 재벌그룹 회장이나 판검사 등이 더해집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그런 이들을 사귀다 보면 반드시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됩니다.세상에는 사람마다 걱정거리 없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지요.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뱅이는 가난뱅이대로 걱정거리가 많습니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신기하게도 세상살이에 걱정이 없어집니다. 어려움에 처하게 될 때마다 얼른 예수님을 머리에 떠올리기 때문이지요. 세상사람들의 걱정거리 중 99%는 대개 끝이 정해져 있지 않은 탐욕본능에서 기인합니다. 명예와 관련한 욕심, 사회적 성취와 관련한 욕심, 재물 소유나 재물 손실과 관련한 욕심, 이성과 관련한 욕심, 건강장수와 관련한 욕심 그리고 제 자식에 대해 거는 욕심 등이바로 그것입니다.그런데 예수를 믿게 되면 기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 그런 걱정들이 다 없어집니다.걱정의 멍에는 세상에서 오는 경우보다 스스로의 탐욕에서 비롯된 경우가 절대적으로많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깨닫게 됩니다. 성경에 ‘걱정하지 말라’ 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는 걱정거리를 무책임하게 방기( K ?하라는 뜻이 아니라 걱정의 멍에를 벗어 내려놓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잘 믿는 이들을 보면 걱정을 하지 않고 삽니다. 세속에 살면서 세속의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이 말처럼 쉽게 되지는 않을 터이지만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은 그 길이 우리가 모색할 수 있는 유일한 ‘평안의 삶’ 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30. 예수를 믿으면 불면증이 사라집니다.
예수를 믿으면 정말 불면증이 없어집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제가 그 경험자 장본인입니다.그 사실이 너무나도 신기해서 한동안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을 하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언젠가는 평소 알고 지내는 의사 친구한테까지 자랑한 적이 있습니다. 1990년 4월 하순 어느주일 아침, 친구인 가수 윤형주 씨에 이끌려서 용산 서빙고동 한강변에 있는 온누리교회에 처음 나간 역사적인 밤이었는데 그런 ‘기적’ 이 정말로 내게 일어났던 것입니다. 당시 나는 원인을알 수 없는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혹시 베개가 원인인가 하고 수없이 많은 베개를 연달아 샀던 기억이 납니다. 불면증에 좋다는 자석 특허 베개, 영국제 던롭 스펀지 베개,속리산 향나무 베개, 땀을 흡수하면서 포근하다는 양털베개 등등, 그러나 결국 다 소용이 없었습니다. 불면의 원인이 내 머리 속, 가슴속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나는 글을 쓰는직업인이기 때문에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면 그 이튿날 머리가 무거워 생업에 막대한 지장을 받습니다. 각종 멍청한 베개들의 행렬이 그래서 비롯되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나로 치면 남들이 말하는 소위 ‘위기의 40대!’ 그중에서도 40대 후반이었습니다.신체적으로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는데도 밤이면 깊은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밤마다자기 전에 술을 한 모금씩 홀짝거리기도 해보았지만 별 효험이 없었습니다. 스스로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당시의 내 머리 속에는 온갖 쓸데없는 걱정거리나 장래에 대한 불안감 같은 것들이가득 차 있었던 모양입니다.그러다가 첫날 교회에 가서 ‘예수 사랑해요’ 라는 아름다운 찬양을 듣고, 하용조 목사님의 자상한 설교를 듣고 그리고 성경 중 마태복음을 몇 줄 읽었을 뿐인데도 머리와 가슴에 가득 차 있던 온갖 무거운 찌꺼기들이 정말 기적처럼 사르르 다 녹아내리는 느낌이었습니다.마음이 가벼워지니 몸도 덩달아 가벼워졌습니다. 특히 내가 그날 읽은 성경 가운데는‘걱정하지 말라’,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짐을 다 내려 놓으라’ 하는 내용의 말씀이 있었던 기억입니다. 그 후로는 불면증 때문에 고통당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습니다.백 마디 말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해답은 하나뿐입니다. 불면증으로 오랜 세월 고생을 한사람이 낫기를 원하거든 예수를 믿는 길밖에 다른 치료방법이 없다는 것을 나는 자신합니다.
불면증의 원인은 ‘불안’, 예수의 이름은 ‘평안’ 이기 때문입니다.

He is a cross pendant.
He is engraved with a unique Number.
He will mail it out from Jerusalem.
He will be sent to your Side.
Emmanuel
Bible Verses About Welcoming ImmigrantsEmbracing the StrangerAs we journey through life, we often encounter individuals who are not of our 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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